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SS 물산 건설 부문 대표이사 차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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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SS 물산 건설 부문 대표이사 차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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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SS 물산 건설 부문 대표이사 차 도하
2022.07.07.
소명은 오늘도 늦어지는 지성이 걱정되었다. 그렇게 자신만 바라보던 그였는데, 온종일 전화 한 통 없는 그의 무심함 때문에 그녀의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실 소파 아래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음이 답답하면 그녀는 움직여야 했다.
그녀의 취미는 홈 가드닝이다. 싱그러운 화초를 보면 그녀의 마음이 곧 편안해졌다.
소명은 베란다에 꾸며 놓은 그녀의 정원에 들어가 화초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소명의 솜씨가 대단해서 그녀의 베란다 정원을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내뱉곤 했다. 자신이 돌보는 화초가 파릇파릇 자랄 때마다 그녀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 회사 일이 얼마나 힘이 들겠어.’
그녀는 애써 지성을 마음속으로 감싸고 있었다.
화초를 바라보니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녀는 다시 소파로 나와 지성을 기다렸다.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지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명은 피곤한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소파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다가 번쩍 눈을 뜨고 일어나 지성을 맞았다.
“왔어?”
지성은 집으로 들어와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는 어디에 있고 늘어진 티셔츠에 뿔테안경을 쓴 자다 깬 얼굴의 이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자꾸만 라희와 비교가 되고 앞으로 이 여자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소명아, 아무리 집이라도 이렇게 안 입으면 안 돼?”
“이게 어때서. 편하기만 한데. 오늘도 일이 많았어?”
“어. 나 씻는다.”
“응.”
소명은 거실에 걸려 있는 거울로 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스무 살 때 소명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자신감이 넘쳤었는데 지금 거울 속에 있는 여자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지성에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지성은 냉정해진 걸까?
소명은 속상한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지성에게 미소를 지었다.
“피곤하지? 꿀물이라도 타줄까?”
“아니, 괜찮아.”
지성은 아까 라희와의 일 때문에 소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오늘은 그가 소명을 완전하게 배신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소명은 자신의 눈을 피하는 지성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지성아, 혹시 나한테 뭐 화난 일 있어?”
“무슨 소리야. 그런 거 없어. 요새 일이 너무 많아서 피곤해서 그래.”
“그래, 그럼 얼른 들어가서 자.”
“응.”
“저기 있잖아.”
“어. 왜?”
“내일 나 배란일 시작이니까 좀 일찍 올 수 있으면 일찍 와.”
“알았어.”
소명과 지성은 침대로 올라갔다. 지성은 이불을 덮더니 소명에게 등을 돌렸다.
소명은 지성을 이해하려 해도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자꾸만 섭섭해졌다.
예전에는 팔에 쥐가 나도록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줬었는데…….
소명이 옆으로 누우면 등 뒤에서 그녀를 꼭 안아주었고 자면서도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그녀를 기다려서 꼭 함께 잠을 자려고 했던 그였다.
너무도 변해 버린 그의 태도가 세월이 지나서 자연스러운 건지 아닌지 그녀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지성은 피곤했는지 누운 지 5분도 되지 않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아댔다. 소명은 한참을 뒤척인 끝에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지성은 소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서둘러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그도 인간인지라 소명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회사에 도착한 후 서류 가방 안에 넣어둔 USB를 찾는데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지성은 슈트 주머니를 뒤져보고 바지 주머니에도 손을 넣어 보았지만 없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그는 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소명아, 내가 USB를 집에 두고 온 거 같아.]
“그래? 찾아볼게.”
소명은 지성의 전화를 끊고 USB를 찾기 시작했다. 서재도 들어가 보고 거실도 둘러보고 침실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현관을 무심코 쳐다보았는데 바닥에 USB가 떨어져 있었다. 아마 나가다 떨어뜨린 것 같았다.
소명은 곧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찾았어.”
[그래? 고마워.]
“현관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
[그래…….]
지성은 아까 급하게 나가다가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아, 미안한데 우리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가져다줄 수 있어?”
“응.”
“고마워.”
소명은 지성과 전화를 끊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지성의 목소리가 급해 보여 소명은 빨리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명은 드레스 룸으로 가 청바지와 티셔츠를 얼른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왔다.
그녀는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소명은 지성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소명은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지성은 비상구 계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희야.”
지성은 라희가 나타나자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너무 보고 싶었어.”
“오빠, 여기 회사야.”
라희는 흥분한 지성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는 완전히 그녀에게 빠져 버린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나 들어가 봐야 돼.”
“벌써?”
“응.”
“그럼, 1층 카페 가자. 커피 사러 간 것처럼 해. 조금이라도 더 너랑 있고 싶어.”
“일해야 해.”
“조금만.”
지성은 라희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안달을 부렸다. 그는 소명을 부른 일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오직 라희랑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한편 소명은 계속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지성의 회사 로비로 올라갔다. 홀로 편안한 차림의 소명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소명이 로비로 걸어가자 보안 요원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네. 건설 부문 설계팀 안 지성 팀장님이 이거 찾으러 오실 건데요. 이것 좀 잠시 맡아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소명은 왜 지성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 답답해졌다. 보안 요원에게 USB를 맡기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소명은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거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검은 세단에서 한 남자가 내려서 로비 쪽으로 들어오자 직원들이 묵례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같았다.
몇 명의 남자들이 그 남자와 함께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소명은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입이 턱하고 벌어졌다.
나이가 많은 중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졌으며 걸어오는 자세 또한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의 높은 코와 각진 턱 그리고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무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가 그와 눈이 딱 하고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그 순간이 너무 어색해 살짝 그에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SS 물산 건설 부문 대표이사 차 도하. 그는 어린 나이에 대표이사직을 성실히 잘 수행하는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적으로 그의 능력은 엄청난 인정을 받았지만, 그와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다 어려워했다.
그는 절대 웃지 않았고 일 외의 사소한 대화는 사람들과 나누지 않았다.
오늘도 그가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오는데 멀리서 캐주얼 차림을 한 여성이 로비에 서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쳐다보았는데 그만 그녀와 눈이 딱 하고 마주치고 말았다.
놀란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를 보며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까딱하고는 얼른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뭐지?’
도하가 가고 나서 소명은 눈 호강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러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는데 지성이 어떤 여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세련되어 보였다. 세련된 오피스 룩을 입고 긴 머리는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미모는 완벽한 화장으로 더 빛을 발했다.
소명은 지성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지성을 불렀다.
“여보.”
멀리서 자신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여자가 소명이라는 사실에 지성은 놀라서 멈칫했다.
저쪽에 서 있는 여자가 지성의 부인이라는 사실에 라희는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라희의 자신감은 더욱더 높아져 갔다. 자신과 상대조차 되지 않는 비주얼에 어이가 없었다.
‘오빠 눈이 이렇게 낮았나.’
라희는 걸어가면서 조용히 지성에게 속삭였다.
“오빠, 나 먼저 올라갈게.”
“응.”
소명에게로 다가온 지성은 소명을 차가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가자.”
그때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소명을 밀어 넣었다.
소명은 지성의 태도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지성은 엘리베이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고서 지성은 그제야 소명을 바라보며 씩씩대기 시작했다.
“지성아, 왜 그래?”
“너? 누구 망신시키려고 작정했어.”
“뭐?”
“너 옷 그렇게 입지 말랬지?”
“야! 안 지성, 너는 왜 전화를 안 받아? 당신이 너무 급해 보여서 바로 달려온 거란 말이야. 네가 뭐랬어? 지하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했잖아. 근데 전화를 열 통을 넘게 걸어도 안 받는 넌 뭔데?”
“줘. 빨리.”
지성은 자신이 잘못한 일인데도 뻔뻔하게 손을 내밀었다.
“없어.”
“뭐? 야! 너 진짜.”
소명은 지성이 얄미워서 그를 쏘아보다가 말했다.
“로비 안내데스크에 맡겼다.”
“소명아, 너 진짜 옷 좀 신경 써서 입어라. 좀. 창피해서 살겠니?”
“넌 내가 창피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갈게.”
소명은 차에 올라탄 후 문을 쾅하고 닫더니 빠른 속도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나쁜 놈.”
자신이 얼마나 지성을 생각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남편은 그녀의 옷차림에 창피해하다니…….
요즘은 왜 이리 속상한 일만 자주 일어나는지 소명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지성은 소명이 점점 더 싫어졌다. 자신을 생각한다면 그런 옷차림으로 회사에 올 수 있었을까? 물론 그가 라희에게 정신이 팔려 핸드폰을 두고 나왔으니 할 말은 없었다.
지성은 하루라도 빨리 소명과 이혼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소명은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의 아지트 베란다로 향했다.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얼음 컵에 쏟아부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고 책 한 권을 들고서.
지금처럼 마음이 복잡할 때 하는 그녀의 루틴 같은 행위였다. 책은 그녀가 힘들 때 큰 위로를 주는 좋은 친구였다.
요즘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아무리 지성을 이해하려 해도 자꾸만 그가 엇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명은 허심탄회하게 지성과 속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뭐가 문제인지 그의 불만은 무엇인지 왜 힘든지 서로 이야기를 하면 두 사람 사이는 다시 예전처럼 달달하고 달콤하게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예전에 자신을 사랑해주던 지성이 너무나 그리웠다.
‘기억하고 있을까? 오늘 우리의 약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