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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근데 저 남자는 누구니? (22/101)


제22화 근데 저 남자는 누구니?
2022.09.15.



 
지성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놀라 정 여사를 한참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다 눈치를 보며 라희를 슬쩍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아무 표정 없이 이 시간을 힘겹게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명이도 그렇게 괴롭히더니…….’

지성은 어머니한테 몹시 분노를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몸을 들썩일 정도로 깊은 한숨이 배어 나왔다.

지성이 아무 말 없이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며 지성의 어머니는 한마디를 툭 내던졌다.


“내 입에서 고운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요?”

지성의 어머니는 라희를 바라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라희는 정 여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전 오빠 사랑합니다.”

라희의 말을 들은 지성의 어머니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눈을 맞췄다.

정 여사는 그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보통내기가 아니야.’

정 여사는 라희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지금 이 상황까지 끌고 온 게 잘했다는 건가요?”

“이젠 저를 어머님 며느리로 그냥 받아 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난 아가씨 내 며느리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네?”

“뭔가 잘못 안 것 같은데 난 인사하러 온다는 거 허락한 적 없어요.”

라희는 지성 어머니의 말에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지성은 참았던 화가 폭발해버렸다. 지성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진짜 엄마는 소명이한테도 그러더니……. 이제 그만해. 지긋지긋하다고!”

“뭐?”

지성의 말에 정 여사는 놀라서 지성을 바라보며 저절로 입이 턱 벌어졌다.


“지성아, 너 그게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니?”

“엄마가 라희까지 이렇게 대할 줄은 정말…… 하아. 됐어요. 이젠 허락이고 뭐고 없어요.”

“안지성!”

“라희야! 일어나.”

지성은 벌떡 일어나서 라희의 팔목을 끌어당겼다. 라희는 지성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지성의 어머니는 소리를 꽥 하고 질러댔다.


“안지성. 이게 엄마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앉아!”

지성은 어머니를 쏘아보며 씩씩거렸다.


“가자.”

지성이 라희의 손을 잡고 집 안을 빠져나가자 지성의 어머니는 큰 한숨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했다.


“허……. 참나.”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옆에 예쁘고 파릇파릇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왜 항상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만을 안겨주는지 가슴이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소명이 생각났다.

항상 자신의 모진 구박에도 웃으며 자신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던 아이였는데.

누구보다도 똑 부러져서 지성을 이끌어주고 자신과 지성의 사이가 어긋나려 할 때마다 중간에서 잘 대처해준 사람이었다.

정 여사는 그렇게 미워하고 탐탁지 않아 하던 소명이 지금은 너무 그리워졌다.


‘지성이의 짝은 소명이뿐이야. 어디서 저런 게 우리 집안에 굴러 들어와.’

지성의 어머니는 라희는 이상야릇한 눈빛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성이를 잘 다독여 다시 소명에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랐다.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지성의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더니 안방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얼른 화장대 위에 놓인 차 키를 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

한편 지성의 손에 이끌려 나온 라희는 기분이 나빠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나 채라희가 이런 꼴을 당하다니…….’

라희는 너무나 심하게 무시당한 느낌에 기분이 더러워 호흡이 가빠졌지만 애써 자신의 화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지성이 라희를 조수석에 태우고 그녀에게 안전띠를 매줬다.

지성이 그럴 때마다 라희는 항상 웃으며 고맙다고 말했었는데 지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앉아만 있었다.

지성은 라희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느껴서 그녀에게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는 라희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라희야, 미안하다.”

지성은 라희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성은 라희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라희를 반겨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질게 대할지는 몰랐다.

라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지성은 라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라희가 그를 향해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 그녀의 두 눈에서 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물에 놀란 지성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라희야? 너 울어?”

그가 놀라며 묻자 라희의 입에서는 참았던 울음이 새어 나왔다.


“오빠, 흐흑. 흑.”

지성은 라희를 꼭 안아주며 그녀의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너 여기 안 데려오는 건데.”

지성이 그녀에게 사과하자 라희는 지성의 품에 안겨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오빠 엄마.’

라희는 진짜 슬픈 것처럼 지성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지만, 사실은 너무 화가 났다.

지성의 어머니가 자신을 심하게 무시한 사실이 화가 나 계속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라희는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자꾸만 생각이 복잡해졌다.

자신이 왜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한편 지성의 어머니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그녀의 표정은 뭔가 굳은 결심을 한 듯 결연했다.

지성의 어머니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소명이 사는 아파트 앞이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서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소명의 집 쪽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녀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탐탁지 않아 했던 며느리를 만나 사정하러 가는 길은 자존심 강한 그녀를 매우 힘들게 했다.

하지만 소명을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녀의 집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는 동안 별별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연락이라도 하고 왔어야 했나?’

‘혹시 집에 없는 건 아닐까?’

지성의 어머니는 긴장된 마음으로 소명의 현관문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계속 울리는데도 안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찾아온 게 잘못이었다.

그녀의 맘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소명이 집에 없다는 사실에 실망감이 커져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녀는 터벅터벅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내림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엘리베이터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혹 소명인가 싶어 정 여사의 눈이 커졌다. 곧 건장한 남자가 큰 화분을 들고 내렸다.

정 여사는 화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소명이 화초에만 집중해서 늘 못마땅했는데 다른 사람이 몸집보다 큰 화분을 들고 나오는 모습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건장한 남자 뒤에 웃으며 내리는 사람이 보였다. 지성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뒤에 내린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와 눈이 딱 마주친 정 여사는 너무 놀라 입까지 벌어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바로 소명이었다. 소명도 지성의 어머니를 보고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머니? 여긴 어쩐 일로?”

“소명아?”

“네.”

“할 말이 좀 있어서 왔는데…….”

“네.”

“근데 저 남자는 누구니?”

도하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눈으로 묻는 지성의 어머니를 보고 소명은 기분이 나빠졌다.


“아는 사람이니?”

“네. 옆집 사시는 분이세요.”

“아……. 난 또. 지성이랑 싸운 지 며칠이나 됐다고.”

“네?”

“네가 딴 남자 생긴 줄 알고.”

“어머니…….”

“아유, 내가 말실수했네. 소명아, 미안하다. 우선 들어가자.”

“어머니, 죄송하지만 어머님께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어요.”

“뭐?”

“죄송합니다.”

“소명아, 너 지성이 없이 살 수 있니? 너희가 얼마나 사이가 각별했니. 내가 너한테 잘한 거 하나도 없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면 나도 이제 좋은 시어머니 되려고 노력해보마.”

“어머니, 그동안 제가 어머니께 너무 못한 것 같아 죄송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소명아, 너 왜 이러니? 응?”

“저희 이혼했어요.”

“다시 생각해라. 응?”

지성의 어머니가 소명의 팔을 붙잡고 매달리자 소명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괴로워했다.

그때 지성의 어머니 눈에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소명과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성의 어머니는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좋은 구경거리라도 났어요? 그만 집으로 들어가세요.”

도하는 지성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녀를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싫다는데 그만 돌아가시죠.”

“아니, 총각. 총각이 나설 일이 아니지. 가족들 대화하는데 참 오지랖도 넓네요. 귀찮게 굴지 말고 들어가요.”

“귀찮게 구는 건 제가 아닌 것 같네요.”

“뭐요?”

도하의 도발에 화가 난 지성의 어머니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씩씩댔다.


“도하 씨, 들어가세요.”

소명이 차분하게 도하에 말을 건넸다.

소명이 도하의 이름까지 알고 있자 지성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며느리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도하 씨? 둘이 이름도 알고 지내는 사이야? 어쩐지 둘이 같이 들어올 때부터가 수상했어. 내가 소명이 어떻게라도 할까 봐 안 들어가고 있던 거야? 이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지성이랑 살던 집에 남자를 끌어들여?”

“어머니! 어떻게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세요? 진짜 너무하시네요.”

“너무해? 내가 너무하다고?”

“가세요.”

소명이 차갑게 등을 돌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지성의 어머니가 소명을 따라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지성의 어머니는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씩씩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며칠이나 됐다고?”

지성의 어머니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씩씩대며 베란다로 향했다. 소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지성의 어머니는 베란다에 가서 손에 잡히는 화분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바닥을 향해 던졌다.


“어떻게 네가 우리 지성이를 두고 남자를 끌어들여? 어?”

지성의 어머니가 또 다른 화분을 머리 위로 치켜들자 갑자기 뒤에서 화분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정 여사가 놀라 뒤를 살짝 돌아보았는데 어느 순간에 왔는지 도하가 무서운 눈빛으로 화분을 잡고 지성의 어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성의 어머니는 도하의 눈빛이 너무나 서늘해 자신도 모르게 팔에 힘이 빠졌다.

도하는 화분을 뺏어 조심스럽게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지성의 어머니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당장 나가시죠. 더는 안 참습니다. 계속 여기 계시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뭐? 여긴 내 며느리 집이고 이 집도 내가 사준 거야. 엉? 뭘 알기나 하고 떠들어.”

지성의 어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말하자 소명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화를 꾹꾹 눌러가며 삭이고 있었다. 소명은 나지막이 말했다.


“가세요. 안 나가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소명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는 지성의 어머니는 콧방귀를 뀌며 소명을 쳐다보았다,


“아나, 참나, 허…….”

“지성이한테 전화할까요?”

“간다. 가. 고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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