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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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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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혼하자
2022.07.14.
소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일 얘기하자. 미안. 정말 눈이 감겨서 안 떠진다.”
“얘기하자고…… 흐흐흑.”
소명이 큰 소리로 우는데도 지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서 침실로 들어가 재킷과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바닥에 허물 벗듯 벗어던지고는 비틀거리며 바지까지 벗어던진 채 침대로 올라가 바로 드러누웠다.
침대에 누운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잠이 많이 부족했고, 라희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그의 체력과 에너지는 이미 고갈된 상태였다.
그는 양심과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소명은 침실에서 들려오는 지성의 코 고는 소리에 표정이 절망적으로 바뀌었다.
이미 그에게 그녀는 중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바닥까지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 소명은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서자 지성이 허물 벗듯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들고 정리하려던 순간 재킷에서 그의 핸드폰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녀는 무심코 핸드폰을 집다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옆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휴대전화가 켜졌다. 소명은 긴장이 돼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천천히 지성에게 다가가 그의 엄지손가락을 잡고 휴대전화에 갖다 대었다.
이내 잠금은 손쉽게 풀렸고 그녀는 그의 문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온 문자 하나가 소명의 눈에 띄었다.
저장은 ‘이 동민’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이 너무 이상했다.
[오빠, 오늘도 즐거웠어. 나 때문에 요즘 너무 피곤하지. 그래도 어떡해? 난 오빠 매일매일 보고 싶은데…….]
문자의 내용을 보고 소명은 눈이 번쩍 떠지고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숨을 똑바로 쉴 수도 없었다.
소명은 잠에 취해 눈도 뜨지 못하는 지성을 마구 깨워댔다.
“일어나!”
지성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그의 양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다. 졸린 눈을 살며시 뜬 지성은 소명을 노려보며 성질을 냈다.
“잠 좀 자자고.”
“이 동민이 누군데 당신보고 오빠래?”
“뭐?”
소명의 말에 뜨끔한 지성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 소린데? 너 네 핸드폰 훔쳐봤냐?”
“그래. 너 요즘 너무 이상해서. 네 행동 이상한 거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그래서 훔쳐봤다. 그게 중요하니? 너 설마 바람피웠니?”
지성을 바라보며 묻는 소명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성아…… 아니……지? 뭔 변명이라도 해봐.”
소명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미안하다.”
“뭐? 지성아.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미안해.”
“아니야. 너 나한테 지금 장난치는 거지?”
“나 이제 더는 네가 여자로 안 보여.”
“뭐?”
“내일 얘기하자. 내 꼴 보기 싫으면 나갈까?”
“지성아? 너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변해?”
“나…… 그 여자가 너무 좋아.”
“…….”
“이혼하자.”
지성은 오히려 소명에게 들킨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절망적인 눈빛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한때 미치도록 사랑한 여자가 자신을 보며 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라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그를 소명이 증오하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 이혼 못 해.”
“뭐라고?”
“이……혼 못 해 줘.”
“너 싫다고 나 바람피웠어. 나 이런 놈이라고?”
생각지 못한 소명의 태도에 지성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을 해줘.”
“야…… 너 정말.”
“나쁜 새끼.”
소명은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지성은 소명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앞으로의 일이 착잡했다.
소명이 빨리 그의 인생에서 떨어져 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소명은 침대에 누워 자신 앞에 펼쳐진 절망과 고통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 앞에 벌어진 일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한 번도 그를 의심한 적이 없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배신할 수 있나? 그와 그녀의 십 년 세월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여태껏 믿어왔던 사랑이란 것, 그 완성이 그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남편과 행복한 여자였다면 소명은 하루아침에 남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 지독한 현실을 잊고 싶었다. 그녀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몇 시간을 뒤척이다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거실 소파에서 지성은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소명은 슬픈 눈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어제 지성을 바라보던 눈으로는 도저히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소중한 가정을 파탄 낸 그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녀는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아파트 근처 공원 산책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꾸만 지옥 같은 어제의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렇게도 많은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울고 있었다.
뛰면서 우니까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졌고 호흡이 가빠 왔다. 그녀는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멈춰 섰고 호흡을 가다듬으려 해도 잘 안되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흘러 그녀의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소명은 너무 힘들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그때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전에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어떤 남자의 형태만 느껴질 뿐 눈앞이 흐렸다.
******
도하는 그의 아침 루틴인 조깅을 하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 공원은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그는 운동 마니아였다.
운동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아침 공기를 마시며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여자가 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게 뛰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녀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도하는 그녀 곁으로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는 여자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 순간 그는 너무 놀라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어제 농원에서 만난 그녀였다.
‘이렇게 질긴 인연이…….’
그런데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눈이 흐리멍덩한 상태로 위태롭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도하는 그녀의 앞으로 가서 주저앉은 후 그녀의 양팔을 자신의 두 손으로 잽싸게 잡아당긴 후 그녀의 몸을 얼른 일으켰다.
그는 그녀를 업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아파트 바로 옆에 대형 병원이 있었다. 그는 구급차를 부르는 것보다 이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응급실에 그녀를 데려다주고 나서야 그는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의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었고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를 진찰한 의사는 과다호흡증후군이라고 진단했고 간호사는 그녀에게 봉투를 주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봉투를 받아서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몇 번의 이런 행동을 반복한 후에야 소명의 숨소리는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호흡이 안정되자 긴장이 풀렸는지 그녀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간호사가 링거를 놓자 그녀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본 도하는 마음이 안 좋았다. 아까 들은 의사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호흡증후군이나 공황장애가 일어나는데 환자분이 그러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시진 않으셔도 됩니다. 환자분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아까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역시 아팠던 적이 있었기에 그 고통을 알 것 같았다.
그는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누구라고 했더라? 설계부 팀장?’
도하는 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설계부 팀장들에 대해 물었고 지성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이 비서는 아침 일찍부터 전화를 한 대표님의 행동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지금쯤 조깅을 끝내고 출근 준비를 하고 계셔야 하는데…….’
도하는 지성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후 지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부인 되시는 분이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네?]
“새벽에 운동하시다가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네?]
“응급실에 누워 있으니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성에게 전화를 걸고 도하는 바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앞에는 이 비서가 그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이 비서는 도하를 보며 정중하게 물었다.
“대표님, 병원에는 무슨 일로?”
“좋은 일 하나 했다 칩시다.”
“네?”
“왜 그리 놀라? 이 비서. 나는 좋은 일 하면 안 되나?”
“아……아닙니다. 그런데 대표님?”
“응?”
“오늘 일정이 조금 후면 시작되는 데 아직 출근 준비가 안 되셔서…….”
“그래? 그럼 나한테 얼마나 시간이 있지?”
“대표님 댁에 차 대기시키고 5분…….”
“5분?”
“대표님 오늘은 한 시간 두 시간 그렇게 오래 준비하시면 큰일 납니다. 이미 잡힌 일정이라서 취소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이 비서는 도하의 눈치를 보며 최대한 이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알았어. 해보지 뭐.”
“제가 같이 올라가서 조금 도울 일이라도?”
“아니. 괜찮아요.”
도하는 이 비서의 성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곧 도하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고 도하는 재빠르게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한 그는 옷을 벗어젖히고 빠른 속도로 샤워하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바로 드레스룸으로 뛰어가 손에 잡히는 와이셔츠와 슈트를 입고 넥타이를 손에 들고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구두를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휴.”
도하는 항상 출근하기 전 한 시간 정도를 준비해야 했고, 패션과 외모 상태를 굉장히 중요히 여기는 스타일이었다. 이것도 곧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넥타이도 매지 않고 구두 뒤꿈치도 구겨 신은 채 젖은 머리로 엘리베이터를 타다니 살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항상 느긋하게 준비를 하고 그에게 지각이라는 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비서는 초조했는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시계를 보고 있는 이 비서 앞에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도하가 서 있었고 이 비서는 그를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대표님, 정말 대단하세요. 정말.”
이 비서와 도하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의 세단은 엄청난 속도를 내며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도하는 차에서 넥타이를 매며 혼자 생각에 잠겼다.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네.’
도하가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소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은 자동으로 커지며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갑작스러운 도하의 행동이 이상해 이 비서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대표님? 무슨 일이라도? 혹시 뭐라도 두고 오신 건 아닌지?”
“아…… 아니에요.”
“네. 알겠습니다.”
시선은 계속 소명에게 꽂힌 채 이 비서에게 간신히 대답한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아, 우리 아파트에 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