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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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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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요
2022.12.15.
도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성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소명 씨 행복하게 해줄 거야. 반드시.”
그의 얼굴은 진심이 묻어났다. 지성은 도하의 표정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다.
남자의 촉이 왜 하필 이때 발동하는지 도하의 눈에서 진심을 보고 말았다. 지성은 화가 나 눈에 힘을 주고 도하를 노려보았다.
“뭐야, 이 자식이.”
지성이 분노에 찬 얼굴로 도하에게 거친 주먹을 휘두르자 도하는 여유롭게 지성의 주먹을 피했다.
악에 받친 지성은 이번에는 도하에게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었다.
그때 지성의 뒤에 건장한 남자들이 몰려와서 지성의 양손을 잡았다. 지성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놔, 이거 안 놔. 너 진짜 치사하게. 내가 무섭냐?”
지성은 도하의 경호원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한참을 끌려가면서 지성은 분통이 터져 목이 쉬어라 소리쳤다.
“이거 안 놔. 나 신고할 거야. 가만 안 둬.”
지성이 아무리 소리를 쳐도 경호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를 질질 끌고 갔다.
한참을 끌고 간 뒤에야 내던지듯 지성을 잡은 손을 놓았다.
지성은 팔을 놓은 반동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야, 이 새끼들아!”
경호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지성을 버려두고 돌아갔다.
지성은 억울함과 비참함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쳤다.
“가만 안 둘 거야.”
순간 무서운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혹시 진짜 소명이랑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야? 안 돼. 절대 안 돼. 그러면 내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잖아. 소명아. 제발.’
지성은 소명이 떠난 빈자리의 허탈함으로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 버렸다.
자꾸만 아까 도하의 표정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는 생각하지도 싫은지 고개를 흔들며 괴로워했다.
도하는 얼른 소명이 있는 자신의 차로 달려갔다. 그녀가 걱정돼서 자신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이혼하는 날까지 지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명이 너무 안쓰러웠다.
자신이 더 빨리 와서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앞서 자꾸만 소명에게 미안해졌다.
소명이 아프면 자신은 소명보다 더 아플 것만 같았다.
소명은 도하를 기다리며 창문을 바라보다 멀리서 걸어오는 도하를 보고 급하게 차 문을 열고 그에게로 빠르게 걸어갔다.
차 문을 열고 걸어오는 소명을 도하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둘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명 씨…….”
“도하 씨…….”
도하가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저도요. 이제야, 숨통이 트여요.”
“소명 씨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요.”
“늘 미안했어요. 도하 씨한테 한참 모자란 것 같아서…….”
“그런 말 말아요. 고생했어요.”
그가 자신을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며 고생했다고 하는 말에, 자신을 알아주는 도하의 맘이 고마워 소명은 애써 누르던 울음이 왈칵 차올랐다.
그동안 소명은 살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었다.
그녀가 전부라 믿었던 근본적인 사랑의 가치가 뿌리째 뽑혀 나가고 삶의 의미조차 잃었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가 내 옆에 없었다면 나는 버틸 수 있었을까?’
힘들 때마다 항상 그가 그녀의 곁에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 소명은 그가 정말 고마워서, 그를 너무 사랑해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를 바라보며 갑자기 우는 소명을 보며 당황한 도하가 자기 몸을 숙여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소명을 달랬다.
“소명 씨, 이 좋은 날 왜 울어요. 웃어야지.”
“너무……. 너무.”
소명이 감정이 격해져서 말을 못 하자 도하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소명의 눈물을 닦아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도하 씨, 고마워요. 내 곁에 있어 줘서.”
그녀의 고백에 도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고마워요. 나 받아줘서.”
도하가 소명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을 느낀 소명은 고개를 들어 물기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눈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해요. 이 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소명은 도하를 보며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했다.
그동안 얼마나 자주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제는 참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소명은 도하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
소명의 고백에 도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확하고 올라왔다.
도하는 소명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너무나 강렬하고 뜨거웠다.
그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소명의 보이지 않는 굴레 때문에 수없이 자신을 다독이며 참았던 그였다. 이제는 참고 싶지 않았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어요.”
도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소명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하의 입술이 소명의 입술에 닿았고 너무 놀란 소명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도하의 입술을 느끼며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도하는 그녀를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그녀와의 첫 입맞춤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그의 달콤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 순간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얼마나 참고 참았단 말인가?
도하는 그동안 참았던 마음을 분출하기라도 하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온 입술로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달콤한 입술의 감촉을 느끼며 두 사람은 깊고 뜨겁게 키스를 나눴다.
도하는 이 순간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웠다.
온종일 그녀와 입맞춤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오랜 입맞춤이 끝나고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다 그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소명 씨, 사랑해요.”
소명은 그의 넓은 품에 폭 안겨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런 게 행복인 것 같아요. 너무 행복해요. 당신의 품속.’
그녀는 오늘 지성과 영원히 남남이 된 날 법원 앞에서 도하와 뜨거운 첫 입맞춤을 나눴다.
한편 소명과 차에 있던 이 비서는 갑자기 두 사람의 키스 장면을 목격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다른 곳에 시선을 두려고 노력했지만,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헉. 대표님……. 대단하신데.’
차갑고 냉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던 그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그리고 도하의 대범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예전의 도하에게선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비서는 기분이 좋았다. 도하가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비서는 도하가 소명과 행복하길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제는 어둡고 슬픈 도하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
한편 차 회장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비서실장이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아니, 그 여자 데려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이렇게 함흥차사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사님이 그 여성분께 사람을 붙인 것 같습니다.”
“차 도하……. 어떻게든 그 여자 이번 주 안으로 데려와.”
“네. 회장님.”
비서실장은 차 회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차 회장은 도하가 자기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도하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그 여자를 지키고 있었다.
차 회장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행동이 자신이 은영을 만나고 은영과 결혼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걸 걸었던 것과 똑 닮았다는 생각이…….
그는 다시 그런 상황이 닥쳐와도 또 은영을 택하리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였다. 자기 아들만은 자신이 겪은 고통 없이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다.
표현은 안 했지만, 도하를 사랑했다. 도하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차 회장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
한편 라희는 화장대에 앉아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다.
이제 새로운 일도 구해야 하는데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다.
자꾸만 재윤이 생각만 났다. 생각해 보면 재윤이만큼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는 없었다.
지성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그녀는 직장도 소중한 사람도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라희는 자신을 유일하게 사랑해 준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 보고 싶어.’
라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이 울어서 이제는 울고 싶지 않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아직 화장을 다 마무리 못 했는데 눈물 때문에 화장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때 조용하던 라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이 울리자 어두웠던 라희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재윤이?’
혹시 재윤이 아닐까 하는 기대에 얼른 핸드폰의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핸드폰의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안 그래도 어두웠던 얼굴에 더 그늘이 드리워졌다.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입바람을 후 불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억지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높은음의 중년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 잘 지내?”
엄마의 입에서 딸이 나온 순간 라희는 직감했다.
뭔가 요구사항이 곧 시작되리라는 걸.
“잘 못 지내고 엄마랑 얘기할 기분 아니니까 끊어.”
“라희야, 오랜만에 엄마가 전화했는데 말투가 그게 뭐야?”
“또 돈 달라고?”
“아니 그게. 요즘 내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병원에 좀 가려고.”
‘또 그 똑같은 레퍼토리!’
라희는 엄마의 이런 행동에 진절머리가 났다.
항상 자신이 필요할 때만 전화해서 돈을 요구하는 엄마가 지긋지긋했다.
지금처럼 기분 더러운 날에 딱 맞춰서 전화하는 엄마가 너무 소름 끼쳤다.
“엄마는 나한테 돈 달라는 것 빼고 다른 할 말은 없어?”
자신의 상황이 너무 비참해 라희는 눈물이 났다.
“아이씨, 더러워서. 제 어미가 몸이 아프다는 데 딸년이라는 게 그렇게 싸가지 없게 행동해도 돼?”
라희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예전의 냉정한 모습으로 바로 돌변했다.
“엄마, 지금 내 상황이 어떤 줄이나 알아? 어?”
라희는 엄마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잖아. 내가 그렇게 싫어? 그럼 나는 누가 사랑해주는데?’
이 말이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는 걸 자존심 때문에 참고 또 참았다.
“대기업 다니는 년이 뭐가 모자라서 애미 병원비 하나 못 주냐? 나쁜 년.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다시는 전화 안 한다.”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라희의 엄마는 씩씩대다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 비참해 화장대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어버렸다.
어쩜 그녀에게는 엄마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는지 몰랐다.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채라희.’
라희는 화장을 클렌징 티슈로 쓱쓱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라희가 정신없이 찾아온 곳은 바로 재윤의 집 앞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날이 흐려지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라희는 온몸에 비를 맞으며 묵묵히 재윤을 기다렸다.
오늘 재윤을 보지 못하면 견딜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비에 홀딱 젖어 비 맞은 생쥐 꼴로 그를 기다렸다.
‘나 보기 싫어서 이사 간 건 아니지? 보고 싶어. 재윤아, 나 너무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