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아이가 생긴다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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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이가 생긴다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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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이가 생긴다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2022.09.08.
라희와 지성은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며 침실로 향했다. 지성은 라희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고 라희는 지성의 강인한 어깨를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이 함께 침실에 누워 있을 때 재윤은 아직도 집에 가지 않은 채라희의 집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다시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라희의 전화는 꺼져 있었고, 재윤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까지 그녀를 기다려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지금 그녀는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 재윤은 자신이 비참하고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왜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지 그 자신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녀를 끊어내려 모질게 대했지만, 막상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지자 미치도록 그녀가 그리웠다.
그는 참고 참았지만 결국 라희를 찾아가고야 말았고, 그녀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한심한 놈. 도대체 왜 이러냐.’
그는 그녀의 집 앞에 서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슬픈 마음이 주체가 안 돼 재윤의 호흡이 점점 가빠왔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라희의 오피스텔 벽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 후 극심한 손의 통증이 몰려오는지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생기를 잃은 표정으로 라희의 집을 한 번 쓱 쳐다본 후에 쓸쓸히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한편 라희와 지성이 침실에서 한창 키스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벽에서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얼른 입술을 떼고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성이 궁금한 듯 라희를 향해 물었다.
라희는 지성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퍽 하는 소리 들렸는데…….”
“내가 나가 볼게.”
지성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불안한 표정을 한 라희가 지성의 팔을 잡아챘다.
“오빠, 가지 마.”
지성이 라희를 보며 다정한 눈빛으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무슨 일인지는 봐야지.”
“그럼 같이 가.”
“넌 여기 있어.”
지성은 얼른 몸을 일으켜 침실을 나와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성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벽을 치고 간 건가?”
“아무도 없어?”
“응. 누가 벽을 치고 간 것 같아.”
지성의 말에 순간 라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곧 다시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오빠, 자자. 술 취한 사람이겠지.”
“그런가? 아까도 집 앞에 어떤 남자가 서성대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래?”
라희는 지성이 재윤을 봤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졌다.
“놀랐어?”
“어?”
“우리 빨리 이사 가자. 요즘 일이 많아서 우리 집 못 알아봤는데 회사 근처로 알아보자.”
“그래.”
지성은 라희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라희가 좋아하는 집 구해서 이사 가자.”
“응.”
“우리 아이 낳으려면 마당 있는 집이 좋겠지?”
“아이?”
“라희야, 우리 아이 낳고 싶어.”
“나……도 아이 낳고 싶어.”
지성이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말에 라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자신이 아이를 낳고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 남자를 믿고 올인해서 지성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보다는 부담감이 그녀의 가슴을 압박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라는 걸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아버지가 없는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철이 없어서 라희보다는 자신의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나기에 바빴다.
그녀는 외할머니를 엄마처럼 여기며 따랐다. 그런 그녀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를 혼자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그녀는 엄마를 몹시 증오했고, 자신의 엄마를 버린 친아버지를 경멸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믿지 않게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엄마가 돼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성이 아이를 바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좀 뜻밖이었다.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지성의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며 말을 걸었다.
“오빠, 부인이랑은 왜 아이 안 가졌어?”
라희의 질문에 순간 표정이 굳어진 지성을 보고 그녀는 몹시 당황해서 물었다.
“미안, 뭔가 사정이 있는 거면 말 안 해도 돼.”
“아니야, 사정은 무슨. 그냥 아이가 안 생겼어.”
“그래?”
“응.”
“오빠는 아이가 갖고 싶었어?”
“아니, 나보다는 소명이가 더 원했는데 자꾸 아이한테 집착하니까 내가 좀 힘들더라.”
“그랬구나.”
“근데 오빠 지금은 마음이 바뀐 거야?”
“응. 이제는 너랑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라희는 지성의 품에 쏙 안겨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성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라희에게 이젠 완벽히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자신이 불륜으로 그녀와 인연을 맺었지만, 그녀와 행복하게 완벽한 가정을 이룬다면 자신의 불륜남이라는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다는 듯이.
‘아이가 생긴다면 너를 잊을 수 있을까?’
그는 소명을 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
소명은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아침 식사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침 루틴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뭐든지 꾸준히 하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녀는 매일 아침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뜨고서도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막상 나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의 공기는 그녀의 머리를 맑게 해주었고 아침마다 꾸준히 걷고 들어오면 오히려 몸에 기운이 솟아서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바뀐 자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너무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걷기 운동하면서 도하의 베란다 가드닝을 어떻게 도와줄지, 어떤 화초가 키우기 쉬울지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걸었다.
공원의 나무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그녀가 걷다가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모습에 시선을 뺏긴 남자. 그는 바로 차도하였다.
도하는 오늘도 조깅을 다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무 아래서 그녀가 혹시나 지나가지 않는지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계속 마주치지 못해서 오늘도 포기하려는 찰나 소명이 지나가다 멈춰서 운동화 끈을 묶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만난 기쁜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갑자기 찾아온 그의 마음이 아주 당황스러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언제나 같이 있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도하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순간 운동화 끈을 매면서 옆을 쳐다본 소명과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순간 도하는 당황해 자신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소명은 그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주었다. 도하의 눈엔 그녀의 뒤에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소명은 운동화 끈을 다 묶고 나서 그에게 빠르고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왔다. 도하는 그녀를 보며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자꾸만 그녀를 보면 반응하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소명은 도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운동 나오셨나 봐요. 여기서 보니 더 반가운데요.”
“아, 네.”
그녀를 바라만 봐도 떨리는 마음에 도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운동 끝나셨어요?”
소명이 그를 보며 묻자 그는 온몸이 땀에 젖었는데도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아니요.”
“그럼 같이 걸으실래요?”
그녀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활짝 펴졌다.
두 사람은 약간 속도를 올리며 같이 공원길을 걸었다.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이 물었다.
“원래 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걷는 것도 좋아해요.”
“네.”
“제가 너무 빨리 걷나요?”
도하는 자신의 페이스에 소명이 힘들까 걱정이 되어 물었다.
“아니요, 딱 좋아요.”
소명이 그를 보며 자꾸 웃자 도하는 자꾸만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같이 운동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아? 도하 씨?”
그녀는 뭔가 생각난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번에 말씀하신 가드닝이요.”
“아? 네.”
그녀의 말에 순간 도하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예쁜 아이들을 더 사실 건가요? 아니면 지금 있는 그대로에서 제가 도와드릴까요?”
“저는 더 사고 싶은데 제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기도 해요.”
“그럼 잘 자라는 아이들로 제가 골라 드릴까요? 저번에 갔던 그 화원에서요.”
“저는 너무 감사하죠. 그럼 토요일에 갈까요?”
“네. 그렇게 해요.”
도하가 소명을 보며 밝게 웃어 보이자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도하 씨, 웃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아요. 저는 처음에 도하 씨 웃는 방법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소명은 그녀의 말에 얼굴이 굳는 도하를 보며 자기 입을 재빨리 가리며 말했다.
“어머, 저 너무 주책이네요. 미안해요.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소명은 도하의 눈치를 보며 미안해했다.
그러자 도하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소명도 그를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소명 씨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웃는 거예요.”
“네?”
생각지 못했던 그의 말에 소명은 당황해서 표정이 굳어졌다.
“놀랐어요? 사실인데. 나 입에 발린 말 못해요. 소명 씨가 나 웃게 만들어줘서 웃은 거예요. 고마워요.”
그의 말에 그녀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도하는 그녀를 보며 말을 걸었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요?”
“네.”
둘이 이야기하느라 원래 코스보다 한참을 더 걸은 걸 깨달은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둘은 걸어온 길을 돌아 다시 걸었다.
차가운 냉기만 뿜어대던 도하는 소명을 보며 세상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힘들지 않아요?”
“네. 괜찮아요.”
“힘들면 말해요. 무리하지 말고. 좀 쉬었다 가죠. 뭐.”
“괜찮아요.”
소명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도하가 고마워 그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도하는 소명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미소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그녀와 걷는 이 시간이 멈추어버렸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그를 보며 말했다.
“저, 정말 도하 씨한테 아주 고마워요.”
“네?”
“도하 씨 아니었으면 저 못 버텼을 것 같아요. 진짜 고마워요. 좋은 친구 만나서. 저 너무 운이 좋아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도하는 입에서 자신을 친구 아닌 남자로 생각해달란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그녀에게 당장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그런 마음을 애써 참으며 그녀와 함께 산책로를 걸어갔다.
그녀와 걷는 행복에 취해 그는 그만 항상 일찍 출근하는 자신의 출근 시간에 늦은 것도 잊은 채 그녀와 걷고 있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