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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내가 다 치료해 줄 거야 (26/101)


제26화 내가 다 치료해 줄 거야
2022.09.29.


소명은 자기 집 앞에 지성이 와 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성을 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때 도하가 소명의 앞으로 걸어와 지성의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도하의 행동에 화가 치민 지성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비켜.”

지성은 다짜고짜 반말로 도하에 소리치며 윽박질렀다.

도하 역시 차갑고 무서운 표정으로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지성의 키가 180센티미터인데도 도하보다 작았다. 도하는 지성을 내려다보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


“비켜야 할 사람은 당신 같은데?”

“뭐라고?”

지성은 너무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씩씩거리며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명아, 잠깐만 얘기 좀 하자. 잠깐이면 돼.”

소명은 지성을 노려보며 도하의 등 뒤에 서서 말했다.


“돌아가. 당신하고 할 말 없어.”

“너 진짜야? 이 새끼랑 커플 티 입고 대체 어디를 갔다 온 거야?”

“정말. 넌 끝까지 나한테 안 좋은 기억으로 남는구나. 나 이러는 네가 너무 지겨워. 우리 끝난 사이야. 이혼했다고. 내가 남자 만나는 건 안 되고……. 너는 나 속이고 바람피운 그 여자랑은 사랑이니? 더 이상 너랑 말도 섞고 싶지 않아. 가. 가버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소명의 독설에도 지성은 아랑곳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소명아, 너 이 사람이랑 어디까지 갔어? 설마?”

그 말을 하는 지성의 눈동자가 한없이 흔들렸다.

지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하가 무서운 얼굴로 지성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갑자기 멱살잡이를 당한 지성은 숨이 막혀 얼굴이 새빨개지며 캑캑댔다.


“빨리 꺼져. 너같이 한심한 인간한테 소명 씨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진짜 고맙다. 소명 씨 옆에서 너 스스로 떨어져 나가줘서.”

“이거 놔. 안 놔.”

지성이 캑캑거리자 도하는 인상을 찌푸리다 지성의 멱살을 놓았다.


“대표라는 인간이 지금 남의 부인이나 넘보고. 내가 가만있을 것 같아. 상부에 다 보고할 거야.”

“보고하기 전에 당신이랑 당신 내연녀 자르는 데 일 분도 안 걸려.”

“뭐?”

“사내 불륜이 얼마나 우리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는지 잘 알 텐데.”

“허……. 나 참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당장 꺼지지 않으면 바로 실행할 거야. 자비란 없어.”

지성은 도하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과 또 소명을 향한 그의 표정이 진심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성을 잃고 눈에 독기를 가득 품은 채 도하를 죽이기라도 할 듯 씩씩거렸다.


“소명아, 나랑 얘기하자. 잠깐이면 돼. 어? 부탁이야.”

지성은 분이 주체 안 돼서 씩씩거리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소명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바로 도하가 지성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 지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비란 없다고 했을 텐데.”

“우리 소명이 순진한 애야. 당신 같은 사람이 가지고 놀 사람 아니라고. 소명아, 이 사람이 너랑 결혼이라도 할 것 같아? 넌 이혼녀라고. 이 사람은 재벌 3세고. 너 어쩌자고 그러니? 난 네가 너무 걱정된다고. 너무 착해 빠져서.”

“내가 착해 빠져서 넌 나한테 그랬니? 도하 씨 죄송해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소명이 얼른 집으로 들어가려고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지성이 그녀 쪽으로 몸을 틀며 걸어가려고 했다.

그때 도하가 지성의 팔목을 잡았다.


“어서 들어가요. 이 자식 나한테 맡기고.”

소명은 슬픈 표정으로 도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도하는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졌다.


“놔, 안 놔!”

지성은 도하가 잡은 손을 뿌리치려 애를 썼지만, 도하의 힘이 너무 세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소명이 돌아간 후에야 도하는 지성의 팔목을 놓았다.

지성은 화가 나 도하를 노려보다가 도하에게 주먹을 날렸다.

도하는 그의 주먹을 잽싸게 피하고 난 뒤 바로 지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도하의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으로 쓰려졌다.

지성은 너무 화가 나서 일어서서 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사람을 쳐? 네가 뭔데? 어?”

“꺼져.”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나 고소할 거야.”

“할 테면 해봐. 날 먼저 공격한 건 당신이야. 난 내 몸을 보호한 것뿐이니까.”

“두고 봐. 너 우리 소명이한테서 떨어져. 네가 갖고 놀아도 되는 그런 여자 아니야.”

“나 소명 씨 진심으로 좋아해. 너 때문에 입은 상처 내가 다 치료해 줄 거야.”

“소명이는 안 돼.”

“너야말로 당장 꺼져.”

지성은 뭔가 결심한 듯 무서운 눈으로 도하를 노려보았다. 도하는 그런 지성의 표정이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하는 소명이 너무 걱정돼서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소명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아마도 지성의 전화를 받기 싫어 그런 것 같았다. 도하는 한참을 안절부절못하고 거실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조바심을 냈다.

소명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을 보며 짓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댔다.

그녀의 슬픈 표정을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왔다.

도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라. 제발.’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소명은 전화기는 끝내 켜지지 않았다.

********

한편 씩씩거리며 엘리베이터에 탄 지성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볼 부분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 피가 새어 나왔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정말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나름대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 대열에 합류할 만큼 일에 대해서 능력도 인정받았었다.

그의 집안 또한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부유한 편에 속했다.

항상 좋은 것 뛰어난 것은 당연히 자신이 가져야 하는 것이었고, 그걸 갖는 건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삼십사 년 동안 힘든 일이나 아픔 없이 편하게 살았다.

하지만 요새는 왜 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지옥과 같았다.

라희와 사이도 예전 같지 않은데 그녀에게 잘해줘도 모자랄 판에 소명에게 집착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지질함을 버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소명이 차 대표와 같이 있는 꼴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소명이 자신을 평생 못 잊고 그리워하길 바랐던 것일까?

지성은 자신의 마음이 왜 이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는지 아무리 이성적으로 자신을 타일러 봐도 잘 되지를 않았다.

지성은 예쁘고 자신만 바라봐주던 착한 부인을 버린 벌을 달게 받고 있는 건지 이혼해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남들이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행복해하는 일요일에 그는 어두운 얼굴로 라희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라희가 많이 화가 났을 거로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짧은 한숨을 몰아쉬며 라희의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자 현관 앞에 지성이 가져다 놓은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지성은 그 캐리어를 보고 놀라 얼른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라희야, 라희야.”

하지만 라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성은 급한 맘에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라희야, 어디 갔어?”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줄래.]

“라희야, 어제는 내가 미안해.”

[나 더 이상 오빠랑 못 만나겠어. 오빠 사랑했다는 이유로 내가 받는 상처가 너무 크다.]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엄마도 너무 힘들고 오빠도 변한 것 같고. 더 이상 우리 만날 필요 없잖아.]

“라희야, 난 너 때문에 모든 걸 버렸어.”

[나 때문이라고?]

“아……아니. 라희야, 우선 들어와. 얘기 좀 하자.”

[당분간만이라도 떨어져 지내.]

“라희야, 왜 그래. 안 그래도 힘든데.”

[오빤 언제나 오빠 생각만 하더라! 나 힘든 건?]

“그래, 알았어. 며칠 생각 푹 쉬고 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 집에서 나가 줘.]

“라희야…….”

[내가 전화할 때까지 전화하지 마.]

“그래. 알았어.”

지성은 라희와 통화를 끊고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캐리어를 끌고 라희의 집에서 빠져나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본가로 차를 몰았다.

******

아무 연락 없이 갑자기 집으로 들어온 지성을 보고 놀란 정 여사가 뛰쳐나왔다.

그녀는 지성의 캐리어와 그의 얼굴의 상처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성아, 너 얼굴이 왜 그래?”

정 여사는 지성에게로 달려가 그의 얼굴을 살폈다.


“아,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멍들었잖아. 당장 병원 가자. 어떻게 된 거야? 누구랑 싸우기라도 한 거야?”

정 여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엄마, 저 좀 들어가서 누울게요.”

“지성아, 너 그 가방은 뭐니? 걔랑 끝난 거야?”

정 여사는 눈이 동그래지며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지성아, 제발 너 왜 이러니. 응?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명이만한 애는 없어. 나한테 화도 났겠지. 그래. 힘들어서 그랬을 거야.”

“엄마, 소명이랑 끝났다니까.”

“소명이랑 끝나도 그 애랑은 안 돼.”

“아……. 그만. 그만 저 들어가요.”

“지성아, 지성아.”

지성은 예전에 쓰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하아.”

지성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라희도 소명도 그의 곁에 없었다. 지성은 혼란스러운 이 감정이 주체가 안 돼서 자신도 모르게 울컥해졌다.


“흑.”

지성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지성에게 발라줄 연고와 깎은 과일을 들고 온 정 여사는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정 여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 여사는 지성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 채 쟁반을 다시 들고 아래층으로 걸어 내려왔다.

******

한편 라희는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가란다고 진짜 갔네? 매달리지도 않고?”

라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는 비틀대며 소파에 백을 던져 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털썩 엎어졌다.

그때 라희는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성은 라희에게 전화조차 걸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한 라희는 지성의 행동 때문에 섭섭하고 화가 났다.

라희는 지성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취기가 있는 데도 고민이 많아서인지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라희는 잠시 누워 있다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아, 진짜.”

이런 식으로 지속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너무 답답하기만 했다.

제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지성의 어머니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정 여사를 자기 시어머니로 인정하고 사는 일은 앞으로 라희에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라희는 이렇게 새로 만들어지는 관계가 싫고 부담스러웠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그렇게 버티고 있었던 지성의 전 부인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라희는 거실로 나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때 안방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라희는 지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뛰어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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