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당신이랑 친구 하기 싫어.
(18/101)
제18화 당신이랑 친구 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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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당신이랑 친구 하기 싫어.
2022.09.01.
도하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한없이 따뜻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명은 그의 표정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울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준다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쳐 올라 잇새로 소리가 퍼져나갔다.
“흑흑…… 하아. 흐흠흑.”
“울어도 돼요. 슬픈 건 슬픈 거예요.”
“죄송해요. 흑흑. 계속 도하 씨한테 못 볼 꼴만 보이네요. 너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소명은 그의 행동에 놀라 울던 울음을 그치고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도하 씨…….”
도하는 잔뜩 놀라 경직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좋은 친구로서 한 번만 안아줄게요.”
“도하 씨, 흑흑. 미안해요.”
소명은 그가 정말 고마워서 그의 마음이 너무나 따뜻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어댔다.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그런 소명을 도하는 꼭 안고 토닥여줬다.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품이 있을까?’
도하가 몸을 살짝 일으키려 하자 소명이 그의 손을 붙잡았고,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잠시만. 잠시만 이렇게 있어 주세요.”
소명의 말에 도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다시는 여자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서빈이 준 상처가 너무 커서. 그의 사랑이 비참하게 버림받아서.
이제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어차피 또 자신을 버리고 떠나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여자는 자신을 보고 잠시만 이렇게 있어 달라고 한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 여자가 자꾸만 그의 눈에 밟혔다.
그녀에게 자기의 품을 한없이 내어주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다.
가슴 한복판이 찌릿찌릿하며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전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심장이 요란하게 요동치며 호흡이 가빠졌다.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소명의 귀에까지 들릴까 봐 그는 조바심이 났다.
소명은 곧 몸을 일으켰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너무 주책이네요.”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요. 저 슬플 때 소명 씨가 똑같이 위로해줘요.”
“네. 그럴게요.”
도하는 몸을 일으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왠지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다 그녀가 그의 표정을 보고 혹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릴까 봐.
도하는 이런 자신의 맘이 혼란스러웠다.
“한참을 울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어요.”
“소명 씨.”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도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돼요.”
“네?”
“일부러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 그거요.”
그녀는 도하의 말에 놀라 마시려던 술잔을 내려놓고 말았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오래 가도 당연한 거예요. 그걸 소명 씨가 극복 못 한 게 아니라 아프고 슬프고 미치겠고, 다 그런 거예요.”
“…….”
소명의 도하 말을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해주지 않았던 말이 그 어떤 위로보다도 마음에 와닿았다.
소명은 눈가에 일렁이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도하 씨가 없었다면 저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소명은 그를 보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소명 씨 마음 잘 알아요. 저번에 얘기했었죠. 잠깐.”
소명은 도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 마음이 아팠다.
“결혼을 약속했었어요. 많이 좋아했었어요. 내가.”
“…….”
“그래서 그 맘이 어떤 건지 너무도 잘 알아요.”
“도하 씨.”
소명은 그의 말을 듣고 그가 왜 이렇게 차가웠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사람에게 상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왜 그녀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는지 모든 일이 퍼즐 맞추듯이 풀려나갔다.
“도하 씨,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도하 씨한테는 상처일 텐데. 저를 위해서 어렵게 얘기도 해주시고.”
“말하고 싶었어요. 소명 씨한테는.”
도하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느끼는 순간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어색해 고개를 돌렸다.
소명이 고개를 돌리자 도하도 어색해져 딴청을 부리다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같이 마셔요.”
소명의 말에 도하는 입술에 가져다 댄 술잔을 떼서 그녀의 잔에 살짝 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도하와 소명은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둘 다 볼이 발그레해져 술 마신 티가 났다.
얼굴이 빨개진 모습을 본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빵하고 터졌다.
도하와 소명은 잠시 서로를 보며 웃어댔다. 둘은 웃으며 아파트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밤이라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다. 도하는 소명을 보며 물었다.
“소명 씨 춥지 않아요?”
“아니요, 술 먹어서 그런지 더워요.”
둘은 아무 말 없이 걸었지만 두 사람 사이는 조금 더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소명은 걸어가면서 살며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믿음직스럽게 굳게 다문 입술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요. 도하 씨 만난 건 정말 다행이에요.’
소명은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었고, 언제 그가 차가웠나 생각이 들 정도로 소명에 다정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도하는 소명이 먼저 내리길 기다리며 그녀가 내린 후에 엘리베이터 밖으로 발을 뻗는데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오빠!”
도하는 순간 너무 놀라 얼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본 곳에는 서빈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술을 많이 마셨는지 눈에 초점이 희미해져 있었다.
그녀는 오늘 클럽이라도 갔다 왔는지 허벅지가 훤히 보이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노출이 심한 상의를 입고 있었다.
도하는 그녀의 복장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걸어갔다.
“너?”
“오빠, 얼마나 기다렸는데.”
“너 여기 왜 온 거야?”
“왜 오긴……. 네가 내 전화 씹고 안 만나주니까 이렇게 왔지. 기분 더러워서 술 좀 먹었어.”
“택시 잡아 줄 테니까 빨리 가.”
“아니, 나 오빠 집에서 자고 갈 건데.”
“당장 돌아가. 화내기 전에.”
“싫대도. 근데 저 여자는 누구야?”
서빈은 도하의 등 뒤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소명을 보고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도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려고 하자 서빈이 도하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나 안 가.”
“너 정말.”
“저 여자 누구야? 오빠가 좋아한다는 사람이야?”
도하는 화가 너무 나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런 여자를?”
“소명 씨한테 함부로 말 하지 마.”
“오빠? 오빠 나밖에 없다고 했잖아.”
서빈은 도하의 말이 거짓말인 줄만 알았는데 막상 그 여자의 실체를 보니 너무 충격적이어서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신을 이렇게 기다리게 한 것도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은데.
다른 여자를 끌고 집까지 오다니.
서빈은 계속 소명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빠, 내 거예요. 당신은 나 못 이겨.”
서빈의 말에 소명은 도하의 표정을 살폈다. 도하는 괴로운 듯 심하게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소명은 도하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소명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서빈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느낀 서빈은 소명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였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지금 나 째려보는 거야?”
“당신, 이런 행동을 하는 걸 뭐라 그러는지 알아요?”
소명이 당당한 말투로 서빈에게 말하자 서빈은 그녀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 거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오빠 옆에서 꺼져. 오빠가 누군지 알아.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볼 상대가 아니야. 미리 충고하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우리 도하 씨 스토킹 그만하고 너나 꺼져.”
소명은 서빈을 보며 소리쳤다. 소명의 말을 들은 도하는 너무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명은 도하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서빈을 보며 말했다.
“도하 씨는 당신 안 좋아해. 그러니까 이제 정신 차리고 가요.”
“오빠 이 여자 나한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돌아가.”
“오빠? 아니지? 오빠는 나밖에 없었잖아.”
“아니, 나는 이제 소명 씨밖에 없어.”
“오빠…….”
냉정한 도하의 눈빛에 서빈은 갑자기 서러워졌다. 어딜 가나 공주 대접받는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하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다.
“서빈아, 가.”
도하는 냉정한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나한테 이렇게 행동한 거 평생 후회하게 해줄게.”
그때 소명이 서빈에게 다가와 말했다.
“도하 씨한테 그만 찝쩍대.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도하 씨 찾아와 힘들게 하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소명은 서빈을 쳐다보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서빈은 소명의 행동에 놀라 주춤했다.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보다 자신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도하는 도대체 이 여자의 어디가 좋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서빈은 도하의 마음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서빈의 기사가 뛰쳐나왔다.
“아가씨? 갑자기 사라지시면 어떡합니까? 혹시나 해서 왔는데. 여기에 와 계시면, 아이고 참.”
서빈을 바라보는 기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서빈을 보며 달래듯 말했다.
“아가씨, 가시죠. 회장님 아시면 큰일 납니다.”
“왜 큰일 나요. 약혼자 집에도 못 오나요?”
소명은 서빈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도하는 소명이 놀란 표정을 짓자 당황하며 말했다.
“누가 약혼자야?”
“오빠랑 나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곧 하게 되잖아. 그 사실은 오빠가 더 잘 알고 있으면서 옆에 있는 저 여자도 그 사실 알아? 오빠랑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결국 저 여자는 오빠 부인 소리 못 들을 거라는 거. 알면서도 그래? 결국 오빠 부인은 내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잖아.”
서빈은 술기운에 도하와 그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얄미워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 시작했다.
“그럴 일은 없어. 결코.”
“흥. 칫. 그래. 두고 봐. 그럼 알게 되겠지.”
서빈은 도하와 소명을 훑어본 후에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그 둘을 비웃기 시작했다.
“가요.”
서빈이 기사를 보며 말하자 기사는 재빨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소명이 서빈을 보며 말했다.
“진짜 찌질하네요.”
소명의 말을 들은 서빈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뭐? 이게 어디서 감히.”
서빈은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소명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때 도하가 서빈의 손목을 잡고 무섭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 진짜 이 정도였어?”
“놔, 나한테 하는 소리 못 들었어?”
“맞는 소리 했는데. 왜?”
“오빠?”
“조용히 가. 안 그럼 너 이런 행동한 거. 그리고 예전에 우리 사이 왜 깨졌는지 회장님께 하나하나 토씨도 빠짐없이 말씀드릴 거야.”
“놔.”
서빈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도하가 그녀의 팔을 놓자 서빈은 두 사람을 노려보다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소리쳤다.
“두고 봐.”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너무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도하 씨, 정말 힘들었겠어요?”
그녀는 험한 꼴을 당했으면서도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었다.
“미안해요.”
도하는 그녀를 보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도하 씨,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도울게요. 저……. 진심이에요. 제가 진짜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도하 씨 덕분이에요. 도하 씨가 친구라고 했죠? 저도 도하 씨 친구예요.”
“소명 씨…….”
도하는 소명의 진심을 알고 나서 그녀가 자꾸만 더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쳐대고 있었다.
‘당신이랑 친구 하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