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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57화 (158/158)

Chapter 157 - 157. 만남 (3)

“하압!”

기사들의 기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게오르그는 팔짱을 끼고서 엄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사들은 게오르그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더니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단장이 영 기분이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감히 나서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디딤발이 아직 약하다. 윽박지르듯 검을 내려치지 마라. 검날이 상하고 균형이 무너진다.”

게오르그의 말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결혼하고 나서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럭저럭 유하게 기사들을 굴리더니, 오늘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결혼한 지 몇 주나 됐다고, 벌써 부인이랑 다투기라도 한 것인가. 기사들은 속으로 불손한 의심을 품으면서도 게오르그의 구령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굳게 딛고 서라! 팔목을 유연하게 해라.”

게오르그는 기사들의 대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흐트러진 이들의 자세를 교정했다. 기사들의 의문은 서서히 사그라들고 바싹 말라버린 긴장만이 남았다. 자세가 더 흐트러지기라도 했다가는 불호령이 들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그저 휘두르는 게 아닌, 앞의 대상을 상정해라.”

게오르그는 그리 일러두고는 다시 대열의 앞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면서 흘긴 눈길에 기사들이 재차 자세를 다잡았다. 게오르그는 무어라 더 말하려다 관두었다. 그 이상은 괜한 화풀이다. 사실 지금도 기사들을 두고 화풀이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해산. 남아서 보충 훈련을 하고 싶다면 열쇠를 빌려주마.”

““수고하셨습니다!””

기사들의 표정이 확 펴졌다. 게오르그는 손을 휘적휘적 휘둘렀고, 기사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한숨을 내쉬는 게오르그의 옆으로 단원 하나가 다가왔다.

“단장님.”

단원은 어딘가 미심쩍다는 듯한 얼굴로 게오르그를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괴롭힌 건가, 게오르그가 오늘의 행동을 살짝 후회하려던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결혼생활이 위태로운 겁니까?”

“이 씨벌롬이 뚫린 입이라고.”

게오르그의 솥뚜껑만 한 손이 단원 뒤통수를 후렸다. 단원은 그대로 켁, 짤막한 비명을 내지르며 휘청거렸다. 단원은 얼얼하게 아파오는 뒤통수를 문지르며 원망스럽게 게오르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오늘 그럼 왜 그렇게 괴롭힌 겁니까? 단장님도 설마 지금 은퇴한 다른 꼰대들처럼 되는 겁니까? 슬슬 은퇴 시기를 생각하는 거예요?”

“됐다. 나불거리지 말고 집에나 가라. 내일 훈련에서는 이렇게 괴롭히지는 않겠다.”

단원의 얼굴에서 의아함은 사라지지 않았으나, 괴롭히지는 않겠다는 그 말에 안심하는 듯 보였다. 게오르그는 단원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연무장 밖으로 내보냈다.

연무장이 텅 비었다. 게오르그는 홀로 그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영 심란했다. 삼십 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데, 파티원과 마찰이 있었다고 이렇게 심란해질 줄은 그도 몰랐던 일이다. 게오르그가 헛웃음을 내뱉고는 검을 붙들었다.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두르는 게 최고였다.

부웅.

연습용 검이 허공을 갈랐다. 투박한 움직임이었지만 빈틈은 없었다. 게오르그는 목표 없이 무작정 그리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한 시간 정도 그리 휘둘렀을까. 자세가 흐트러지며 목검의 궤도가 바뀌었다. 게오르그는 목검을 내려놓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잡생각이 날아가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를 너무 용사라고 생각해 몰아세운 건 나였다.

게오르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잠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게 꽤 도움이 되었다. 괜히 일로이와 다투지 않았어야 했나. 게오르그는 쓰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아직 어리군.”

다 큰 건 결국 몸뿐이었나. 게오르그는 왼손에 낀 반지의 감각을 느꼈다. 이런 상태라면 아내를 볼 면목도 없다. 잠깐 본부에 들러서 다프네에게 말이라도 전해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게오르그는 그리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쾅-!!

그리고, 들려온 폭음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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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주교가 성국에 복귀하고, 아르옌에게 내려진 수배령이 전 대륙적으로 확대될 때쯤, 마리안느는 카이로스 왕국의 용사 파티로 돌아왔다. 온 대륙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여름이 지나가고, 봄밀을 추수하기 시작했다. 그 풍요로움과 넉넉한 분위기가 두텁게 왕도에 내려앉았다. 혜성은 왕도의 분위기를 바꿔놓지 못했다.

사람들이 흘긋흘긋,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살짝 목례하며 감사함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리안느가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는 걸 알아보는 이들이었다. 마리안느는 낯선 감정을 느끼며 그들에게 인사를 되돌려주었다. 당장은 그 감정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용사 파티 본부. 마리안느는 문을 열고 조용히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마리안느가 습관처럼 읊조렸다. 평소보다 본부가 조용했다. 일로이가 부재중이라고는 해도,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법도 한데. 마리안느는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본부의 로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어서 오세요.”

돌아온 방에는, 멍한 표정의 다프네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마리안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다프네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다프네는 고개를 돌려 마리안느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방은 싸늘했다. 가을의 싸늘함이 바닥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게오르그는 없어요. 아마 당분간은 안 돌아올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다프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로이가 혼자 아르옌씨를 잡겠다고 떠났어요. 당연히 마찰이 있었고요. 게오르그가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아마 일로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었겠죠.”

마리안느의 머릿속에서 상황이 얼추 그려졌다. 중간에 낀 입장인 다프네가 피곤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 다프네다. 일로이를 위해서라면 말 그대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사람.

“어째서 일로이를 설득하지 않은 겁니까?”

“묻지 말아 달라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결계 속에서 나눈 약속을 잊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우리 파티는 바람 잘 날이 없네요. 다프네는 창밖으로 눈길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마리안느는 조용히, 걱정에 잠긴 다프네의 눈을 바라보았다.

“성국에서는 다른 소식 없었나요?”

“성기사단이 한동안 바쁘긴 했지만, 우려할 만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단심문관들이 대거 당해버린 건…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요.”

마리안느의 목소리에 드물게 감정이 깃들었다. 꾹 쥔 주먹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성국으로 후송된 주교께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일로이가 맡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요. 이번에는 일단 명을 듣기를 결정했습니다만….”

“주교님 상태는 좀 어떤가요?”

“성녀께서 도와주셨어요. 치료 후 바로 나서겠다고 했지만…, 교황께서 바로 활동 금지령을 내리셨습니다. 지금은 아마 성국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계실 거예요.”

마리안느는 성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주교께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본인 손으로 데려간 사람이 그리 변해버렸으니까요. 무리해서 나서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성기사단이 주교님의 방을 현재 둘러싸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안드레 주교라도 그런 상황에서까지 나서려 하지는 않을 거라며, 마리안느는 말을 맺었다. 다프네는 상황을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침대에 눕혔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겠죠. 괜히 나서서 행동하다가 상황이 꼬이는 것보다는, 일단은 정보가 더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7서클의 대마법사. 전 대륙을 통틀어 단 두 명만이 달고 있는 직함. 행동을 함께하지 않는 편이 손해다. 그를 일로이도 모를 리가 없다. 용사 파티에서 함께 행동해서 걸림돌이 될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로이가 그들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똑똑똑.

다프네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마리안느는 고개를 슬며시 돌려 문을 바라보았고, 다프네는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노크는 정문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다시 들려오는 노크. 마리안느가 다프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손님이 찾아올 일이 있었습니까?”

다프네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손님이 방문할 예정은 없었다. 왕궁에서 사자를 보낸 걸까. 아니면 성국에서 손님이라도 찾아온 걸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새로운 소식이라도 들어온 걸까요?”

자리에서 일어난 다프네의 뒤를 마리안느가 따랐다. 그들이 고민하는 사이에 노크 소리는 한 번 더 들려왔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 본부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일 거다. 마리안느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사실을 알 만한 사람 중, 누가 찾아온 걸까.

“지금 나가요.”

다프네가 노크 소리에 대답했다. 로비에 도달했다. 마리안느는 그 전에 기감을 최대한 펼쳐두었다. 하지만 마리안느의 감각이 포착한 인기척은 없었다. 위화감이 벌레처럼 발바닥에서부터 다리를 타고 마리안느의 전신으로 번져갔다.

“네네.”

다프네가 현관에 다가섰다. 인기척은 여전히 없다. 판단은 –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은 빨라야 한다. 마리안느는 다프네가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여는 동시에 그녀의 남은 팔목을 잡아챘다.

문이 열린다

다프네에게 칼날이 쇄도했다.

방호 마법이 전개된다.

마리안느의 손길이 다프네를 뒤로 끌어당겼다.

파쇄음이 울린다. 7서클 마법사의 방호마법에 금이 갔다.

다프네의 의식이 가속했다. 마리안느는 남은 한 손에 성법기를 전개했다.

다프네가 일으킨 마력 폭발이 일어났다.

쾅-!!!

로비의 정문이 터져 나가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충격의 여파에, 다프네와 마리안느가 튕겨 나와 로비의 구석에 처박히며 뒹굴었다. 목판 바닥이 산산조각이 나며 수십 갈래의 나무창을 흩뿌렸다. 유리창은

“…괜찮습니까?!”

반쯤 비명과 같은 마리안느의 목소리.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분홍 머리가 완전히 헝클어져 흘러내렸다. 고작 삼 초도 안 되는 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다프네는 곧장 방호마법의 규모를 키우고, 바람으로 흙먼지를 바깥으로 날려보냈다.

“저 자가 대체 왜 여기…!”

다프네는 경악하며 현관에 버티고 선 인물을 마주했다. 마리안느는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더듬었지만, 성창은 그곳에 없었다. 긴장한 표정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검은 머리의 용병은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을 가장했지만, 차라리 광소에 가까운,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오랜만이군.”

아르옌은 검을 내리며 말했다. 그 시선은 다프네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반가워하는 듯한 그 눈빛에, 다프네는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다프네가 그대로 쏘아낸 마법을, 아르옌은 검을 휘두르며 튕겨내고 막아냈다.

“역시, 설득은 통하지 않겠군.”

아르옌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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