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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19/101)


제19화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2022.09.05.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조금 전 일어난 일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소명이 그렇게 나서서 자신을 위해줄 줄 생각지도 못했다.

도하는 그녀의 행동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그는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명 씨, 미안해요. 많이 당황했죠?”

하지만 오히려 소명은 도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도하 씨, 괜찮아요?”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주자 도하는 소명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도하 씨,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소명은 도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미안해요. 저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미안하긴요. 제가 한 것보다 도하 씨가 저 더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제가 감사해요. 도하 씨 얼른 들어가세요.”

“아……. 네.”

소명이 도하를 보며 웃으며 인사하고 자기 집 쪽으로 걸어가려는 순간 도하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명 씨?”

도하가 자신을 부르자 소명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네?”

“저……. 나중에 한 번 우리 집 베란다 좀 봐주실래요?”

“네?”

“아……. 저도 소명 씨처럼 꾸미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해서요.”

도하는 소명이 어떤 대답을 할지 마음을 졸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도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고마워요.”

“언제든 시간 괜찮으실 때 전화해 주세요. 도하 씨가 저보다 바쁘시니까요.”

“그럴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네. 들어가세요.”

도하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 소파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녀와 헤어지면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번뜩 드는 생각이 베란다 가드닝이었다. 물론 베란다를 가드닝 하는 일이 그의 가장 좋아하는 취미이지만 그것보다 지금은 소명과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가 더 컸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자신이 갑자기 한 행동을 곱씹어 보았다.

도하는 그녀를 더 만나고 싶었고 그녀와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동안 아팠던 상처가 소명과 함께 있으면 치유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떤지 조심스러웠다. 도하는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

한편 집 안으로 들어온 소명은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침실로 가서 캔들 워머를 켜고 따뜻한 차를 가져와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채 마시기 시작했다.

모처럼 갖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한동안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이런 소소한 기쁨도 큰 행복으로 느껴졌다.

지성과의 이별은 그녀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지성이 떠난 빈자리는 너무 외롭고 허탈했지만,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사로잡게 놔두지 않을 거라 수없이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소명은 결국 지성과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을 사랑하기로 다짐했다. 그 어떤 환경과 시련이 닥쳐와도 그녀는 반드시 이기리라 맹세했다.

그녀의 인생의 주인은 그녀 자신이니까. 시간이 약이라고 조금씩 안정을 찾는 자신이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때 문뜩 도하가 생각났다. 차를 마시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댔다.


“좋은 사람이야. 정말.”

그녀는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항상 자신이 어려운 순간에 그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주었다.

소명은 도하를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오늘 해준 위로는 소명을 한 걸음 더 성장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차를 마시고 찻잔을 주방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오늘은 푹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하를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 도하가 한 부탁을 생각하며 그의 베란다 정원을 정말 멋지게 꾸며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물이 도하에게 어울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설레었다.

소명은 도하를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

한편 지성은 소명과 이혼을 하고 나서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더 이상 그녀는 자기 여자가 아니었다.

지성은 자신이 정말로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면서도 그는 그녀에게 좋은 남자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소명이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때 그는 너무나 기분이 나빴다. 예전처럼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못 잊고 매달리길 바랐던 건가?

소명의 행동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그를 괴롭혔다.

왠지 아쉽고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 자신이 쓰레기처럼 생각되었다.

그때 지성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어머니 정 여사의 전화였다.


“네, 엄마.”

[지성아, 너 어떻게 됐니?]

“뭐가?”

[소명이랑 화해하려고 노력은 하는 거지?]

“엄마…….”

[왜?]

“나 오늘 법원 갔다 왔어.”

[뭐? 너 진짜 엄마한테 한마디도 안 하고 네 멋대로 행동하는 거니? 응?]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죄송해요.”

[너, 어쩌려고? 소명이 만한 애가 어디 흔해?]

“이번 주말에 라희랑 엄마한테 인사드리러 갈게요.”

[됐다. 인사는 무슨.]

“엄마. 이제 끝났어요.”

[소명이가 용서해주면 그냥 다시 시작해라. 응?]

“소명이가 이제 저랑 못 살겠대요.”

[뭐?]

“엄마, 저 지금 통화 못 해요. 나중에 걸게.”

[지성아? 지성아!]

지성은 어머니와의 통화가 짜증스러워서 전화를 얼른 끊어버렸다. 막상 이혼하면 너무나 기쁠 것 같았는데……. 소명이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그녀는 자신과의 이혼을 너무도 원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그를 너무 당황하게 했다. 왜 이리 기분이 우울한지, 그는 운전하면서도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라희의 오피스텔로 걸어가면서도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두 손에 검정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오다 편의점에 들러 소주 3병을 샀다. 도저히 이 기분으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라희의 오피스텔 쪽으로 걸어가는데 문 앞에 웬 남자가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지성은 놀란 눈으로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와 지성은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그 남자는 기분 나쁜 눈으로 지성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성은 그를 보며 라희의 오피스텔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몸을 돌려 돌아가려고 할 때 지성이 그를 보며 소리쳤다.


“누구 찾아오셨어요?”

그 남자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 제가 잘못 찾아왔나 봅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 남자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지성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표정을 하며 라희의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눌렀다.

지성이 들어오자 라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왠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성은 그런 라희가 이상해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몸 안 좋아?”

“어……. 좀 안 좋네.”

“그래? 그럼 침대에 좀 눕지, 그랬어.”

라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올 시간 된 것 같아 기다렸지.”

“그래?”

“오빠, 잘하고 왔어?”

“응.”

라희는 팔을 들어 지성을 와락 껴안았다.


“오빠, 우리 진짜 잘 살자.”

지성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라희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라희는 이렇게 나밖에 모르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오빠, 근데 뭐 사 온 거야?”

라희는 지성을 감싸 안은 팔을 풀며 궁금한 듯 물었다.


“아, 소주 한 잔 마시고 싶어서.”

“그래?”

“응.”

“그럼, 얼른 씻어. 금방 밥 차릴게.”

“어.”

지성은 라희를 쳐다보다가 그녀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욕실로 들어갔다.

지성이 욕실로 들어가자 라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그녀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너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너무 보고 싶은데 어떡해.]

[빨리 가.]

[나 너 애인 봤다. 집 앞에서.]

라희는 메시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미친.”

라희가 소리치자 지성이 샤워하다가 라희에게 물었다.


“왜?”

“아……아니야.”

라희는 빠른 속도로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가. 더 이상 너 보기 싫어.]

[보고 싶어. 기다릴게.]

[아니, 당장 돌아가.]

[라희야.]

[제발 가. 부탁이야.]

라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핸드폰을 꾹 눌러 꺼버렸다.

그리고 얼른 일어나 식탁에 반찬을 놓으며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때 지성이 머리를 닦으며 밖으로 나왔고 라희가 차린 밥상을 보며 놀란 듯이 쳐다보았다.


“오빠, 맛있을지 모르겠다.”

“와, 맛있겠다.”

“얼른 와.”

“그래.”

지성은 식탁에 앉아서 라희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라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성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성 또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라희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성이 밥 한 숟가락을 뜨며 입에 가져가다가 라희를 보며 말했다.


“아 참, 오늘 엄마랑 통화했어.”

지성의 말은 들은 라희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셔?”

“내가 이번 주말에 너 소개한다고 했어.”

“어?”

“미안, 미리 말해야 하는데. 빨리 인사하고 그다음에는 너희 어머니께 인사하고. 우리 결혼 서둘러야지.”

지성이 말이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라희는 왠지 지성의 어머니를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처지가 바르지 못해서일 수도 아니면 미래의 시어머니가 될 사람을 만난다는 부담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성과의 결혼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관문이었다.

라희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지성을 보며 말했다.


“오빠, 나 너무 긴장되는데. 뭐 입고 가지?”

“오빠가 옷 한 벌 사줄게. 가기 전에 백화점 가자.”

“오빠, 고마워.”

“고맙긴.”

“근데, 오빠. 어머니 뭐 좋아하셔?”

“응?”

“뭐 선물이라도 사 가야지.”

“뭐가 좋을까?”

라희는 지성의 어머니에게 사 갈 선물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빠……. 나 너무 긴장돼.”

라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지성이 라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엄마가 너 좋아하실 거야.”

“그럴까?”

“그럼.”

지성은 라희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녀는 지성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라희는 마음이 아주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매몰차게 거부한 옛 남자가 찾아왔다. 그녀도 그가 싫지 않다. 한 남자한테 정착 못 하는 자신이 재윤이만은 오랜 시간 의지해왔는데…….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 지성과 결혼하면 그녀는 지성의 아내가 된다.

첫눈에 반한 지성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건 맞지만 그녀는 자신을 도무지 믿기가 어려웠다.

그날 재윤이 부르는 곳으로 나간 것부터 서서히 일은 잘못되었다.

라희는 자신의 맘을 도저히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건 좋은 지성과 결혼하면 그녀의 평생은 행복할 것만 같았다. 라희는 복잡한 속내를 표현하지 않으며 꼭꼭 그녀의 가슴 안에 숨겨두고 지성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지성을 바라보며 라희는 애교 섞인 콧소리로 말했다.


“오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은 서서히 다가가 서로의 입술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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