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사랑에 빠져버렸다.
(24/101)
제24화 사랑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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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사랑에 빠져버렸다.
2022.09.22.
소명은 지성에게 버럭 소리를 지른 후에 통화 종료 버튼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하아, 어쩌자고.’
지성의 징징거림과 이기주의에 치가 떨려 자신도 모르게 도하를 이용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젠 끝이야. 너 같은 인간이랑.’
소명은 머리가 복잡해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
소명이 그렇게 전화를 끊어 버리자 지성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소명아,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한편 지성이 한참을 오질 않자 라희는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 오피스텔을 나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오피스텔 옆쪽에 멀찌감치 떨어져 지성은 통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화하는 지성의 표정이 몹시 안 좋아 보여 라희는 불길한 호기심이 일었다.
지성에게 걸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서 그의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그때 지성의 전화가 끊겼는지 지성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구겨지고 심지어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때 라희와 눈이 딱 마주친 지성은 놀란 눈빛으로 라희를 바라보았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라희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지성은 억지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엄마야.”
“오빠? 어머니?”
라희는 어머니란 말을 들으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얼마나 자신을 싫어하면 이렇게 몰래 지성이 눈치를 보며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왔는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파졌다.
라희는 기분이 나빠서 툴툴거리며 지성에게 말했다.
“어머니 또 나 싫으시대?”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켜뜨며 지성을 째려보았다.
“아니……. 나 너무 피곤하다. 들어가자.”
라희는 성의 없는 지성의 행동이 짜증이 났다.
“오빠?”
“나 진짜 오늘 너무 힘들다. 내일 얘기하자.”
“…….”
라희는 지성이 점점 자신을 멀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한 건 자신인데 지성이 왜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성은 자신을 위로하며 감싸 주어야 하는데……. 그게 당연한 일인데.
라희는 갑자기 슬픈 생각과 함께 외로움이 훅 밀려왔다.
일 분 일 초도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다. 라희는 그런 여자였다.
라희는 지성이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한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오빠, 얘기 좀 해.”
라희가 먼저 걸어가는 지성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생전 보지 못한 무서운 눈으로 지성이 라희를 노려보며 말했다.
“피곤하다고 했지! 너 정말 지겹게 행동할래?”
“뭐?”
지성의 못된 말투에 라희가 놀란 사이, 지성은 라희를 두고 오피스텔 안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허!”
라희는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오피스텔로 들어온 라희는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지성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누워 있었다.
라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가 주방으로 가 지성이 아끼는 와인을 꺼냈다.
오프너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싱크대 서랍을 열었다.
다행히 오프너가 눈에 띄어 얼른 잡아든 후에 코르크 마개에 오프너를 찔러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화가 나니 손에 힘이 잘 들어갔다.
코르크 마개를 힘주어 퍽 하고 빼내고 와인 잔에 와인을 가득 따랐다.
‘나 채라희가 이 꼴을 당하다니…….’
라희는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았다.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그가 변한 건지.
지성과 잘 해보려고만 하면 자꾸만 일이 꼬이는 것 같아 답답해졌다.
그녀의 옆엔 어느새 빈 와인 병이 보였고 그녀의 눈빛은 흐리멍덩해져 있었다.
그때 라희의 핸드폰 진동이 드르륵 소리를 냈다.
라희는 눈을 크게 뜨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재윤이?’
라희는 잠시 망설이더니 주변 눈치를 보고 전화를 받았다.
[라희야.]
재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라희는 눈물이 핑 돌았다. 갑자기 재윤이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재윤이는 한 번도 나한테 이런 적 없었는데…….’
“흑.”
수화기 너머로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울어?]
라희는 술기운이 돌아 약간 어지러운 상태로 말을 이어갔다.
“아……. 아니야. 재윤아, 나 없어도 잘 지내. 그동안 너무 미안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라희야? 말해봐. 무슨 일이야? 그 자식이 너 울린 거야? 너 뭔 일 있지?]
“아니야. 나 와인 많이 마셨는지 너무 취했나 봐. 끊어.”
라희는 전화를 끊고 소파로 가서 누웠다. 술기운이 일어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속상한 맘에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
라희와 전화를 끊은 재윤은 이대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차 키를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재윤은 라희의 집 쪽을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라희가 왜 그렇게 힘든지 그녀가 아프면 자신도 아팠다. 그는 액셀에 얹은 발에 힘을 주었다. 그는 라희를 보기 위해 미친 듯 달려갔다.
라희의 집 앞에 도착한 재윤은 그녀의 오피스텔 앞에서 망설이며 서 있었다.
그녀에게 조심스레 전화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그녀가 사는 집의 창문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렇게 나 버리고 갔으면 잘 살아야지. 바보같이.
******
소명은 이른 아침부터 샤워하고 작업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니 문 앞에 벌써 도하가 서 있었다.
그는 소명을 보자마자 환하게 이를 다 드러내며 웃어 주었다.
그의 미소를 본 소명은 밤새 어두웠던 기분이 자신도 모르게 좋아졌다. 그가 웃는 게 좋았고 그가 행복해 보이는 게 기뻤다.
소명도 그를 보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웃는 소명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명 씨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마음이 자꾸 요란하게 요동을 해댔다. 그는 자신이 소명을 좋아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이렇게 설레도 되는 걸까? 그녀와 함께 자신의 베란다 정원을 가드닝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근육들이 찌릿찌릿했다.
그녀 옆에만 있어도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뛰다 못해 발광하는 것처럼 그녀가 좋았다. 분명했다. 도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도하는 그녀와 약속 시간 전부터 원래도 깨끗한 집이었지만 소명에게 잘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청소했다.
그는 어젯밤에는 그녀가 온다는 행복감에 쉽게 잠을 자지 못했다.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정신이 말짱할 수 있는 걸까?
도하는 그에게 닥친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소명은 도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 왜 나오셨어요? 제가 벨 누르면 되는데.”
도하는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마중 나온 거예요.”
소명은 그런 도하가 귀여워서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웃었다.
“자, 들어오세요.”
오늘따라 도하의 기분이 좋아 보여서 소명도 기분이 좋았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간 집은 최고급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거기다가 엄청나게 깔끔해 보였다.
“와, 같은 구조인데도 도하 씨 집 너무 좋네요. 인테리어 멋있어요.”
그녀의 칭찬에 도하가 싱긋 웃었다.
소명은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도하의 베란다 정원을 눈으로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와, 굳이 제가 안 도와 드려도 너무 멋진데요.”
“아니에요. 소명 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소명은 천천히 도하의 베란다 정원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녀의 집중하는 옆모습에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소명의 눈동자는 힘이 있었고 오늘따라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녀의 모습을 한참 동안 이렇게 바라만 봐도 좋았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도하를 쳐다보는 소명 때문에 도하는 깜짝 놀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놀란 도하의 표정을 보고 소명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도하 씨, 무슨 생각 했어요?”
도하는 속으로 말했다.
‘소명 씨 생각이요. 소명 씨가 너무 예쁘다는 생각.’
도하는 이내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너무 보잘것없죠?”
“무슨 소리예요. 너무 잘 가꿔서 다 파릇파릇해요. 이 아이들은 좋겠어요. 도하 씨 같은 주인을 만나서.”
소명은 도하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도하는 이제 소명의 얼굴만 봐도 심장이 쿵쿵댔다.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도하도 소명을 보며 미소 지었다.
“도하 씨, 식물들은 햇볕이랑 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습도도 진짜 중요하거든요.”
“아……. 네.”
“습도 체크해주시면 아이들이 훨씬 잘 자랄 거예요.”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고맙긴요. 그리고 어제 산 화분 분갈이랑 분갈이할 아이들이 보이니 제가 좀 해드릴게요.”
“아! 분갈이 하면 많이 시들거나 죽어서. 자신이 없었어요.”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잘 보세요. 어렵지 않아요.”
“네.”
도하는 소명과 나란히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화분 분갈이를 시작했다.
소명이 새 화분을 가져와 거름망을 깔고 그 위에 마사토를 부었다.
그리고 화초를 꺼내고 화분 안에 넣은 다음 배양토를 넣고 화분의 흙을 손으로 다듬는데 소명의 손과 도하의 손끝이 부딪쳤다. 두 사람은 놀라 얼른 손을 뺐다.
소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띤 채 열심히 분갈이했다.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도하는 소명의 얼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명이 화분의 위치와 습도를 맞춰주고 분갈이를 해줘서인지 도하의 베란다 정원은 오늘따라 더 빛이 났다.
“고마워요.”
“뭘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소명이 일어서려 하자 도하가 소명을 바라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소명 씨?”
“네?”
“배 안 고파요?”
“조금.”
“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
“어…….”
“먹어요. 밥. 나랑.”
소명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하는 날아갈 듯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실 배가 조금 고프긴 해요.”
소명은 쑥스럽다는 듯 귀엽게 웃었다.
도하는 이 순간이 꿈만 같았다. 그녀와 단둘이 가드닝을 하고 소명이 자신을 바라봐 준다는 사실이.
함께 웃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게 생각되었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는 시선을 도저히 거두기 어려웠다. 자꾸만 그녀를 쳐다보고 싶었다.
그의 뜨거운 시선에 그녀도 그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이 어색했는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집밥.”
“네?”
“집에서 먹는 밥. 엄마가 해 주는 밥 같은 거요.”
“어?”
그녀의 말을 들은 도하는 잠시 망설였다.
“집밥을 하는 곳을 제가 잘 몰라서……. 아 그럼 한정식집으로 가실래요?”
그를 보고 소명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집밥처럼 맛있는 식당 알아요.”
“그래요?”
“도하 씨도 분명 좋아할 것 같아요.”
“네.”
“저 손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해서 조금 이따 만나요.”
“네. 한 20분 정도 있다가 볼래요?”
“네. 그래요.”
소명이 일어나서 현관을 나갈 때까지 도하의 눈은 온통 그녀를 쫓고 있었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욕실로 가서 빠르게 샤워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감정인가?
그녀를 보면 가슴이 기분 좋게 뛰어댔다. 자기 심장이 그녀를 향해 반응한다는 사실이 그를 설레게 했다.
그의 갈라진 근육들 사이로 물줄기가 그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