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언니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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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언니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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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언니의 충고
2023.03.02.
지성은 서빈과 만나기 위해 카페에 앉아 있었다. 멀리서 서빈이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일반인의 외모는 아니었다. 어디를 가나 튈 것 같은 화려한 외모와 옷차림을 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지성을 바라보며 걸어 들어왔다.
서빈은 당당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당당하게 지성을 보며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보시자는 용건이?”
“홍소명 씨랑 도하 오빠 갈라놓자고요. SD 랜드 완공된 건 아시죠?”
“음……. 네.”
“준공식 때 도하 오빠가 아무래도 홍소명 씨 데리고 갈 것 같아요. 임원진들에도 알리고 회장님이랑 사모님한테 인사시키려는 속셈이겠죠.”
“하아…….”
서빈의 입에서 차 도하의 이야기를 들은 지성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갑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지성 씨가 준공식장 가서 소명 씨 데리고 나가요.”
“네?”
“그러면 도하 오빠랑 홍소명 씨 그냥 끝나는 거 아닌가요? 딱이죠?”
“소명이가 나를 따라 나올까요?”
지성은 서빈을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강제로 잡고 나오면 되잖아요.”
지성은 서빈을 한참 바라보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그래야 하죠? 그건 소명이 얼굴에 먹칠하는 거잖아요. 나는 소명이 사랑해요. 소명이가 곤란해지는 거 싫어요.”
감상에 빠진 듯한 지성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 서빈은 코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무슨 멜로드라마 찍으세요? 어떻게든 두 사람 찢어놓으려면 방법을 마련해야지요.”
“소명이 힘들게 하면서까지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당신 뭐야? 당신이 이러면 그 여자가 좋다고 돌아올까요? 그 여자 성격도 보통이 아니던데.”
“우리 소명이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아니 지성 씨, 그러지 말고 우리 서로 돕자는데 뭐가 그리 어려워요?”
“난 당신이랑 달라.”
“예??”
서빈은 이 눈치코치 없는 아저씨를 괜히 불렀다는 후회가 급작스럽게 밀려왔다.
“당신은 차 도하 망신 주면서까지 찢어 놓고 싶어 하잖아. 당신은 그냥 복수가 하고 싶은 거고 난 사랑이야. 그래서 온갖 비난과 수모 다 참으면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라고.”
“아저씨, 정신 차려요. 그 둘 엄청 좋아가지고 난리 났다고요. 그렇게 사랑 타령하다간 다 놓친다고요.”
“그쪽이나 괜히 허튼짓하지 말고 정신 차려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지성은 서빈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만나자더니 하는 이야기가 준공식에 가서 소명을 데리고 나오라는 것이라니 너무 기가 막혔다.
지성은 도하를 골탕 먹이면 먹였지 절대 소명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소명은 도하와 오래 못 간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소명을 기다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이 여자가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 와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한테 연락하지 마요.”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 안 했어요.”
“그렇게 맘보 쓰면 나중에 큰일 나요. 정신 좀 차려요. 정정당당해야지 말이야.”
서빈은 지성의 훈계에 확 열이 받았다.
지성이 서빈을 혼내듯 충고하자 서빈은 어이가 없어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생각을 아주 잘못하고 있잖아.”
“그러는 당신은 얼마나 깨끗해서 이혼까지 당하셨나?”
“아니, 나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안다고 떠드는 거지? 기분 나쁘게.”
지성은 서빈을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 소명이 귀찮게 하지 마. 당신 소명이 괴롭히면 가만 안 둬.”
지성은 서빈에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경고를 날렸다.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지성에 놀라 서빈은 잠시 몸을 움츠렸다.
지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서빈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와, 완전 또라이네.”
서빈은 지성이 사랑을 운운하며 소명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는 상황이 너무 황당했다.
“아, 거기서 깽판 치면 딱인데.”
첫 번째 계획이 어긋나자 굉장히 초조해졌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도하와 소명을 곤란하게 해야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서빈은 어디를 가나 공주 취급을 받았었는데 자신을 이렇게 막 대하는 사람에게 무시당하자 더 오기가 발동했다.
서빈은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내가 너희 둘 두 눈에서 눈물 나게 해줄게.’
지성은 서빈을 만나고 나서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그 여자의 무서운 눈빛을 보니 소명이 너무 걱정되었다. 그 여자에게 경고하고 나오긴 했지만, 너무 찝찝했다.
지성은 얼른 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 번호를 차단했는지 신호가 바로 넘어가면서 전화가 끊어졌다.
“하아…… 소명아, 전화 좀 받아라.”
지성은 이렇게까지 망가진 자신과 소명의 인생을 생각하니 너무 허탈해졌다. 소명이 준공식장에 가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소명아, 제발!”
******
소명은 준공식장에 앉아서 행사를 구경했다. 도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멋진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떨리고 두려운 자리에 와 있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그가 앉아 있었다.
소명은 기쁜 마음으로 더 집중했다. 준공식 전 기념 공연을 보고 곧 개회식이 선언되었다.
그 후 SD랜드를 위해 힘써준 공로자들의 표창과 감사패 수여식이 있었는데 차 회장이 나와 인자한 얼굴로 행사를 진행했다.
소명은 차 회장의 얼굴을 보니 순간 또 긴장되어서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도하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다짐하며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 후 임원진들과 차 회장, 도하가 나와 테이프 커팅을 하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무대 위에 올라와서 테이프를 커팅하기 전 도하의 모습을 소명은 두 눈에 가득 담았다.
그가 얼마나 SD 랜드에 애정을 쏟는지 알고 있기에 그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도하가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해하고 있는지를.
소명은 도하가 테이프 커팅을 하는 순간 그를 바라보며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그가 한 노력의 결실을 보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가 왜 자신을 준공식에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소중한 순간을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일 거라 짐작했다.
도하는 무대에 올라가 소명을 찾기 시작했다. 멀리 소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멀리서도 빛이 났다.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졌다.
그러다 도하의 눈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이 회장 내외와 서빈이 눈에 들어왔다.
서빈을 보는 순간 불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특유의 거만한 표정으로 준공식 행사를 관람하고 있었다.
서빈을 쳐다보는 순간 그녀와 눈을 딱 마주친 도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그런 그를 본 서빈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아주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를 본 도하의 마음에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빨리 식이 끝나고 소명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준공식 공식 행사가 끝나고 준공식장에 참석한 내 외빈들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도하는 여기저기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명에게 빨리 가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장소를 이동해서 식사하는 곳에 도착한 소명은 우선 식탁에 자리를 잡고 도하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 물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멀리서 서빈이 그녀에게 걸어왔다.
소명은 놀라 마시던 컵을 바로 테이블에 내려놓고 서빈을 바라보았다.
서빈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 대신 오늘은 격식에 맞는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소명은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빈을 바라보았다.
서빈은 앉는다는 말도 없이 소명을 쏘아보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소명을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큰 망신을 당하려고 여기를 나타나?”
소명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이 너무 뻔뻔한데.”
“뭐라고? 착한 척 순수한 척하면서 속에는 욕심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는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마음대로 생각해요. 그만 가줄래요. 당신이랑 말 섞고 싶지 않아요.”
“허……. 네가 무슨 수로 도하 오빠 꼬신 건지 모르겠지만 넌 딱 거기까지야. 네 주제에 어디 도하 오빠를 넘봐. 내가 너희 둘 반드시 갈라놓을 거야.”
소명은 서빈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서빈은 이 여자에게서 나오는 카리스마에 더 화가 났다.
자신 앞에서 놀라지도 않았고, 자신이 자극해도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진정이 안 됐다.
서빈은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너만 안 나타났으면 도하 오빠는 나 용서했을 거야.”
서빈의 말에 갑자기 소명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걸 말이라고 해?”
소명의 언성이 높아지자 서빈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가 도하 씨 배신하고 도하 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하고 그딴 소리를 지껄여? 나 같으면 도하 씨한테 미안해서라도 이 자리 안 나타나. 언제까지 자기만 알고 그렇게 살래? 너보다 먼저 태어난 언니로서 충고하는데 너 진짜 정신 좀 차려라.”
“뭐?”
서빈은 너무 화가 나 눈에 힘이 들어가고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안 일어날 거면 내가 먼저 일어날게.”
소명은 서빈을 무섭게 쏘아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명이 일어나 걸어가는데 서빈은 이대로 소명을 보냈다간 오늘 저녁에 억울해서 잠도 자지 못할 것만 같았다.
소명에게 한 방 먹은 것 같아 짜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씩씩거리다가 소명을 따라 일어섰다. 소명이 걸어간 뒤에 와인 잔을 나르는 웨이트리스가 눈에 보였다. 그녀를 본 서빈의 입가에 교활한 미소가 번졌다.
서빈은 빠른 걸음으로 웨이트리스에게 걸어가는 척하며 그녀를 자기 몸으로 밀었다.
서빈의 힘 때문에 순간 중심을 잃은 웨이트리스가 소명을 향해 넘어지고 말았다.
그중 하나의 와인 잔이 소명의 블라우스에 쏟아졌고 소명과 웨이트리스는 바닥에 쾅 하고 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하며 서빈은 소명과 웨이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닥에 넘어진 소명은 몸을 일으켜 웨이트리스에게 가서 그녀를 일으켜주었다.
웨이트리스는 울기 직전에 당황한 표정으로 소명의 얼굴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며 간신히 말을 꺼냈다.
“너무 죄송합니다. 아……. 옷 어떡해요?”
웨이트리스는 거의 울기 직전으로 소명의 옷을 보며 괴로워했다.
소명은 웨이트리스를 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
“네. 전 괜찮습니다.”
웨이트리스가 급하게 깨진 와인 잔을 치우자 소명도 그녀를 도와 와인 잔을 줍기 시작했다.
“제가 할게요. 그리고 세탁하시고 알려주시면 세탁비 제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네?”
소명은 웨이트리스를 보고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 소명을 멀리서 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