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그의 직진에는 브레이크란 없다.
(29/101)
제29화 그의 직진에는 브레이크란 없다.
(29/101)
제29화 그의 직진에는 브레이크란 없다.
2022.10.10.
서빈은 차 회장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그의 눈치를 봤다.
차 회장은 굉장한 충격을 받은 듯 먼 곳을 응시하며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질러댔다.
그는 숨을 크게 쉬며 고조된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아끼는 외동아들이 이혼녀와 연애하고 있다니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서빈아, 넌 어떻게 알게 된 거니?”
차 회장은 서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번에 오빠 보러 집에 갔는데 오빠가 그 여자랑 같이 들어오는 걸 봤어요.”
“아니, 왜 그때 말 안 한 거야?”
“오빠 입장도 있고. 회장님이 아시면 오빠가 곤란할 것 같아서. 계속 고민하다가.”
“아이고, 서빈이 너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얼마나 맘고생을 했어. 참.”
차 회장은 서빈이 너무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서빈에게 자기 아들이 못 볼 꼴을 보인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는 지금 당장 도하를 불러들여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차 회장은 서빈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빈아, 미안하다. 우리 도하 용서해 줄 수는 없겠지?”
차 회장은 서빈을 놓친 것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서빈과 도하의 혼사가 성사되면 도하의 앞길이 창창할 뿐만 아니라 SS 물산이 한 발 더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서빈은 고개를 숙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차 회장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회장님, 저는 오빠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래, 알지. 실망도 컸겠구나. 나쁜 자식.”
“오빠만 돌아오면 전 용서할 수 있어요.”
“서빈아…….”
차 회장은 서빈을 바라보며 감동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반드시 도하 돌려놓으마. 도하 짝은 너밖에 없어.”
“회장님. 그런데 오빠가 저를 미워해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오빠가 저를 오해해서.”
“오해?”
“제가 친구랑 있는 걸 보고 남자 친구가 있는 줄 아는 것 같아요.”
“뭐. 그런 걸 가지고. 사정 얘기하면 다 오해는 풀리는 거지. 서빈아, 도하랑 내가 얘기 잘 해볼 테니 너는 집에 가서 좀 쉬어. 많이 놀랐지?”
“아니에요. 끝까지 얘기 안 하려 했는데……. 오빠가 저 더 미워할까 봐.”
“네가 얘기 한 건 절대 말 안 할 거니까 염려 말아.”
“회장님. 감사해요.”
서빈은 차 회장과 대화를 나눌 때면 요조숙녀가 따로 없었다. 그녀의 평상시 말투에 배어 있는 거만함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예쁘고 착한 심성에 넓은 이해심까지 갖춘 서빈이 차 회장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서빈이 도하의 짝으로 평생을 함께한다면 아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일어나서 차 회장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비서실장에게도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조심스럽고 차분했던 걸음걸이가 빠르고 경쾌하게 바뀌었다.
걸어가면서 그녀의 입에서는 아주 미세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이혼녀 주제에 나한테 훈계질을 해? 어디 두고 보자.’
서빈은 뭔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SS 물산 차 회장이 과거가 있는 며느리를 받아들인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서빈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서빈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한 번 한눈팔았으니까 이번 한 번만 봐줄게. 차도하. 다음에는 어림도 없어.”
******
서빈이 나가자마자 차 회장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지고 무섭게 돌변했다.
차 회장은 회장실로 들어온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차도하대표이사 당장 불러들여. 당장.”
“네. 회장님.”
비서실장은 깍듯하게 목례하고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지난 후 도하가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 와?”
차 회장은 도하를 무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일을 마무리하고 오느라.”
“너 지금 제정신이야?”
“아버지. 무슨?”
“너 이혼녀 만나냐?”
도하는 차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네.”
“어이구, 이놈의 새끼를.”
차 회장은 너무 흥분하고 화가 나 뒷골이 당기는지 신음을 내며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차 회장의 행동에 놀란 도하는 차 회장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놔.”
차 회장은 도하가 못마땅해 계속 자기 아들을 노려보았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도하는 무표정으로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너 지금 제정신이야? 당장 끝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뭐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지금? 넌 SS 물산의 얼굴이야.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게냐. 도하야. 정신 차리고 얼른 끝내. 내가 나서기 전에.”
차 회장의 협박에 도하는 아버지를 무섭게 쳐다보았다.
“아니, 이 녀석이 지금 아비 노려보는 거냐?”
“아버지. 결혼을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할 겁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안 돼.”
“아버지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안 된다는 거세요?”
“난 네 이혼녀 애인 따위는 만날 생각도 없다.”
“아버지…….”
“그런 줄 알아. 당장 이사해.”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렇게는 못 해요.”
도하는 살짝 묵례하고 회장실을 나와 버렸다.
차 회장은 도하의 행동에 놀라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도하가 마음에 든 여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무서운 예감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차 회장은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도하는 회장실을 빠져나오면서 생각에 빠졌다.
‘아버지가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되신 거지?’
그는 앞으로의 일이 너무나 막막해졌다.
소명이 자신 때문에 피해를 보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알아버렸으니 일이 자꾸만 꼬여 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고 점점 초조해졌다.
도하의 얼굴에 그늘이 가득했다.
도하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반드시 소명을 행복하게 해주리라 다짐했다.
차 회장은 비서실장을 불러 말했다.
“도하가 만난다는 여자에 대해 좀 알아봐.”
“네. 회장님.”
******
도하는 대표실로 들어와 책상에 앉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때 이 비서가 대표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기획실에서 온 서류 가져왔습니다.”
“예산서?”
“네.”
“아까 회장실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도하는 서류를 훑어보다가 이 비서를 바라보았다.
“저……. 제가 회장님한테 가기 전에 누가 먼저 아버지 만났나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제가 비서실장님께 여쭈어볼게요.”
“이 비서님.”
“네.”
이 비서가 대표이사실을 나가다 말고 도하를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저……. 아버지 모르시게 부탁드립니다.”
“네.”
이 비서는 대표이사실을 나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하가 한참 서류를 들여다보며 사인하고 있을 때 이 비서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도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이 비서를 쳐다보았다.
“저. 이사님. 서빈 아가씨가 다녀가셨다고 하십니다.”
이 비서의 입에서 서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도하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도하는 언제까지 자신이 서빈의 그림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기 일을 망치는 서빈이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도하는 서류를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서류의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사인을 마친 도하는 벌떡 일어서서 서랍에 있는 차 키를 챙겨서 대표이사실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밖으로 나가는 도하를 보고 이 비서는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표님, 어디 가십니까? 같이 가요.”
“저 스케줄 다 끝났죠? 오늘은 제 차로 퇴근할게요.”
“아니, 그래도.”
그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생각 같아서는 서빈을 만나 따지고 싶었지만, 그녀를 만나면 일은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도하는 화 나는 감정을 꾹 참고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오늘 몇 번이나 소명에게 전화할까 말까 하며 망설였었다.
혹시 그녀가 자신을 부담스러워할까 걱정도 앞섰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직진을 멈출 방법은 없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홍소명 그녀뿐이었다.
******
아파트에 도착한 도하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오늘도 그는 완벽했지만 소명에게 조금이라도 더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큰 키에 멋진 슈트를 입은 그는 헤어스타일도 포마드를 발라서 더 단정해 보였다.
도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소명의 집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지금 만난 것도 아닌데 그녀 생각만 하면 심장이 주책없이 요동쳤다.
너무 세게 뛰어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는데도 이 감정, 이 떨림이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그는 현관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초인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손에 힘을 주고 꾹 눌렀다.
초인종의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리자 안에서 소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저예요.”
곧이어 소명의 문이 열리고 소명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하 씨…….”
“놀랐죠? 갑자기 찾아와서.”
“아……. 네. 좀.”
“소명 씨, 보고 싶어서 끝나자마자 달려왔어요.”
그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슈트를 입고 머리를 넘긴 모습이 그녀의 눈에 꽉 담겼다.
너무나 멋있는 모습에 잠시 말도 잊고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이 보고 싶어 뛰어왔다는 이 남자를 보니 소명이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자신을 경멸하는 지성의 눈빛과 다른 이 남자의 따뜻한 눈빛을 보니 그녀의 속에서 자꾸만 무언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를 외면했고 그를 떠나기로 다짐했지만, 막상 찾아온 그를 보자마자 소명은 너무 기뻤다.
“소명 씨? 무슨 생각해요?”
“아……. 아니에요.”
하지만 소명은 애써 자신의 감정을 누르며 도하에게 냉정하게 대하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무슨.”
“보고 싶어서 달려왔다는 둥. 그런 거요.”
소명은 도하에게 미안해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소명 씨, 나 좀 예전처럼 봐주면 안돼요?”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저 이사도 갈 생각이에요.”
“소명 씨 아무리 그래도 내 맘 안 바뀌어요.”
“도하 씨 제가 화를 내야 가시겠어요. 인제 그만 가세요.”
“소명 씨, 저 얼굴 보고 말해 봐요. 진짜 나는 아니에요?”
소명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네.”
도하는 고개를 숙인 소명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소명은 그의 행동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도하는 그녀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맘 아파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도하는 소명의 눈물을 한 손으로 살며시 닦아주었다.
“마음이 말하잖아요.”
“도하 씨!!”
“저 서두르지 않아요. 소명 씨 마음 정해지는 그날까지 기다릴 거예요. 아니 시간이 더 지나도 나한테 온다고만 약속해요.”
“도하 씨 너무 미안해서……. 전 도하 씨 좋아할 자격이 없는데…….”
“소명 씨 때문에 세상이 달라 보여요. 전 소명 씨 조건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소명 씨라는 여자가 좋은 거예요. 저한테 그런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
‘하아,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하의 직진은 거부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달콤해도 너무 달콤했다.
“소명 씨, 그러니까 울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