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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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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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이 사람이야
2023.02.09.
생각 외로 정희와 도하는 잘 맞는 구석이 있어 보였다.
정희는 도하를 바라보며 살짝 웃더니 소명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 금방 갔다 올게.”
“아니, 그럼 같이 가.”
“아니야. 같이 있어 줘. 어색하잖아, 우리 집 아직은.”
정희는 소명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소명은 도하에게 다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도하 씨, 미안해요. 일해야 하는데. 엄마가 도하 씨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좋아요. 장모님.”
꼬박꼬박 장모님이라고 말하는 도하가 귀여워 소명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너무 좋으신 분 같아요. 소명 씨가 누구 닮았는지 알겠어요.”
“고마워요. 같이 와줘서.”
“저도 고마워요. 어머님께 인사할 기회 줘서.”
도하는 소명의 어머니가 자신을 환대해준 것처럼 자기 가족도 소명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정희가 장을 봐왔는지 주방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고, 소명은 정희를 도우려 주방으로 나갔다.
정희는 재료를 다듬으며 소명에게 말했다.
“얼른 들어가 있어.”
“아니야, 엄마 내가 도와줄게. 같이 해.”
“엄마 혼자 해도 돼. 얼른. 딸 들어가지.”
“엄마……. 괜찮아?”
소명은 어제 일이 걱정돼서 정희를 바라보며 슬쩍 물었다.
“뭐가?”
“다 들었어.”
“뭘?”
“어제 지성이 왔다 간 거.”
“아이고, 전화했어? 아줌마가?”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 엄마도 모른 척해. 아줌마는 엄마 걱정돼서 일부러 나한테 전화한 거지.”
“소명아, 엄마 아무렇지도 않아. 걱정하지 마. 엄마 오늘 기분 너무 최고야. 나 너무 맘에 들어.”
정희는 소명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엄마…….”
“난 너만 행복하면 돼. 엄마가 너 얼굴 보니까 얼굴에 쓰여 있더라. 그 사람 좋아한다고.”
소명은 자신의 편에 서 주는 엄마가 정말 고마웠다. 어려운 형편에 미술을 한다고 해도 엄마는 반대하지 않았고, 이른 나이에 지성과 결혼한다는 것도 이해해주었다.
그랬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언제나 소명이 하고 싶은 일에 절대 반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뒤에서 딸이 바른길을 가도록 기도할 뿐이었다.
딸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스스로 하게 만들고, 행여나 자신이 한 선택에 후회하더라도 딸을 묵묵히 지켜보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소명아, 엄마 걱정하지 마. 알았지? 얼른 들어가.”
정희의 재촉에 소명은 도하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도하는 이 비서와 업무에 대해 전화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명이 들어오고 몇 분 후 전화를 끊은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명 씨, 뭔가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도하의 얼굴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기대하세요. 엄마 요리 솜씨 아시죠?”
“그럼요.”
이윽고 정희가 소명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명아, 나와.”
“응. 가요. 도하 씨.”
“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소명도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식탁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정희는 요리 솜씨도 훌륭했지만, 손도 빨랐다.
“엄마, 이걸 언제 다 했어?”
“어서 와서 앉으세요.”
정희는 도하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네.”
도하와 소명이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식탁에는 토종닭 백숙이 차려져 있고 그 안에 낙지와 전복, 인삼이 들어 있었다.
그 옆에는 정희가 직접 담은 맛있고 시원한 김치와 토종닭 국물에 살짝 데친 부추도 보였다. 여느 한정식 집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우와! 장모님 잘 먹겠습니다.”
“많이 들어요. 자.”
정희는 위생장갑을 끼더니 토종닭의 다리를 손으로 쫙 뜯어서 도하의 앞 접시에 올려주었다.
“아, 잘 먹겠습니다.”
“저기 부추도 들어요. 부추가 남자 몸에 그렇게 좋대요. 초고추장 찍어서 닭이랑 같이 싸서 드셔 봐요.”
정희의 말을 들은 도하는 부추를 자신의 앞 접시에 잔뜩 가져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런 도하의 모습을 본 정희는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그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참 복스럽게 먹기도 하네.’
정희는 자신이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도하가 고맙고 자꾸만 정이 갔다.
“소명 씨도 먹어요.”
거기다가 소명에게 눈을 떼지 않고 배려하는 모습 또한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성격이 소명이 아빠 같아.’
일찍 남편을 여읜 정희가 사랑했던 소명의 아빠는 다정하고 정희만을 바라봐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희는 소명도 소명의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성은 소명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아이처럼 소명이 모든 것을 다 자신을 위해 배려해주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소명보다는 항상 자신 위주였다. 그런데도 소명은 불평 하나 없이 지성을 사랑했다.
그런 딸이 가끔은 안쓰러웠었는데 도하는 지성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매사에 자기 딸을 먼저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정희는 두 사람이 정말 서로의 다른 환경을 잘 극복하면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정희는 진심으로 소명과 도하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신이 봐도 두 사람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도하는 소명의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오랜만에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먹게 해준 그녀의 어머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닭백숙을 맛있게 먹고 죽까지 먹고서야 식사 시간이 끝이 났다.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너무 좋네요.”
“너무 맛있었습니다. 요리 솜씨가 진짜 훌륭하세요.”
“아이고, 뭘. 맛있게 먹었다니까 내가 너무 좋네.”
도하는 정희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우리 딸 잘 부탁해요.”
“네. 진짜 제가 소명 씨한테 잘하겠습니다.”
도하는 주저 없이 박력 있게 정희에게 대답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 딸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이 왜 이렇게 믿음이 가는지. 그런 도하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어.’
소명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귀하디귀한 소중한 딸이었다.
그 후 과일과 차를 마시고 도하는 늦게라도 회사에 들어가야 해서 곧 출발해야 했다.
“도하 씨, 먼저 가세요. 오늘은 엄마랑 자고 내일 올라갈게요.”
“그래요. 그럼. 제가 차 보낼게요, 내일. 그거 타고 와요.”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 있던 정희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소명아, 너 가.”
“왜?”
“그냥 같이 가.”
“싫어. 나 엄마랑 자고 갈래.”
“아니야. 가. 담에 차 서방이랑 같이 와.”
“차 서방? 엄마?”
정희는 소명을 보며 씩 웃었고 자신을 차 서방이라고 부르는 정희를 보고 도하도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소명 씨, 그럼 나중에 같이 와요.”
“그렇게 해. 홍소명.”
“엄마, 괜찮겠어?”
“아이고, 안 괜찮은 일이 뭐가 있어. 조심해서 가.”
소명은 정희를 와락 껴안았다.
포옹을 푼 후 소명이 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갈게.”
“장모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차 서방도 잘 가게.”
도하는 정희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소명이 조수석에 타자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명은 엄마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정희 역시 소명과 도하가 탄 차가 자기 집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소명아, 엄마는 너 믿어.’
정희는 자신이 걱정돼서 한걸음에 달려와 준 딸의 마음이 고마워서 코끝이 찡해졌다.
어제는 지성 때문에 속이 복잡했지만, 도하와 소명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정희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슈퍼 집 아줌마가 전화를 받았다.
“닭 삶았어. 얼른 와.”
“그래. 알았어.”
정희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구가 고마워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
지성이 집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던 정 여사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지성아, 네 꼴이 왜 그래?”
놀란 정 여사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지성에게 다가갔다.
지성은 온몸이 젖어 있었고 옷 사이사이에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정 여사는 지성의 옷을 만져 보고는 언짢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거 설마, 소금이니?”
“아……. 아니야. 나 좀 씻을게.”
정 여사의 얼굴은 순간 무섭게 굳어버렸다.
“누구야? 누가 그런 거야? 소명이야?”
“아니야. 그런 거!”
가만히 있던 지성은 갑자기 화가 폭발해 정 여사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지성아, 엄마는 속상해서 그렇지.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나 씻을게. 엄마 자꾸 그러면 나 이제 엄마도 안 볼 거야.”
지성은 몹시 화가 난 얼굴로 이층으로 걸어 올라가 버렸다.
정 여사는 지성의 꼴을 보고 너무 놀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소명을 찾아가 따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소명이가? 왜 우리 아들이 어때서? 왜 못 잊는 거야. 저 미련한 놈.’
정 여사는 소명을 놓친 건 안타깝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면 그냥 하루라도 빨리 잊어버리고 지성이 정신 차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정신을 못 차리고 폐인처럼 행동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정 여사는 아들을 이대로 더 이상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올라가니 지성은 샤워를 끝내고 막 욕실에서 걸어 나오려던 참이었다.
“지성아, 얘기 좀 하자.”
정 여사가 지성을 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러자 지성은 인상을 팍 쓰며 정 여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침대 안으로 기어 올라갔다.
“얘기 좀 하재도.”
“피곤해. 엄마 나가면서 불 좀 꺼줘.”
“지성아, 어차피 소명이는 네가 마음에 없다니까.”
정 여사의 말을 들은 지성은 벌떡 일어나 눈에 힘을 주며 정 여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나 소명이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미련 남느니 차라리 매달릴래. 나 소명이 없으면 진짜 안 된다고!”
지성은 정 여사를 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정 여사는 가슴이 너무 답답해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퍽퍽 내리쳤다.
“아이고, 답답해. 미쳐버리겠네.”
오늘따라 철없는 아들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다. 지성의 얼굴이 조금 빨간 것 같아 정 여사는 지성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마가 불덩이였다.
“지성아, 너 열난다.”
지성은 정 여사의 손길이 귀찮다는 듯 손을 치우며 말했다.
“아, 괜찮아. 몸이 좀 안 좋아. 엄마 나가.”
정 여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해열제를 가져와 지성에게 먹였다. 지성은 몸이 안 좋은지 약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 앓았다.
앓는 지성의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으며 아들을 간호하는 정 여사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했다.
철없는 아들이 불쌍하기도 했고 아들이 왜 그런 몹쓸 짓을 한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정 여사는 자꾸만 가슴이 답답해졌다.
******
한편 서빈은 숍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에 백화점에서 산 하얀색 투피스를 입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콘셉트는 청순이었다. 웨이브 진 머리도 풀고 화장도 은은하고 지적인 스타일로 하고, 귀걸이와 목걸이는 티가 나지 않으면서도 그녀의 외모를 살려줄 정도로만 착용했다.
전체적으로 바뀐 이미지에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해서 서빈도 거울을 계속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빈을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그녀를 보고 콧소리를 내며 추켜세웠다.
“고객님, 진짜 너무 예쁘세요. 머리 푸시니까 진짜 잘 어울리시네요.”
서빈은 자신에게 아부를 떠는 디자이너를 보고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서빈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 여사가 디자이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 된 거지요?”
“네. 사모님.”
“서빈아, 가자. 약속 시간 늦겠다.”
오 여사의 이야기를 들은 서빈은 올라갔던 입꼬리가 다시 쭉 내려갔다.
그녀의 얼굴은 급히 어두워졌다.
‘진짜 가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