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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차도하는 내 사위 (63/101)


제63화 차도하는 내 사위
2023.02.06.



 
지성은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너 같은 놈한테는 말도 아까워.”

정희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장모님, 소명이 철없이 연애하고 있다니까요. 제가 소명이 몰라요? 십 년을 살았는데. 상처만 받을 거라고요. 저는 소명이가 너무 걱정돼요.”

“그런 놈이 딴 년을 만나?”

“장모님…….”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우리 소명이 상처 준 건 너야.”

“전 못 갑니다. 장모님 제가 미우시겠지만 저만큼 소명이 사랑해주는 사람 없어요.”

“당장 돌아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정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상처를 준 인간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꼴도 보기 싫었다.

정희는 엄마였다. 딸에게 상처 주고 자신을 찾아와 소명을 못 잊었다고 말하는 뻔뻔함을 도저히 참아줄 아량은 없었다.

정희는 더 독해지려고 마음먹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경찰 부를 거야.”

“장모님 그동안의 정을 봐서라도…….”

“그동안의 정이 있었다면 그런 짓 못 하지. 소명이 세상 행복하대. 그 사람 너무 사랑한대.”

”장모님도 알고 계셨어요?”

지성은 소명이가 도하를 사랑한다고 장모님한테까지 말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소명이 자신이 아닌 차 도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소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울부짖으며 매달리던 여자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둘이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길 간절히 바랐다.


“어머니, 그 끝이 어떻게 될 줄 다 아시잖아요. 저 소명이 용서할 겁니다.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요.”

정희는 지성의 무한 이기주의적 발상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이런 파렴치한 인간에게 내 딸의 소중한 인생을 바쳤다니…….

정희는 부엌으로 뛰어가 굵은소금을 가져다 지성에게 뿌리며 소리쳤다.


“재수 없으니까 얼른 가.”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려도 지성을 눈을 꼭 감고 버텨냈다.

그때 옆집 슈퍼 집 아주머니가 나와 정희를 말리며 말했다.


“아유, 그만해. 이렇게 열 내면 소명 엄마만 더 힘들어. 이런 인간 무시해버려.”

“아줌마!”

정희에게 고분고분하던 지성이 슈퍼 아줌마를 보며 포악하게 화를 냈다. 슈퍼 아줌마는 지성의 눈빛이 너무 따가워 지성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회피했다.


“돌아가.”

정희는 지성을 본체만체하며 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지성은 정희에게 이런 꼴을 당한 자신이 너무나 비참하게 생각됐다.

자신이 바뀌려고 노력하고 소명을 이해하고 기다린다는데, 정희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것이 너무 서글프고 속상했다.

그는 정희가 들어가고 나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리가 너무 저려 일어났다. 다리도 저리고 계속 앉아 있기만 했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는 일어서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서서 소명이 살던 집을 바라보았다.


‘소명아, 너무 보고 싶다.’

그는 온몸이 젖고 그 위에 소금까지 뿌려져 있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고상하고 지적인 장모에게 당해도 아주 지독하게 당한 오늘은 지성에게 황당하고 비참한 날이었다.

운전하면서도 소금이 온몸에 들어가 너무 따끔거렸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 샤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햇살이 따사로이 비추자 소명은 눈을 깜박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도하가 그녀를 꼭 안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소명은 그의 품 안에서, 곤히 자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긴 속눈썹과, 오뚝한 코에 날렵한 콧날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쩜 이렇게 코가 예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살며시 몸을 일으켜 그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살짝 가져다 댔다. 몰래 하는 뽀뽀도 그녀에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도하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하 씨? 지금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음……. 조금만 5분만요.”

도하는 달콤한 이 순간이 지나가는 게 싫은 듯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매력적인 팔 근육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자신을 원하고 안아주고 함께 누워 있는 이 순간이 너무 달콤하게 느껴졌다.

소명은 잠시만 이렇게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그의 넓은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도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더욱더 세게 끌어안았다.

얼마 뒤 자리에서 일어난 소명과 도하는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명이 먼저 씻고 도하가 샤워를 하는데 소명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줌마?”

발신인을 확인한 소명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슈퍼 집 아줌마는 정희와 단짝으로 어렸을 적부터 소명이 자라는 걸 지켜본 고마운 이웃사촌이었다.


[소명아, 잘 지내지?]

“네, 아줌마. 아줌마도 별일 없으시지요?”

[그게…….]

“아줌마, 왜요? 엄마한테 뭔 일 있는 건 아니죠?”

눈치 빠른 소명이 엄마의 소식을 묻자 슈퍼 집 아줌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명아, 너 엄마한테 한번 다녀가야겠다. 엄마 어제 많이 놀랐어.]

“왜요? 무슨 일인데요?”

소명은 갑자기 엄마가 너무 걱정되었다.


[어제 네 남편이 와서 대문 밖에서 막 무릎 꿇고 빌고 난리도 아니었어.]

‘하아, 안 지성.’

소명은 이제 지성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물 뿌리고 소금 뿌리고.]

“엄마가요?”

엄마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 소명이 무슨 잘못을 해도 엄마는 타이르거나 설명을 했지 매를 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엄마에게도 지성의 외도는 그만큼이나 큰 상처였다고 생각하니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평생 소리 한 번 안 지르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니까 나도 엄청나게 놀랐어. 본인은 오죽하겠어. 한 번 들여다봐 보라고. 내가 전화했다고는 하지 말고.]

“아줌마. 감사해요, 정말.”

[아니야, 소명아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해.]

소명은 엄마를 걱정해주는 이웃이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그녀는 엄마가 너무 걱정되었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도하는 소명의 전화를 듣고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명 씨, 당장 가봐야죠.”

“들었어요?”

“얼른 출발하죠.”

“오늘 도하 씨 회사 출근해야 하는 날이잖아요. 저 근처 터미널에 내려주세요.”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일은 우선 전화해보면 돼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도.”

“소명 씨, 가요. 어서.”

자기 일에 이렇게 발 벗고 나서주는 도하가 너무나 고마웠다. 소명과 도하는 곧바로 소명의 친정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소명의 얼굴이 아주 어두워 보여 도하는 걱정이 되었다.

한동안 잠잠하다고 생각한 지성이 소명의 어머니한테까지 찾아갔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그는 계속 차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속도를 높이며 운전에 집중했다. 소명의 친정에 도착한 도하와 소명은 빠른 걸음으로 소명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대문 앞에서 소명이 엄마를 불렀다. 얼마 후 엄마가 문을 열어주려고 나오다가 도하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얼른 문을 열었다.


“소명아,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엄마.”

소명은 엄마를 보자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소명은 정희의 품 안에 파고들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도하는 소명이 슬퍼 보여서 마음이 아파졌다.


“소명아, 왜 울어? 어? 무슨 일이야? 엄마한테 말해봐.”

도하는 소명의 어머니가 소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지금 이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소명아, 뭐가 미안해. 엄마한테 미안할 거 하나도 없어. 울지 마. 어?”

정희는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자기 딸을 바라보며 달래고 있었다.


“그만 울어. 얼굴 다 빨개졌어.”

소명을 달래고 고개를 들어 정희는 도하를 바라보았다.

큰 키의 또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멋진 슈트를 입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희는 이 멋진 남자가 소명을 좋아해 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정희와 눈을 맞추더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차도하라고 합니다.”

정희는 도하를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고 그에게 다가가 도하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정희가 도하를 보고 너무 좋아하자 소명은 정희를 살며시 말렸다.


“어서 와요. 뭐 해. 얼른 들어와. 손님을 세워 놓았네.”

정희는 도하를 바라보며 얼른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며 환대했다. 소명의 어머니가 자신을 반겨주자 도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집에 들어가니 집은 작아도 정리 정돈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정희는 자신의 방으로 도하를 안내했다.


“여기 앉으세요.”

정희가 도하를 보며 앉으라고 말하자 도하가 정희를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 자리는 어머님 앉으세요.”

“그래. 엄마.”

정희는 도하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었다. 어른을 대하는 태도도 바르고 가정교육도 잘 받은, 마음이 바른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정희가 마지못해 웃으며 자리에 앉자 도하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장모님, 절 받으세요.”

 

  
놀란 정희와 소명이 도하를 바라보며 아무 말 못 하는 사이 도하는 정희에게 넙죽 큰절했다.

정희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도하가 소명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정희도 얼른 도하에게 같이 인사를 했다.

소명은 도하가 자신의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르게 행동해주고 배려해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더 사랑스러워졌다.

꿀이 뚝뚝 떨어지게 도하를 바라보는 소명을 보고 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소명아, 네가 행복해 보여서 엄마는 너무 좋다.’

정희는 도하와 인사를 나누더니 벌떡 일어났다.


“엄마, 왜?”

정희가 일어나자 소명이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밥은 먹여서 보내야지.”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도하가 정희가 힘들까 봐 예의 바르게 사양하자 정희는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양하지 마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잖아요.”

정희의 말에 소명의 얼굴이 빨개졌고 도하는 좋아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장모님. 해주시는 거 맛있게 먹겠습니다.”

도하와 정희의 대화에 소명은 번갈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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