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갑질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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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갑질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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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갑질의 최후
2023.03.23.
서빈은 클럽 VIP룸에서 한창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며 즐기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생각했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벌인 것도 다 도하가 먼저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는데 어디서 나타난 급도 안 되는 여자가 도하를 뺏어간 것이 너무나 억울해 숨도 안 쉬어질 정도였다.
도하가 자신을 끔찍이 여겼던 부모님과의 사이까지 멀어지게 했다고 생각하니 그를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의 파장보다 지금 이 순간의 복수를 택했다.
서빈은 눈을 똑바로 뜨고 계속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주변의 친구 한 명이 서빈을 보며 궁금한 눈으로 물었다.
“뭘 그렇게 봐? 재미는 거라도 있어? 그런 거면 같이 봐.”
“아…… 아주 재밌는 게 있어서 계속 언제 뜨나 기다리고 있는 중. 뜨면 바로 말해줄게.”
“그래. 자 놀자. 나갈까?”
“그러자.”
서빈은 기분이 좋은지 세상 즐거운 표정으로 친구들과 노는 데 집중했다.
한편 밖에서 김 기사는 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언제 나올지 걱정이 앞섰다. 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면 사모님의 어두운 얼굴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같이 자식 키우는 처지에 오 여사가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아들은 남들이 말하는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했지만 언제나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김 기사의 아들은 그에게 귀한 보물이자 전부였다.
김 기사는 오늘도 생각이 많아졌다. 서빈을 이대로 두었다간 뭔가 큰 사고를 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서빈이 어떻게든 인간이 되어서 새로운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웬 남자의 품에 안겨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모양새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서빈은 혀가 꼬인 채로 말했다.
“차 키 주고 가요.”
“네?”
“가라고. 내 말 안 들려.”
“아가씨, 많이 드셨는데 이제 들어가셔야죠.”
“나한테 잔소리하는 거야. 돈 받고 일하는 주제에.”
김 기사는 더 이상 서빈을 봐줄 여력이 없었다. 이러다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아가씨, 오늘 그냥 들어가시죠. 자꾸 이러시면 사모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 기사는 서빈이 너무 걱정되었다. 그도 자식을 가진 입장으로 서빈을 반드시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김 기사가 단호한 눈빛으로 서빈을 바라보자 그녀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네가 뭔데. 내놔.”
서빈은 김 기사에게 달려가 그의 손에 담긴 차 키를 뺏으려고 실랑이를 벌였다.
“아가씨, 가시죠.”
그러자 서빈을 부축하던 건장한 남자가 김 기사에게 말했다.
“어이, 아저씨. 내놓으라잖아.”
그 남자는 김 기사의 가슴을 툭툭 치며 협박했다.
김 기사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오 여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 순간, 그 남자가 김 기사를 세게 밀어버렸다.
김 기사는 그만 중심을 못 잡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닥에 넘어지면서 중심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는데 몸의 중심이 모두 팔로 가서 팔이 꺾여 버렸다.
김 기사는 팔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악.”
서빈은 비틀거리며 김 기사 앞에 떨어진 차 키를 잡아채고 그 남자를 보며 물었다.
“너 술 안 마셨지?”
“응. 운전하려고 참았지.”
“그래. 그럼 가자.”
그 남자는 서빈에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고 서빈은 조수석에 얼른 올라탔다.
김 기사는 팔이 아파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서빈과 남자는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누워 있는 김 기사를 지나가던 행인이 보고 놀라며 다가와 물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팔이 너무 아파요. 119 좀 불러주세요.”
“네.”
김 기사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는 안 돼. 이제 나도 안 참아.’
******
도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쳐나갔고 소명은 은영과 단둘이 남았다. 소명이 은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어머니, 저 이만 가볼게요.”
“소명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는 누군가 같이 있어야 해. 혼자 있으면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나. 나도 겪어봐서 알아. 너 맘이 어떨지…….”
소명은 은영도 겪어봤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나 대학생 때 회장님 만났어.”
“네…….”
“우리 집도 평범했고 회장님과 내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은 했지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회장님뿐이었지. 너랑 비슷해. 그래서 네 심정이 어떤지 알아.”
“어머니……. 저 때문에 일이 자꾸 커지니까 너무 죄송해서……. 맘이 너무 힘들어요.”
“소명아, 너 때문이라는 생각하지 마. 넌 아무 잘못 없잖니. 우리 도하가 얼마나 밝아졌는데. 나는 너한테 정말 고마워. 넌 우리 집 복덩이야.”
“어머니……”
“난 엄청난 시집살이 당하면서 다짐했어. 나중에 우리 아들 부인은 꼭 사랑하면서 아끼겠다고.”
“아……. 흑흑.”
은영의 말에 소명의 울음보가 또 터져 버렸다. 어려울 때 힘이 돼 주는 도하의 가족 안에 들어가 소속된 기분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있었다.
“제가 진짜 잘할게요.”
“이미 넌 너무 잘하고 있어.”
은영은 소명을 보면 꼭 자신의 젊었을 때 모습이 생각났다. 평범한 집안에서 살아와서 재벌가에 들어와 적응하는 일이 보통 어렵고 고된 일이 아니었다.
그때 그녀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소명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은영은 자신의 온 마음을 다했다.
갑자기 닥친 이 시련 때문에 소명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아파졌다.
은영은 소명을 꼭 안아 주었다.
소명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 때문에,라는 생각은 더 이상 안 하기로 다짐했다.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로 비추어지는 게 아니라 진짜 열심히 살아서 보답하고 싶었다.
그녀는 눈에 힘을 주고 자기 자신에게 다짐했다.
‘나를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겨낼 거야. 반드시.
******
한편 도하는 기사를 곧바로 내렸고 그 기사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기로 했다. 도하는 그 기사의 제보자를 꼭 찾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소명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짓을 한 사람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도하는 불법으로 소명과 자신이 같이 있는 모습을 찍고 그 사진을 아무 허락 없이 내보낸 잡지사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의 흥미를 위해 자신만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선처는 없었다.
도하는 이 비서에게 말했다.
“회사 법무팀에 이 사안 넘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 비서는 도하에게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돌아서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이런 일이 터져 도하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도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야 행복해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는데.
회장님과 사모님이 소명 씨를 좋아해 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두 분 다 사람 보는 눈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었다.
이 비서는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도하를 돕겠다고 다짐했다.
******
한편 차 회장은 무서운 얼굴로 회장실에 앉아 있었다. 얼마 뒤 경호원들 사이로 한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는 차 회장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차 회장의 눈매는 너무도 매서웠다. 그를 노려보는 시선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회장님, 모셔 왔습니다.”
차 회장은 그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겁도 없이 우리 가족을 건드려?”
“죄송합니다.”
“사실도 아닌 거짓 정보를 퍼트리는 거 범죄라는 거 몰랐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회장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심부름센터 소장은 무릎을 꿇고 차 회장에게 손바닥까지 비비며 사정했다.
“누구야?”
“네?”
“누가 시켰냐고?”
“아……. 그게.”
“그럼 혼자 모든 죄 뒤집어쓰고 감방에서 썩어보든지. 내보내.”
“아……. 회장님 선처만 해 주신다면.”
“누군지 말해.”
“하아……. 그게……. 서빈 아가씨가.”
“뭐? 서빈이가?”
차 회장은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꾸민 게 서빈이라는 사실에 너무 놀라 입이 턱 하고 벌어졌다.
절친한 친구의 딸이자 예전에 도하를 사랑한다고 매달리던 그 아이가 도하를 골탕 먹이려고 이런 큰일을 벌였다니. 진짜 무서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부름센터 소장은 간절한 표정으로 차 회장을 보며 말했다.
“제가 혹시 몰라 녹음을 해두었습니다. 통화 내용을.”
“당신도 똑같은 인간이야. 그만 내보내.”
“회장님……. 회장님.”
경호원들이 심부름센터 소장을 데리고 나가자 차 회장은 너무 큰 충격에 고개를 숙이고 이 일을 어찌 해결할까 고민에 휩싸였다.
하지만 서빈을 위해서도 이 일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고소 준비하지.”
“네. 알겠습니다.”
******
한편 서빈은 호텔 룸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술을 너무 먹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햇살이 서빈의 눈가를 간질이자 간신히 눈을 뜬 서빈은 옆자리를 쓱 훑어보았다.
어제 만난 남자는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서빈은 이불로 얼른 몸을 가리고 침대 옆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됐는지 꺼져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샤워가운을 걸치고 충전기에 핸드폰을 충전시킨 후 궁금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켰다.
또 엄마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듣게 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아, 짜증 나.”
그녀는 궁금한 마음에 계속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지만, 아직도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아직 안 보낸 거 아냐?”
서빈은 화가 나 얼른 심부름센터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서빈은 한숨을 쉬며 옷을 갈아입고 김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기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빈은 인상을 확 쓰며 중얼거렸다.
“이 인간 내가 오늘 자른다.”
서빈은 씩씩대며 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제 만난 남자가 서빈을 불렀다.
“어디 가? 왜 먼저 가?”
서빈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클럽에서 만나도 아는 척 말자.”
“뭐?”
쾅, 그가 놀라기도 전에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혼자 남은 남자는 어이없고 황당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멍한 눈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서빈이 주차장에서 차에 올라타 운전하려던 순간 그녀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오 여사였다.
“엄마.”
“이서빈.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아 술 마셔서 친구 집에서 잠들었어.”
“서빈아, 큰일 났어.”
“아니 뭐가?”
“지금 핸드폰 기사 봐봐. 그리고 얼른 와.”
“아니, 뭔데.”
서빈은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도하의 기사는 없었는데 도대체 뭘 보라고 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보이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서빈이 어제 김 기사와 실랑이하는 사진이었다.
“아악, 이게 뭐야?”
기사에는 [클럽 갑질녀 정한 그룹 외동딸] 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아악, 뭐야? 누가 찍었어?”
서빈은 차 안에 앉아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아악, 뭐야?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