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0화 이리 와. 안아줄게. (30/101)


제30화 이리 와. 안아줄게.
2022.10.13.


그가 자신을 바라봐 주는 눈빛이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해서 소명은 잠시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눈빛. 그는 이렇게도 따뜻한 눈빛을 가진 남자였다.


“도하 씨…….”

“기다릴 수 있어요. 언제든지. 나 내치지만 말아요.”

도하는 소명의 눈물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우는 모습에 마음이 저려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의 눈에는 오로지 소명만이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명 씨, 옆에 제가 있을 거예요.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젠.”

“저…….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

“이해해요.”

“소명 씨, 잠시 드라이브 어때요?”

“네?”

“기분 좀 전환하고 와요.”

소명은 그가 달콤한 목소리로 하는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아니 거부하기 싫었다.

그녀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지성에게 배신당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 자신의 옆에 있어 준 사람은 도하였다.

그가 있었기에 여태껏 버텼는지도 모른다.

그는 입바른 소리 말로 유혹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말 보다는 행동으로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소명은 그가 믿음직스러웠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손 내밀어주고 있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너무나 따뜻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질 만큼. 이토록 치명적인 매력이 넘치는 남자의 제안은 물리치기가 매우 힘겨웠다.


“자. 어서요.”

도하가 그녀를 바라보며 그의 손을 내밀었다. 소명은 그를 올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 안 돼.’

소명은 뒤늦은 후회를 해 보았지만 이미 그의 손에 자신을 손을 맡긴 뒤였다. 도하는 살짝 웃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맞잡은 그의 손은 따뜻했다. 소명은 도하의 손을 살짝 빼내려 했지만, 도하는 소명의 손을 오히려 더 꽉 잡았다.

마치 그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이.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도하는 자신의 차가 주차된 곳으로 그녀를 에스코트했고 그녀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그녀가 조수석에 앉자 도하는 그녀 쪽으로 다가와 안전띠를 매어주었다.


“고마워요.”

도하는 대답 대신 살짝 그녀를 보며 웃어 보였다.

늘 얼굴에 웃음기 하나 없던 그가 자신만 보면 항상 웃어주었다.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도하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녀는 아프지 않고 힘든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 때문에 그녀가 또다시 힘들어지는 건 결코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소명은 밖의 풍경을 보며 도하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니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어쩌면 그와 함께 있어서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거부하고 밀어 내려 해도 그가 계속 그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차라리 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 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가 자신 때문에 고통받는 건 그녀 또한 보고 싶지 않았다.


“소명 씨?”

소명이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도하가 말했다.


“네?”

“기분은 조금 나아졌어요?”

“네.”

“잠깐 눈 좀 붙여요. 피곤하면.”

“아니. 괜찮아요.”

소명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며칠 고민이 많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소명은 도하의 안정적이고 편안한 운전 솜씨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자신의 차 안에서 잠이 든 소명을 보며 도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반드시 그녀를 지켜내고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한참을 자고 나서야 소명은 살며시 눈을 떴다.

옆자리에서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명은 도하에게 미안해져 얼른 몸을 일으켜 바르게 앉았다.


“어……. 미안해요.”

“잘 잤어요?”

“네. 도하 씨 운전하는데 예의가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만. 근데 여긴 어디예요?”

소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묻자 도하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나갈까요?”

“네.”

도하가 차를 주차한 곳은 강가 옆 버드나무가 핀 공원이었다.

밖에 나와 아름다운 강가의 풍경을 본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경치가 너무 좋아요.”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요. 소명 씨랑 와서 더 좋고요.”

도하가 소명을 보며 말했다.

강 쪽 끝에는 아름다운 산이 보이는 카페에 들어온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셨다. 평일이라 밖에 테이블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힘들 때 가끔 오던 곳이에요.”

“…….”

“서빈이와 그 일이 있고 나서 늘 혼자였어요. 그냥 누구와 말을 섞는다는 자체가 고역이었어요.”

도하의 말에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서 아무도 제 옆에 두지 않았죠. 늘 혼자였어요. 혼자가 편했죠.”

소명은 가만히 도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는 사랑이란 거 못 할 줄 알았어요.”

도하는 소명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소명은 그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버렸다.


“근데 소명 씨 나…… 다시 행복해지고 싶어요.”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소명 씨, 나 많이 참고 있어요. 지금 소명 씨 안고 싶어요.’

그도 피가 끓는 남자였다. 소명과 항상 같이 있고 싶었다. 한시도 그녀와 떨어져 있기 싫었다. 자신의 앞에 이렇게 앉아 있는 소명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소명은 그 예쁜 눈을 반짝거리며 도하에게 말했다.


“저도 도하 씨가 다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그의 넓은 품에 넣어서 꼭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참았다.


“소명 씨랑 같이 행복할 거예요. 저는.”

“네?? 도하 씨……. 저는.”

“하지만 기다릴 거예요. 소명 씨 맘 열릴 때까지.”

“고마워요. 도하 씨.”

소명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


“제가 이런 과분한 대우를 받아도 될까요? 도하 씨가 나 때문에 힘들어지는 거 절대 못 봐요. 도하 씨도…… 도하 씨도…….”

도하는 소명의 맘이 어떤 건 줄 알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예뻤다.


“저한텐 소중한 사람이에요.”

소명의 말을 듣자마자 도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자신의 곁으로 갑자기 다가온 도하를 본 소명은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팔을 뻗어 그녀를 어깨를 살짝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리 와. 안아줄게.”

 

 
소명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의 넓은 품에 안겨 펑펑 울어댔다. 속상해서 우는 것도 아파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고통 끝에 만나 이 남자가 너무 좋아서 이 남자의 품이 너무 따뜻해서 행복해서 너무 기뻐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도하 역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사랑이다.


‘그녀를 너무 사랑해.’

그는 그녀를 안고 눈을 감았다. 이 순간이 오래 기억되도록 온몸에 신경을 집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뭉클함이 그의 눈가를 적셨고 감은 눈 아래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한편 지성은 업무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기고 사무실을 나섰다.

온종일 지성의 얼굴에 든 멍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동료들 때문에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

또 오늘은 반드시 라희를 만나서 해결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아래층 계단을 내려가 라희의 사무실 근처를 지나치며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라희의 책상은 텅텅 비어 있었다. 지성은 실망한 표정으로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이 얼굴이 이렇게 멍든 걸 보면 놀라 달려와 걱정을 했을 텐데.

지성은 질투에 눈이 어두워 라희를 등한시했던 일이 미안하게 생각되었다.

자신이 차도하대표이사의 약혼자에게 소명의 존재를 알려서 소명과 도하의 사이는 오래 가지 못할 거로 생각하니 그에게 맞은 억울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나쁜 새끼.’

지성은 도하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어떻게든 그 자식에게서 소명을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명이 또 남자를 잘못 만나 이용만 당하고 처참하게 버려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혼한 사이지만 그에게 소명은 십 년 동안이나 같이 한 이불을 덮고 산 사람이었다.

자신이 지옥에 갈 사악한 행동을 한 것도 잊은 채, 마치 소명을 지켜주기라도 하는 듯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고 있었다.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끊어지는 걸 보니 라희가 지성을 수신 차단한 것 같았다.

언제까지 이럴 건지 지성은 너무 답답해졌다.

그는 화가 너무 나서 도저히 버티기가 어려웠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전 소명과 자주 가던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여사장이 반가운 얼굴로 지성을 반겼다.


“아이고, 오랜만에 오셨네요. 혼자 오셨어요?”

“네.”

“뭐 드릴까?”

여사장이 소명을 찾는 눈치여서 지성의 기분은 더 꿀꿀해졌다.


‘괜히 여기로 왔나? 소명이 더 생각나네.’

지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혼자 쓸쓸히 앉아 있었다. 어느덧 얼큰하게 취한 지성이 다시 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희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성은 라희가 걱정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른 계산을 마치고 대리기사를 불러 라희의 집 주소를 불러 주었다.

지성에게 주소를 받은 대리기사는 라희의 집을 향해 운전을 시작했고 술기운이 돈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라희의 집 앞에 도착한 지성은 비틀거리며 대리기사에게 차 키를 건네받았다. 지성은 라희를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집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는데 어딘지 많이 눈에 익은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지성과 딱 눈이 마주친 남자는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지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엘리베이터에서 술에 취한 지성과 눈이 딱 마주친 재윤은 너무 놀라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곧 술기운에 라희를 찾아와 그녀를 괴롭히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성에게 한 방 먹이고 싶다가도 라희의 입장을 생각하면 자신이 나설 처지가 되지 못했다.

재윤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꾹꾹 참아내려고 노력했다.

라희의 집 앞에 도착한 지성은 비밀번호를 눌렀다.

비밀번호를 눌렀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라희가 비밀번호를 바꾼 것이 틀림없었다.

지성은 너무 화가 나 라희의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라희야? 문 열어줘. 비밀번호 왜 바꿨어?”

지성은 지치지도 않는지 라희의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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