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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사내 불륜 (34/101)


제34화 사내 불륜
2022.10.27.



 
도하는 그녀의 백허그에 놀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백허그에 오랫동안 잠잠하던 그의 심장이 미치도록 쿵쿵대며 반응하고 있었다.

소명이 그를 뒤에서 껴안자 도하는 살짝 고개를 뒤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포옹에 도하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래. 내 옆에는 소명 씨가 있어.’

등 뒤에서 떨리는 소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화분 도하 씨 주려고 산 건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자신을 주려고 화분을 샀다는 말에 도하는 그녀의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순간 울컥했다.

그는 뒤를 돌아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더 속상했어요?”

도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따뜻한 눈빛으로 다정하게 말했다.


“도하 씨한테 꼭 주고 싶었어요.”

소명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자 도하가 몸을 돌려 소명의 양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는 소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명 씨, 자꾸 힘들게 해서 미안해요.”

그의 눈빛에는 진심이 서려 있었다.


“도하 씨, 저한테 미안해하지 마요. 절대로.”

도하는 소명의 등을 자신의 쪽으로 당겨 그녀를 꼭 껴안았다.

소명의 그의 품에 안겨 스르르 눈을 감았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줄 것 같은 이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잠시 달콤한 시간이 지나고 소명은 포옹을 풀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하 씨, 저 이제 달라질 거예요.”

“네?”

갑작스러운 소명의 말에 놀라 그가 그녀를 쳐다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저……. 이제 더 이상 당하지 않아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숨을 크게 쉬며 도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하는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요. 말만 들어도 고마워요. 도하 씨.”

어둡고 슬퍼 보이던 그녀가 이렇게 다시 빛나다니 도하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이제 지성과 라희, 그리고 서빈에게도 결코 만만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소명은 도하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

지성은 거울을 보며 눈의 부기도 멍 색깔도 많이 빠져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에게 남은 건 이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자꾸만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은 허탈함을 느꼈다.

무언가를 먹어도 계속 허기가 지는 느낌이 들었다.


‘라희랑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러냐.’

지성은 자기 스스로가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꼬인 걸까?’

아침에 일어나기 전 항상 소명의 등 뒤에서 그녀를 꼭 안고 그녀의 체온을 느끼곤 했는데……. 지성은 자꾸만 그녀와의 추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소명이 해준 맛있는 저녁을 같이 먹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이제는 소명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지성은 정 여사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 갔다 올게요.”

“그래. 운전 조심하고.”

“네.”

정 여사는 소명의 소식이 너무 궁금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요즘 지성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눈치만 보다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 여사는 소파에 앉아 있다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왜 그랬어. 소명이 만한 애가 어디 그리 흔하냐고?”

정 여사는 아들의 인생이 자꾸만 꼬여가는 것 같아 가슴이 시렸다.

사무실에 도착한 지성은 업무를 시작했는데도 자꾸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힘들었다.

그에게 자꾸만 생각나는 사람은 소명이었다. 라희를 생각하면 그냥 화가 치밀었다.

지성은 계속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그래, 소명이밖에 모르는 나를 라희가 꼬드긴 거야. 나는 유혹에 넘어간 거지. 소명이가 싫어졌던 건 아니야. 힘든 일을 겪고 나니까 내 참사랑이 누군지 알게 된 거야. 소명아 보고 싶다.’

지성은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라희와의 추억보다 소명과의 추억이 더 많았고, 소명과 함께 있을 때는 늘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게 행복이란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 지성의 큰 실수였다.


‘소명이랑 다시 시작하고 싶어.’

‘날 이해해주는 사람은 소명이뿐이야.’

‘소명이도 날 못 잊어서 내가 자기를 잡아주길 바랄지도 몰라.’

지성은 끝도 없는 망상에 빠져 온종일 소명을 생각했다.

******

한편 라희는 회사를 못 다니게 한다는 소명의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업무를 보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고 초조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지은 죄가 있기에 너무 불안했다.


‘소송 거는 거 아냐? 아니야. 소송은 안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미쳤지. 안지성 그 찌질이가 뭐가 좋다고.’

괜히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일생 중에 제일 자랑스러운 건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타이틀이 깨지는 게 싫었다.

불우한 환경에서도 자신은 이렇게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데.’

자꾸만 소명이 그냥 한번 해본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지성과 불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회사에 알려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소름이 끼쳤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불륜녀로 인식하는 것 자체를 생각만 해도 고통이 밀려왔다.


‘어떻게 하지? 한 번 더 사정해야 하나. 하아…….’

그때 친한 동료 연희가 라희에게 다가와 말했다.


“라희 씨, 밥 먹으러 가자.”

“아, 네.”

라희와 연희는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구내식당에 들어서서 식판에 밥을 받고 자리를 잡고 앉는데, 멀리 지성이 동료들과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성과 라희는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지성이 고개를 획 돌려 라희를 외면했다.

라희는 지성이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내며 또 매달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가 먼저 자신을 외면하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야? 지금?’

지성의 행동에 기분이 상한 라희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렸다.

그때 연희가 지성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라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라희 씨? 알아?”

“뭘요?”

“안 팀장님 며칠 전에 누구랑 싸웠는지 눈탱이 밤탱이 되어서 회사 출근했잖아.”

“그래요?”

라희는 애써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연희를 보며 연기를 했다.


“근데 요즘 소문이 너무 안 좋더라고.”

“네?”

“저번에 박 과장님이 우연히 어떤 여자랑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는 것 봤다고.”

“네??”

그 말에 너무 놀라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와 버렸다.

연희는 라희의 반응에 즐거워하며 말했다.


“그 여자랑 아무래도 수상하잖아. 그 여자 얼굴은 못 봤다고 하는데……. 진짜 안 팀장님 애처가인 줄 알았는데. 나 너무 실망했잖아. 역시 얼굴값 한다는 말 딱 맞아.”

“아……. 네.”

라희는 생각지도 못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멍해졌다.

라희의 기분을 알지도 못한 채 연희는 신이 나는 듯 연신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근데 며칠 전에 얼굴을 그렇게 하고 나타났으니……. 알만하지.”

“아…….”

“놀랐구나. 자기 옛날에 안 팀장이 누구냐고 막 물어봤었잖아. 그러니까 남자는 얼굴만 보면 안 돼. 그치??”

“네.”

“그나저나 사내 불륜 소문나면 곤란해질 텐데 걱정이다.”

라희는 자꾸만 꼬여가는 상황에 짜증이 솟구쳤다.

밥을 먹고 나서 지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빠, 오늘 잠시 만나자. 할 이야기가 있어.]

[나는 너랑 할 말 없는데.]

[중요한 얘기야.]

[오빠랑 나랑 회사 못 다닐 수도 있어. 우리 집 앞 카페에서 보자.]

[그래.]

 

******

업무가 끝나자마자 퇴근한 라희는 초조한 표정을 하고 카페에 앉아 지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불안한지 자신도 모르게 입에 손톱을 가져댔다가 네일을 한 걸 알아채고 바로 손을 뗐다.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때 지성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라희는 급한 맘에 지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성이 라희를 발견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라희는 입을 열었다.


“오빠, 나 오빠 부인 만났어.”

라희의 말에 지성은 놀란 눈을 부릅뜨며 씩씩댔다.


“너 미쳤어? 소명인 왜 만났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려고.”

“뭐? 너 진짜 대단하다. 왜? 소명이랑 대표랑 사귄다니까 너 잘릴까 봐 불안했어?”

“나 회사 절대 못 그만둬.”

“하아, 참나. 기가 차서. 그래서 소명이가 너 회사 계속 다니게 해준대?”

“아니. 나 회사 못 다니게 한대. 앞으로.”

“뭐?”

지성은 소명의 반응이 생각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이제 안 당한다고.”

“귀찮게 생겼네.”

지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근데 더 큰일이 생겼어.”

“뭔데?”

“우리가 비상계단으로 들어가는 거 박 과장이 봤다는데.”

“하아…….”

지성은 라희의 말을 듣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오빠, 그래서 말인데…….”

라희는 지성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그의 눈치를 봤다.


“뭔데?”

“저……. 오빠랑 같이 비상계단 들어간 사람 얼굴은 못 봤다고 하거든. 나중에 혹시 안 그러면 좋겠지만 감사팀 가면 비밀 지켜줄 수 있어?”

지성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이 여자의 이기심에 놀라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아……. 아니. 오빠는 집도 부자고 이 회사 안 다녀도 먹고살 길 많잖아. 나는 우리 회사 그만두면 끝이야. 오빠, 우리 사랑했었잖아. 나를 위해서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뭐? 오빠 말을 왜 그렇게 해.”

“뻔뻔하다. 어떻게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해?”

“오빠, 그러지 말고. 제발.”

라희는 지성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게 너무 비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 나간 지 며칠도 안 돼서 남자를 끌어들여?”

“오빠?”

“네가 나 안 꼬셨으면 나 지금도 소명이랑 행복하게 살았어. 넌 내 인생을 망쳐 놓고도 그딴 말이 입에서 나와? 나 절대 못 해. 오히려 소문내서 너 꼭 잘리게 할 거야.”

“이기적인 새끼. 너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채 라희, 두고 봐. 나 너 가만 안 둬.”

지성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라희를 노려보다 벌떡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아유, 짜증 나. 진짜.”

지성이 가버리고 한참 후에도 라희는 분이 안 풀려 씩씩댔다.

******

한편 소명은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안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젠 안 당할 거야. 절대로.’

그녀는 화장을 곱게 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소명이 탄 차는 속도를 내며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소명은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턱을 높이 들어올렸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윽고 그녀가 도심 속 큰 빌딩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법무법인 승리]

소명은 간판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떴다.

소명은 긴 호흡을 내쉬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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