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후회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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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후회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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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후회 없는 선택
2023.03.09.
맞잡은 소명의 손이 조금씩 떨리자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표정을 애써 감추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졌다. 그녀는 그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지만 소명의 마음이 지금 어떨지 짐작한 도하는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아 쥐었다.
자기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아주자 그녀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소리 없는 응원에 소명은 힘이 났다. 그가 옆에만 있어 준다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었다.
은영이 앞장서고 그 뒤를 도하와 소명이 따라왔다.
차 회장은 도하와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은영이 테이블로 걸어가서 임원들과 초대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식사가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은영은 상냥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뒤에 도하와 소명이 따라오자 임원진들의 모든 시선이 순간 도하와 소명으로 향했다.
도하는 임원들과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소명을 소개했다.
“이분은 제가 지금 교제하고 있는 홍소명 씨입니다.”
도하가 소명을 소개하자 소명은 차분한 목소리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홍소명이라고 합니다.”
여러 임원은 소명을 바라보며 인사를 했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 회장도 소명을 바라보았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외모에 차분한 인상을 풍기는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회장 곧 도하 결혼하겠네. 축하해.”
이 회장은 비록 서빈과 도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도하가 멋진 배필을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차 회장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차 회장은 이 회장의 축하 인사를 받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차 회장이 다음에 할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적을 깨고 차 회장을 드디어 입을 뗐다.
“고맙네.”
오 여사는 도하의 옆에 서 있는 소명을 보며 생각했다.
첫눈에 봐도 호감형 얼굴에 아름다운 이목구비에 또박또박 잘 말하고 인사를 할 때 예의 바른 것으로 보아 가정교육도 잘 받고 부모님께 사랑도 듬뿍 받은 사람 같았다.
도하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예전 서빈을 바라보던 눈빛과 사뭇 달랐다.
오 여사는 그런 도하의 모습을 보니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고 서빈이 오늘 일찍 간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을 차마 축하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오 여사는 그 자리에서 침묵을 지켰다.
차 회장 역시 소명을 바라볼 뿐 그 자리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소명은 차 회장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자신을 바라보던 차가운 눈빛은 보이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나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은영은 소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짓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소명 씨, 많이 먹어요.”
“네.”
소명은 은영이 자신을 만나자마자 편안하게 대해주어서 좋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어머님도 많이 잡수세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그럼.”
소명이 어머니라고 하자 은영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은 반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도하 역시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소명을 이렇게 살갑게 대해주니 도하는 은영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차 회장은 애써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었지만, 식사하면서도 흘끔흘끔 소명을 훔쳐보았다.
소명은 기본적으로 예의 바르고 심성도 고와 보였다. 무엇보다 자기 아들이 소명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 누가 봐도 소명을 사랑한다고 다 알아챌 정도로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차 회장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명 옆에서 앉아서 대놓고 소명을 챙기는 은영의 표정도 엄청나게 소명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식사 시간이 끝나고 폐회와 사진 촬영으로 준공식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준공식의 스타는 단연 소명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에 받았다.
준공식이 마무리되고 도하는 소명에 말했다.
“우리 인사하고 갈까요?”
“네.”
도하와 소명은 돌아갈 준비를 하는 차 회장과 은영에게 다가갔다. 차 회장은 차에 타려다 말고 도하와 소명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차 회장은 소명을 바라보았다. 소명은 차 회장을 바라보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
차 회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소명을 바라보았다. 소명은 차 회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부딪쳐야 할 부분이고 차 회장은 도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열리지 않는 문이라도 진심으로 두드려보고 싶었다.
그 문이 열리기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견딜 수 있었다.
소명은 진심으로 차 회장을 쳐다보았다.
차 회장도 소명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소명 양도 조심히 들어가요.”
차 회장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소명도 놀랐지만, 옆에 서 있던 은영과 도하는 더 많이 놀라 차 회장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소명은 자기 인사를 받아준 차 회장이 정말 고마워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일렁거렸지만 울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은영이 차에 타면서 도하와 소명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소명아, 조심히 가고 오늘 고생 많았어.”
“조심히 들어가세요.”
소명이 인사를 하자 은영은 소명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곧이어 차 회장이 차에 올라타자 도하가 차 회장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준공식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다.”
차 회장은 기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지.”
“네.”
차 회장이 탄 차가 서서히 출발하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도하도 아버지가 소명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연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아버지도 분명 소명을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 안 하는 소명을 바라본 도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명의 눈 밑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소명 씨? 왜 울어요.”
도하는 소명에게 다가가 그녀를 달래며 그의 넓은 품에 그녀를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
“너무 좋아서……. 꿈만 같아요. 여기 오기 진짜 힘들었는데 어머님도 뵙고 아버님도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신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온종일 맘 졸이고 힘들었을 소명이 정말 고맙고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아 도하 역시 뭉클해졌다.
“오늘 너무 고생했어요.”
“도하 씨가 고생했지요. 준공식 하느라.”
도하는 소명을 더 꼭 끌어안았다. 도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소명이 더 좋아졌다.
******
한편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차 회장을 보고 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 왜 나한테 화 안 내요?”
“응? 무슨 화?”
“소명이 데리고 들어온 거.”
“당신은 그렇게 마음에 들어?”
“네. 너무나. 당신도 봤잖아요.”
“뭘?”
“서빈이가 소명이 밀치려고 일부러 그런 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소명이 들어오길래 계속 지켜봤죠. 우리 도하가 좋아하는 여자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심성은 참 고운 것 같더라고.”
“난 진짜 너무 맘에 들어요. 근데 여보, 당신 나 땜에 많이 힘들었어요?”
나지막이 물어보는 은영의 질문에 차 회장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슬퍼 보였다.
자신과 살면서 당한 힘든 일을 자기 아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소명을 반대하는 거냐는 말로 들렸다.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저도 안 힘들었다면 거짓말이죠. 이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은 아니었으니까.”
차 회장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또다시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난 어김없이 당신이에요.”
은영의 말을 듣는 차 회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도 그래. 내 선택.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그럼 여보, 도하도 당신 닮았는데 그렇게 좋다는데 한 번 두 사람 지켜보는 건 어때요?”
“그게 당신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야?”
“네. 난 그 선택 지금 또 하래도 할 거예요.”
은영은 차 회장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차 회장은 은영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고, 은영은 차 회장의 어깨에 자기 머리를 살짝 기댄 후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도하 사람 보는 눈이 있어. 당신처럼.”
은영이 한 말에 차 회장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차 회장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근엄한 회장이지만 그녀 앞에는 어김없이 순한 양이 되어버렸다.
******
한편 지성은 소명이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준공식장에서 서빈이 소명을 골탕 먹일 짓을 꾸며 소명이 곤란해질까 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성은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준공식 위치와 시간을 알아보고 그곳을 향해 무작정 달려갔다.
초대장이 없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입구에서 소명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숨만 새어 나왔다.
생각해보니 같이 산 십 년 동안 그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 준 것이 없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아이처럼 의지하며 살았고 소명이 자신에게 해 준 헌신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 것만 같았다. 이미 놓쳐버리고 아무것도 그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소명이 자신에게 매몰차게 굴 때 처음에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했을 때는 질투에 눈이 멀어 둘 다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에게 자신이 모질게 군 점과 미안한 일만 계속 생각났다.
왜 이렇게 소명을 잊을 수가 없는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있을 때 잘하라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단 걸 증명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었다.
밖에서 소명을 기다리는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그의 옆으로 쓱 지나갔다. 무심코 바라보니 그 안에 소명과 도하가 앉아 있었다.
지성은 소명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그가 아는 홍소명이 아닌 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고급스럽고 우아했다.
‘소명아…….’
잠깐 스친 모습이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행복해 보이니 너무 다행이다.’
지성은 소명이 떠나간 빈자리에 남아서 한참 동안을 소명을 생각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랑 살 때보다 너무 빛나 보인다. 네가 너무 행복해 보여.”
소명이 행복해 보여 다행이지만 지금 그가 간절히 원하는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지성은 힘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