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정면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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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정면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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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정면 승부
2022.11.17.
“네, 여성 경호원인데 웬만한 남자들 안 부럽다고 합니다. 믿음직한 사람이랍니다. 소명 씨 경호하기엔 딱일 것 같아서요.”
이 비서의 말을 들은 도하는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비서님, 회장님이 모든 걸 알게 됐으니 저도 이젠 가만 안 있습니다. 비서실 인원 총동원해서 회장님 눈 가려주세요. 더 이상 소명 씨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네?”
이 비서는 놀란 눈으로 도하를 쳐다보았다.
‘회장님과 정면 승부를 한다는 소리인가?’
“소명 씨에 대해 더 이상 아버지께 보고 안 들어가게 해주세요. 이 비서님 이건 부탁이 아니고 명령입니다. 제가 차기 회장 후계자라는 거 잊지 않으셨죠?”
이 비서가 아무 말을 못 하자 도하가 결연한 표정으로 이 비서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호하고 강력했다. 이 비서가 어쩌지 못할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네. 잘 알겠습니다.”
“소명 씨가 머무를 만한 곳 좀 알아봐 주세요. 하루라도 빨리.”
“네.”
사랑의 힘은 놀라웠다. 자기 안에 갇혀서 벽을 치며 살던 도하를 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비서는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도하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도하 옆에서 그를 보필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 비서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속은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도하는 아버지가 모든 사실을 안 이상 소명을 아버지로부터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
소명이 그의 곁에 없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소명을 그의 곁에서 떼어내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는 반드시 자기의 힘과 능력을 키워서 소명을 행복하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도하는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하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소명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오늘 스케줄을 확인하고 꼭 해야 하는 일만 얼른 처리하고 도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도하는 자신의 차에 올라탄 후 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명 씨?”
[네. 도하 씨.]
“지금 어디예요?”
[저 지금 화원이요.]
“그래요? 저번에 갔던 곳?”
[네. 도하 씨랑 우연히 만났던 곳이요.]
“아…….”
[도하 씨 왜요?]
“소명 씨 보고 싶어서요.”
[…….]
“소명 씨?”
소명이 아무 대답이 없자 도하는 다시 한번 소명의 이름을 불러댔다.
[네. 저도 도하 씨 보고 싶어요.]
그녀의 말이 그의 귀에 꽂히는 순간 도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는 가슴이 벅차올라서 숨이 크게 내쉬었다.
“후우.”
[도하 씨?]
도하가 아무 말이 없자 이번엔 소명이 도하의 이름을 불렀다.
“조금만 기다려줄래요?”
[네? 도하 씨 여기 오려고요?]
“네. 최대한 금방 갈게요.”
도하는 소명과 전화를 끊자마자 속도를 높여 소명이 있는 화원으로 달려갔다.
“네. 저도 도하 씨 보고 싶어요.”
운전하면서 가는 내내 소명이 아까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그를 감쌌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소명이 있는 화원 앞에 도착한 도하가 차에서 내려 화원을 둘러보았다.
푸릇푸릇한 화초를 보니 무거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도하는 소명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성큼성큼 화원을 향했다.
화원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서 화초를 구경하는 소명의 옆모습이 보였다.
보면 볼수록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도하는 화초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 그녀의 옆모습에 빠져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멍하니 그녀를 바라만 봐도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그에게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화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하와 눈이 딱 마주친 소명은 그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건넸다.
쿵쿵.
그녀를 보러 가는 길 내내 가슴이 설렜는데 지금 그녀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동정도 동병상련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의 가슴에, 너무나 아파서 혼자만의 벽을 치고 살던 그에게 그녀가 찾아왔다.
그는 그녀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도하는 소명을 향해 걸어갔다. 소명도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많이 기다렸어요?”
자신이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달콤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나왔다.
누가 시킨다고 해도 못 할 것 같은데 그녀 앞에만 서면 그는 자꾸만 달라졌다.
“아니요. 생각보다 빨리 오셨는데요. 근데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하신 거 아니에요?”
“아니요. 할 일 다 마치고 왔어요.”
도하는 그녀를 보며 살짝 미소를 건넸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 얼마나 그동안 힘들었으면.’
소명은 자신을 바라보며 짓는 도하의 미소가 좋았다.
그의 미소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아, 저번에 도하 씨 주려고 했던 휴케라 다시 샀어요.”
소명의 옆에는 휴케라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도하는 소명의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살짝 부끄러워 고개를 돌린 소명의 손을 도하가 살짝 잡았다.
“고마워요. 진짜 너무.”
“좋아하니 다행이에요.”
“좋은 정도가 아니고 완전 맘에 들어요. 잘 키울게요.”
“네.”
도하가 기뻐하자 소명은 그를 보며 활짝 웃어 보였다. 그녀의 미소가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소명 씨?”
“네?”
“이런 게 행복인가 봐요.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그의 입에서 나온 행복이라는 말에 소명은 가슴에서 뭔가가 막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행복하다니 소명도 행복해졌다.
행복이라는 것이 꼭 거창해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기쁨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그가 옆에 있기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녀 또한 너무나 행복했다.
“도하 씨가 행복하니 저도 행복해요.”
소명의 말에 도하는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손 절대 놓치지 않을게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었지만, 누구보다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소명과 도하는 근처의 작은 찻집에 들렀다.
화원 근처라 경치도 좋고 공기도 상쾌했다.
두 사람은 오늘은 커피 대신 차를 시켰다. 도하는 녹차를 시켰고 소명은 연잎 차를 시켰다.
소명과 도하는 차를 마시며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하는 소명의 눈치를 보며 말할 기회를 엿보았다.
아버지가 그녀의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또 자신을 밀어내려고 할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소명만 자신의 옆에 있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도하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소명도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명 씨…….”
“네?”
“할 말이 있어요.”
그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자 소명은 무슨 안 좋은 얘기가 나올까 마음이 불안해졌다.
“뭔데요?”
“저…….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아버지가 소명 씨에 대해 아셨어요.”
“네?”
자신에 대해 아셨다고 하니 소명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도하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 도하가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명 씨……. 저 소명 씨 절대 안 놔요.”
“도하 씨…….”
“나 믿죠?”
소명은 그의 진실한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힘들 때 자신의 옆에서 힘이 되는 이 남자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도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무언가 가슴에서 자꾸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를 놓치기 싫어.’
“저 때문에 도하 씨가 너무 힘들…….”
소명이 말을 하려 하자 도하가 그녀의 입술에 자기 손가락을 살며시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나 하나도 안 힘들어요. 소명 씨가 지금 내 옆에 있잖아요. 오늘 본가 가서 해결할게요.”
소명은 그의 손을 힘 있게 꼭 쥐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하는 그녀의 맘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그를 믿고 있음을.
******
한편 라희는 퉁퉁 부은 눈으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동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동료들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라희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아서 업무 준비를 시작했다.
하도 많이 울어서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는 눈에 힘을 주며 컴퓨터를 켰다.
라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라도 한잔 마실 요량으로 연희를 바라보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라희가 출근하면 제일 먼저 반겨줬을 텐데 오늘따라 연희는 라희를 본체만체하며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라희는 궁금한 표정으로 연희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했다.
“커피 한잔하셔야죠.”
“별로 생각 없어.”
생각과 다르게 차가운 음성으로 연희는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라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라희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꾹 참으며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냉정한 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자기한테 진짜 실망이다.”
“네? 무슨?”
라희가 영문을 몰라 하며 연희를 쳐다보자 연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라희를 비웃었다.
“몰라서 그래?”
연희의 언성이 조금 높아지자 주변의 동료들이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뭘……. 말씀하시는지.”
“안지성 팀장.”
“네?”
라희는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오늘 감사받는다는데.”
“!”
“라희 씨가 그 불륜녀라는데. 벌써 소문 다 났어. 나 라희 씨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어떻게 부인이 있는 남자랑 그럴 수 있어?”
라희는 지금, 이 순간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안 거지? 어떻게!’
“회사에 소문 다 났어. 그렇게 둘이 붙어 다녀 놓고선, 보는 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
라희는 단 한마디 변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얼음처럼 굳어서 연희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 창피하니까.”
주변의 동료들은 라희를 바라보며 아무 말 안 했지만 그들의 눈빛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비웃는 듯 보였다.
“계속 옆에 서 있을 거야? 빨리 가서 일이나 해.”
연희의 차가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라희는 자신의 자리로 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 큰 충격과 모욕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라희의 내선이 울렸다.
“네, 마케팅팀 채라희입니다.”
“여기 감사실인데 지금 좀 올라오세요. 회장님 긴급 지시입니다. 빨리 처리하라고 하십니다.”
“네?”
“지금 올라오세요.”
라희는 내선 전화를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지성의 품에 안겨 행복을 꿈꾸던 그녀였는데.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즐거워하던 그때가 생각났다.
“하아……. 알겠습니다.”
라희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간신히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심호흡하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절대 못 그만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