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하나뿐인 귀한 아들
(73/101)
제73화 하나뿐인 귀한 아들
(73/101)
제73화 하나뿐인 귀한 아들
2023.03.13.
지성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자꾸만 서빈이라는 여자가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준공식장에서 소명을 곤란하게 하자고 말하는 그 여자의 심리 상태가 굉장히 불안해 보여 계속 신경이 쓰였다.
도하에게 소명을 빼앗기는 건 상상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소명이 그 여자 때문에 곤란해지고 위험에 빠지는 것은 더더욱 견딜 수 없었다.
지성은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모조리 드러났다.
그는 자꾸만 소명이 걱정되었다. 입에서 연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소명의 일이 걱정되고 가슴이 뛰는 걸 보니 자신은 아직도 그녀를 몹시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육체적 사랑에 눈이 멀어 보석 같은 그녀를 놓친 멍청한 자신이 너무 미웠다.
지성은 운전하다가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서빈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간신히 전화번호를 찾아내 핸드폰으로 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가고 이윽고 서빈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성입니다.”
[왜 전화했죠? 앞으로 전화하지 마세요.]
수화기에서 쌀쌀맞고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제 그만 멈춰요.”
[당신이 뭔데? 신경 꺼요.]
“또 무슨 수작 부릴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네가 뭔데?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꺼. 별 거지 같은 게 나대네. 진짜.]
“소명이 당신 같은 사람한테 괴롭힘당할 여자 아니야.”
[뭐? 내가 어때서. 난 당신 전 부인보다 백배 천배 더 능력 있고 힘 있어.]
“우리 소명이한테 또 뭔 짓거리 계획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아.”
[하아. 이런 전화 하는 내가 참 우습네. 끊어요.]
“분명 얘기했어.”
서빈은 지성이 말하는 도중에 전화를 확 끊어 버렸다.
“하아.”
아무래도 뭔가 불안했다. 자신이 소명을 그렇게 많이 울리고 상처 줬는데 또 소명이 아플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십 년의 세월은 그의 인생의 큰 한 부분이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그녀의 흔적을 지워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성은 자기 손목을 바라보았다. 아직 자신이 한 짓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 모든 게 꿈이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소명이 자신의 옆에 누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고 그를 꼭 안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잠시 의미 없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그는 눈을 힘을 불끈 주고 결심이 선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소명이 힘들게 하면 가만 안 둬.”
그는 곧 기어를 바꾸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
한편 서빈은 혼자 집으로 돌아와 침대로 들어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 순간을 모조리 싹 잊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도하의 어머니가 자신을 몰아세우고 소명 앞에서 망신을 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막상 침대에 누워도 정신은 말똥말똥했고 계속 아까 그 상황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우, 신경질 나. 악.”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그래도 화는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발밑에도 따라오지 못하는 그딴 여자의 편을 들며 자신을 망신시킨 도하의 어머니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내가 가만 안 둬.”
여태껏 항상 사랑만 받아 왔던 그녀라 이런 대우가 익숙지 않았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훈계와 무시 앞에 반항만 커질 뿐이었다.
이젠 도하를 다시 찾겠다는 생각보다 소명을 어떻게 망가뜨릴지가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서빈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계속 씩씩거렸다.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나를 물로 봤어.”
서빈은 씩씩거리며 호흡이 점점 더 거세졌다. 그녀의 두 눈에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분해. 너무 억울해. 내가 어때서. 뭘 그리 잘못했는데? 왜 다들 그 여자 편만 드는데?”
서빈은 억울한 감정을 쉽게 가라앉히질 못했다.
“내가 다 터트릴 거야.”
서빈은 인상을 구기며 이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
******
도하와 소명은 차를 타고 준공식장을 출발했다. 도하는 뒷자리에 앉아 소명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살짝 속삭였다.
“소명 씨, 오늘 너무 예뻐요.”
도하가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주자 소명도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도하 씨는 항상 멋있어요.”
두 사람이 속닥이며 서로를 바라보며 활짝 웃자 이 비서는 조수석에서 고개를 살짝 돌려 소명과 도하를 훔쳐본 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 백팔십도 달라진 도하의 모습이 아직 조금은 낯설었지만, 이 낯섦이 싫지 않았다.
도하가 행복해 보이니 그도 행복했다. 도하와 소명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소명의 아파트에 둘을 내려주고 이 비서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명 씨, 피곤하죠?”
“아니, 괜찮아요.”
소명이 도하를 보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라갈까요?”
“네.”
소명과 도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잡았고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샤워하고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베란다 정원에 가서 두 사람은 차를 마셨다.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 편안하고 행복했다. 그때 소명의 핸드폰이 울렸다. 소명은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밝아졌다.
도하는 누구의 전화인지 궁금한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소라 언니?”
[응, 소명아. 저번에 인테리어 사무실 구한다고 했잖아. 너.]
“응. 언니.”
[혹시 구했어?]
“아직. 요즘 일이 좀 많아서.”
[그래. 예전 아는 사람이 사무실을 내놓는다 길래.
“정말?”
[근데 서울은 아닌데 괜찮아?]
“어디쯤인데?”
[파주. 근데 서울이랑 그리 안 멀고, 너무 맘에 드는 건 사무실 옆에 집도 있고 앞에 밭도 있고 마당도 엄청 넓어. 너 정원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지금 직장만 때려치웠어도 내가 계약하고 싶더라. 한 500평 되는데 엄청나게 싸, 가격도.]
“그래?”
소명은 교외에 사무실을 차릴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었는데 소라의 전화를 받고 생각이 많아졌다.
[근데 그 사람이 다음 달에 출산이거든. 아무래도 힘들지. 아이 케어하려면 촬영 스튜디오였으니 인테리어 공사 비용도 많이 안 들 걸.]
“아……. 그래? 너무 보고 싶긴 하다.”
[주소 찍어줄게. 시간 나면 가봐. 스튜디오 내놓는다고 하니 네가 딱 생각나더라. 너 워낙 인맥 좋고 서울이랑 그리 멀지도 않고 괜찮겠다 싶어서.]
“고마워. 언니. 진짜.”
[뭘……. 잘 지내고 또 연락 줘.]
“응.”
전화를 끊은 소명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옆에서 대충 내용을 들은 도하는 궁금한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았다.
“사무실 자리 소개시켜줬어요. 대학 다닐 때 친했던 언니예요.”
“아! 그래요? 잘 됐다.”
“근데 여기서 거리가 좀 있네요.”
“우선 한번 봐 보면 되죠.”
도하가 소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소명 씨는 어떤 일을 하든 잘할 거예요. 이제 진짜 소명 씨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요.”
“도하 씨, 고마워요. 저 요즘 너무 살맛 나요.”
“저도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도하와 소명은 서로 꼭 껴안았다. 아무리 허구한 날 계속 껴안아도 또 껴안고 싶었다.
온종일 붙어 있어도 계속 함께 있고 싶었다.
소명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믿어주고 이해해주고 힘을 주는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우리 언제 갈까요?”
“너무 궁금해서 하루라도 빨리 구경 가고 싶어요.”
“그럼 내일 스케줄 보고 같이 가요.”
“저 혼자 가도 돼요.”
“아니요. 같이 가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도하 씨.”
“그럼.”
도하가 소명을 바라보다 살짝 눈을 감고 장난스럽게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명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몰래 베란다를 살금살금 빠져나가려고 발을 디뎠다. 순간 도하가 눈을 뜨고 소명이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녀의 뒤로 다가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소명 씨, 이러기예요?”
도하는 소명을 보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따져 물었다.
“미안해요. 갑자기 장난치고 싶어서.”
소명이 그를 보며 키득거렸다. 그런 소명을 도하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요.”
도하는 소명을 돌려세우고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갑자기 진지해진 도하를 소명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 진지해요.”
“네?”
도하는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서서히 그녀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소명은 그의 입술을 받아들이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야경이 보이는 베란다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맘껏 표현했다. 그의 입맞춤은 너무 강렬해서 그녀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입맞춤할 때 도하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소명은 그의 얼굴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얼굴의 감촉이 그녀의 손끝에 느껴지고 그의 입술의 감촉도 느껴졌다. 그의 달콤한 입맞춤은 그녀를 몹시 설레고 두근거리게 했다.
도하 역시 꽉 잡으면 깨어질까 조심조심 소명을 다루고 있었다.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녀가 행복하면 그도 행복했다. 두 사람은 달빛이 비치는 야경 앞에서 서로를 향한 아름다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
다음 날 아침 도하는 평소보다 회사에 더 일찍 출근했다. 미리 업무를 보고 오후에 소명과 약속한 사무실 자리를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서가 똑똑 노크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네.”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아버지가요?”
“네.”
도하는 하던 업무를 잠시 멈추고 일어나 회장실로 향했다.
도하가 회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차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앉자.”
차 회장을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도하는 차 회장과 오랜만에 단둘이 마주 앉았다.
“도하야.”
“네.”
“이제 그 집에서 나와.”
“네?”
도하는 아버지가 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에 화가 나 순간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소명이랑 아직 식도 안 했는데 보기가 좀 그렇다.”
“네?”
“나는 네가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게 아비 마음이야.”
“아버지…….”
“몇 번 안 봤지만, 좋은 아이 같더구나.”
“…….”
“이번 주에 데리고 와. 같이 식사나 하자.”
“네.”
도하는 아버지를 보고 뭉클한 것이 가슴에서 치고 올라왔다. 아버지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도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 회장을 와락 껴안았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포옹을 받은 차 회장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아이고.”
“아버지. 저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더 열심히 할게요.”
차 회장은 말없이 도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도하야. 아버지도 미안하다. 그동안 속 많이 상했지?”
“아버지…….”
도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버지의 말이 고마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 회장은 자신이 은영을 선택하고 온갖 시련을 겪어내고 이 귀한 아들 도하를 얻어낸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진짜 자기 삶에서 행복한 순간은 자기 가족을 바라보던 때였다는 걸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내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