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사이코패스 안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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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사이코패스 안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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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사이코패스 안지성
2022.09.19.
정 여사는 씩씩대며 소명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몸을 획 돌려 거실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쾅 하고 문을 거칠게 닫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소명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베란다 정원을 바라보는 소명의 작은 어깨가 살짝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명 씨, 괜찮아요?”
도하는 소명에게 살며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는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서러워 펑펑 울던 소명은 도하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 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두 눈이 딱 마주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도하가 먼저 고개를 돌리자 소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하 씨! 미안해요. 자꾸만 도하 씨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진짜 속상하네요.”
소명의 말은 들은 도하는 소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도하의 시선을 보고 놀라 소명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소명 씨, 미안하다는 말은 아까 저 여자가 해야 할 말이에요. 소명 씨가 뭐가 미안해요.”
“네?”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요. 힘든 거 알아요. 하지만 이겨내야죠. 소명 씨 당연히 그럴 능력 있는 사람이잖아요.”
“자꾸만……. 도하 씨한테 폐만 끼치고……. 얼른 제가 이사를 하는 게 낫겠어요.”
고개를 숙이며 울먹이는 소명의 어깨를 잡은 도하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소명 씨?”
“네?”
“날 봐요.”
도하의 말에 소명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냉기가 돌아 차갑다 못해 서늘한 그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한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명은 그의 눈빛을 보고 두 눈을 깜빡이며 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려고 애를 썼다.
“소명 씨?”
도하는 다시 한번 소명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네.”
도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사 안 가면 안 돼요?”
“네?”
“가지 마요.”
“도하 씨…….”
소명은 너무 놀라 도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한참을 서로를 응시했다.
도하는 소명에게 다시 한번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소명 씨 괜찮아질 때까지만이라도.”
“…….”
“가지 마요.”
“어…….”
소명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도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난 소명 씨랑 같이 가드닝도 하고, 음. 저기 같이 운동도 하고 그러니까 좋던데요.”
“고마워요. 이렇게 못 볼 꼴을 보여도 저 도와주시고.”
도하는 소명을 보고 씩 웃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아까 정 여사가 깨버린 화분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 놀란 소명이 도하에 다가가 다급하게 말했다.
“도하 씨, 제가 치울게요. 이만 가보세요.”
소명이 도하 옆에 다가가 깨진 화분에 손을 대려 하자 도하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막았다.
순간 두 사람의 손이 닿았고 둘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손을 뺐다.
“소명 씨, 제가 해요. 손 다쳐요.”
“아니 그래도 제 화분이니까 제가.”
도하는 벌떡 일어나 소명의 손을 잡고 그녀를 거실로 데려가 소파에 앉혔다.
“소명 씨, 기분도 안 좋을 텐데 여기에서 쉬고 있어요. 금방 치우니까.”
“아니……. 그래도.”
“얼른 앉아 있어요.”
그녀를 바라보며 해맑게 씩 웃는 그의 미소를 본 소명은 갑자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아. 네.”
자신을 벌레 보듯 하던 지성의 표정과는 달리 이리도 따뜻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위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소명은 도하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보면 볼수록 이 남자는 좋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도하는 행여나 소명이 화분 파편 때문에 다칠세라 눈에 불을 켜고 화분 조각을 주워 모았다.
화분 파편을 종이에 싸서 버리고 청소기도 돌렸다. 도하는 베란다를 정리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명은 그런 도하를 보며 말했다.
“도하 씨, 그럼 도하 씨 집으로 가요. 제가 가드닝 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소명의 말을 들은 도하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드닝은 내일 하죠. 어차피 내일 일요일이니까요. 오늘은 좀 쉬는 게 좋겠어요.”
“아니요. 해드려야죠. 약속했는데…….”
“오늘 많이 놀랐을 텐데. 얼른 쉬어요. 그럼 가볼게요. 아 참 내일 스케줄 있으면…….”
“내일 해드릴게요.”
소명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도하를 올려다보았다.
소명과 눈이 마주친 도하는 심장이 요란하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그를 설레게 했다. 도하는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거실을 빠져나가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이상하리만큼 서두르는 도하의 행동을 소명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네.”
도하는 소명을 보고 싱긋 웃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현관문을 잽싸게 닫고 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골랐다.
‘후우……. 후 왜 이렇게 심장이 뛰냐?’
그는 자꾸만 자신이 소명에 깊이 빠져든다는 생각을 했다. 점점 더 그녀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
한편 약이 오를 만큼 오른 정 여사는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 씩씩댔다.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평소에 하지도 않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 여사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의 신호음이 가도 지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성과 통화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뚝뚝하고 냉정한 목소리였다.
“지성아.”
[왜요? 왜 전화하셨어요?]
“소명이 남자 생겼니?”
[아니,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소명이 만나러 갔는데 웬 남자랑 같이 오더라.”
[네?]
지성은 정 여사의 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네 짝은 소명이야. 어디 그런 애가 흔하니? 그런데 소명이가 글쎄 나보고…….”
정 여사는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울먹였다.
[엄마? 엄마 울어? 왜 그래? 소명이가 뭐랬는데?]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른다고…….”
[뭐?]
“소명이가 변했더라. 변했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엄마, 거긴 왜 가? 이미 끝났는데!]
“너는 소명이가 다른 남자 만나서 잘사는 거 볼 수 있어?”
[하아……. 엄마 다신 가지 마요.]
“지성아, 그 남자 소명이 편드는 거 보니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더라. 그 사람이 소명이 옆집 산다는 데 소명이한테 마음이라도 있으면 어쩌니? 엄만 소명이 아니면 싫다. 난 너 새 애인 진짜 맘에 안 들어.”
[엄마는 소명이도 싫어했으면서. 이젠 그만해요. 소명이 그만 괴롭혀.]
“안지성. 너 그게 엄마한테 할 소리야? 내가 누구 때문에 거기에 갔는데!”
[엄마, 그만 쉬세요. 나중에 통화해요.]
“지성아, 소명이한테 지금이라도 빌어.”
[끊을게요.]
지성은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 여사는 지성의 행동에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지성아, 너 어쩌려고 그러니?’
정 여사는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
전화를 끊은 지성은 소파에 앉아 정 여사가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소명이 남자 생겼니?]
[네 짝은 소명이야. 어디 그런 애가 흔하니?]
“하아…….”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양손을 머리에 댄 채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그만 생각하자. 이미 끝이야.’
자신을 계속 다독였지만, 끊임없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옆집 남자라면 대표? 그 새끼?’
지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여자였던 소명이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이 이렇게 괴로울 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역겨웠다.
도대체 자신의 마음이 왜 이러는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자신은 소명을 냉정하게 버렸지만, 소명이 자신을 못 잊고 그리워하길 바랐다.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가 소명에 따져 묻고 싶었다.
대표와 무슨 사이냐고?
지성이 한참을 괴로워하고 있는데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라희가 지성을 바라보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왜 머리를 쥐어뜯고 있어?”
“어? 아……아니야.”
“오빠?”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올게.”
“왜? 무슨 일인데?”
지성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라희에게 보이기 싫어 밖으로 나와 버렸다.
갑자기 밖으로 나간 지성이 이상하게 생각된 라희는 지성이 나간 현관문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야? 대체. 기분 더러운 건 난데…….”
라희는 이상하게 예감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소명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에서 아까 도하가 자신에게 한 행동이 하나하나 생각이 나서 잠을 쉽게 들지 못했다.
그를 생각하면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올라갔다.
소명은 살짝 미소 지으며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좋은 사람이야. 정말 좋은…….”
그때 갑자기 소명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소명은 늦은 밤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놀라 발신인을 먼저 확인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지성이었다.
소명은 지성의 전화를 보고 직감했다. 아까 정 여사가 다녀간 뒤 또 자신에게 따지려고 전화를 건 게 분명했다.
소명은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뒤집어서 소리가 나지 않게 만든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자신에게 전화하는 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우린 끝난 사이인데…….’
가끔 지성의 생각이 날 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왔다.
지성은 그녀에게 있어 아픔이었고 괴로움이었다.
지성의 전화로 다시 기분이 안 좋아진 소명은 숨을 크게 쉬며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했다.
소명이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 때 다시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소명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지성이었다. 소명은 화가 나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고는 심호흡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소명아…….]
수화기에서 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에게 악담을 퍼부을 줄 알았는데 지성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술 마셨어?”
[아니.]
“우리 이혼한 사이야. 내가 이 전화 받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앞으로 전화 하지 마. 끊는…….”
[소명아, 누구야?]
“뭐?”
[너 남자 생겼니?]
수화기 너머에선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안지성! 너 진짜 끝까지 추하다. 이게 무슨, 정말. 진짜 지친다.”
[그 새끼 누구야? 차 대표야?]
“내가 차 대표랑 만나든 말든 이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야, 너 나랑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너 끝까지 이럴래?”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넌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구나!”
[나 이기적인 새끼인 거 알겠는데…….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네가 나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 아니지? 너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잖아. 내 관심 끌려고. 그런 거면 조금은 성공한 거 같다. 나 가슴이 너무 아프거든. 지금.]
소명은 사이코패스 같은 지성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성이 옆에 있었다면 한 대 후려갈기고 싶어질 정도였다.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지성에게 소리쳤다.
“나 대표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