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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53화 (154/158)

Chapter 153 - 153. 현상 수배 (3)

죽음과 굉장히 가까운 냄새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회의 창을 통해 잿빛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고, 낡은 이불보에서 피어나는 퀴퀴한 먼지 입자들이 햇살 속에서 떠돌았다. 나는 주교의 찢어발겨진 몸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혼자 환부를 치료한 건지, 방의 탁자 위에는 붉게 물든 천과 가위, 실 따위가 너절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아이시스를 불러오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필요한 조치는 전부 취해놨으니까요. 당장 죽지는 않을 겁니다.”

의외로, 대답하는 목소리는 또렸했다. 물론 저 인간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걸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마 죽는 순간에도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지 않을까.

“다른 인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흩어졌지요. 아르옌은…, 우리를 구태여 쫓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주교의 미소는 씁쓸한 것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등이 베이지는 않아서 스스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손발이 잘려 나가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당장 멀쩡하게 몸을 움직이기는 힘들긴 하군요.”

주교는 내게로 고개를 삐걱거리며 돌렸다.

“용병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르고요.”

안드레 주교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주교의 흐릿한 잿빛 눈이 반쯤 감기다가, 다시 떠졌다.

“아르옌은 그때 무언가에게 몸을 지배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카만 안개 같은 것의 공격을, 아르옌이 절 대신해서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더군요.”

“정신을 지배당한 겁니까?”

“…그걸 전혀 모르겠습니다.”

주교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악한 존재가 몸에 스며든 것 치고는 의식이 멀쩡해 보였고, 대화도 통했습니다. 다른 곳에 주의가 팔려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요. 용병이 아니라고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실라를 돌아보았고, 그녀 역시 주교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했다. 그 녀석이 그 어둠에 잠식당한 게 아니라면, 갑자기 돌변할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대체 아르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짐작 가는 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함께 다니는 동안 무언가를 늘 고민하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결코 변절할지 말지 따위의 얕은 고민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하들이 죽었고, 자신은 중상을 입었다. 이성을 잃고 날뛸 만한 상황이지만, 주교는 침착했다. 아니, 되려 충격이 역치를 넘어서서 제정신을 차린 것일 수도 있겠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따로 있습니까?”

“…강했습니다. 힘이 아니라, 기교적으로 말이에요.”

주교는 분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용병이 포제션을 당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보통 몸에 이상한 것이 깃들면 마력의 출력이 바정상적으로 높아지거나, 근력이 인간을 벗어난 수준으로 강해지거든요. 그런데… 아르옌의 경우에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치 숨기고 있던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고, 주교는 덧붙였다.

“대인전이라면 엇비슷한 정도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턱도 없었습니다. 용병은 압도적으로 저를 유린했지요. 꼭 천천히 저를 가지고 놀다가 죽여버리려는 듯했습니다. 덕분에 틈을 만들어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요. 아니, 일부러 놓아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르옌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멀리 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주교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복잡하군요. 용사님에게 이래라저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꼴이라서 도움도 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주교는 힘없이 웃어 보였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을 너무 많이 한 건가, 주교의 말끝에서는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뭔가 더 사고를 치기 전에 잡아야죠. 처우는 차후 결정할 수 있지만, 일단 무슨 일이 더 벌어지는 거는 막아야 할 거 아닙니까.”

나는 함께 일어서려는 이실라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이실라는 엉거주춤, 주교의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왜 그러냐는 듯 묻는 눈빛에,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실라 씨는 여기 남아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교님의 손발이 되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전, 그 어둠을 마주하고 나서 깨달았다. 이번에 아르옌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결코 누군가를 동반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홀로 마주해야 하는 일. 나는 그리 다짐하고 성검을 잡았다.

그 비틀린 자는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어둠이 남긴 말. 나를 속이거나 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내게는 그 비틀렸다는 말이, 단순한 인격의 비틀림 이상의 말이라고 느껴졌다.

“용사님.”

문득, 안드레 주교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내려 주교를 바라보았다.

“이단심문관들의 죽음은 순리적입니다. 부디, 그에 어떤 감정을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가치 판단에서 우리를 제외하고, 오롯이 당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행해주십시오.”

어려운 말이었다. 나는 함부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죽음을 외면하라는 소리와 진배없었으니까. 아르옌을 마주하면 그 죽음을 언급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약속해달라고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기억하겠다고만 해주세요.”

“…그리하겠습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을 돌렸다. 참고 있었던 것 같은 젖은기침이 들려왔다. 이실라가 당황하며 몸을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그 모든 걸 뒤로하고 교회를 나섰다. 주교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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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하나. 일단은 삼일 숙박인가? 20골드.”

여관 주인은 읽고 있던 책자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시큰둥하게 열쇠를 내주었다. 아무렇게나 깎은 짧은 머리, 살이 덮인 근육질의 몸. 아마 한때 잘 나가던 모험가였을 거다. 돈을 벌 만큼 벌어 여관 하나 차리고 은퇴.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모험가의 인생이었다.

“그,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나는 한때의 아르옌과 같이 낡은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여관 주인과 마주 보고 있었다. 이런 손님들이 한두 명이 아닌지,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로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뭐라도 물어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내가 순순히 대답해줄 것….”

여관 주인은 그렇게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읽으려는 듯한 시선. 후드 아래로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한 눈. 나는 한 줌 마나를 풀어 그를 차단했다. 순간적으로 새어 나온 위압감이, 여관 주인의 손에 들려 있던 책자를 바닥으로 툭 떨어트렸다.

“…누구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여관 주인이 물었다. 모험가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눈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를 묻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질문을 잘못했군. 뭘 알고 싶은 건가?”

“이 사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나는 아르옌의 몽타주가 그려진 포스터를 꺼내 보여주었다. 아래에 적힌 금액은 800만 골드. 여관 주인은 종이를 받아 들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쪽도 이 악명 높은 800만 골드를 잡으러 온 건가?”

“뭔가 아는 거라도 있는 건가요?”

여관 주인은 주변 눈치를 살폈다. 내가 의아한 듯 바라보자 여관 주인은 고개와 함께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내 뒤쪽, 험악한 인상의 모험가들이 즐비한 탁자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날을 세우고서 무언가를 조용히 의논하고 있었다.

“지금 분위기 험악한 거 보이지? 원래 이렇게까지 조용한 곳이 아냐, 여기가. 이게 다 얼마 전에 이 800만 골드를 잡으러 간 놈들 때문이라고.”

여관 주인이 포스터에 적힌 800만이라는 숫자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아르옌의 행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과격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이름깨나 날린 현상군 사냥꾼, 용병, 모험가 열 명이 파티를 꾸려서 이 아르옌 엘미온을 잡으러 갔었지. 나도 이 녀석 이름을 못 들어본 건 아냐. 하지만 지금은….”

아르옌도, 그 열 명의 모험가의 행방도, 며칠째 묘연하다고 한다.

“모험가들이 꽤 날이 서 있어. 보복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녀석들도 있고, 그 사라진 열 명의 모험가처럼 이 800만 골드를 쫓아가려는 놈들도 있지. 내 눈에는 다 어리석은 발버둥으로밖에 보이지는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리석은 짓은 맞죠.”

나는 카운터 위의 열쇠를 집으며 대꾸했다. 몇몇 귀 좋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와 여관 주인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제정신이 박힌 모험가라면 여관 주인을 건드리지는 않을 거고, 아마 나와 주인의 대화가 끝나면 개떼처럼 달려들겠지.

“여유로워 보이는군.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주인장께서 나를 엿 먹이고 싶은 마음인 건 잘 알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저놈들이 불나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쓰게 웃었다. 시험당하는 기분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대답해주세요.”

“얼마든지 물어보시게.”

여관 주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사라졌다는 현상금 사냥꾼들, 어디로 향했습니까?”

“국경 지대. 뭐, 아르옌 엘미온이 아직 거기 머무르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그 정도면 됐습니다.”

나는 뒤로 몸을 돌렸다. 적대적인 시선들이 화살비처럼 내게 날아들어 꽂혔다. 등 뒤로 여관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에 식사하겠나? 오늘은 감자 스튜라네.”

태연하기 그지없는 그 질문에, 나는 후드 아래에서 눈살을 확 찌푸렸다. 방금까지 잔뜩 겁을 먹고 있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예. 방으로 좀 갖다주세요.”

”당신은 그래도 가능성이 좀 있을 것 같기도 하군. 힘내보게.”

주인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여관을 나서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조용한 여관의 로비를 울렸다. 내 발걸음의 박자에 맞춰, 모험가들의 심박이 울렸다. 내가 뭐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덕분에 나는 입구에 다다라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쾅.

예상대로, 앞이 가로막혔다. 거한 하나가 문을 가로막고, 뒤로 모험가 몇이 도열한다. 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알아서 말해라. 친절한 척하긴 싫으니.”

거한의 목소리. 나는 거한에게서 게오르그를 겹쳐 보았다. 저쪽이 덩치는 더 크겠지만, 위압감은 전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뒤. 다가오는 모험가들도 수준이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이 녀석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아르옌을 잡으러 가는 것도 단념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덜컹.

문이 잠겼다. 나는 슬쩍 여관 주인을 바라보았고, 주인은 나 몰라라, 책자를 읽는 척하고 있었다. 짐승들의 눈빛. 결국 저들이 바라는 건 800만 골드겠지.

“자, 먼저 간 우리 현상금 사냥꾼들의 명복을 빌며, 시작할까?”

“[귀찮게 하는 놈들이 많구나.]”

동감이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드드드.

공간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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