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35화 상간녀 위자료 소송 (35/101)


제35화 상간녀 위자료 소송
2022.10.31.


소명이 문을 열자 안에 있던 여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홍소명 씨?”

“네.”

“변호사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네.”

소명은 여직원의 안내로 변호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앉아 있던 수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명을 반기며 미소 지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흰색슈트를 입고 커다란 귀걸이를 한 수현은 세련되고 멋스러웠으며 활기가 넘쳐 보였다.

수현은 소명에게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네.”

수현은 소명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입가를 올렸다.


“자, 그럼 얘기를 좀 들어볼까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요. 같은 직장을 다니는 여자랑.”

“많이 힘드셨지요?”

수현은 소명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소명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네. 처음에는 그냥 빨리 그 사람이랑 끝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어요. 근데 저를 가만 놔두지 않고 계속 괴롭혔어요.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소송은 싸움이에요. 소명 씨.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하셔야 해요.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소명은 수현을 강렬하게 쳐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은 간통죄가 폐지돼서 상대방에 취할 수 있는 법적조치는 상간녀 위자료 소송뿐이에요.

‘상간녀 위자료 소송…….’

소명은 수현을 바라보며 그녀가 다음에 할 말을 주의 깊게 들으려고 그녀를 향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근데, 소명 씨. 소송이 일단 걸리면 부정행위를 인정하는 경우 거의 없어요. 아주 치열하죠. 이 싸움.”

소명은 부정행위를 하고도 뻔뻔하게 우겨댈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절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린 두 사람에게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명백한 증거가 필요해요.”

“증거요?”

“유부남인 걸 알고 만났다는 증거나, 둘 사이의 관계를 증명해야 해요. 남편분 재산 은닉 못 하도록 우선 가압류 및 가처분 신청 먼저 하고요.”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소명은 진심으로 변호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 이거. 실은 제가 혹시 몰라서……. 준비해 두었던 게 있어요.”

소명은 가방에서 서류 파일을 꺼냈다.

변호사는 소명이 내놓은 서류 파일을 꺼내 보았다.


“어머, 소명 씨, 너무 잘하셨어요.”

변호사가 꺼낸 종이에는 라희와 지성이 나눈 핸드폰 대화가 고스란히 캡처 돼 있었다.


“여기 사진도.”

소명이 내민 사진은 지성의 손목 타투 사진이었다.


“둘이 커플 타투도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저보고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남편이 같이 나왔어요. 명백히 남편이 유부남인 걸 알고 저를 부른 거죠. 통화 내용 첨부할 수 있어요.”

“소명 씨, 어떻게 이렇게 잘 준비해 오셨어요. 다 잘될 거예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이미 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두 사람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게 해주려고요. 다른 사람한테 상처 주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에 보여줄 거예요.”

수현은 소명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소명 씨, 제가 최선을 다할게요.”

“네. 부탁드려요.”

소명과 수현은 눈을 맞추며 악수했다. 소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안지성, 채 라희. 너희가 한 파렴치한 짓으로 인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두고 봐.’

예전에 세상을 다 산 듯, 모든 것을 포기한 소명은 지금 어디에도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자신감 있고 당당한 표정의 소명만 남아 있었다.

소명은 변호사 사무실을 나와서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얼마 전 도하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던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공원으로 가 벤치에 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 색깔 진짜 예쁘다.”

소명은 파란 하늘을 아무 말 없이 계속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버리고 가방을 싸 들고 집을 나간 지성을 보며 괴로워했던 일과 결혼사진을 던져 액자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던 일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아파졌다.

그래도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사람, 차도하가 그녀의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소명은 그에게 자신이 짐이 될까 봐 밀어내도 봤지만, 그는 그녀만을 바라보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도 그녀는 이 싸움을 반드시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내가 못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다 너희 잘못이야.’

소명은 이제 절대로 약해빠져 신세 한탄하지 않으리라고 자신과 약속했다.

어둡고 쓰라렸던 상처를 이제는 피하지 않고 바라볼 것이다. 정면 승부.


‘이젠 어제의 내가 아니야. 한 번뿐인 인생. 내 인생을 살래.’

소명은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사이다를 샀다.

그리고 캔 뚜껑을 딱 따서 한 번에 쫙 들이켰다.

탄산의 청량감이 그녀의 목을 타고 몸속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캬, 시원해. 속이 다 시원하다.”

 

 

******

도하는 출근하려고 나오면서 소명의 집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벨을 누르고 인사를 하고 가고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녀가 잘 것 같아 자신의 마음을 꾹꾹 내리눌렀다. 그제도 봤지만 지금도 보고 싶었다.

도하는 그제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서빈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서빈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서빈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렸다.

도하는 지하 주차장으로 가 이 비서가 기다리고 있는 세단에 올라탔다.

일이 잘 해결되었는지 도하의 표정이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네. 오늘 더 일찍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요.”

“아, 별말씀을요.”

귀찮은 질문을 하거나 좀 친해지려고 말을 걸기라도 하면 표정이 싸늘하게 변하는 도하가 오늘은 웬일인지 그를 보며 사과를 하다니 요즘 도하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 비서는 도하에게 생긴 긍정적인 변화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항상 싸늘하고 어두운 도하의 표정이 밝아져서 기분이 좋았다. 이 비서는 도하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도하는 어제 조금 일찍 퇴근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가서 업무를 볼 요량으로 오늘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도하는 이 비서에게 말했다.


“SD랜드 공사 현장 견학 몇 시죠?”

“오후 3시까지 도착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소해. 그 일정.”

익숙한 목소리는 차 회장의 목소리였다.

차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걸어와 대표실로 들어왔다.


“회장님. 여긴 어쩐 일로?”

이 비서가 차 회장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비서 나가 있어.”

“네.”

이 비서는 빠른 속도로 방을 빠져나갔다.

대표실에는 차 회장과 도하 둘만이 남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알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깨고 차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일정 취소해.”

“아버지,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아버지가 더 잘 아시잖아요.”

“그 일정 내가 가마. 그러면 아주 문제없을 게야.”

“아버지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서빈이가 많이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했다고 그러더라.”

“서빈이가요?”

“위경련이 일어났는데 또 너무 안 먹어서 며칠 있어야 한다고. 이 회장이 직접 전화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버지 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차 도하. 너 끝까지 이 아비 속 썩일래? 당장 가. 얼른. 서빈이가 누구 때문에 아픈지 너 혹시 모르는 게냐?”

“하아.”

도하는 자꾸만 자신과 서빈을 엮어가는 분위기에 신물이 났다.

서빈이 아픈 것은 안 된 일이지만 그녀를 보러 가는 것은 영 내키지 않았다.

차 회장은 내선으로 이 비서에게 말했다.


“이 비서, 차 대기시켜.”

도하는 굳은 표정으로 인상을 팍 썼다.


“가서 표정 관리 제대로 해. 이런 것까지 잔소리해야 하는 거냐?”

도하는 차 회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이 비서가 준비한 차를 타고 서빈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도하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아까와는 딴판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이 비서는 도하를 흘끔흘끔 살펴볼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 비서는 도하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대표님, 도착했습니다.”

곧 세단은 서빈이 입원한 병원에 도착했다. 도하는 내리기 싫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려 서빈이 있는 6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는 내내 한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서빈이 있는 특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 비서는 도하를 보며 말했다.


“아, 대표님 과일 바구니나 꽃이라도 사가야 할 텐데.”

“괜찮아요. 나중에 보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도하는 서빈이 있는 특실 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서빈의 어머니 오 여사가 문을 열다가 도하를 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도하야. 어서 와. 바쁠 텐데 우리 서빈이 걱정됐구나. 고맙기도 하지.”

어렸을 때부터 보던 사이라 오 여사는 도하를 편하게 대했다.

도하는 오 여사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워낙 말수가 적고 표정이 없는 도하를 잘 알기에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저번에 그렇게 말하고 식사 자리를 떠난 도하가 못마땅했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서빈이 도하를 너무 좋아하니 도하를 이해하고, 잘 대해 주려고 마음먹었다.

사실 도하는 차갑고 무뚝뚝한 것 빼고 어디다 내놓아도 빠질 부분이 없는 완벽한 사윗감이었다.

아버지 차 회장의 비상한 두뇌를 물려받아 일로도 엄청난 인정을 받는 도하를 이곳저곳에서 탐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그가 서빈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고 생각하니 저번에 섭섭했던 감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서빈아, 도하 오빠 왔어.”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서빈이 도하가 왔다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오빠!”

“많이 아프니?”

“아니, 괜찮아. 좋아지고 있어.”

“몸조리 잘해.”

“응.”

짧은 말을 남기고 도하는 오 여사를 보고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지금 왔는데 바로 가?”

“네. 그럼.”

“오빠? 엄마 잠깐 자리 좀 비켜 주세요. 저 오빠랑 얘기 좀 할게요.”

“그……그럴래?”

오 여사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쳤다. 아무리 봐도 도하는 자기 딸에게 마음이 없어 보였다.

도하의 무례한 행동에 기분이 나빴지만 아픈 서빈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했다.


“오빠? 좀 이따가 가.”

서빈이 애교가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도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아버지한테 연락하지 마.”

도하는 서빈을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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