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오빤,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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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빤,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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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빤, 내 거야!
2022.07.18.
도하는 또 한편으로 너무도 우울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한데…….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하고 있는 그녀의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만, 그만해.”
갑자기 터져 나온 그의 말에 이 비서와 김 기사는 놀란 표정으로 도하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한 행동을 눈치챈 도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그냥, 혼잣말한 거예요.”
“네.”
도하는 이상하게 그녀가 계속 신경 쓰였다.
******
지성은 도하의 전화를 받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소명이가 병원에 있다니! 지금 라희에게 푹 빠져 있긴 하지만 그는 소명이 몹시 걱정되었다.
그에게 그녀는 첫사랑이었고, 그녀와 함께한 십 년의 추억이 분명히 존재했다. 아직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속도를 높였다.
한편 소명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그녀가 몸을 간신히 일으키자 그녀 옆을 지나던 간호사가 친절하게 말했다.
“아까 같이 오신 분이 남편분께 연락하셔서 곧 오실 거예요.”
순간 소명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죄송하지만, 이 링거 좀 빼주시겠어요?”
“네? 아직 남았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부탁해요”
“남편분 곧 오시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소명이 간절한 눈빛을 보내자 간호사는 소명의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링거를 빼주었다.
“저, 제가 지금 지갑을 안 가져와서 돌아가는 대로…….”
“아까 오신 남자분이 내셨어요.”
“네?”
소명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도와준 그 사람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는 지성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그를 마주 보기가 두려웠다. 그에게 이런 모습 또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소명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병원 응급실을 나왔다. 자신의 감정이 컨트롤이 잘 안됐다.
자꾸만 몸이 힘들었고 뚜렷이 아픈 곳을 찾지 못하겠지만 계속 온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사실 그녀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던 소명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만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그녀는 너무도 아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여태껏 살아온 삼십사 년 세월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무얼 하려고 이렇게 살아온 건가? 그렇게 좋아하던 디자인 일도 포기하고 지성과 자신을 이어줄 아이를 낳으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건 자신밖에 모르던 남편의 배신이란 말인가?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한 걸까?’
끊임없는 자기 학대가 이어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녀는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빨리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한편 지성이 헐레벌떡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소명이 병원을 떠난 뒤였다. 지성은 소명이 걱정되었지만, 전화는 하지 않았다. 이미 둘 사이에 어색한 벽이 생겨버렸다.
지성은 출근 시간이 다 되어 하는 수 없이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 그는 운전하면서도 소명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는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잠시 망설이다가 곧 내려놓았다.
지성이 회사에 도착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라희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왜 오늘은 연락 안 해?]
[아, 미안.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인데?]
[소명이가 알아버렸어.]
[어떻게?]
[어제 네 문자를 몰래 훔쳐봤나 봐.]
[뭐? 오빠 괜찮아?]
[응.]
[부인이 뭐래?]
[라희야, 너는 걱정하지 마. 오빠가 다 해결할게.]
[어떻게 해결하려고?]
[지금 회의해야 하거든.]
[알았어.]
[나중에 전화할게. 미안]
지성은 메신저를 끄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라희를 미치도록 사랑하지만 그녀에겐 소명과 다른 집요함이 있었다.
가끔씩은 그 집요함이 그를 지치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는 일부러 회의를 한다고 한 후 라희와 메신저를 끊었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을.
하지만 본능이 이성을 이겨버렸고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그 책임이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라희만 생각하면 미래의 일도 소명이도 자신의 지위나 위치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처음 소명을 사랑했던 순간 그의 눈에 소명만 보였던 것처럼 지금 그의 눈엔 라희만 보였다.
라희는 지성과 메신저를 주고받은 후 기분이 나빠져서 인상을 확 구겼다.
지성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지성이 더 안달을 부리고 빨리 그의 부인과 헤어지려고 발버둥을 쳐야 속이 시원할 텐데.
오늘은 뭔가 뜨뜻미지근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항상 남자들의 우위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것을 즐겼다.
******
한편 도하는 오늘 업무를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 며칠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에 휘말려 조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일정을 무사히 잘 소화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도하는 옷을 벗고 샤워를 시작했다. 그의 갈라진 근육 사이로 물줄기가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다 문득 화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화원에서 마주친 그녀 때문에 그가 가지고 싶었던 화초를 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그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언제 또 그런 시간이 날지 기약이 없었다.
샤워를 마친 도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캔 맥주를 꺼내 들고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기로 화초 사이트에 들어가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은 도하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인 동시에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하루 루틴이었다.
화초를 열심히 구경하는데 갑자기 또 그 여자가 생각났다. 도하는 그런 자신이 싫은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 그만 생각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거실에 있는 화초들을 둘러보다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그릇에 조금 따른 후 마른 수건에 묻혀 정성스럽게 화초에 앉은 먼지를 닦아주었다.
“쑥쑥 자라라.”
화초에게 말까지 걸며 싱긋 웃는 그의 모습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의 비밀스러운 취미는 오늘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그가 열심히 화분들을 보살피는 동안 그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하는 일어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들고 발신인을 확인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였다. 도하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더니 전화를 받았다.
“네. 아버지.”
[요즘 독립했다고 이 아비 얼굴도 안 보러 오는 게냐?]
“아…… 이번 주에 들를게요.”
[안 그래도 네가 좀 와야겠다.]
“무슨 일 있으세요?”
[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슬슬 결혼 생각해야지.]
“관심 없다니까요.”
[허. 이번 토요일에 간단히 저녁 식사할 거니까 꼭 와라. 늦지 않게.]
“아버지. 전 싫다고 말씀…….”
[끊는다.]
도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 회장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하는 자꾸 자신의 결혼에 집착하는 식구들에게 짜증이 났다. 그는 정말 결혼에 관심이 없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결혼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번 주말이 피곤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캔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
라희가 여태껏 마음에 두었던 남자는 하나같이 다 그녀를 사랑했다. 라희는 어느 순간 그가 지겨울 때면 또 다른 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에게 정착하고 싶은 남자가 생겼다. 바로 지성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유부남이라는.
결국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맛도 없고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어졌다.
갖고 싶은 걸 못 갖는 기분이 너무 비참했다. 못 갖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더 갖고 싶었다. 계속 그가 생각났다. 그녀는 지독한 상사병에 걸려버렸다.
외근을 나온 어느 날, 터벅터벅 힘없이 걷고 있는데 멀리 지성이 보였다. 그도 외근을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바로 앞에 있는 일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의 휴대전화기로 시간을 확인했다. 3시가 지나 4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그는 일 때문에 점심을 못 먹은 것 같았다.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라희는 핸드백에서 쿠션 팩트를 꺼내 화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라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길거리에서 화장을 고쳤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오직 지성만 보였다. 창피함 따위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부 수정을 하고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머리도 매만지고 옷매무새도 가다듬었다. 그리고 라희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점심을 먹어서 시장하지도 않은데 일식집 문을 당차게 열고 들어갔다.
그는 식탁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바라봐주기 바라면서 하이힐을 신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하이힐에서 나는 소리는 경쾌하게 들렸다.
또각또각.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하이힐 소리를 들은 지성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지성이 고개를 들고 자신을 쳐다보자 라희는 환하게 웃으며 하이 톤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를 본 지성은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귀여워.’
살짝 놀란 그의 표정도 너무 귀엽게 생각되었다.
“아…… 안녕하세요. 외근 나갔다 오시나 봐요.”
그는 부드럽고 매너 있는 목소리로 라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남자였다.
“네. 팀장님도 점심 못 드셨어요?”
“네. 저 그럼 같이 드실래요?”
지성이 조심스럽게 라희에게 물었다. 라희는 그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라희도 지성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한참을 서로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 라희가 먼저 어색한 듯 고개를 돌리자 지성도 곧 고개를 돌렸다.
라희는 수줍어하며 지성의 앞자리에 앉았다. 지성이 라희를 보며 물었다.
“저 부서가 달라서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몰라요.”
“아…… 제 이름은 채라희예요.”
“아, 이름이 너무 예쁘신데요.”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알아요. 안 지성 팀장님.”
“어…… 어떻게?”
“팀장님 유명하세요.”
“네?"
“매너 좋고 업무 능력 뛰어나다고.”
“아…… 기분 좋은데요. 뭐 드실래요?”
“저는 초밥이요. 초밥 좋아해서요.”
“저도 좋아하는데.”
“그래요?”
그녀는 지성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의 앞에 있는 이 여자가 이 정도로 예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피부에 미소가 예뻤다.
청순한 것 같기도 하고 섹시한 것 같기도 하고 묘한 매력이 있었다. 소명 이외에 다른 여자와 단둘이 식사를 하는 게 얼마만인가?
그는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 소명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이윽고 초밥이 나왔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먹는 모습도 예뻤다. 그녀가 그를 보고 웃어줄 때마다 가슴이 두근대다니……. 그는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밥 정말 맛있네요. 팀장님이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요.”
“네?”
갑작스런 라희의 말에 지성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놀라셨어요?”
“아니……요”
“저 알아요. 팀장님 결혼하신 거.”
“아…… 네?”
“근데 저 팀장님 처음 뵙고 너무 느낌이 좋아서 설렜는데 유부남이라고 하셔서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요.”
지성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할 말을 잊었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예쁘고 젊은 그녀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
지성이 아무 말도 못 하자 라희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팀장님, 그냥 저랑 친구 해주실래요?”
“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