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저, 도하 씨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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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저, 도하 씨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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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저, 도하 씨 사랑합니다
2023.01.19.
“네. 저는 잘 잤어요. 소명 씨, 잠 못 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저도 잘 잤어요.”
도하는 소명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회사에 가기가 싫어졌다. 그녀와 함께 오늘 온종일 함께 있고 싶어졌다. 잠시도 그녀와 떨어져 있기 싫었다.
“도하 씨, 식사하시고 회사 출근하세요. 어서 씻고 오세요.”
“네.”
도하는 소명의 말대로 샤워하고 소명이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었다. 그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마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하는 어제 이 비서가 사 온 슈트를 입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슈트를 입고 머리를 살짝 넘긴 도하의 모습은 너무나 멋있었다. 소명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이렇게 달콤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얼어붙었던 가슴에 이렇게 화사한 꽃이 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삶의 아무런 의욕도 없었는데 도하를 만난 후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소명은 그를 사랑해도 너무 사랑했다. 이 감정은 사랑한다는 말로 규정해 버릴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에게 사랑한단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 현실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 놀라운 감정 하나하나가 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했다.
오늘 그와 함께 아침을 먹고 그가 회사에 출근하는 일을 돕는 것도 그녀의 삶에서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았다.
그는 평상시에도 멋있었지만, 그는 오늘따라 더 멋있어서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는 도하를 바라보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도하 씨, 오늘 너무 멋있어요.”
자신이 멋있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도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소명 씨, 최대한 일찍 올게요. 오늘 우리 밖에 나가서 외식할까요?”
그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더 달콤했다.
“네?”
“오늘은 힘들게 뭐 만들지 말아요. 맛있는 거 먹어요. 우리.”
도하는 포옹을 풀고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그녀에게 다정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쿵쿵.
언제까지 이 주책없는 심장이 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웃어주면 어김없이 심장이 요동쳤다.
도하가 출근하고 소명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즐겁게 청소를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입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소명은 재활용 쓰레기를 모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밖의 공기마저 상쾌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소명이 커다란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아파트 현관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그 앞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차 안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소명의 눈이 커졌다. 소명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 하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홍소명 씨?”
‘나를 부른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갔다. 해맑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려 보이는 여자가 소명 앞을 가로막았다.
소명은 자신의 앞에 벌어진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럽고 두려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소명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말을 꺼냈다.
“회장님이 잠시 보기를 원하십니다.”
‘회장님이? 나를?’
소명은 너무 놀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이대로 그와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녀는 이젠 도하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 그녀에게는 도하가 너무 필요했다.
소명이 많이 놀라서 아무 말을 못 하자 그녀 앞에 서 있던 은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 돌아가시죠.”
“아가씨가 상관할 일 아닌데.”
“대표님 명령입니다. 홍소명 씨 경호해야 할 의무가 저에겐 있습니다.”
‘대표님?’
소명은 도하가 자신을 위해 경호원을 고용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도하의 세심함이, 그녀를 생각하는 깊이가 너무나 남달라서 가슴속이 아려왔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생각하는지 알게 되어서 그녀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걸까?’
그의 존재감이 너무 커져서 이제는 그가 자신의 옆에 없다고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마음이 너무나 깊어졌다. 자꾸만 그에게 빠져들었다.
어제 둘이 행복한 밤을 보낸 건 단지 한여름 밤의 꿈이었단 말인가?
소명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가슴을 잠재우기가 어려웠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일이 이리도 빨리 다가오고 말았다.
소명은 너무 두렵고 피하고만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은 회장님을 만나 부딪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은현과 같은 경호팀원들이 밴에서 나와 소명을 둘러싸고 보호했다.
회장님의 명령을 받은 경호원들은 차 안에서 세 명이 더 나오자 몹시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러자 소명이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 만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옷을 좀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소명이 말을 꺼내자 소명을 경호하던 경호원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소명은 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경호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은현은 소명의 눈빛에서 뭔가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녀는 작은 몸이지만 그녀 안에 무언가 단단함이 묻어났다.
“대표님이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은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명을 만류했다.
“잠시 뵙고 올게요.”
은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명을 한참을 바라보다 이윽고 결심이 선 표정으로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저희도 동행하겠습니다. 저희 차로 이동하시죠.”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고맙습니다.”
소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와 현관문을 열었다.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그날이 빨리 오게 될 줄 몰랐다.
소명은 샤워를 하고 정성스럽게 화장했다. 회장님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일 아끼는 옷에 백에 구두도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골랐다. 경호원들을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명은 크게 심호흡하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도하에 비해 많이 모자라지만 그 어떤 여자보다 자신이 도하를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눈을 똑바로 뜨고 일부러라도 당당히 걸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은현이 탄 차로 가기로 합의를 보고 검은색 세단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도하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나서도 한참을 진입로를 달린 후 겨우 정문으로 들어섰고, 그 후에도 더 한참을 들어가고서야 저택의 웅장한 모습이 소명의 눈에 들어왔다.
이윽고 드디어 차가 멈췄고 소명은 은현을 보며 친절하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은현은 소명이 주는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에 한 번 더 놀랐고 그녀의 친절함에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자신도 정신이 없을 텐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그녀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은현은 그동안 소명을 지켜보면서 소명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현은 소명이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랐다.
차에서 내린 소명은 경호원의 안내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소명은 살면서 이렇게 으리으리한 집은 처음이었다.
크기도 엄청나게 컸지만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저택이 거대할수록 소명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한참을 걸어서 어느 문 앞에 경호원이 멈춰 섰고 그는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회장님, 홍소명 씨 오셨습니다.”
“모시게.”
안에서는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명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도하와 많이 닮은 차 회장이 앉아 있었다.
나이에 비해 많이 젊어 보였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소명은 차 회장을 만나기 전에 무서운 이미지를 상상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호감형이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차 회장도 소명을 보고 사진으로 봤던 모습보다 훨씬 어려 보이고 더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단정하고 맑은 이미지를 가졌다.
‘도하가 좋아할 만하네.’
차 회장은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소명은 차 회장 앞쪽으로 걸어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홍소명이라고 합니다.”
“어서 와요. 여기 좀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소명은 자리에 앉아 말없이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 부른 이유는 말 안 해도 다 알고 있죠?”
“…….”
“도하랑 헤어지세요.”
그녀가 예상한 말이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
소명의 죄송하다는 말에 놀란 차 회장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
“저 도하 씨, 많이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건 홍소명 씨가 더 잘 알 텐데. 홍소명 씨, 인제 보니 상당히 뻔뻔한 사람이네요.”
“제가 부족한 건 알지만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혹시 돈 필요한가?”
“네?”
“그런 거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만큼 줄 수 있어.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했지? 회사 하나 차려줄까요?”
소명의 차 회장의 말에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그녀가 한 번이라도 도하의 재산을 탐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자신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는 차 회장에 그녀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울지 않으려고 꾹꾹 눈물을 참으며 소명은 또박또박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저는 돈 따위는 바라지 않습니다. 도하 씨, 사랑합니다. 지금은 도하 씨만 보고 싶습니다.”
“아니, 뻔뻔해도 유분수지.”
차 회장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도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여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몸에서 묻어나는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난 절대 반대야. 당장 헤어져요.”
“회장님, 저 도하 씨한테 정말 잘할 자신 있습니다.”
“그딴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헤어져.”
“…….”
소명은 차 회장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뻔히 나올 줄 예상하고 왔지만, 막상 직접 그의 입으로 듣고 나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도하와 결코 헤어질 수 없었다.
그를 너무 사랑했다. 자신의 진심을 돈을 노린 꽃뱀으로 모욕하는 차 회장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밖에서 몹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서로 싸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얼마 뒤 쾅쾅거리는 요란한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도하가 화가 잔뜩 나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차 회장을 향해 걸어왔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