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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남자가 살면서 한 번 할 수도 있는 실수 (13/101)


제13화 남자가 살면서 한 번 할 수도 있는 실수
2022.08.15.



 
곧 문이 열렸고 소명은 크게 심호흡하고 현관문 안에 들어섰다.

지성의 어머니 정 여사의 집은 현관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잔디밭이 펼쳐졌고 그 안에는 블루베리, 살구, 감나무가 보였다.

소명은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크게 심호흡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정원을 참 좋아했는데.’

소명이 정원 길을 따라 집 앞에 도착하니 정 여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표정이 어딘지 상당히 어색해 보였다. 소명은 정 여사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머니, 주말에 약속 못 지켜 죄송해요.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전화도 못 드렸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아침부터 연락도 없이 찾아오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소명의 말에 정 여사는 그녀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오늘따라 소명은 평소와는 다르게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정 여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든 왔으니 들어와.”

“네.”

소명이 들어가 거실 소파에 앉자 정 여사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후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과일하고 차 좀 갖다 줘요.”

안에서 도우미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네, 사모님.”

정 여사는 소명을 바라보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응. 말해 봐.”

“저…….”

소명이 한참을 뜸을 들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 여사는 답답하다는 듯 그녀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얘는 왜 이렇게 사람을 답답하게 하니?”

“저보고 이혼하자고.”

“뭐?”

소명의 말을 들은 정 여사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소명 쪽으로 몸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게 진짜란 말이야?”

“어머니, 알고 계셨어요?”

소명이 묻자 정 여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전화가 왔는데 나는 너랑 싸운 줄 알고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았지. 이게 무슨 일이니? 대체?”

“그 사람한테 다른 여자가 있어요.”

“뭐?”

정 여사는 갑자기 벌어진 일이 너무나 황당해 잠시 말을 잊었다.


“어머니.”

“어?”

소명의 표정이 한창 심각할 때 도우미 아주머니가 과일과 차를 내왔다.


“소명아, 차 좀 마셔라. 응? 좀 진정하고.”

“어머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이혼하는 게 맞는 일 같아서 찾아왔어요.”

“얘,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가 살면서 한 번 실수할 수도 있는 거야. 네가 이번에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우리 지성이 너한테 평생 감사하면서 살 거야. 지성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더 잘 알잖니. 그렇게 너 아니면 죽겠다고 난리 난리를 피우던 앤데.”

정 여사는 자기 아들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소명이가 탐탁지 않은 며느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 아들이 바람피워 이혼한 이혼남이라는 딱지를 안고 살게 하기는 싫었다.

소명이가 집안 환경은 좋지 않아도 곧고 바른 아이라는 걸 정 여사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소명이 지성을 용서할 것 같지 않자 정 여사는 소명이가 아쉬워졌다.


“어머니, 저 여기 오기까지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저도 그 사람이랑 산 십 년 세월이 짧은 건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웠어요. 그런데 바람은 실수가 아니에요. 저는 눈 감고 살 자신이 없어요. 지성 씨랑 이혼 절차 밟겠습니다.”

소명이 또박또박 이야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정 여사는 당황해서 그녀를 올려다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 소명아! 너 이게 무슨 말 버르장머리야. 너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지성이가 바람을 피우니? 응?”

정 여사의 말을 들은 소명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안녕히 계세요.”

소명은 굳은 표정으로 정 여사를 바라보며 인사를 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사실 소명은 정 여사에게 어떤 기대도 없었다.

하지만 정 여사에게 이혼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지성과 이혼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녀는 걸어 나오면서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평탄한 삶에 찾아온 이 무서운 변화를 그녀는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강해질 거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고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그녀는 운전하는 걸 참 좋아했다.

운전하면 답답한 속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달리는데 지성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자로 지성의 번호를 본 소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소명은 핸즈프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너……. 엄마 찾아갔다며?]

“응.”

지성은 전화하며 조금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평상시의 목소리가 아닌, 오늘따라 소명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너, 나 바람피웠다고 했냐?]

“바람피운 걸 바람피웠다고 하지 그럼 사랑에 빠졌다고 하니?”

[뭐?]

“너 바람피운 거야. 정신 차려.”

[그래서 우리 엄마한테 이르면 내가 다시 너한테 돌아가기라도 할 것 같냐?]

지성이 소명에게 한껏 이죽대자 수화기 너머로 소명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하하.”

[너 돌았냐?]

“너만큼이나 하려고.”

[너 진짜?]

“이혼할 거야. 나도 너 같은 놈이랑 안 살아.”

[뭐?]

“왜 놀라? 네가 원하던 이혼할게.”

[그……. 그래?]

“서류 가지고 와.”

[너……. 혹시 남자 생겼냐?]

“내가 넌 줄 아니? 너랑 산 십 년 세월이 아깝다. 이런 식으로밖에 생각을 못 하니? 끊는다.”

지성은 뭔가 소명에게 단단히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러고는 계속 차 도하 대표이사가 그녀를 편들던 일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뭔가 찝찝해.’

그는 굳은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소명은 지성과의 전화 통화를 끊고 차를 몰아 어딘가로 향했다.

******

그녀가 달려간 곳은 바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집이었다.

절대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엄마의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얼굴을 적시고 말았다.

소명은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운 흔적을 지우려 애를 썼다. 그때 대문의 문이 열리며 엄마가 걸어 나왔다.

엄마는 대문 앞에 서서 눈물을 훔치는 딸을 발견하고는 불안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명아?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우리 딸. 응? 말을 해야 알지.”

엄마는 소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어……. 엄마.”

“응. 우선 들어가자.”

소명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다. 방 두 개에 작은 집이었지만 깔끔한 엄마가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집 안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안방으로 들어가 소명을 앉히고 부엌으로 달려가 물 한 잔을 가지고 온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소명아, 물 한 잔 마셔.”

“고마워. 엄마.”

소명은 목이 너무 말라서 한 번에 꿀꺽꿀꺽 물을 다 들이켰다.


“소명아……. 엄마한테 말해봐.”

“엄마. 미안해. 흑흑.”

“어머,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는 소명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흑흑, 엄마. 나 이혼해.”

“뭐? 왜?”

“지성이가 바람피웠어.”

“……괜찮아. 괜찮아. 너 잘못 아니야. 그 나쁜 놈. 소명아, 네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데. 울어. 속상하면 맘껏 울어. 엄마 품에서 울지. 어디에서 울어. 아이고, 내 새끼. 얼마나 속을 끓였으면 이렇게 얼굴이 까칠해. 너 또 엄마 생각해서 참고 참았지? 엄마가 그러지 말랬잖아.”

“엄마, 미안해.”

“아이고, 얘가 왜 이래. 뭐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우리 소명이 이렇게 고생한 것도 모른 엄마가 미안해.”

두 모녀는 꼭 끌어안고 한참을 울어댔다. 소명은 생각했다.


 


‘이렇게 편안한데. 엄마의 품이 이렇게 편안한 안식처 같은데. 상처 주는 것 같아 너무 미안해. 엄마가 날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 다 아는데.’

소명은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강했다.

충격을 받을 만도 한데 담담한 표정으로 끊임없이 자기 딸을 위로하고 있었다.

소명을 한참 안아준 후에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좀 누워서 쉬고 있어.”

“엄마, 어디 가려고?”

“우리 딸 밥 해줘야지.”

“나 괜찮아.”

“괜찮긴. 누워 있어.”

엄마는 지갑을 챙겨서 빠른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온 엄마는 대문 밖에서 한참을 서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소명이 맘고생 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 다 찢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가슴이 아파 손으로 가슴을 몇 번이나 쓸어내리고 숨이 가빠 숨을 헐떡이며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오열했다.

그녀는 그렇게 울어댔다. 가엾은 자기 딸이 자신이 슬퍼하는 걸 보면 더 마음 아파할까 봐 그녀는 그렇게 숨죽여 한참을 몰래 울었다.

엄마는 울다 문뜩 정신을 차리고 시장을 향해 뛰어갔다. 너무 말라버려 빛을 잃어버린 자기 딸이 불쌍해 얼른 뭐라도 먹여야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그녀는 싱싱한 닭 한 마리를 사고 수삼과 한약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닭을 푹 고운 후 고기를 발라서 넣고 파를 그 위에 총총 썰어 넣었다.

어렸을 때부터 소명이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항상 해 먹이곤 했던 음식이었다.

정성스러운 엄마의 상을 받은 소명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또 왈칵 밀려왔지만, 엄마가 속상할까 봐 꼭 참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와, 너무 맛있겠다.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나 엄마가 끓여주는 닭곰탕 먹고 싶었는데.”

“어서 먹어. 뜨거우니까 불어서 꼭꼭 씹어 먹어.”

“고마워. 엄마.”

엄마는 소명이 어서 먹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없는 사랑의 눈빛, 이런 사랑의 눈빛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소명은 엄마가 해준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소명아, 너무 급하게 먹지 말고. 꼭꼭 씹어.”

“알았어, 너무 맛있어서 그렇지.”

“그래도.”

소명은 엄마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였다. 엄마는 그런 소명을 귀여운 아이 대하듯 얼굴을 쓰다듬었다.


“난 너만 행복하면 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엄마는 네 편이야.”

“엄마, 고맙고, 사랑해.”

“엄마도 사랑해.”

엄마는 소명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명은 밥을 먹으며 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래, 엄마를 위해서도 다시 일어나자. 할 수 있어. 엄마 조금만 기다려줘.`

 

******

도하는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소명을 생각했다. 오늘은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집 현관 앞에서 물끄러미 그녀의 집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바라보는 자신이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가 막 집으로 들어서려 할 때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그쪽을 바라본 도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지성이었다. 지성 역시 도하를 보고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아니, 여길 어떻게?”

지성은 굉장히 불쾌하다는 듯 도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눈을 부릅뜨고 도하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신 우리 부인이랑 무슨 사이야? 이젠 집까지 들락거려? 나 아직 그 여자 남편이야.”

“무슨 소리지 통 이해가 안 가는데?”

“몰라서 물어? 왜 우리 집 앞에 당신이 서 있냐고?”

“여기가 우리 집이니까?”

“뭐?”

지성은 도하의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집 호수를 확인하고 도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니, 이사님이 왜 우리 집 건너편 집에 사시는…… 건데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도하는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자기가 한 행동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겠네요.”

“네?”

“그럼.”

도하는 기분 나쁜 듯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문을 쾅 하고 닫고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은 지성은 황당한 표정으로 도하가 들어간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뒤로 돌아서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삐삐삑.

여러 번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성은 소명이 비밀번호를 바꾼 것을 알아채고 기분이 나빠 씩씩거렸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쾅쾅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얘가 어딜 갔지?”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밤에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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