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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묘한 쾌감의 늪 (6/101)


제6화 묘한 쾌감의 늪
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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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끔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는 그냥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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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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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라희는 지성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얼른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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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해요. 친구.”

그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잠시 멍해졌다. 과연 이 여자와 친구를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그녀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라희는 그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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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번호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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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성은 자신의 번호를 라희의 휴대전화기에 입력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전화기가 울리면서 라희의 전화번호가 보였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두 사람은 초밥을 먹으며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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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내일 영화 보실래요?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혼자 보러 가기가 싫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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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까요.”

라희는 지성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다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 버렸다. 그녀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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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내 거야.’

지성은 업무를 마친 후에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 라희도 소명도 그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지성은 우선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가 간 뒤에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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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꺼져 있어…….”

그는 라희의 전화가 꺼져 있어 걱정되었다. 퇴근 준비를 마치고 지성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픈 소명에게 갈 것인지 전화를 꺼 놓은 라희에게 갈 것이지.

급한 마음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라희가 아직 퇴근 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가방을 챙기고 비상계단으로 내려갔다.

라희가 있는 마케팅팀은 바로 아래층을 쓰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라희의 사무실 앞을 지나가며 그녀가 아직 퇴근하기 전인지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퇴근한 모양이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는 다시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전화는 계속 꺼져 있었다. 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시동을 켜고 운전을 시작했다.

지성은 몸이 안 좋은 소명을 버려두고 라희의 오피스텔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라희는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당분간 지성과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다. 연애할 때 항상 그녀는 상대방의 우위에 있었는데 지성은 달랐다.

그녀는 지성을 사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연애할 때 상대방이 불편하게 하면 그녀는 그와 바로 헤어질 결심을 했다.

굳이 그가 아니어도 또 다른 사람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녀가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라희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지성은 달랐다.

그녀는 마냥 지성이 좋았다. 그가 그녀와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화가 났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계속 있고 싶고 그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부인이 두 사람 사이를 눈치챘다고 하는. 그녀는 지성이 좀 더 강력하게 나서주길 바랐지만,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부인에게 들통 나서 괴로워하는 뉘앙스를 풍기자 라희는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그를 과거 그녀의 남자들처럼 매달려도 뻥하고 차버리지 못하는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라희는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다시 화장을 시작했다. 은근히 지성이 자신을 찾아와 주길 바라며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화장을 했다.

머릿속으로 퇴근하고 오피스텔까지 오는 시간을 계산하며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라희가 생각한 시간이 거의 다 될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그 순간 라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라희는 계속 초인종을 누르는 지성을 모른 척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라희가 모른 체하자 지성은 문을 손으로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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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좀 열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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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제발. 나 미칠 것 같아. 얼굴 좀 보여줘.”

한참을 혼자 떠든 지성이 지쳐갈 때쯤 안에서 라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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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제 오빠랑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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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작스러운 라희의 이별 선언에 지성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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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나 이제 안 중요하잖아. 오늘 알았어. 오빠가 나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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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우선 문 좀 열어. 내가 해명할게. 오해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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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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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나 문 열어 줄 때까지 여기 이렇게 있을 거야. 절대 못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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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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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제발. 부탁이야.”

간절한 지성의 목소리를 듣고 라희는 못 이기는 척 문을 살짝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지성은 그녀의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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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희야, 나 너밖에 없어. 아침의 일 때문에 많이 속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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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빠가 그 여자한테 우리 사이 들킨 게 너무 힘들어 보였어. 나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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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오히려 잘 됐지. 내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너 맘 아프게 했다면 미안해. 소명이가 순순히 이혼을 안 해 줄 것 같아서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그런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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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런 얘기를 왜 안 했어. 나는 오빠 오해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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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걱정할까 봐. 어떻게든 내가 해결하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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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진짜 나 오빠랑 결혼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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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지성은 그녀와 포옹을 푼 후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매우 아름다웠다.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달콤했다. 그녀는.

그는 그녀에게 서서히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두 사람의 뜨거운 키스는 계속되었고 서로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져 가고 있었다.

지성은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없어지기라도 할까 봐 꼭 껴안고 팔을 놓지 않았고 그녀는 그를 잔뜩 유혹하는 표정으로 바라봐 그를 미쳐버리게 하고 있었다.

지성은 라희라는 여자가 주는 묘한 쾌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남들의 시선도 상관없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랑해주었던 그의 아내 소명을 어떻게 떼어 낼까 궁리하면서 점점 더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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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명은 오늘 지성이 오면 미루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 묻기로 다짐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간단한 화장도 했다. 지성에게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지성을 기다렸다. 하지만 지성은 오지 않았다. 소명은 계속 시계를 바라보다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다시 또 전화를 걸까 여러 번 망설였다.

소명은 밤을 새우며 돌아오지 않는 지성을 기다렸다. 잠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걸까?

이내 눈을 떴을 때도 지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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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소명은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때 소명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소명은 휴대전화를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그녀의 시어머니 정 여사의 전화였다. 가뜩이나 어두운 소명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소명은 애써 힘 있게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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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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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밥 먹으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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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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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내가 그렇게 하고 갔는데, 너는 전화 한 통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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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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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 데리고 와. 밥이나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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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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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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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소명의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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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외박까지. 지성아, 너 내가 아는 안 지성 맞아? 너 왜 그러는 건데…… 왜!’

결혼 후 처음이었다. 지성이 아무 연락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갑자기 닥친 폭풍에 소명을 정신을 가다듬기가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자꾸만 현실에서 도망치려 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소명은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차분한 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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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심장이 뛰는 걸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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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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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여보라고 부르는 소명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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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성은 이미 예전의 지성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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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들어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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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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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이유를 얘기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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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사니까 들어가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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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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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게.]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다정한 남자였는데.

오로지 자신만 바라보던 그의 변화가 너무 낯설어 지금 이 현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전화를 끊은 소명은 한참을 망설였다.

너무나 가슴이 답답해서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엄마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차마 걸 수 없었다. 엄마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그녀의 어머니, 소명의 어머니는 혼자의 몸으로 외동딸을 애지중지 사랑으로 키워낸 분이었다.

그녀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이렇게 밝고 긍정적으로 자란 이유는 어머니의 힘이 컸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기에 자존감이 높았다.

자신의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그녀가 아버지가 없고 홀어머니에 변변치 못한 가정이라 반대했지만, 소명은 그런 이유로 반대하는 거면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지성에게 선포했다.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듯이 지성의 고집에 정 여사는 소명과의 결혼을 허락했다.

그렇게 어렵게 결혼한 자신이, 지금 너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엄마를 아프게 할 순 없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려니 자꾸만 그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미친 듯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빨아서 손으로 직접 바닥을 닦았다.

전동 물걸레 청소기도 있지만, 몸을 써서라도 잠시라도 이 생각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은 맘이 너무도 간절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그녀는 거울을 봤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온몸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그를 만나려고 하는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눈으로 그녀는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쿵쿵

그녀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어대기 시작했다.

당황한 소명은 대충 머리를 매만졌다. 지성은 어두운 표정으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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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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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성은 아침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얼굴을 하고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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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씻어. 옷 갈아입고 얘기하자.”

소명이 지성을 바라보며 말하자 지성은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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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하자.”

지성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고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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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아. 너 왜 그래?”

소명의 말에 지성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 미안함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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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소명아. 나 너랑 진짜 이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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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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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지? 나 너한테 꽂혀서 정신 못 차렸던 거. 지금도 그래. 나 미칠 것 같아. 그 여자랑 살고 싶어.”

적나라한 그의 고백에 소명은 말 한마디 나오지 않고 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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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우리 힘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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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아, 나 아직도 너 사랑해.”

소명의 말에 지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미치도록 사랑한 첫사랑이자 그의 아내 소명, 자신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함께해준 소중한 그녀였는데…….

그녀가 싫어져서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그의 앞에 나타난 라희에게 마음을 뺏겨버렸다.

그녀는 그의 모든 걸 지배하고 장악해버렸다. 그도 인간이기에 소명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라희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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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 안 사랑해. 이혼 서류 보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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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

소명이 간절한 표정으로 지성의 팔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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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너…… 너무 싫은데, 용서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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