Chapter 152 - 152. 현상 수배 (2)
아르옌이 안드레 주교를 대신하여 악신 숭배자들의 공격을 맞았다. 어쩐지, 전혀 그답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되면서도 그다운 행동 같기도 했다. 나는 생각에 빠져 주위 풍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마차의 흔들림에 머리를 덜걱거리고 있었다.
이실라는 침묵하고 있었다. 딱히 내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면, 그녀 쪽에서 불필요하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이 없을 뿐이었다.
덜컹.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나는 상념에서 깨어나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마차는 멈춘 채로 계속 혼자 덜컹거리고 있었다. 말이 히힝, 우는 소리. 당황한 마부가 말을 진정시키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다. 마부석과 객석을 잇는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마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손님. 지금 말이 제 말을 듣지 않아서….”
“무슨 일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멈춘 채 도저히 앞으로 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창밖의 풍경은 여상했다. 관목이 듬성듬성한 길. 풀은 끝에서부터 노랗고 하얗게 비틀어지고 있다. 그리고 전방 백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마을이 시작되었다. 말은 마을을 바라보며 공포에 사로잡혀 불안하게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고 있다.
“말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손님, 이 이상 억지로 말을 끌려 하면….”
“예, 알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알아서 가도록 하죠.”
이실라가 나를 따라 마차에서 내렸다. 마부는 힘겹게 말머리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덩그러니 길에 남겨진 채 마을을 바라보았다.
“저 마을, 악신 숭배자들이 기존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신도로 삼거나, 죽였습니다.”
이실라가 먼저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활자가 말을 하듯 건조했다.
“죽은 사람들은 한데 모아 태웠습니다.”
남은 사람은 없을 거라며, 이실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은 그 풍경에서 사람만을 쏙 빼놓은 것처럼 멀쩡했다. 가게며, 시장이며, 판자 위에 진열된 상품이며.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이실라는 나를 데리고서 한 건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놈들을 맞아 싸웠습니다.”
피, 시체, 그리고 또 피.
나는 복도 한복판에 멍하니 서서 주위 풍경을 둘러보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밀려와 머리가 아팠다. 비린내, 썩은내, 불길한 마력의 잔재, 누군가의 잘린 다리, 벽에 기댄 채로 죽어버린 이단심문관들의 시체. 나는 이름 모를 이단심문관의 눈을 감겨주었다.
“[…끔찍한 일이 있었구나.]”
문자 그대로의 학살이었다. 널브러진 시체는 못해도 스무 구 이상은 되어 보였다. 개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고, 이름을 아는 이들도 있었다.
“전부 죽은 건 아닌 듯합니다. 현장에는 이들보다 많이 있었으니.”
이실라는 그들의 죽음에 태연하게 대처하는 듯했다. 하지만 일순 스쳐간 빛이, 그녀의 눈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는지 나는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주교님은 보이지 않는군요. 살아서 빠져나갔으려나요.”
“모르겠습니다. 주교께서 결코 그리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실라가 말끝을 흐렸다. 목소리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괜찮나요?”
“예. 우리는 죽임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게 이단심문관들의 숙명이라고. 우리는 그리 교육받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사무(事務)였다. 마리안느는 어땠었나. 그녀도 나를 만나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었겠지. 죽음에 감정을 두지 말라는 교육, 혹은 세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그들의 생존법이었다.
“건물을 빠져나간 흔적이 하나가 아닙니다. 아르옌 말고도 살아 몸을 피한 이들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들이 신호를 남겼다면 어디로 달아났는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일말의 그림자도 지운 채, 이실라는 흔적을 찾는 일에 착수했다. 나는 그동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악신 숭배자들의 마지막 은신처. 나는 손톱으로 긁어댄 듯한 흔적이 남아있는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마력이 심상치가 않다, 일로이.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거라.]”
“알겠어. 조금만 더 조사하고 돌아갈게.”
피인지, 뭔지 모를 새가만 얼룩이 바닥에 지익, 붓으로 그은 것처럼 묻어있었다. 그 흔적이 그리는 건, 역오망성. 그리고 그걸 제외하면, 방은 좁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지금 놀림당하는 거 아니지?”
“[놈들의 숭배 대상은 실존한다. 숭배자들은 모두 그의 존재를 명확히 느끼지. 복잡한 의식이나 제단으로 없는 존재를 쫓을 필요가 없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성검은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래서 오히려 텅 비워뒀다는 건가. 성상이 필요 없다 이 말이네.”
방은 냉장고에 들어선 것처럼 서늘했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새카만 어둠.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는 사이한 마력은 본능처럼 내 심장을 노리고 달려들다가, 내 마나에 부딪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아예 마력을 살짝 끌어올려 잔여 마력의 반응을 살폈다.
“물러나지를 않네.”
방의 잔여 마력은 물러서기는커녕, 다분히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공간 전체에서 들끓는 짙은 살기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어둠보다 깊은 공허가 모여들어 촉수처럼 역오망성의 한가운데에서 실타래처럼 몸을 꾸물거리고 있다.
“이건 재앙이랑은 또 다른 느낌인걸. 오히려 더 위험해 보여. 대체 뭐야, 저게?”
“[…악신의 잔재로구나. 일로이,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
성검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어느새인가 등 뒤의 문은 닫혀 있었고, 랜턴의 불빛은 명멸하며 흐려지고 있다. 빛 자체가 두려워하며 떨고 있는 듯했다.
“[면류관을 부르거라. 긴장해야 할 거다.]”
나는 고개를 슬쩍 내저었다. 나도 저 기운이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저 기운을 탐색할 필요성도 느꼈다.
“아니, 기다려봐. 실험해볼 게 있어.”
“[실험은 무슨 실험-]”
나는 성검이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 전, 마력 덩어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력의 덩어리는 생명체처럼 태세를 갖추었다. 나는 그에 대항할 만한 모든 방어기제를 내려놓았다. 면류관도, 마력의 고동도, 몸의 긴장 상태도. 그러자, 어둠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일로이, 위험하다니까.]”
“확인해야 해.”
어둠. 혹은 그보다 어두운 무언가. 아마 빛이 생기기도 전에 있었을 태초의 혼돈. 그것은 내게 아주 느릿하게 다가왔다. 사냥감을 면밀히 바라보며 크리를 재는 비단뱀처럼. 그 혀가 쉿쉿거리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뱉는다. 성검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오랜만이구나.
귓가를 울리는 오싹한 목소리. 나는 어느새, 깊은 어둠 속에 들어와 있었다.
미끼를 던지면 물어볼까 했는데, 정말이었군.
저 목소리가 바로, 내가 꺼림칙하다 생각하고 있었던 마력의 정체인 걸까.
하지만 달라졌구나.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깊은 목소리. 목소리는 내 안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고,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알 수 없는 거리감에, 나는 등골을 얼음으로 문지르는 것 같은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들이마시는 숨이 날카롭다. 나는 기도를 사포로 문질러대는 감각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야, 너는 어째서 아직 그러고 있는 게냐.
아이라는 말이 껄끄러웠다. 나는 부러 목소리를 강하게 내며 눈을 부릅떴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 것 같았다. 아르옌은 이곳에서, 저 어둠의 본체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해버린 걸까.
“친근한 척 부르지 말지.”
어둠을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이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
“너는 부끄럽지 않은 거냐? 숨어서 드러내지도 않는 주제에.”
내 말을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목소리의 웃음은 괴악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젖은 사기그릇을 쇠숟가락으로 긁어대는 소리 이상으로 거슬렸다. 사람이 아닌 것이 억지로 사람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혹은, 그 이상으로 잘 흉내 낼 수 있는 존재가 일부러 신경을 거스르게 하도록 조롱하고 있거나.
아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한참을 그리 웃고서, 목소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어둠보다 어두운 것이,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곧 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둠은 내 일부일 뿐이다.
‘나’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모종의 울림이 담겨 있었다. 초월성. 그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단순히 자신을 지칭하고 밝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존재.
알 것 같으냐, 아이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 발치에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거대한 문어가 발을 뻗어 내 발목을 휘감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가만히 문어가 내 발을 휘감게 내버려 두었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그러나 그 이상으로 어둠은 다가오지 못했다. 나는 발목을 휙휙 털어내었다.
“…그런데 있잖냐, 너.”
알아보는 건 얼추 끝났다. 장난질에 더 놀아날 시간은 없다.
“그렇게 허세에 가득 차서 말하는 거 치고는 꽤 약하다?”
파지지직.
머리 위로 금빛 원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싸던 어둠이 바스러져 흩어졌다. 내가 다가가면 어둠은 물러났고, 나는 물러날 구석이 없을 때까지 어둠을 몰아붙였다.
불길은 저 멀리에 있는데, 재를 밟고서 불을 껐다고 말하는구나.
“그럼 그 불길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려주겠어?”
다시 웃음. 그 웃음에는 어딘가 기특하다는 듯한 기색마저 있었다.
그 비틀린 자는 머지 않아 만나게 될 거다, 아이야. 모든 건 모두 정해진 길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특히 네 경우에는 말이다, 아이야. 그 정해진 길에 묶여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꼭 네가 묶어놓은 것처럼 말하네.”
그렇지 않다, 아이야. 나 역시 그 길에 단단히 묶여있으니 말이야. 절대적인 존재일수록 운명의 굴레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할 거다.
목소리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어둠은 점차 부서지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젠 여기 남아있을 수가 없구나.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겠지.
어둠은 마지막 한 줌이 남아 방의 구석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발을 천천히 들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어둠을 밟았다. 파스슥, 하고 잔불에 물을 들이붓는 듯한 소리가 났다.
깜박, 깜박.
꺼졌던 램프의 불빛이 돌아왔다. 이전보다 창백한 푸름을 띠고, 랜턴은 방을 오도카니 비추고 있었다. 나는 훈륜을 지우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찜찜한 한기가 공간에 남아 감돌고 있었다.
“[일로이.]”
성검의 목소리가 그때야 들려왔다. 성검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우려와 분노가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아귀는 성검의 검자루를 강하게 붙들고 있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미안해.”
나는 어둠이 남아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곳에 있는 건, 단순히 빛의 반작용으로서의 그림자뿐이었다.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성검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도리어 내가 걱정될 정도였다. 나는 자루 끝을 가볍게 두드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이 녀석을 달래줘야 할 날이 오다니. 내일 세상이 망하려나.
“괜찮아. 어디 다치지도 않았잖아.”
“[…그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괜찮아.
나는 성검을 허리에서 풀어 안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달칵.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스윽, 이실라가 고개를 들이미는 인기척이 들리고, 나는 돌아보며 이실라와 눈을 마주쳤다. 이실라는 내 품에 들린 성검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밖을 바라보며 고갯짓했다.
“흔적을 찾았습니다.”
아주 약간, 그 목소리에 빛 비슷한 것이 깃들었다.
“주교님은 아직 살아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