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내 눈에는 소명 씨밖에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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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내 눈에는 소명 씨밖에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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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내 눈에는 소명 씨밖에 안 보여
2022.10.24.
소명은 놀란 눈으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서빈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도하 씨를 힘들게 해 놓고서 이렇게 뻔뻔하게 또 찾아오다니!
거기다가 자신이 이혼한 것까지 알고 있어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소명의 질문에 서빈은 심술궂은 표정으로 소명을 노려보았다.
“내가 저번에 충분히 설명해줬을 텐데.”
소명은 서빈을 본체만체하며 화분을 조심조심 옮겼다.
서빈은 소명이 하는 행동이 못마땅해서 인상을 확 구겼다.
“내 말 안 들려?”
소명은 상종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에 모른 척하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팔을 뻗었다.
그러자 서빈이 소명 쪽으로 다가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이혼까지 한 몸으로 우리 오빠한테 집적대? 미친 거 아냐?”
“하.”
소명은 오늘 라희와 한바탕하고 와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서빈까지 와서 자신을 들들 볶는다는 느낌에 화가 치밀었다.
소명은 서빈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집적대는 건 당신 같은데?”
“뭐라고?”
“그렇잖아. 도하 씨는 그렇게 싫다고 난리 치는데 굳이 와서는.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오빠랑 헤어져.”
“당신 뭐가 그렇게 당당해? 내가 이혼녀인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지?”
“도하 오빠 위치를 정확히 모르나 본데. 감히 쳐다볼 사람이 아니야. 급이 다르다고! 어디서 우리 오빠를 넘봐.”
“당신도 그렇게 당당한 위치는 못 되는 것 같은데.”
“뭐? 내 위치가 어때서?”
“도하 씨한테 그렇게 상처 줘놓고 뻔뻔하게 찾아와서 사람을 괴롭혀요? 도하 씨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당신이 내가 도하 씨 만나건 말건 상관할 일 아니야. 도하 씨 또다시 힘들게 하는 이런 이상한 짓 했다간 내가 너 가만 안 둬.”
소명은 무거운 목소리로 또박또박 서빈을 향해 한 마디 한마디를 내뱉었다.
서빈은 소명의 눈빛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강단이 보통이 아니었다.
서빈은 순간 잠시 말을 잃었다가 곧 다시 정신을 차렸다.
“가만 안 둔다고? 지금 사람 협박하는 거야? 차 회장님이 다 알고 계셔. 곧 오빠 본가로 들어가게 되고 당신이랑은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날 거야. 어차피 오빠랑 결혼할 사람은 나라고.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일 더 이상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오빠 곁에서 꺼져.”
소명은 이렇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이 여자가 도하 곁에서 계속 맴돌면서 그를 괴롭힐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소명은 서빈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오기가 발동했다. 서빈이 또다시 도하를 괴롭히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마구 피어올랐다.
“아니. 난 도하 씨 곁에서 그 사람 행복하게 해줄 거야. 당신처럼 상처 주지 않고. 다시는 당신 생각 안 나게 내가 백배 천배 잘할 거야.”
“뭐? 이게 진짜.”
서빈은 소명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자신도 모르게 소명에게 달려들었다.
서빈이 소명을 확 밀치는 바람에 소명이 바닥으로 넘어지면서 핸드 카트에 있던 화분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화분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소명의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바닥에 넘어져 있던 소명은 고통을 참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 산산이 조각난 화분을 바라보았다.
서빈은 소명을 밀치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왜 열 받아? 이까짓 화분 얼마나 된다고. 왜 내가 오빠랑 좀 잘해 보겠다는데 별 거지 같은 게 나타나서 방해하냐고! 아유 짜증 나. 짜증 나 죽겠어.”
서빈은 아직도 화가 안 가라앉았는지 소명이 미처 손쓰기도 전에 깨진 화분 쪽으로 가 휴케라를 발로 뭉개버렸다.
“아! 안 돼.”
소명이 달려가 서빈을 막아 봤지만 이미 휴케라는 서빈의 발에 밟혀 뭉그러져 있었다.
“도하 씨 주려고 산 건데.”
처음으로 그에게 주려고 산 휴케라가 그녀의 눈앞에서 뭉개지자 소명은 너무 속상하고 슬퍼졌다.
오늘 그녀는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려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가만히 있어도 힘들고 괴로운데 세상은 그녀를 그냥 놔두지 않는 것만 같았다.
소명은 서빈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서빈은 소명이 당황하고 괴로워하자 속이 시원하다는 듯 소명을 비웃고 있었다.
“오빠가 이까짓 화분 좋아할 것 같아? 하여간 수준 떨어지는 거 하곤. 나 진짜 이해가 안 가. 오빠 눈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저런…….”
서빈이 말을 채 끝나기도 전에 소명이 서빈에게 달려가 머리끄덩이를 잡아서 마구 흔들어 댔다.
갑작스러운 소명의 공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서빈은 긴 머리채를 소명에게 잡힌 채 괴로워서 비명을 질러댔다.
“악! 아아악!”
“너 같이 자기만 잘난 줄 알면서 살면 이렇게 되는 거야.”
소명은 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서빈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악. 이거 놔.”
서빈이 괴로워서 몸부림치자 소명은 긴 한숨을 내쉬고 손을 뗐다.
서빈의 머리는 미친년 산발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고 아파서 흘린 눈물 때문에 눈은 판다 눈이 되어 있었다.
서빈은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흔든 소명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났다.
“이게 어디서 내 몸에 손을 대.”
분노에 이성을 잃은 서빈은 소명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놀란 표정의 도하가 뛰어나와 서빈의 팔을 잡아 쥐었다.
“너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서빈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도하에게 엄청난 서운함을 느꼈다.
“오빠 그게 아니라 이 여자가 먼저 내 머리채를 잡아서…….”
“소명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어?”
도하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소명에게 다가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소명 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온통 소명에게 관심을 보이는 도하에 서빈은 자기 모습이 비참해졌다.
“네. 괜찮아요.”
도하는 무서운 눈빛으로 서빈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너……. 정말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어?”
“뭐? 오빠!”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마. 난 죽어도 다신 너랑 안 엮여.”
“오빠……. 저 여자가 내 머리채를……. 나는 안 보여?”
서빈은 도하의 행동에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어딜 가나 자신은 시선의 중심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다 자신을 좋아해 줬다.
하지만 도하와 헤어지고 나서 항상 마음 어딘가가 허전했다.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단지 그때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고 도하와 다시 만나게 된 자리에서 가슴속에서 뭔가 찌릿찌릿한 울림이 느껴졌다. 도하와 재회하고 난 뒤 그녀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그렇게 외롭고 허전했던 건 그녀의 가슴에 도하의 빈자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도하는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고 너무도 차갑게만 대할 뿐이었다.
‘다시 오빠가 예전처럼 날 바라봐 준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빈은 소명에게 머리채를 잡힌 것보다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는 도하에게 더 괴로움을 느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도하를 다시 자기 남자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소명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떼지 않는 도하를 서빈은 슬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선 검은색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명 씨, 우선 들어가서 쉬고 있어요.”
도하는 소명에게 문을 가리키며 눈짓을 보냈고 소명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 안으로 들어갔다.
소명이 들어간 걸 보고 도하는 엘리베이터 내림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서빈의 팔을 잡고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태우며 말했다.
“너! 따라와.”
도하의 차가운 음성에서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오빠……. 나한테 왜 이래?”
“잔말 말고 따라와.”
엘리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에서 멈췄다.
“빨리 가. 더 이상 네 꼴도 보기 싫다.”
“오빠, 나 사랑한다고 했잖아!”
“사랑? 나 이젠 너 사랑 안 해.”
“오빠…….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
“아버지한테 말한 것도 너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할 수가 있어?”
“오빠……. 사랑하니까. 내 눈에는 지금 오빠밖에 안 보이니까.”
“지금 내 눈에는 소명 씨밖에 안 보여.”
“오빠…….”
서빈은 살면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아 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이렇게 대하다니!
분노와 슬픔이 함께 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명 씨 또 힘들게 했다간 그땐 오늘처럼 이렇게 안 넘어가.”
도하는 차가운 목소리로 서빈에게 경고한 후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하, 여기가 아파. 너무 아파 죽겠어.”
서빈은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댔다.
울고 있는 서빈을 발견한 김 기사가 뛰어와 말없이 서빈을 일으켜 세웠고, 너무 심하게 우는 탓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서빈을 부축하며 차에 태웠다.
서빈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악다물었다.
******
소명은 집에 들어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조금 마음을 진정시켜보려고 노력했다.
숨을 크게 쉬며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빗자루와 쓰레받기와 신문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초라하게 부서진 화분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진 휴케라가 보였다.
도하를 생각하며 산 화분이 산산조각이 나자 소명은 더 마음이 아팠다.
소명은 신문지에 깨진 화분 조각을 하나하나 옮겨 담았다. 그동안 서빈 때문에 도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슬퍼졌다.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자신을 보며 이렇게 따뜻하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앞으로 그의 표정에 다시는 어두움이 묻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도하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그의 눈빛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를 보자마자 소명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이 순간 속상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있었다.
“소명 씨, 하지 마요. 손 다쳐요.”
도하는 얼른 뛰어와 깨진 화분 조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고맙게 생각되었다.
깨진 화분을 치우다가 뭉그러진 휴케라를 본 도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명 앞에서 서빈이 이런 짓을 한 거라고 짐작하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소명 씨가 아끼는 걸 텐데…….’
도하가 쓰레기봉투를 가져오려고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그의 등 뒤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소명이 그에게 다가와 그를 뒤에서 와락 껴안았다.
“소명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