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뜨거운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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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뜨거운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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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뜨거운 키스
2022.08.08.
깜짝 놀란 지성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건장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꺼져.”
지성은 귀찮다는 듯 남자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나도 겪어봐서 알지. 파렴치한 인간들.”
“뭐라고?”
지성은 무례한 남자의 말에 화가 나 남자에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팔을 뻗었다.
하지만 남자는 날렵한 몸동작으로 지성의 팔목을 손으로 꽉 잡아 쥐었다.
남자의 힘에 지성은 팔을 빼지 못했고 남자의 힘이 워낙 세서 잡힌 팔목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다.
“이거 놔.”
“정신 차리면 놔주지.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앞으로 팔을 못 쓰게 해줄 수도 있어.”
남자는 팔을 풀고 무섭게 지성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이 돌았나?”
분노한 지성이 다시 그를 공격하려 하자 라희가 어느새 뒤로 와 지성의 팔을 잡았다.
“라희야. 놔.”
“오빠 아무래도 저 사람 대표님 같아.”
라희는 잔뜩 당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
“차 도하 대표이사님.”
라희의 말을 듣고 그제야 지성의 눈에 도하의 얼굴이 들어왔다. 차 도하 대표가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가자. 빨리.”
라희가 지성의 옷을 잡아끌었다. 지성은 다시 한번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슈트를 입고 있지 않았지만 차가운 표정으로 지성을 노려보는 얼굴은 대표님이 분명했다.
지성은 뭔가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저……. 혹시.”
그러자 라희가 지성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다.
“아는 척하지 마. 우리 얼굴 몰라.”
라희는 작게 말한다고 한 거지만 도하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네. 맞아요. 차 도하가 내 이름이죠.”
도하의 말에 놀란 지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아무리 대표님이라도 이건 저희 문제입니다.”
지성은 눈을 똑바로 뜨고 도전적으로 말했다.
“이건 대표이사로서 나서는 게 아니라 한 여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그냥 못 지나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서는 겁니다.”
도하는 한쪽 옆에 서 있는 소명을 바라보다가 그녀 쪽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소명은 도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은 도하가 소명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자신의 부인을 그렇게 다정하게 바라보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갑자기 신경이 거슬렸다. 계속 도하를 쳐다보고 있던 라희가 지성의 팔을 끌었다.
그녀는 엉망진창인 머리에 눈 화장이 번져 괴상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라희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안 갈 거면 나 먼저 간다.”
“아니야, 라희야. 가자.”
지성은 소명을 노려보다가 라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소명은 도하를 보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
“자꾸만 신세를 지내요.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온몸을 떨었다.
꽉 쥔 주먹에는 라희의 머리칼이 잔뜩 쥐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도하는 마음이 안 좋았다. 그는 순간 악몽 같았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
그는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그가 사랑한 서빈에게는 한없이 다정다감한 남자였다.
통통 튀는 서빈과 진중한 성격의 도하는 얼핏 보면 안 맞는 것 같았지만, 둘은 연애하는 내내 큰 다툼 없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니 도하는 그렇다고 믿었다.
도하는 서빈을 위해 이벤트 하는 걸 좋아했고 그녀에게 뭐든지 다 주고 싶었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때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 그녀의 집으로 무작정 달려갔다.
그녀의 집 앞에는 그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서빈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하가 차 안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멀리서 흰색 외제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그 차를 쳐다보았는데, 그 차 안에는 서빈이 웬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무 놀란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몸을 숨겼다. 차창 사이로 시선을 떼지 못한 그의 심장은 요란하게 요동쳤다.
서빈은 자신과 만날 때와 다르게 온몸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딱 붙는 검은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가슴 부위가 시원하게 파여 있었다.
화장도 평소와 다르게 너무나 진해서 도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서빈이 맞나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곧이어 차에서 서빈이 내리고 운전하던 남자도 차에서 내렸다.
그 남자는 서빈 앞에 서더니 점점 얼굴을 서빈 쪽으로 기울였다.
도하는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고개를 천천히 내리 저었다.
그가 충격을 받아 괴로워하는 사이 서빈과 남자는 바짝 몸을 밀착시킨 채 연인처럼 키스하기 시작했다.
도하는 떨리는 손으로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큰 키의 건장한 그의 몸이 비틀댔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걸음걸이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두 사람이 도하가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행위에 집중할 즈음에 도하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서빈의 귓가에 들려왔다.
“서빈아…….”
서빈은 깜짝 놀라 키스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도하가 서 있었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오빠?”
서빈은 딴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봐 버린 도하에게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서빈과 키스하던 남자가 도하 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봤으면 인제 그만 꺼져.”
도하는 눈에 잔뜩 힘을 주며 그를 노려보았다. 도하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다 주먹을 꽉 쥐었다.
도하는 남자에게 한 걸음 다가섰고 두 손으로 남자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남자는 숨이 막혀 캑캑댔다.
도하는 숨을 몰아쉬며 두 손으로 그를 더 압박하려다가 이내 손을 풀었다. 도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남자는 괴로운지 고개를 숙이며 헉헉댔다.
서빈은 도하를 쳐다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도하는 서빈을 노려본 후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우린 끝이야.”
그의 말에 서빈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오빠, 나 너무 심심해서 클럽 잠깐 간 거야. 키스는 저 사람이 갑자기 하는 바람에. 술도 마셨고 정신도 없었어. 나 오빠 사랑해.”
도하는 서빈이 매달리는데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던 따뜻한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섬뜩하고 차가운 눈빛에 서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도하는 서빈 쪽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무표정인 그에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차에 올라타곤 무서운 속도를 내며 출발했다. 서빈은 멍한 표정으로 도하의 차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옆에 남자가 다가와서 다정하게 물었다.
“괜찮아? 잘됐다. 이제 끝났잖아. 이제 나만 봐.”
서빈은 눈을 부릅뜨고 도하가 떠난 길을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서빈아? 왜 그래?”
서빈은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는 남자를 쏘아보며 말했다.
“꺼져.”
“뭐?”
“너 같은 게 오빠랑 비교가 돼?”
“야……. 너 지금 나 갖고 놀았냐?”
남자는 서빈을 보며 어이없어했고 서빈은 그런 남자를 그냥 둔 채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현관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한참을 차를 몰던 도하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운명이라고 생각한 여자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딴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와 그녀의 사랑을 삼류 드라마나 B급 영화로 만들어 버린 그녀가 미치도록 미웠다.
마치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도하는 괴로워했고 그녀와 헤어지고 그는 차갑고 냉소적인 성격으로 변했다.
절대 웃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그는 이제 어떤 사람도 믿기 어려웠다.
******
그런 그였기에 남편에게 배신당한 그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숨이 안 쉬어지는지, 얼마나 죽고 싶은지 알 것만 같았다.
도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더 말랐어요? 식사 안 하죠?”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에요. 나한테 미안한 거 많을 텐데 밥 한 끼로 퉁 칩시다.”
“네?”
“우선 손 좀 줘 봐요.”
도하는 아직도 꼭 쥐고 있는 라희의 머리카락 뭉치를 소명에게서 뺏은 후 근처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안 갈 거예요?”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먼저 앞장섰고, 소명은 도하에게 신세 진 걸 갚을 수 있다면 음식 대접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분은 처참했지만 자신을 애써 도와준 고마운 사람에게까지 모질게 굴고 싶지 않았다.
“저…… 대표님. 저 차를 가지고 왔어요.”
“그래요. 그러면 잘됐네요. 키 줘요.”
“네?”
도하가 키를 달라고 하자 소명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놀라요. 정신없을 거니까 내가 운전할게요.”
“아……. 네.”
“근데 나 밥 사줄 돈은 있죠? 나 비싼 거 먹을 건데.”
“네. 있어요.”
“그럼. 이 차예요?”
소명의 SUV 자동차를 가리키며 도하가 물었다. 소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보니 그녀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너무 아름다웠다.
도하는 그녀가 새삼 달리 보였다. 잠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도하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소명에게 말했다.
“타세요.”
“네.”
도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서서히 소명의 차를 몰기 시작했다. 도하는 운전하면서 소명에게 물었다.
“저……. 아직 제가 이름도 모르네요.”
“아, 네. 저번에 인사드릴 때 제 이름이 아닌 남편 이름을 말했죠. 저는 홍소명이라고 합니다.”
“아, 소명 씨.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서른넷입니다.”
“저랑 동갑이시네요.”
자기와 동갑이라는 말에 소명은 운전을 하는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명 씨라고 불러도 돼요?”
도하의 차갑고 냉소적인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소명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묻고 있었다.
“네.”
“저는 차도하라고 해요.”
“알고 있습니다.”
“소명 씨한테는 대표가 아닌데 편하게 말해요.”
“네.”
도하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야위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서 그도 그녀를 보면 슬퍼졌다.
얼마를 달린 후 한적한 곳에 설렁탕집이 보였다. 그는 그곳에 차를 세웠다.
“소명 씨가 사는 건데 제가 좋아하는 거 먹어도 되죠?”
“네. 두 그릇 드셔도 돼요.”
소명의 말에 도하는 그녀의 대꾸가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말에 자신이 웃고 있는 게 놀라워 그는 이내 다시 표정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웃으시니까 좋네요.”
소명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오늘따라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둘보다는 혼자가 익숙한 그가 자꾸만 옆에 있는 소명을 신경 쓰고 있었다. 도하는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정이야. 그래. 나도 겪어봤으니까. 불쌍해서. 그래. 그걸 거야.’
그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가서 앉죠.”
소명과 도하는 자리에 앉아 설렁탕을 시켰다.
곧이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설렁탕의 그들 앞에 놓였다.
도하는 소명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많이 먹어요.”
그는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