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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하루라도 빨리 (74/101)


제74화 하루라도 빨리
2023.03.16.


차 회장은 도하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까 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은영이 임신했을 때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서 날뛰었고, 처음 도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어린 아기인 도하를 품에 안고 다짐했던 말이 생각났다.


“널 위해선 뭐든지 다 할게.”

도하가 그 작고 귀여운 손으로 자기 새끼손가락을 쥐었을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선명하게 그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도하는 그에게 소중하고 귀한 자식이었다. 그런 자식이 이렇게 자신 앞에서 눈물을 보인 일은 어렸을 때 빼고 없었었다. 차 회장은 도하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제가 진짜 잘할게요. 감사드립니다.”

“네가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도하는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나왔다. 아버지가 자신을 정말 사랑해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소명에게 이 얘기를 해주면 기뻐할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

그는 일을 마무리하고 얼른 차를 몰고 소명의 집으로 달려갔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소명을 생각하니 그녀가 또 그리워졌다.

도하가 소명의 아파트에 도착해서 소명에게 전화를 하려 했는데 주차장 앞에는 이미 소명이 나와 있었다.

소명은 도하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소명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그 모습이 그를 또 설레게 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명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도하는 차를 세우고 얼른 내려 소명이 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


“도하 씨, 제가 타면 되는데.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일일이 자신에게 이렇게 자상한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소명이 운전하는 도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왠지 소풍 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우리 여행도 한 번 못 가봤네요. 그러고 보니.”

“담에 날 잡아서 여행 가요.”

“그래요.”

소명과 도하는 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그와 그녀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달려갔다.

한 시간쯤 달리니 풍경이 확 달라졌다. 완전히 푸르른 풍경에 소명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와, 진짜 여행하러 온 기분이에요. 여기 너무 예뻐요.”

소명의 눈에 비친 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도하도 풍경을 구경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너무 기대돼요.”

도하를 쳐다보는 소명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그는 좋았다. 그녀의 에너지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는 느낌이 들었다.

소명은 항상 생동감 있고 긍정적이어서, 지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녀와 함께 있으면 곧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가 자기 일을 사랑하는 모습도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소명이 일하거나 가드닝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하와 소명은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이동했고 얼마 안 가 스튜디오 앞에 도착했다.

밭과 농가 사이에 자리 잡은 네모반듯한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장이 있었고 한눈에 봐도 넓은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앞에는 스튜디오 건물이 있었고 옆에는 작은 양옥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스튜디오를 둘러싸고 향나무, 은행나무, 오디나무, 포도나무 등이 줄지어 심겨 있었다. 소명은 아파트의 야경도 마음에 들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큰 편안함을 느꼈다.

제대로 관리만 한다면 멋진 정원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너무 멋지다.”

소명은 이곳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도하도 차분히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었다.


“좋은데요.”

소명이 스튜디오 앞에 있는 벨을 누르자 만삭의 집 주인이 나와 그녀와 도하를 보며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천천히 둘러보세요. 제가 너무 좋아하던 곳이에요. 계약하시면 후회는 없으실 거예요.”

“네. 그럼 좀 볼게요.”

소명은 살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사무실 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잘 봤습니다. 생각해 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네.”

소명은 집주인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순산하세요.”

집 주인은 소명의 인사에 감동한 듯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조심히 가세요.”

소명이 만삭의 주인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집 주인의 배를 보니 갑자기 그녀가 부러워졌다.

항상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어머니가 있었지만, 형제자매가 있는 친구들이 늘 궁금했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고 늘 말하고 다니곤 했었는데…….

소명은 옆자리에서 운전을 하는 도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잘생긴 그의 옆모습이 들어왔다.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이 사람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소명은 애써 티 내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도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하 씨? 어때요?”

“너무 좋아요.”

“그래요? 저도 그래요.”

“너무 맘에 들어요. 정원을 만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옆에 양옥은 리모델링만 잘하면 사는 데 그리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소명 씨가 만든 정원 너무 궁금해요.”

“우리 같이 만들어 봐요. 도하 씨도 가드닝 좋아하니까.”

“그래요.”

도하는 소명이 좋아하니 자신도 너무 좋았다. 그 집에서 소명과 알콩달콩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심장이 요동쳤다.

하지만 아까 차 회장이 한 말이 문득 생각났다. 아버지가 소명과의 교제를 허락해준 건 좋았지만 그녀의 집에서 나와야 하는 건 싫었다. 도하는 그녀와 계속 이렇게 행복하고 싶었다.


“소명 씨, 저……. 아까 아버지 만났어요.”

“아……. 네.”

소명이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긴장하는 모습이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소명 씨 이번 주말에 같이 저녁 먹자고 본가로 오라고 하셨어요.”

“네? 정말요?”

살짝 어두웠던 소명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도하도 그녀가 좋아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소명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정말 꿈만 같았다.

그를 너무 사랑하기에 쉽지 않은 길을 부딪치리라 다짐했었다.

그녀는 도하의 집안 식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지금 자신의 옆에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근데, 소명 씨. 아까 소명 씨 만나자마자 말해야 되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어요.”

“네?”

도하가 약간 망설이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너무 궁금해졌다.


“아버지가 집을 구하라고 하셨어요.”

“네?”

“우리가 아직 결혼한 게 아니니까.”

“당연하죠. 원래 그러려던 거잖아요. 우리.”

소명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그녀도 그와 함께 계속 있고 싶었다. 그렇지만 차 회장의 말이 맞았다.


“그러니까 소명 씨?”

“그럼 도하 씨 집 알아보면 가드닝은 제가 해드릴게요.”

“싫어요.”

“네?”

“그냥 우리 빨리 결혼해요. 하루라도 빨리.”

“도하 씨…….”

“이번에 식사하러 가면서 얘기하려고요. 저 소명 씨랑 이제 못 떨어져 있겠어요.”

소명은 도하를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그녀 역시 말하고 있었다.


‘저도 도하 씨 없으면 안 돼요. 이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고 같이 일어나는 아침이 두 사람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는 항상 소명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소명의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늘 말하고 싶었다.

서빈에게 받은 상처로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줄 알았다.

자신의 사랑은 서빈뿐이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슬픔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이상하리만큼 그녀가 계속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그냥 연민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짝거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사진기가 있으면 찍어서 보여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지금 그의 옆에 소명이라는 여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함께이고 싶었다.

소명은 항상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는 도하가 고마웠다. 그와 함께 있으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졌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소명은 도하를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한편 오 여사는 온종일 누워서 방에서 나오지 않는 서빈이 너무 걱정되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아 여러 번 두드렸지만, 딸은 나오지 않았다.

서빈이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오 여사는 서빈의 방문 앞에서 서빈에게 말을 걸었다.


“서빈아, 나와 어서, 안 나오면 열쇠 갖고 올 거야.”

“엄마, 가. 좀. 이따가 나갈게.”

서빈은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화가 계속 치밀어 올라 엄마를 보면 또 화풀이를 할까 봐 엄마도 만나기 싫었다.


“이서빈, 빨리 안 나오면 키 가져온다.”

서빈은 인상을 확 쓰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아, 짜증 나 죽겠네.”

서빈은 침대에서 내려와서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나가자.”

오 여사는 서빈을 보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달랬다. 서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오 여사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는 이미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서빈이 인상을 쓰며 의자에 앉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국을 가져다주었다.

서빈이 국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더니 도우미 아주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 식었잖아. 아줌마. 나 식은 거 안 먹는 거 몰라요? 팔팔 다시 끓여 와요. 당장.”

도우미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국그릇을 다시 들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서빈의 모습을 본 오 여사는 화난 얼굴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오 여사의 표정이 좋지 않아 서빈이 오 여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엄마도 알잖아. 나 뜨거운 거 좋아하는 거.”

“그래도 그렇지. 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했니? 왜 엄마 말 안 듣기로 했어? 아예?”

“또 잔소리.”

“서빈아.”

“알았어. 앞으로 말조심할게. 됐지?”

“도우미 아주머니 오시면 사과해.”

“하아, 알았어.”

서빈은 귀찮아 죽겠다는 듯 오 여사에게 대충 대꾸했다.

오 여사는 밥을 먹는 서빈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치를 흘금 보았다.


“저……. 서빈아.”

“응?”

“도하가 사귀는 여자 있는 거 알아?”

“뭐?”

“도하가 식사하는 자리에 그 여자 데리고 왔더라. 얼마나 참하고 예쁘던지. 그러니까 너도 이제 맘 정리하고 다른 사람 만나. 당장 결혼이 싫으면 다시 공부하든가.”

“…….”

서빈은 엄마가 소명을 참하고 예쁘다고 한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엄마 눈에는 난 골칫덩어리로밖에 안 보이고 그 여자만 참하고 예뻐?”

“서빈아,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 눈에는 우리 딸이 제일이지?”

“엄마도 뭐고 다 지긋지긋해.”

서빈은 숟가락을 내팽개치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네. 아가씨.]

“자료 조사한 거 익명으로 터뜨려요. 지금 당장.”

[네?]

“빨리하라고.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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