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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철없는 외동딸 (57/101)


제57화 철없는 외동딸
2023.01.16.



 
서빈은 딱 봐도 수수하고 얌전한 스타일의 옷만 진열된 것을 보고 곧 쇼핑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녀가 딱 별로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서빈은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손으로 오 여사의 옷을 당기며 말했다.


“나가자. 나 싫어. 촌스러워.”

“잠깐만. 이서빈. 기다려.”

“아, 왜? 나 안 입어.”

서빈은 싫다는데 나가지 않고 버티는 오 여사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 오 여사는 정중하게 판매 직원을 보며 말했다.


“제 딸아이 입을 옷 좀 추천해주세요.”

“네, 고객님.”

판매 직원은 친절하고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가 서빈을 바라보며 말하자 서빈은 죄 없는 그녀를 거만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서빈의 눈초리가 너무도 사나워 판매 직원은 깜짝 놀라 잠시 멍하니 서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빈은 마침 잘됐다는 듯 그녀를 보며 말했다.


“왜요? 왜 그렇게 봐요?”

쌀쌀맞은 서빈의 말투에 판매 직원은 멋쩍어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서빈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자 오 여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엄마가 너 이렇게 행동하라고 가르쳤니?”

오 여사는 서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을 했는데 도무지 서빈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빈은 이러다가 또 엄마가 화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할까 봐 갑자기 걱정되었다.

이 상황이 화가 나지만 좀 참아서 엄마의 기분을 대충이라도 맞춰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약한 자 앞에서 강하고 강한 자 앞에서 약해지는 한없이 비굴한 캐릭터였다.


“알았어. 엄마. 화내지 마.”

서빈은 오 여사를 바라보며 콧소리를 냈다.

오 여사는 이곳에서 더 이상 서빈을 혼내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잠시 참기로 했다.

서빈과 오 여사는 판매 여사원이 추천하는 옷을 바라보았다.


“고객님, 이 옷은 네이비 톤으로 깔끔해서 입으시면 더 예쁘시고요. 이 옷은 화이트 톤이라 고객님 피부색에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서빈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 길이부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몸매가 안 드러나잖아. 이 색깔은 뭐야? 너무 칙칙해.’

서빈은 자신의 몸매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옷은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는 엄마가 너무 답답해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끓고 있었다.

서빈은 판매 여사원이 추천해주는 옷들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그런 서빈을 바라보며 오 여사가 입을 열었다.


“서빈아, 입어봐.”

서빈은 오 여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알았어.”

서빈은 탈의실에 들어가서 하얀색 투피스를 입고 나왔다.

서빈이 나오자 오 여사의 입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서빈의 피부색과 너무 잘 어울렸고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를 단아하고 청순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머, 고객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판매 직원은 서빈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빈도 자기 모습이 궁금해서 거울로 가서 투피스를 입은 모습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걸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서빈아, 너무 예쁘다.”

오 여사도 서빈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하고 저것도 같이 포장해 주세요.”

“네, 고객님.”

서빈은 투피스를 벗고 오 여사는 계산을 마친 후 매장을 나왔다.

서빈은 오 여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근데 엄마, 나 왜 옷 사주는 거야?”

오 여사는 서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서빈아, 너도 인제 그만 도하 잊고 다른 사람 만나야지.”

서빈은 그 말을 듣고 가던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서빈아, 아버지가 자리 마련하셨어. 대경 그룹 차남이래.”

“대경 그룹 차남? 오빠가 대경 그룹이랑 비교가 돼? 오빠는 SS 그룹 차기 회장이 될 사람이라고.”

“서빈아, 어차피 안 되는 자리 미련 버리자. 자, 여기 사진 봐봐.”

오 여사는 서빈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사진을 보여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서빈은 냉정한 표정으로 사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너 진짜 왜 이러니? 엄마 속상해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서빈은 너무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녀는 오 여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엄마, 안 죽어.”

“서빈아……. 너 정말.”

서빈은 자신의 맘을 몰라주는 엄마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치밀었다.


“엄마, 어쩜 그렇게 내 맘을 몰라줘?”

“너야말로 정신 차려. 제발.”

서빈은 씩씩대다가 오 여사를 노려본 후에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서빈아, 어디 가?”

오 여사가 빠른 속도로 가버린 서빈을 잡으려고 뛰어갔지만 이미 서빈은 자리를 떠난 뒤였다.

그녀는 자꾸만 엇나가는 딸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졌다.

철없는 외동딸을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리게 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아파질 뿐이었다.

서빈은 오 여사의 눈을 피해 눈앞에 있는 여성복 매장 안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도저히 이 기분으로 엄마와 함께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아빠, 엄마 멋대로 그런 선 자리를 마련한 것이 너무 기분 나빴다.

아직 자신은 도하를 잊지 못했는데……. 한 줄기 남아 있는 희망마저 짓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잠시 여성복 매장을 둘러보며 엄마를 따돌리길 바랐다.

안에서 몰래 밖을 훔쳐보니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매장 앞을 지나갔다.

서빈은 매장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이곳은 서빈이 좋아하는 화려한 스타일의 옷들로 가득했다.

서빈은 가장 마음에 드는 검은 원피스를 골랐다. 등 쪽이 많이 파여 있고 입으면 그녀의 자극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 같아서 잔뜩 기대되었다.


“이거 입어 봐도 되나요?”

“네, 고객님.”

서빈은 거만한 표정으로 탈의실에 들어가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그녀는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 서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거지. 계산이요.”

서빈을 가격표를 제거하고 그 옷을 입고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그녀의 스타일대로 화려한 메이크업으로 화장을 싹 고쳤다.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서빈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만나자. 나 기분 너무 더러워서 스트레스 좀 풀게.”

서빈은 백화점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그때 서빈의 전화가 울렸다. 서빈은 전화 발신인을 확인한 후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가씨?]

“네.”

[차 회장님이 차도하대표님 댁의 짐을 다 빼셨습니다.]

“네? 정말요?”

그 말은 들은 서빈은 기분이 좋아졌다. 도하가 다시 본가로 돌아가면 그 여자와 멀어지니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차도하씨는 본가로 들어갔나요?”

[그게…….]

“왜요?”

[지금 차도하대표님이 그 여자분 집에서 같이 계십니다.]

“뭐라고요? 아! 진짜, 오빠 그 집에서 나오면 다시 연락해요.”

[네, 알겠습니다.]

“하아.”

서빈은 자꾸만 꼬여가는 이 상황이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다. 도하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다정하고 따뜻한 눈빛을 그 여자에게 보낸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서빈이 클럽 룸에서 소연을 기다리는데 멀리서 소연이 다가왔다.


“서빈! 오늘 너무 예쁜데.”

서빈은 소연을 보고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좀 놀자.”

“하아, 술이나 마시자. 놀 기분 아니야.”

소연은 클럽에 오면 노는 데 미치는 서빈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

“도하 오빠 지금 딴 여자랑 같이 있어.”

“너 아직도야? 너 원래 안 그러잖아. 이제 그만해.”

“그만하길 뭘 그만해! 어?”

서빈은 괜한 화를 또 소연에게 버럭 내버렸다.


“참나, 왜 나한테 성질이야. 성질이. 짜증 나게.”

한 성질 하는 소연도 참지 않고 화를 내더니 서빈을 두고 룸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서빈은 쓸쓸하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마셔서 어질어질했다.

서빈은 비틀대며 일어나서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오빠 보러 갈 거야.”

입술을 칠하고 거울을 바라보는데 자기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녀는 눈을 껌뻑이며 제대로 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서빈은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를 눌러 도하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을 보며 해맑게 웃는 듯 보였다.


“오빠, 보고 싶어.”

서빈은 사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서빈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오 여사의 전화였다. 서빈이 전화를 받자 오 여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빈아, 얼른 와. 차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

서빈이 놀라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서빈이 있는 룸으로 들어와 서빈을 팔을 부축하며 말했다.


“아가씨, 가시죠.”

서빈은 자기 팔을 잡은 경호원의 손길이 더럽다는 듯 팔을 뿌리쳤다.


“어디다 함부로 손을 대?”

“아, 죄송합니다.”

경호원이 정중하게 서빈에게 사과하자 서빈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룸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걸음을 비틀대면서도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길 거부했다.

클럽 밖으로 나온 서빈의 옷차림새와 화장을 보고 오 여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 딸이 이런 꼴로 다닌다는 걸 처음 본 오 여사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오 여사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도 너무 잘못 키웠어.’

오 여사는 슬픈 표정으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서빈은 차에 올라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꼭 찢어 놓을 거야. 꼭.”

그녀는 차 안에서 씩씩거리다 이내 잠이 들었다.

******

햇살이 소명의 방 창문을 비추자 도하는 스르르 눈이 떠졌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거린 도하는 소명이 자신의 옆자리에 없다는 걸 깨닫고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하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와 얼른 옷을 입었다.

소명의 서랍장 위에 놓인 탁상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곧 준비를 마치고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도하는 소명의 방을 빠져나왔다. 주방의 식탁 위에는 식사가 차려져 있었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소명이 보이지 않아 도하는 소명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화초에 물을 주는 소명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도하는 한참을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그녀는 사랑스러웠다.

도하는 소명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느꼈는지 소명도 그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눈이 딱 마주치자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잤어요?”

소명이 그를 보며 활기찬 아침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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