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쓰레기들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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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쓰레기들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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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쓰레기들의 싸움
2022.11.14.
라희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그럴수록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자신 때문에 한 가정이 파탄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더 큰 불행이 그녀 앞에 닥쳤을 뿐.
라희는 가슴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녀는 지성과 완벽하게 연락을 끊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곧 전화가 연결됐다.
“오빠? 저기……. 있잖아. 잠깐 보자. 할 말이 있어.”
[지성이 앞으로 아가씨 볼일 없어요. 다시는 연락하지 마요.]
상대편에서 냉정하고 쌀쌀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
라희는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전화를 받은 것은 바로 정 여사였다.
[왜 내가 아가씨 어머니죠?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남의 가정 파탄 낸 주제에.]
“저……. 어머니. 말씀이…….”
라희가 뭐라고 말이라도 내뱉으려 할 때 정 여사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이 씨! 되는 일이 없네.”
라희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꾹꾹 눌러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서 엉엉 울어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안지성 너도 잘한 건 없잖아. 흐흐흑.”
라희가 버스 정류장에서 울자 주변 사람들이 라희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라희는 다른 사람의 눈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일이라 평소의 라희였다면 죽어도 절대 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 있었다.
분통이 터져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얌전한 척 다 물러서 줄 것 같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라희는 소명에게 너무 화가 나서 지금이라도 달려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이제 헤어졌는데……. 그러면 된 거 아니야? 안지성 네가 다시 데려가라고. 왜 내가 위자료를 줘야 하는데?”
라희는 끝까지 자기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라희를 미친 여자 취급하며 힐끔힐끔 쳐다보자 라희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아저씨, 뭐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났어요? 뭘 그렇게 쳐다봐요. 네?”
라희는 자신의 화를 괜한 행인에게 풀고 있었다.
‘나를 물로 봤어. 나도 호락호락하게 안 넘어가.’
라희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다른 변호사를 연신 검색해댔다.
******
속상한 맘에 지성은 어제 술을 먹고 바로 잠들어버렸다. 이렇게라도 현실을 잊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점점 폐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회사도 가기 싫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지성은 얼굴에 가득 그늘을 드리운 채 간신히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출근 준비에 나섰다.
핸드폰을 챙기려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서 소파에 앉아 있는 정 여사에게 물었다.
“엄마, 제 핸드폰 못 보셨어요?”
“어제 주방에 두고 갔더라. 여기.”
정 여사는 소파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지성에게 내밀었다.
“네.”
“지성아. 어제 그 여자한테 전화 왔어.”
“네? 라희요?”
“그래.”
“엄마가 받으셨어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잘하셨어요.”
“완전히 끝난 거 맞지?”
“네.”
“지성아, 이제 소명이 그만 포기해.”
정 여사는 지성의 눈치를 보며 소명과 정리하라는 뜻을 살짝 내비쳤다.
지성이 아무리 매달려도 소명이 받아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지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정 여사에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엄마!”
“소명이 마음 완전히 뜬 거 같다.”
“아니……. 엄마라도 나 도와줘야지.”
“너 그렇게 하는데 독하게 문도 안 열어주고 나와 보지도 않잖아.”
“그건 화가 단단히 나서 그렇지.”
“그래도 그동안 산 세월이 있는데…….”
“엄마, 나 기다릴 거야. 소명이 마음 풀릴 때까지. 다시 시작하면 병원도 갈 거고 검사도 받아서 진짜 아이도 낳고……. 나 평생 소명이한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 거예요.”
“지성아, 엄마가 볼 땐…….”
“저 출근해요.”
지성은 더 이상 정 여사의 말이 듣기 싫은지 현관으로 가 얼른 구두를 신고 나가 버렸다.
정 여사는 그런 지성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후회할 짓을 왜 해서 사서 고생해!’
정 여사는 아들이 안타깝고 속상해서 아들이 나간 빈 현관을 서글피 바라보았다.
지성은 운전하면서 회사로 가는 내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자꾸만 소명에게 모질게 굴었던 일이 떠올랐다.
‘병원 가자고 할 때 갈걸…….’
그는 소명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풀릴지 계속 그 생각에만 집중했다.
‘진짜 그 새끼를 좋아하는 거야? 아니……. 아니야. 나 보라고 그런 걸 거야. 소명이는 나를 잊을 리가 없어.’
지성은 답답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심호흡을 해댔다.
회사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엘리베이터 근처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놀라 뒤를 돌아보니 라희가 서 있었다.
지성은 그녀를 보고 인상을 구기며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여긴 웬일이야?”
“오빠가 전화해도 안 받을 거잖아.”
“근데 왜 여기 서 있냐고?”
“할 말이 있어.”
“빨리 말해. 나……. 들어가 봐야 해.”
“오빠 부인이 소송 고지서 나한테 보냈어.”
“그래?”
지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자 라희는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위자료를 줘야 한다네.”
“그래서?”
“나 솔직히 오빠랑 만나고 내가 이득을 보거나 얻은 거 하나도 없잖아. 지금은 오빠랑도 끝났고. 근데 왜 내가 위자료를 물어야 해?”
“너 지금 그게 억울해서 찾아온 거야?”
“그래. 억울해. 오빠가 책임져.”
“진짜 너란 인간은 끝이 없구나. 나는 모르는 일이야. 네가 해결해. 너 나랑 헤어지기도 전에 네 집에 끌어들인 놈 있지? 그 새끼한테나 해결해달라고 해.”
“왜? 오빠랑 내가 벌인 일인데.”
“내 앞에 나타나 또 이런 소리 했다간 회사 감사실로 가서 다 말할 거야. 너랑 나 사이.”
“뭐? 오빠 이런 사람이었어?”
라희는 지성의 태도에 놀라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내가 미쳤지. 이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라희야, 정신 차려. 나도 너랑 똑같은 생각이거든.”
지성은 라희를 바라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오빠, 나보고 왜 그렇게 웃어.”
지성은 라희를 비웃으며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네가 나 안 꼬셨으면 이런 일도 없었어. 다 너 때문이야.’
지성의 눈빛은 광기가 차올라 이글거렸다.
라희는 지성과 얘기를 마친 후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도 쓰레기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라희의 얼굴에는 분노와 좌절의 빛이 서렸다. 그녀의 눈 아래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라희는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지하 주차장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화장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데 눈치 없이 계속 눈물이 흘러나왔다.
입에서는 서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간신히 심호흡하며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
한편 차 회장은 요즘 심기가 아주 많이 불편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속을 썩이다니. 어렸을 때부터 별 탈 없이 잘 자라준 것에 늘 마음속으로 고맙게 생각했었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차 회장은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얼굴로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비서실장이 조사한 소명의 인적 사항이 들려 있었다.
단아한 분위기에 누가 봐도 예쁘다고 할 만한 얼굴을 가진 여자였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디자인 계통이면 다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왔고 일적으로도 꽤 인정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아래 줄에 남편과 이혼이라고 적혀 있고 남편의 인적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차 회장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서류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SS그룹 건설 부문 설계팀 팀장!
“허, 이런.”
그 아래 줄에는 사내 불륜이라고 적혀 있었다.
차 회장은 너무 놀라 진정이 되지 않았다.
도하와 엮인 여자의 전남편이 자신의 회사 직원이고 심지어 사내 불륜이라니!
그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졌다.
그는 바로 내선을 연결해 비서를 불렀다.
비서실장이 바로 뛰어와서 차 회장을 보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설계팀 안지성 팀장 감사실로 회부해.”
“네?”
“도하 당장 오라고 해. 어서.”
“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은 빠른 걸음으로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도하는 아버지의 부름에 저절로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가 또 무슨 말을 할지 눈에 선했다.
도하가 회장실 문을 노크하자마자 안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들어와.”
꽤 많이 화가 나 있는 목소리였다.
“아버지”
차 회장은 회장석에 앉아서 도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오늘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랐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차서 책상 위에 있는 서류를 도하의 얼굴에 던졌다.
얼굴에 서류를 맞은 도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버지…….”
도하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서 읽기 시작했다.
그 서류를 읽은 도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그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버지, 소명 씨 뒷조사하셨어요?”
“너 지금 이게 말이 되는 행동이야?”
“아버지, 소명 씨 잘못한 거 없습니다.”
“이런 못난 놈 같으니라고. 소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아버지, 소명 씨는 피해자예요.”
“거기다가 지금 바로 옆집에 살고 있고. 왜 말 안 했어? 생각보다 사태가 너무 심각해.”
“아버지. 전 소명 씨 사랑합니다. 소명 씨 포기 못 해요.”
“그깟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이 아비 말 안 들어서 평생 맘고생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내가 다 뒤처리하마. 그 여자도 내가 섭섭지 않게 다 보상하고.”
“아버지……. 그러시면 저 다시는 아버지 안 봐요.”
도하는 무서운 눈초리로 차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놈의 새끼, 그게 말이라고.”
차 회장은 너무 소리를 치고 흥분한 탓에 뒷골이 심하게 당겼다.
그가 인상을 쓰며 힘들어하자 도하가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차 회장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오늘부터 당장 본가로 돌아와.”
“싫습니다! 아버지, 제발 소명 씨 한 번이라도 보시고…….”
“됐다. 됐어. 나가. 꼴도 보기 싫다.”
차 회장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쩌자고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하는 아버지가 소명의 뒷조사를 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자신 때문에 혹여 소명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도하는 대표실로 돌아와 이 비서를 불렀다.
“이 비서님, 제가 부탁한 경호 어떻게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