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도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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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도하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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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도하의 진심
2023.01.30.
도하와 소명은 전망대 앞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전망대까지 안내해주는 직원이 타고 있었다.
소명과 도하를 본 직원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직원의 다정한 인사에 둘의 기분은 더 좋아졌다.
“안녕하세요.”
도하와 소명도 직원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전망대를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올라가면서도 밖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올라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소명은 살짝 무서워져 도하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자 도하가 그녀의 옆으로 바짝 붙어 그녀의 어깨를 자신의 팔로 감싸 안아주었다.
소명은 그를 올려다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하도 소명이 사랑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다정함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났다.
이윽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소명과 도하는 창가 쪽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였다. 이미 해는 져서 밖은 깜깜했다.
그녀가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놀이공원은 불이 꺼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올라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밖이 보이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예 안 보였다. 소명은 놀이공원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갑자기 놀이공원의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소명은 너무 놀라서 잠시 말을 잊고 자신의 눈앞에서 하나둘씩 켜지는 아름다운 조명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고 있었다.
도하는 놀이공원의 야경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깥 아름다운 풍경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
도하도 SD 랜드의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았다.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애가 타고, 주고 또 줘도 다시 또 주고 싶었다. 자신의 모든 걸 다 내어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감정, 이게 사랑이었다.
소명이 즐거워하면 그도 즐거웠다. 다행히 그녀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소명은 한참을 정신없이 야경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몸을 돌려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도하 씨?”
“네?”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그녀는 한껏 기분 좋은 솔 톤으로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소명 씨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요.”
“나중에 여기 꼭 다시 와요.”
“네.”
도하는 뚫어지라 소명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보고 소명도 그를 눈에 담았다.
“소명 씨?”
“네?”
“저…… 소명 씨랑 결혼하고 싶어요.”
도하는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속마음이 툭 하고 튀어나와 버렸다.
“도하 씨…….”
“나중에 청혼은 더 멋지게 할게요.”
“청혼이요?”
그의 말을 듣고 소명은 생각이 많아졌다. 자신이 그와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를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그와 함께 보고 싶었고, 아이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고 도하를 아빠라고 부르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이 놀이공원에 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성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안 생겼던 이유가 혹시 자신 때문인 건지 항상 걱정을 많이 했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을까?’
‘내가 그에게 나중에는 짐이 되면 어떻게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너무 행복해서 자꾸만 두려워졌다.
“도하 씨, 제가 도하 씨 앞길을 막는 건 아닐까요?”
그 말을 목구멍 밖으로 내뱉은 소명의 마음이 찢어졌다.
그녀의 말을 들은 도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소명은 자신의 말 때문에 도하가 속상한 것 같아 덩달아 마음이 아파졌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질수록 자꾸만 두려워졌다.
“소명 씨, 그런 말 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소명 씨가 있어야 행복해요. 소명 씨는 나한테 힘을 주는 사람이에요. 다시는……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요. 또 하면 나 화낼 거예요. 우리 서로 흔들리지 말아요. 우리 둘만 흔들리지 않으면 돼요.”
그는 말도 잘했다. 그가 하는 말은 다 옳은 것 같았다.
불안하다가도 이렇게 말해주는 그의 눈빛을 바라만 봐도 긴장이 풀렸다.
“미안해요.”
“내가 소명 씨 만나고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요? 나 꼭 소명 씨랑 결혼할 거예요. 설마 소명 씨 나랑 실컷 이러고 결혼 안 할 생각 아니죠? 나 책임져요.”
도하의 귀여운 애교에 소명은 또 지고 말았다. 잠깐의 어두운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도하는 소명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아주며 그녀의 윤이 나는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소명은 그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남자를 사랑해요. 저 어쩌면 좋죠? 자꾸만 빠져들어서 헤어 나오질 못하겠어요.’
소명은 도하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다. 오늘 본 야경은 그녀의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가 정말 고마웠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데 자꾸만 자신은 그에게 투정만 부리는 건 아닌지 미안해졌다.
그는 소명을 데리고 전망대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며 맛있는 저녁을 함께했다.
도하는 불안해하는 소명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환경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너무 미안했다.
미안한 만큼 더 잘해서 그녀가 불안하고 힘들지 않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도하는 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만 자신의 옆에 있어 준다면…….
******
한편 라희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곳에 들어갔을 때 여의사는 제일 먼저 뭐가 힘드냐고 동네 언니처럼 다정하게 물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자라온 상황을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과거는 그녀에게 상처였고 자신의 과거를 다른 사람이 알아버린다면 그 사람은 예전에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버리고 떠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앉아서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꽉 쥐며 자신의 힘듦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있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흘깃 여의사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태연하게 자신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기다려주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을.
“오늘 힘들면 내일 다시 오세요. 언제든 라희 씨 말하고 싶을 때 말하면 돼요.”
라희는 순간 너무 놀랐다. 자신은 항상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고 자신이 책잡힐 짓을 하면 어김없이 상대방은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신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있었다.
라희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다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여의사는 고개 숙여 우는 라희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남자가 아닌 여자의 위로를 받은 적이 있었나?
그녀는 혼자였고 외로울 때마다 남자를 찾아다녔다. 남자들에게 몸으로 받는 위로를 위안 삼아 살았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허한 빈 가슴을 아무도 채워주지 못했다.
라희의 등을 토닥여주다가 의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라희 씨, 이제 말해 줄 수 있나요?”
라희는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따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있는 티슈를 꺼내 살짝 그녀 옆에 놓아주었다. 라희는 눈물을 닦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봐 주는 눈빛을 보고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요새 잠도 못 자고…….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만 계속되는데 그 생각이 너무 하기 싫은데 멈춰지지 않아요.”
의사는 말없이 라희의 말을 경청했다.
“제가요……. 저도 아는데요. 한 남자한테 정착을 못 해요. 그래서 계속 다른 남자를 찾아 헤매고 결국 유부남을 사귀고, 그 사람과 관계가 들통 나서 흑…… 회사까지 잘렸어요.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자꾸 억울하고 힘들고…….”
“라희 씨, 어렸을 때 어땠어요?”
“어렸을 때요?”
그녀의 질문에 놀란 라희의 두 눈이 더 동그래졌다.
“얘기해줄래요?”
“하아…….”
“과거 얘기 힘들어요?”
“후. 네.”
“그럼 오늘은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의사는 라희가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서두르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라희는 그녀의 이 여유가 부러웠다.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는데도 고치지 못하는 자신이 오늘 이 병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제발 달라지길 간절히 바랐다.
“저, 여기 잘 온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사람이 이 병원 꼭 가보라고 말해줬거든요.”
“그분 저 알아요.”
“네??”
라희는 의사의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어떻게?”
“재윤 씨가 라희 씨 만약에 오면 꼭 잘 부탁한다고 얘기하고 갔거든요. 어찌나 라희 씨 걱정하던지……. 그 표정이 인상에 남아요. 저랑 상담했었어요. 재윤 씨도.”
“재윤이가…….”
“라희 씨 많이 생각했어요. 라희 씨. 치료하면 고칠 수 있어요. 힘내요.”
그녀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고 라희는 다시 또 가슴이 울컥거렸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인사치레할 때 빼고 이렇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은 진심이었다.
‘재윤아, 정말 고마워. 나 바보 같지? 너 결국 놓쳤잖아.’
병원을 나오는 라희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재윤아, 잘 있니? 넌 마음이 너무 예쁜 사람이어서 진짜 좋은 사람 만나야 해.’
라희는 마음을 다해 그의 행복을 빌었다. 자신이 놓쳐버린,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던 사람이 자신과 헤어져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나 같은 여자 절대 만나면 안 돼. 미안했어. 미안해. 재윤아. 상처만 줘서.’
라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재윤을 생각했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명과 도하는 SD 랜드를 빠져나왔다. 너무 좋았기에 여기서 나가는 것도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소명 씨, 또 보여줄 것 있는데.”
“네?”
“자, 출발합니다.”
도하는 장난스러운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운전을 시작했다.
소명은 어떤 걸 보여준다는 건지 너무 궁금해졌다. 얼마를 달리자 그녀 앞에 해안도로가 쫙 펼쳐졌다.
“바다다.”
소명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소리쳤다. 소명이 좋아하는 것 같아 도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둘은 해변 백사장을 걸었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간질였다.
“파도 소리 너무 좋네요. 도하 씨랑 바닷가 와서 더 좋아요.”
“내가 예쁜 거 보여줄게요. 자. 가요.”
“네?”
도하와 소명은 근처 편의점에 가서 폭죽 세트를 샀다. 폭죽을 사는 두 사람에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다시 백사장으로 걸어갔다.
도하는 소명에게 멋진 폭죽을 보여주고 싶어 엄청 애를 썼다.
그가 땅에 폭죽을 설치하는 모습이 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자신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일렁거렸다.
그는 그녀에게 매 순간 감동이었다. 폭죽을 터트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물이 나오다니 소명은 자신이 주책없는 것 같아서 얼른 눈물을 닦았다.
도하는 소명이 우는지도 모른 채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멀리서 도하가 소명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소명 씨? 자. 이제 봐요.”
도하가 설레는 표정을 짓고 폭죽에 불을 붙였다. 폭죽이 불꽃을 일으키며 타기 시작했다.
도하가 그녀의 곁으로 뛰어와 그녀의 어깨를 자신의 팔로 감싸 안았다.
이윽고 아름다운 불꽃이 하늘에 수를 놓았다.
펑펑-.
소명은 도하가 만들어준 불꽃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예뻐요. 너무…….”
도하와 소명은 아름다운 불꽃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