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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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불길한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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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불길한 예감
2023.02.16.
서빈이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오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김 기사의 전화였다.
서빈은 눈에 잔뜩 힘을 주며 전화를 받았다.
[아가씨! 사모님이 걱정하십니다. 전화 계속해도 안 받으신다고. 어디세요?]
“하아, 걱정하지 마시라고 해요. 알아서 들어갈 거니까.”
[모시러 가겠습니다.]
“됐어요.”
서빈은 전화를 냉정하게 끊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선 지금은 집에 들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답답한 심정을 풀고 싶었다. 서빈은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네, 아가씨.]
“우선 홍소명 전 남편이랑 불륜녀 뒷조사해 주고 자료는 차곡차곡 모아놔요.”
[네?]
“한 방에 터트릴 수 있게. 홍소명도 조사하고. 뭐 약점 같은 거 찾아내면 더 좋고.”
[네. 알겠습니다.]
“빨리 알죠? 또 굼뜨게 행동했다간 알아서 해요.”
서빈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녀의 눈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말했지. 내가 못 가지면 아무도 못 갖는다고!”
서빈은 무서운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씩씩거렸다. 마침 그때 오 여사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서빈아, 어디야? 도대체?]
“아, 그냥 답답해서. 좀 걸었어.”
서빈은 자신이 정훈에게 보기 좋게 차인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졌다.
오 여사에게 자기 입으로 말하려니 너무 수치스러웠다.
[얼른 와. 집으로. 김 기사님 가시라고 할까?]
“아니, 택시 탈게.”
서빈은 엄마가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무 말을 안 해 더 짜증이 났다.
******
김 여사가 한창 오 여사와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때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어, 정훈이 전화네요. 잠시만요.”
김 여사는 오 여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정훈아. 왜 벌써 나왔어? 어……? 어. 알았어.]
전화를 끊은 김 여사가 오 여사를 보며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저, 우리 정훈이가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왔다고 미안하다고 하네요.”
뭔가 기분이 찝찝했지만 오 여사는 더 이상 김 여사에게 묻지 않았다. 속으로만 서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오 여사는 정훈이 자기 딸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니 기분은 좋지 않았다.
김 여사와 식사를 끝내고 서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도통 받지 않았다.
그러다 간신히 통화가 된 것이었다. 서빈에게 더 이상 맞선 이야기는 묻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빈이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는.
오 여사는 서빈이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건지 싶어 몹시 걱정되었다.
이제 서빈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꼴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오 여사는 정훈을 놓친 일이 너무 아쉽게 느껴졌다. 속으로 진짜 정훈이 회사 일이 바빠서 나중에라도 서빈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한편 도하는 갑자기 찾아온 서빈 때문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소명과 같이 있고 싶어서 일에 집중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보고 싶어 차를 모는 속도가 빨라졌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설레는 감정을 주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갑자기 서빈이 생각났다. 점점 무서워지는 서빈의 집착이 도를 지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하는 서빈이 지금이라도 빨리 정신을 차리고 자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인제 그만 서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혹여 서빈이 저번처럼 소명을 귀찮게 할까 봐 염려도 되었다.
도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명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소명이 보이지 않았다.
“소명 씨?”
도하는 소명을 찾아 이리저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서재 방을 열었는데 소명이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도하는 그녀를 보고 싱긋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으려다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와 책에 눈이 갔다.
‘가드닝 인테리어?’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부지런한 소명의 모습이 도하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명이 너무 곤히 자서 그녀를 일으키면 깰 것 같아 잠시 고민에 빠진 도하는 그녀의 모습을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그녀의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곤히 자는 소명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하얀 얼굴에 예쁜 이목구비, 그녀의 긴 속눈썹이 그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바라만 봐도 좋았다. 그는 따뜻한 미소로 소명을 바라보다 그녀를 살며시 껴안고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소명은 자다가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어머, 도하 씨? 언제 왔어요?”
“방금요.”
“어……? 나 내려줘요. 잠 거의 다 깼어요.”
“피곤했어요?”
“그랬나 봐요.”
소명은 도하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럼 좀 자야죠.”
도하는 소명을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침실로 데려갔다. 서재와 침실이 거리가 꽤 있는데도 도하는 힘든 기색이 없었다.
소명은 도하의 얼굴을 꼭 안았다. 그가 이렇게 안아주는 게 너무 행복했다.
이제 그녀는 한 남자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는 여자 홍소명이었다.
그녀는 그 앞에서는 여자가 됐다.
도하가 침대로 가 그녀를 눕히고 일어서려 하자 소명이 다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가지 마요.”
도하는 아직 슈트도 벗지 않은 상태여서 그녀를 보며 살짝 미소 지은 후에 그의 재킷을 벗었다.
재킷을 벗자 딱 붙는 그의 와이셔츠 탓에 그의 상체 근육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소명은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두근거렸다.
그를 보면 자꾸만 가슴이 설레었다.
자신이 이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다. 도하의 몸매를 흐뭇해하며 감상하다니.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이리도 빛나도 될까?
언제까지 이 남자를 보면 심장이 뛸까?
소명은 다시 도하의 목을 끌어당겨 그를 꼭 안았다. 그녀의 힘이 생각보다 세서 그녀에게 끌려간 도하는 깜짝 놀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어……. 어……. 소명 씨 힘센데요.”
“그럼요. 제가 도하 씨 이길지도 몰라요.”
소명은 그를 안은 팔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이러고 내일 아침까지 있고 싶다.”
소명의 말에 도하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원래 이렇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지?’
그녀는 힘든 일로 웃음을 잃었지만, 도하를 만난 이후로 서서히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살아났다.
소명의 트레이드마크인 긍정적인 성격은 도하를 기쁘게도 행복하게도 했다.
“소명 씨……. 나…….”
“왜요?”
“옷 좀 갈아입고 좀 씻고 올게요.”
“싫어요. 5분만 더요.”
“그래요. 그럼 5분 줄게요.”
도하는 소명의 허리를 감싸 그녀를 더 꼭 안았다.
“진짜 너무 좋다.”
그냥 안고 있는 것만으로 지금 이 공간에 그녀와 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는 더 이상 오늘 밤, 잠을 못 자서 괴로워하고, 눈 감으면 안 좋은 기억이 생각나서 미쳐 버릴 것 같은 우울한 날들은 사라졌다.
소명과 누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어느새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개운했다. 그가 앓고 있던 불면증도 그녀가 치료해 준 거나 다름없었다.
소명이 도하를 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소명이 말했다.
“4분 지났는데 봐줄게요. 이제 씻고 옷 갈아입어요.”
“싫어요. 난 1분은 다른 걸로 채울래요.”
“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갑자기 진지해지더니 그녀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살며시 갖다 대고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 거침없이 진하고 황홀하고 부드러운 키스를 시작했다.
그의 입맞춤을 느끼며 소명은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분이 한참 지났는데도 두 사람의 키스는 계속되었다.
도하가 씻고 나오자 소명이 도하의 저녁상을 차려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명 씨, 같이 해요. 이런 건.”
항상 도하는 소명이 조금이라도 힘든 건 못 봤다. 자신이 대신해 주고 싶어 했다. 지성과 도하는 너무도 달랐다.
도하가 가끔 자신에게 해주는 배려가 너무도 낯설었다. 하지만 고맙고 행복했다.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도하는 설거지를 하고 둘은 베란다로 가서 차를 마셨다.
야경을 보며 소명이 말했다.
“저 이 집 내놓으려고요.”
“네?”
도하는 놀라서 소명을 바라보았다.
“이 집 내놓고 그 돈으로 사무실 하나 차리고 싶어요.”
“사무실이요?”
“제가 가드닝에 취미가 있으니까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요. 인테리어는 원래 제 전공이니까 그걸 같이 하면서 가드닝 원하시는 분들 도와드리고 싶어서요. 저 너무 오래 쉰 것 같아요.”
“그래요. 소명 씨가 하고 싶은 일 하면 나도 좋아요.”
“집은 좀 작은 집으로 옮길 건데 괜찮죠?”
“네?”
“우리 이사 가는 거요.”
“작으면 어때요. 저 소명 씨 집은 제가 구해줄까요?”
도하가 소명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막상 큰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으로 이사 가면 소명이 힘들 것 같아 물어봤지만, 그녀의 성격상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섣불리 사 주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도하 씨, 저 그런 거 싫어요. 제 힘으로 하고 싶어요. 도하 씨는 제 옆에서 응원해주세요. 꼭 붙어서.”
소명이 도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그녀의 웃음을 보니 그도 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자기 일을 사랑했다. 가드닝을 하면 정말 행복해졌다.
시들시들한 화초가 그녀의 손에 들어가면 파릇파릇해졌다. 그녀의 손에 마치 마법의 물약이라도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드닝을 한 곳에서 다른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것에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
소명은 이혼하고 다시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하루하루가 그녀에게는 아깝고 소중한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소명과 달콤한 모닝 뽀뽀를 마치고 도하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비서는 밖에 나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도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도하가 이 비서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이 비서님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어서 타시죠.”
“네.”
도하가 차에 타자 이 비서는 얼른 조수석에 탔다. 그리고 도하가 탄 차는 서서히 속도를 내며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저……. 대표님, 어제 너무 죄송했습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무슨 전화요?”
“보안팀에서. 서빈 아가씨 얼굴을 아니까……. 막무가내로 대표님과 약속이 있다고 들여보내 달라고 해서 일단 들어가셨다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밤에 찾아오셨다고. 제가 퇴근을 안 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이 비서님, 당연히 퇴근하셔야죠. 항상 저 땜에 밤낮이 없으신데. 다음부터 서빈이 절대 출입 금지라고만 말씀해 주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이 비서는 서빈이 회사까지 찾아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서빈의 집요함의 끝은 어디인지 이 비서는 자신이 겪지 않았지만 소름이 끼쳤다.
헤어진 사이인데도 밤늦게 회사까지 찾아오다니! 서빈의 행동에 점점 불안함을 느꼈다.
혹시 도하에게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이 비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도하를 보필하리라 다짐했다.
“대표님, 이제 아무리 뭐라 하셔도 저 퇴근 먼저 안 합니다.”
이 비서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았어요. 저 어제 일 못해서 오늘 밤샐지도 모르는데 같이 새요. 그럼.”
“네?”
이 비서가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자 도하가 이 비서를 보며 씩 웃었다.
‘내가 아는 차 도하 맞아? 실없는 농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