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이제 소명 씨는 내 여자야
(47/101)
제47화 이제 소명 씨는 내 여자야
(47/101)
제47화 이제 소명 씨는 내 여자야
2022.12.12.
한편 지성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샤워했다. 오늘따라 몸이 더 안 좋았다.
그는 드레스 룸에서 가서 소명이 사준 슈트를 꺼냈다.
그때는 몰랐었다. 이 슈트가 그에게 소명을 추억할 아주 소중한 물건이 되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지성은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는 소명이 이 슈트를 입은 자기 모습을 보면 예전의 좋았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성은 옷을 갈아입는데도 온몸에 기운이 빠져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후유.”
가슴이 답답해서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옷을 입고 머리를 매만지는데 오늘따라 왜 이리 맘에 안 드는지 짜증이 계속 몰려왔다.
그의 옆에서 정 여사가 아들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 여사는 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어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지성의 눈치를 보다가 정 여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밥 먹고 가야지.”
“입맛 없어요.”
돌아오는 아들의 음성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지성아, 이제 다 끝났어. 너도 이제 일 시작하고, 좋은 사람 만나면 돼. 네가 뭐가 모자라. 어? 이제 좀 정신 차리자. 너 오늘 이혼하러 가는 길이야.”
“아, 좀. 엄마. 짜증 나게.”
지성은 정 여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까지 왜 이래?”
“지성아……. 제발.”
“싫어. 싫다고. 나 소명이랑 반드시 재결합할 거야. 꼭. 나 소명이 없인 안 된다고!”
지성은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그럼 이혼은 왜 해? 소명이한테 빌어보든가.”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는 지성에게 화가 난 정 여사는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빌어서라도 소명이가 받아준다면 그러고 싶다.”
“아이고, 이 멍청이 천치 같은 놈.”
“소명이 없음. 안 돼.”
“그러면 왜 그랬어. 그러긴.”
“이미 지난 일 말해 뭐 해.”
“그냥 소명이 잊으래도.”
“엄마가 소명이 구박만 안 했어도.”
지성은 이제는 정 여사에게까지 책임을 전가했다.
정 여사는 아들의 이기적인 말에 상처받아 가슴이 찢어졌다.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지금?”
“아, 가야 돼. 진짜. 나 한 달 안에 집 구해서 나갈 거야.”
“지성아, 너 정말!”
지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쾅 하고 거세게 닫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엄마에게 모진 말을 하고 돌아서는 그의 맘도 편하진 않았다.
지성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살면서 이렇게 긴장되는 순간이 있을까? 그녀와 함께한 십 년의 세월이 이런 식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지성은 언제까지나 소명에게 멋진 남자이고 싶었다.
법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녀에게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점점 더 법원에 가까워질수록 지성은 초조해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의 심장이 요란하게 방망이질 쳐대고 있었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슬프고 두렵고 아팠다.
다시 한번 소명을 안고 싶었다. 이제는 손조차 잡을 수 없는 그녀가 더 애달프고 더 아쉬웠다.
결국 속도를 내지 않고 왔는데도 법원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지성은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들어 올리고 입술을 앞으로 내밀며 연신 한숨을 쉬어댔다.
도저히 평상시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는 곧 법원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자 의도적으로 진정하기 위해 크게 숨을 쉬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법원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부들부들 떨렸다.
‘진정하자. 안지성.’
‘이게 끝은 아니야. 기다리면 돼.’
지성은 애써 자신의 감정을 다독였다.
‘이게 끝이란 생각은 하지 말자.’
그는 법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번에는 그가 먼저 와 소명을 기다렸는데, 오늘은 소명이 먼저 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랑 빨리 헤어지고 싶어?’
그녀에게 다가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예전 같지 않은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서운했다.
항상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던 그녀였는데.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회사까지 그만두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자신을 벌레 보듯 하며 하루라도 빨리 자신과 헤어지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이, 언뜻 예전의 그가 소명에게 했던 행동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 가슴팍이 아파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너도 그랬니? 나처럼 이렇게 아팠어? 소명아……. 진짜 끝이니? 제발. 다시 나 좀 봐주면 안 돼?’
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막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도 역시 아름다웠다. 소명은 체크무늬의 투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우아하게 서 있었다.
‘나랑 살 때는 운동복에 화장도 하지 않더니……. 오늘 신나니?’
지성은 오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소명이 미친 듯이 그립다가도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기고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애를 썼다.
지성은 소명에게로 걸어가 쓴웃음을 지으며 간신히 입을 뗐다.
“많이 기다렸어?”
소명이 앞에서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아니.”
소명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소명아, 네가 사준 슈트 입었는데…….’
소명은 아예 지성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성은 그런 소명의 행동이 너무 섭섭해서 코끝이 찡해졌다.
왜 자꾸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지성은 오늘 아예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소명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법원 건물 안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지성은 그런 소명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혼 조정하러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지성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곧 판사가 자신들의 의견을 물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이의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두 사람은 오늘부로 바로 남이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졌다.
‘소명아, 소명아, 소명아.’
지성은 가슴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나 한 번만 예전에 보던 그 눈빛으로 봐줄래. 미안해. 아프게 해서…….’
지성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법정 안으로 들어가 소명의 옆자리에 앉았다.
법원 안에는 지성의 변호사와 소명의 변호사 수현이 이미 와 있었다.
판사가 소명과 지성을 보며 말했다.
“안지성, 홍소명 씨? 화해권고결정에 대해 이의 없으시죠? 내용에 동의하시면 그걸로 판결 내리겠습니다.”
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명이 얼른 대답했다.
“네.”
지성은 그런 소명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목이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지성의 변호사가 지성을 자기 팔로 살짝 쳤다.
그러자 이내 지성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두 사람은 이혼 조정으로 이혼이 성립됐습니다.”
판사의 말을 듣자마자 소명은 수현에게 인사를 했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소명 씨, 그동안 맘고생 많으셨어요. 지금부터는 꽃길만 걸으세요.”
“감사해요.”
소명은 예의 바르게 수현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성은 그런 소명의 행동을 지켜보며 자기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소명은 지성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조심해서 가.”
“소명아.”
“갈게.”
“소명아……. 잠시만.”
소명은 지성이 자신을 부르는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지성은 소명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지성은 소명을 따라가서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소명은 귀찮다는 듯이 지성을 올려다보았다.
“소명아, 우리 잠시 얘기 좀 하자. 우리 십 년 세월 이렇게 마무리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차라도 마실까?”
지성은 간절한 눈빛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우리 십 년 세월을 시궁창으로 만든 건 너야. 잊지 마.”
“소명아……. 잘못했어. 나 기다릴게. 제발. 나 여기가 너무 아파. 숨도 못 쉬겠어. 진짜 미안해. 너 아프게 한 거 내가 죽일 놈이야.”
“가. 이젠 싫어. 너무 소름 끼쳐.”
“뭐???”
“네가 싫어서 소름 끼친다고.”
“너 진짜!”
지성은 소명의 말이 너무 충격적이고 모욕적이어서 그 순간 눈이 휙 돌아갔다.
“그래. 그딴 식이라 이거지. 이리 와.”
지성은 강제로 소명의 어깨를 끌어당겨서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다.
“싫어.”
“너도 예전에 좋아했잖아.”
“쓰레기.”
소명은 지성을 무섭게 쏘아보며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았다.
“쓰레기? 그래 쓰레기가 어떤 건지 보여줄게.”
지성이 힘을 주며 소명을 끌어당기자 소명이 발버둥 쳤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지성의 품으로 끌려가려는 찰나 소명에게 다가온 그림자가 지성의 손을 떼어내고 그녀를 자신의 품에 꼭 감싸 안았다.
“도하 씨……. 여긴 어떻게?”
도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명 씨. 괜찮아요?”
“네…….”
괜찮다고 말하는 소명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도하는 그런 소명을 꼭 안아주었다. 소명은 지성 때문에 너무 놀라 가쁜 숨을 쉬어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지성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를 뀌었다.
“쳇,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내 앞에서?”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 씩씩대며 지성이 이죽거리자 도하는 포옹을 풀고 소명을 바라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소명 씨, 나만 믿어요. 걱정하지 마요.”
“도하 씨, 그냥 상종하지 말고 가요. 우리.”
“잠시면 돼요. 이 비서님.”
“네.”
도하가 이 비서를 부르자 이 비서가 저쪽에서 뛰어왔다.
“소명 씨 좀 내 차에 데려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니요. 저 못 가요. 너무 걱정 돼서.”
소명이 도하를 걱정하자 지성이 큰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새끼만 걱정되고 너랑 같이 산 나는 안 보여?”
소명은 슬픈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았다.
“가시죠.”
이 비서는 소명의 팔을 잡고 살짝 당겼다.
하는 수 없이 소명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도하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갔다.
지성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저번에 얻어터진 그 복수의 날이 오늘이라고 생각했다.
‘넌 오늘 죽었어.’
지성은 무서운 눈으로 도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나 회사 그만둔 거 아냐?”
“그만둔 게 아니고 잘린 거겠지.”
“이 새끼가.”
“소명 씨 앞에 다시 얼쩡거리지 마. 이젠 끝났어.”
“그걸 기다렸냐?”
“그래. 애타게 기다렸다.”
“나 소명이 포기 안 해. 네가 소명이 갖고 노는 꼴 더 이상 못 본다고!”
지성이 목청이 찢어질 듯 소리를 질러댔다.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미간에 힘을 주고 씩씩거렸다.
“이제 소명 씨는 내 여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