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소명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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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소명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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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소명의 진심
2022.12.22.
“여보세요.”
서빈은 쌀쌀맞게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 어제 홍소명 씨 이혼 결정이 났습니다.”
“하아, 네.”
꼴사나운 소명이 결국 이혼했다니, 도하와 그 여자 사이에 이제는 더 이상 꺼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서빈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법원 앞에서 홍소명 씨 전남편이랑 대표님이랑 말다툼과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고, 대표님 경호원들이 남편 끌고 갔고.”
서빈은 들으면 들을수록 황당해서 코웃음을 쳤다.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난리 났네.”
항상 냉정하고 이성적인 도하가 그 여자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게 미친 듯이 질투가 났다.
예전에 자신을 바라봐주던 그의 따뜻한 눈빛이 그리워졌다. 이젠 그 눈빛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그 여자라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꼭 언젠가 다시 그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만 같았다. 서빈은 아직도 그가 냉정하게 돌아선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와 자신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가지지 못하니 더 갖고 싶었다.
서빈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자꾸만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데 법원 앞에서 두 분이…….”
심부름센터 소장이 말을 하다 말고 망설였다.
“아이 진짜 답답해 죽겠네. 빨리 말 못 해?”
“키스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서빈은 뱃속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서빈이 말이 없자 심부름센터 소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가씨? 듣고 계세요?”
“네.”
서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찍어 놓았습니다. 보내드릴까요?”
“장난해?”
“네?”
“눈치 좀 챙겨요.”
서빈은 끊는다는 말도 없이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어버렸다.
자신은 딴 남자와 뜨거운 키스 삼매경에 빠져 도하가 옆에서 지켜보는 줄도 몰랐으면서 도하가 소명과 키스하는 건 도저히 참기가 어려웠다.
서빈은 진짜 너무나 알고 싶었다. 도대체 그 여자의 무엇이 도하를 사로잡은 것인지 궁금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서빈이 화가 나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더 어리지. 더 예쁘지. 더군다나 난 회장 딸이잖아. 근데 왜?”
서빈은 두 사람이 사이가 더 깊어지고 가까워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때 서빈의 방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빈은 갑자기 뛰어가 침대에 누웠다.
오 여사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일을 깎아온 오 여사는 서빈이 누워 있는 걸 보고 눈이 동그래지며 방으로 급하게 들어왔다.
그녀는 테이블에 우선 과일을 올려놓고 서빈에게로 다가갔다.
“서빈아, 몸 안 좋아?”
“아니. 좀 기운이 없네.”
서빈은 오 여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머리 아프고 그런 건 아니고?”
“어.”
오 여사는 오늘따라 서빈의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활달하고 쾌활한 딸이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 여사는 서빈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서 속상하고 실망스러웠지만, 끝까지 자기 딸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서빈이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이제 정신 차렸어.”
“뭐?”
“엄마,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서빈아, 엄마 진짜 너무 속상했어.”
“이젠 다시는 안 그래. 절대. 나 잘한 거 하나도 없는 거 알아.”
오 여사는 요 며칠 서빈에게 너무 냉정했나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부터라도 서빈을 정신 차리게 하고, 하나하나 다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빈아, 세상은 너 혼자 사는 게 아니야. 함께 사는 거지. 누가 못나고 잘나고 없는 거야.”
항상 자기 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몸종 다루듯 하는 서빈을 보면 오 여사는 걱정이 되었다.
자신에게 너무 귀하고 소중해 서빈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 같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편 서빈은 오 여사의 듣기 싫은 잔소리를 꾹꾹 참으며 착한 척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이래도 계속 그럴 거야?’
속으로는 엄청 짜증 나고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알았어. 엄마, 조심할게. 앞으로.”
“고마워. 딸. 과일 먹자.”
오 여사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쟁반을 들고 와서 서빈에게 말했다.
“먹어봐. 맛있어.”
“엄마?”
“응.”
“나 너무 답답해서 그러는 데 밖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와도 돼?”
“바람?”
“응.”
“그럼, 같이 나갈까?”
“아……. 아니.”
“왜? 혼자 가려고?”
“응. 그냥 운전 좀 하고 싶어서.”
“위험하게. 안 돼.”
오 여사는 딸을 믿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엄마, 내 운전 솜씨 알면서. 엄마 타면 내가 너무 천천히 가야 되니까. 오늘 좀 달리고 싶어.”
“엄마는 싫어.”
“그럼, 김 기사님이랑 한 바퀴만 돌고 올게. 제발.”
서빈은 애교 섞인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오 여사에게 애원했다.
“하아.”
오 여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뗐다.
“금방 와야 해.”
“네. 고마워. 엄마.”
오 여사는 김 기사와 같이 나간다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빈은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바로 욕실로 향하며 말했다.
“엄마, 김 기사님한테 말해줘.”
“알았어.”
서빈은 잠깐 바람을 쐬러 가는 복장치고는 화려하게 옷을 입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매에 자부심이 가득했기 때문에 항상 몸매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서빈은 오랜만의 외출이라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서빈이 밖으로 나오자 김 기사가 이미 대기하고 있다가 서빈을 보고 바로 뒷좌석 문을 열었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김 기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데도 서빈은 김 기사를 본체만체하며 인사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김 기사는 하도 많이 당해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어디로 갈까요?”
“우선 출발해요.”
서빈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귀찮다는 듯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기사가 서빈의 저택을 빠져나가고 5분쯤 달리자 서빈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잠깐만요.”
“네?”
“여기 앞에 좀 세워주세요.”
“아……. 네.”
김 기사는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궁금한 표정으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서빈은 김 기사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제 내리세요.”
“네?”
김 기사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자리에 앉아 놀란 눈으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말귀 못 알아들어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내리라고요.”
“왜 그러시는지…….”
서빈은 답답하다는 듯 김 기사를 쏘아보았다.
“내가 전화하면 나 데리러 와요.”
“아니. 아가씨,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저 사모님께 혼나요.”
“그러니까 전화한다잖아. 내려.”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김 기사에게 서빈은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김 기사는 하는 수 없이 운전석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서빈은 뒷좌석에서 내려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았다.
그녀는 밖에 서 있는 김 기사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무서운 속도를 내며 달려갔다.
김 기사는 서빈의 안하무인 행동에 화가 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아오, 저 싸가지. 내가 더러워서 때려치워야지. 저것 때문에 성질 뻗쳐서. 하아.”
김 기사는 화가 나 계속 씩씩거렸다.
서빈은 김 기사를 버리고 온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신나게 운전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오니 이 순간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도하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얼마나 도하를 못 봤는지 그가 너무 그리웠다.
다시 그를 찾아간다면 미친 듯이 화를 내겠지.
뻔히 알면서도, 후폭풍이 있을 거라는 것도 모르지 않음에도 그녀는 그의 집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차를 몰고 있었다.
******
소명은 샤워하고 나와서 베개를 들고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누워서 잠을 자려고 준비하던 엄마는 방으로 들어온 소명을 보고 말했다.
“왜? 안 자고. 피곤할 텐데.”
소명은 엄마를 보며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엄마랑 자려고.”
“그래. 이리로 와. 그럼.”
정희는 소명이 누울 수 있게 조금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소명은 신나 하며 엄마 옆에 누웠다.
“오랜만에 엄마랑 자니까 좋다.”
엄마는 그런 소명이 사랑스러운 듯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입가에는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엄마?”
소명은 잠시 망설이다가 정희를 불렀다.
“응?”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정희는 잠이 오는 듯 스르르 눈을 감고 있다가 소명의 말을 듣고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어?”
“그 사람이 나 많이 도와주고 힘들 때 같이 있어 줬어. 정말 좋은 사람이야.”
갑작스러운 딸의 말에 놀란 엄마는 소명을 바라보며 그녀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근데…… 나, 자신이 없어.”
“왜? 왜 자신이 없어?”
“그 사람은 너무 대단한 사람이고 나는 그 사람에 비해 많이 모자라는 것 같아서.”
그 말을 하는 소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가 뭐가 모자라. 우리 딸이 어때서.”
소명은 엄마 앞에서 솔직해졌다. 엄마에게 어떤 말을 털어놓아도 다 이해해 줄 것만 같았다.
소명의 말을 다 들은 정희는 소명을 한참 바라보았다.
앞으로 딸이 헤쳐 나가야 하는 길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소명의 눈에서 정희는 사랑을 보았다. 예전 지성을 말할 때와 다른 뭔가가 있었다.
정희는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진짜 자기 딸을 위한 길이 어떤 길인지 고민이 되었다.
정희가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소명은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자신을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 속으로 수만 번 그 사람 밀어내려 해도 그게 잘 안됐어. 이런 감정 처음이야.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고 그 사람만 보고 싶어? 엄마, 나 어떡해?”
딸의 진심을 알게 된 정희는 소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소명아, 엄마는 그래. 인생은 한 번뿐이고. 난 네가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사람 떠나보내면 견딜 수 있겠어?”
정희의 말에 소명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이미 소명의 마음에 도하는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 나 그 사람 사랑해.”
정희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딸이 안쓰럽고 걱정이 앞섰지만, 딸을 믿었다.
딸이 인생을 살면서 후회 없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랐다.
“그래. 소명아. 이리 와.”
정희는 소명을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
소명은 엄마에게 털어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을 믿고 응원해줘서 늘 힘을 얻었다.
소명은 갑자기 도하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명의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소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의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어 한 도하였다.
“엄마, 나 전화 좀 받고 올게.”
“응.”
소명이 밖으로 나가자 정희는 눈을 번쩍 떴다. 그녀는 소명의 얘기를 듣고 마음이 심란해졌다.
하지만 정희는 소명에게 티를 내지 않았다.
정희는 소명이 어떤 선택을 해도 자기 딸의 편에 설 거라고 다짐했다.
오늘 밤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빨리 도하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자신의 방으로 얼른 뛰어갔다.
그녀는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명 씨?”
수화기 너머 도하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 지금 어딘 줄 알아요?”
갑작스러운 도하의 질문에 소명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