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그 여자가 유부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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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그 여자가 유부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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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그 여자가 유부녀였어?
2022.10.06.
소명은 도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와 행복해도 되는지, 그의 앞길을 막는 건 아닌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를 위해서는 그의 마음을 빨리 접게 하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너무 좋은 사람이야.’
소명은 더 이상 도하를 힘들게 하기도, 그에게 상처를 주기도 싫었다.
그녀는 마음을 단호히 먹고 도하를 쳐다보았다.
그가 소명을 바라보는 표정은 간절한 진심을 담고 있었다.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간신히 말을 꺼냈다.
“도하 씨…….”
“안 된다고만 하지 마요.”
“그럴 수 있어요. 우린 같은 고통을 겪었으니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제가 불쌍해서 마음이 간 걸 수도 있어요.”
“소명 씨……. 왜 자꾸 그런 말을 해요?”
“도하 씨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분명 저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소명 씨, 힘들게 안 할 자신 있어요.”
“도하 씨, 전 도하 씨 안 좋아해요.”
소명은 자신이 그 말을 하면 그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알면서도 마음을 굳게 먹었다.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쉬며 눈이 따끔거렸다.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꾹 참아냈다. 그녀는 그에게 상처를 주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자꾸만 그가 자신에게 해준 고마웠던 행동들이 생각났다.
정말 좋은 사람을 이렇게 놓쳐버린다면 다시 도하 같은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에 그는 너무나 벅찬 사람이었다. 소명은 자신의 그릇에 그를 다 담아낼 자신이 없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도 많은데 자꾸만 자기 일에 그를 끌어들인다는 것도 그에게 못 할 짓인 것만 같았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소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도하를 바라보다 현관문을 열려고 손을 뻗자 갑자기 도하가 그녀의 팔목을 살며시 붙잡았다.
그는 강렬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이거 놔요.”
소명은 그의 팔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이래도 소명 씨를 동정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는 그녀의 손바닥을 그의 단단한 가슴에 갖다 대었다.
소명은 도하의 행동에 너무 놀라 손바닥을 빼려 하다 그의 요란한 심장박동에 놀라 잠시 말을 잊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선명히 들리는 그의 빠른 심장박동 소리.
쿵쿵.
소명은 너무 놀라 손을 얼른 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기다릴게요. 나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고 그래도 아니면 그땐 더 이상 소명 씨 귀찮게 안 할게요.”
“도하 씨, 전…….”
“들어가서 쉬어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한 겁니다.”
“도하 씨한테 너무 미안해서……. 전 도하 씨 좋아할 자격이 없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소명 씨. 소명 씨는 나한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소명은 그런 도하를 말없이 바라보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하는 그녀가 들어가고 난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 버려서 그녀가 얼마나 놀랐고 부담스러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오늘 고백하지 않으면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갈 것만 같았다.
소명이 자신의 옆에 없으면 이제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이미 그녀는 그의 맘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도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마음을 더 굳세게 먹었다.
그녀를 놓치고 평생 후회하긴 싫었다.
이제는 새로 찾아올 사랑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는 짓을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역시 소명과의 사랑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맘에 들어온 이상 그는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아픈 상처를 자신의 품으로 감싸 안아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에게 찾아가 다시 문을 두드리고 싶었다. 그녀가 집 밖으로 나오면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가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그는 그녀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
집 안으로 들어온 소명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를 거부해도 그는 정말 너무 매력적인 남자였다.
자꾸만 그에게 빠져들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아까도 확실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들어와야 했었는데.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메마른 그녀의 가슴에도 자꾸만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자신의 감정을 꾹꾹 내리눌렀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소명아, 정신 차리자.’
그녀가 좋아하는 그를 위해서.
******
지성은 정 여사의 집에서 출근 준비를 했다.
오늘따라 더 자신의 신세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더군다나 얼굴의 멍이 더 진해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자 전용 파운데이션을 살짝 발라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 옅어진 멍 자국에 만족해야 했다.
그는 회사 동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벌써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늘 정 여사는 말없이 지성의 옆에 서서 아들의 출근 준비를 돕고 있었다.
지성의 얼굴이 너무 안쓰러워 저절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인상을 쓰고 있는 정 여사의 얼굴을 보며 지성이 말했다.
“엄마,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얼굴이 이렇게 됐는데. 우리 잘생긴 지성이 얼굴이…….”
“며칠 지나면 없어져.”
“너 진짜 어쩌다 그런 거야? 응? 착해 빠져서. 그런 걸 가만 놔둬. 경찰이 왜 있어. 이런 거신고 해서 아주 콩밥을 먹여야지.”
“엄마, 진정하세요.”
“속상하니까 그렇지. 소명이랑 살 때는 아무 탈 없이 잘만 지내더니. 이게 도대체 뭔 꼴이니?”
“하아, 좀. 소명이 얘기 그만해.”
“이참에 그 여자랑 헤어지고 소명이 다시 만나보자. 아직 이혼 확정된 것도 아닌데.”
지성은 정 여사의 말을 더 이상 듣기 싫어서 얼른 넥타이를 매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정 여사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성이가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
지성은 운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성질 같아서는 차도하를 완전히 망가트리고 싶었다.
어제 도하에게 당한 굴욕과 수치를 생각하면 당장 그에게 달려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왜 그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소명이 같은 이혼녀를 좋아한다고 설치는지. 왜 하필 차도하인지. 차도하는 남자인 자신이 봐도 너무 멋진 인간이었다.
섣불리 그를 공격했다간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성은 차도하가 너무 싫었다. 소명이 다정한 눈빛을 하며 그를 바라본다고 상상하니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미소 짓던 그의 아내였다.
그런 소명이가 자신을 보며 치를 떠는 표정을 짓는 것이 지성을 좌절케 했다.
그를 바라보며 사랑스럽게 웃고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했던 자기 아내였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희마저 그의 곁에 없었다. 라희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소명이 일이 터지는 바람에 라희를 신경을 못 썼다. 그녀가 화날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지성은 곰곰이 생각했다.
라희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지성은 차를 지하 주차장에 세우고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라희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성은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성은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렸다.
곧 엘리베이터가 왔고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어떤 여자가 들어왔는데 이상하리만큼 낯이 익었다.
지성은 그녀를 어디서 봤나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문득 그녀를 보았던 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소명에게 이혼 서류를 가져다줄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였다.
엘리베이터에 탄 서빈은 한쪽 눈가에 멍이 든 남자가 자꾸만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성질 같아서는 바로 뭐라고 주의를 주었을 텐데 이곳은 차도하의 회사이기에 서빈은 불쾌하지만 참기로 작정했다.
서빈은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그곳은 회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지성은 이 여자가 뭔가 도하와 연관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건 지성에게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안녕하세요.”
서빈은 귀찮다는 듯이 작고 성의 없게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러자 지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보며 말을 했다.
“저희 저번에 한 번 본 적 있는데 기억나시나요?”
“네? 언제요.”
“우리 집 엘리베이터에서요.”
“네?"
“차도하이사님이 저희 옆집 사시거든요.”
“아! 네.”
서빈은 그때의 일이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기억해내려고 애를 썼다.
“여기 회사 다니세요?”
서빈은 궁금한 표정으로 지성에게 물었다.
“네. 설계팀장 안지성이라고 합니다.”
“네. 전 차도하이사 약혼녀 이서빈입니다.”
서빈도 지성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지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표님 약혼녀요?”
“네.”
서빈은 왜 이 남자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궁금한 건 도저히 참지 못하는 서빈이 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표정이?”
“아……. 이런 말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제 부인이랑 제가 지금 이혼을 했어요.”
서빈은 이 남자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왜 지성과 이런 대화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결국 서빈은 참지 못하고 쌀쌀맞은 어투로 지성을 쏘아보며 물었다.
“아니, 왜 그런 소리를 하세요.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상관있죠. 내 전 부인이 대표님이랑 만나고 있으니까.”
“뭐라고요?”
서빈은 너무 놀라 입을 두 손으로 가로막았다.
“말도 안 돼!!”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지성이 내리면서 서빈을 보며 인사를 했다.
“저는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말씀드린 거예요.”
서빈은 지금 지성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 여자가 이혼녀였어?”
사실 서빈은 큰맘을 먹고 차 회장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도하의 여자에 대해 얘기하려던 참이었다. 차 회장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서빈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고 회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회장실 문을 열자 서빈을 본 비서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
“어, 아가씨. 어서 오십시오. 안 그래도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으며 서빈은 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서빈을 본 차 회장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서빈아, 어서 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그럼, 나는 좋지. 도하 녀석이 속만 안 썩이면.”
차 회장은 서빈을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아 참, 할 말이라는 게 뭐니?”
차 회장의 말을 들은 서빈은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흑……. 그게.”
“아니, 서빈아? 왜 그래?”
“오빠가 다른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이혼녀래요.”
“뭐? 이놈의 자식을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