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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김 기사의 결단 (77/101)


제77화 김 기사의 결단
2023.03.27.



 
서빈은 갑자기 자신에게 닥친 일에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서 손이 벌벌 떨렸다. 자신도 스스로 김 기사에게 잘못한 걸 알고 있었다.

항상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때 김 기사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더욱 두려워졌다. 서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터치해서 기사를 열어보았다.

서빈의 어제 행동을 누군가 찍어서 올렸고, 그게 정한 그룹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큰 이슈가 된 상황이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어? 어? 진짜 어이없네? 왜 남 일에 신경 쓰고 난리야? 할 일 더럽게 없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자신이 이렇게 안 좋은 상황으로 노출되었던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이렇게 낙인찍힐 수는 없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우리 아빠가 회장인데 이런 기사 하나 못 없애겠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녀는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떨리는 가슴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높은 자존감에 스크래치 난 상황이 너무 괴로웠다. 자신 몰래 이런 사진을 찍은 인간을 잡아내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간신히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걱정이 되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서빈은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회장은 화가 난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오 여사는 어두운 얼굴로 서빈을 바라보았다.


“서빈아,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잖아. 항상 다른 사람 배려하면서 행동해야 한다고.”

서빈은 이제 믿을 구석은 부모님밖에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이 회장에게 다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빠, 나 이제 어떡해? 너무 무서워.”

“당분간 집 안에서 자숙해.”

“그러면 해결될까? 김 기사 아저씨가 아니라고 오해가 있다고 인터뷰해주면 되잖아. 기자 불러서…….”

“서빈아, 김 기사 병원에 입원했어. 팔 부러져서 수술해야 한대. 부기가 너무 심해서 가라앉으면 수술한다고 그러더라. 아이고, 참. 얼마나 아팠을까?”

“아……. 수술? 그냥 넘어진 건데. 그깟 걸로 팔까지 부러졌다고?”

서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 회장은 서빈을 향해 버력 소리를 질러댔다.


“이서빈, 내가 언제까지, 너를 그냥 봐줘야 해?”

“아빠.”

“이젠 나도 지친다. 넌 우리 집안의 골칫덩어리야.”

“아빠,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해?”

“내가 심한 말 한 것만 서운해하지 말고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아빠 얼굴에 이렇게 먹칠하냐?”

서빈은 이 회장을 노려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빠는 아빠 명예만 중요해?”

“명예를 따질 문제가 아니야. 다 내 죄다. 오냐오냐 키우는 게 아니라, 말 안 들으면 혼내고 때려서라도 더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쳤어야 했어.”

이 회장은 서빈에게 너무 실망해서 딸의 감정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그의 입에서는 매서운 독설만이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오 여사는 서빈에 대한 실망감과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몸이 몹시 안 좋았다.

손과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오 여사의 안색이 너무 창백해 이 회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보, 왜 어디 안 좋아?”

“몸이 좀 안 좋아요. 누워야겠어요.”

“그래요. 그럼. 얼른 들어가. 당신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그렇지.”

오 여사는 슬픈 눈으로 서빈을 바라본 후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서빈은 부모에게 이런 모욕을 당한 게 억울하기도 슬프기도 해 고개를 푹 숙이며 울먹였다.

그래도 이제 아빠밖에 의지할 곳은 없었다.

서빈은 이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나 이번 일만 해결해줘. 그러면 앞으로 진짜 정신 차릴게.”

“당분간 자숙하고 있어.”

“아빠, 나 도와줄 거지? 기사 빨리 내리라고 해. 얼른. 그리고 나 몰래 사진 찍은 인간 찾아내서 고소하자. 너무 열 받아서 나 진짜 그냥 못 넘어가.”

“이서빈 그만. 그만. 자숙의 의미가 뭔지 몰라? 네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알고나 있어? 김 기사님한테 사과할 준비나 하고 있어. 들어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서빈은 온갖 구박을 받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서빈은 제발 이번 일이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빈은 지금 어떤 일을 해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또 너무 두려워서 인터넷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

한편 김 기사의 병실에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그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김 기사는 애써 태연한 듯 웃으며 말을 꺼냈다.


“윤호야, 아빠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 너무 미안해.”

아들은 김 기사의 팔을 바라보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김 기사는 울먹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기사 다 봤어. 나 때문에 그런 꼴 당하면서 일했던 거라면 나 너무 싫어. 아빠 회사 그만둬. 제발. 나 여기가 찢어질 것 같이 아파.”

윤호는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괴로워하며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아들의 슬퍼하는 모습을 본 김 기사의 마음도 이내 무거워졌다. 그의 보물인 아들이 이렇게 힘들어한다고 생각하니 그 역시 눈가가 촉촉해졌다.

김 기사는 오십 평생을 살면서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자식에게도 부인에게도 떳떳한 가장이었다.

하지만 서빈이 미국에서 돌아오고부터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점점 버티기가 힘들었다. 항상 무슨 일을 꾸미는 것 같은 서빈을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로웠다.

김 기사는 아들을 바라보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윤호야, 아빠 일 그만둘게. 아빠가 아직 한창인데 너 먹여 살리는 거는 아직 거뜬하다. 아빠 믿지?”

“그럼. 믿지.”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들, 아직 이 세상에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자.”

김 기사는 결심이 선 눈빛으로 윤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 윤호가 사는 세상에선 아빠처럼 갑질 당하는 사람이 없어지지.”

“아빠, 그동안 나랑 엄마를 위해서 애써주신 거 너무 감사해요.”

윤호는 김 기사의 목을 와락 안았다. 아들의 포옹 때문에 잠시 팔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알아준다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다.

김 기사는 생각했다. 윤호를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김 기사 옆에서 말없이 눈물을 훔치던 부인이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여보,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당신 너무 고생했어.”

“고생은 무슨.”

“고마워. 여보.”

부인은 김 기사의 손을 꼭 잡았다. 김 기사는 이번에는 반드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눈빛은 결의에 가득 차 있었다.

서빈을 반드시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태껏 몸담았던 정한 그룹을 위해서도 모든 총대는 자신이 메리라 다짐했다.

사실 서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들을 위해서도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의 손을 떠났으면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깨우치고 뉘우치게 해야 했다. 김 기사는 그동안 혹시나 해서 모아두었던 자료를 떠올렸다.

그때 김 기사의 병실 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똑똑.

김 기사는 문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네. 들어오세요.”

병실 밖에는 여러 사람이 서 있었고 언뜻 카메라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JWS 보도국 사회부 기자 박진열이라고 합니다.”

“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취재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 기사는 결연한 표정으로 박 기자를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차 회장은 서재에 앉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기 친구이자 그가 소중히 여겼던 이 회장에게 충격적인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대로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이 회장도 반드시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 회장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서빈이 어떻게 하다 이렇게 망가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로 그는 다시 한번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이윽고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가고 수화기 너머에 이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차 회장. 어쩐 일이야? 잘 지내지?]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

[할 말?]

“서빈이 일이야.”

차 회장의 입에서 서빈의 이름이 나오자 이 회장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


[무슨 일인데 그래? 목소리는 왜 그리 안 좋아?]

“내가 이번 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 도하랑 내 예비 며느리 기사 언론사에 제보한 사람이서빈이라고 하더군.”

[뭐? 서빈이가 왜 그런 짓을 해? 이미 끝난 사이인데.]

“서빈이 이기심 때문에 우리 회사 이미지랑 주가, 또 얼마 후에 개장하는 SD 랜드에 입힌 손해는 어떡할 건가?”

[서빈이가 그럴 리가…….]

“끝까지 감싸고도는 너 때문에 그렇게 된 걸 수도 있어. 정신 차려, 이제. 나는 이제 너 안 볼 생각하고 모든 일 법대로 처리한다. 하지만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 전화했어. 이게 너한테 하는 마지막 배려야.”

[차 회장. 미안하다.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넘…….]

이 회장은 차 회장에게 매달려라도 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진 후였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삼십 년 지기 친구를 잃은 슬픔과 앞으로 서빈에게 몰아닥칠 폭풍을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 회장은 결론을 내렸다. 우선 지금 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기로.

서빈을 원망하고 혼을 내도 아무것도 해결 나는 일은 없었다.

서빈을 데려가 김 기사에게 사과시킬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비서실장이 급하게 뛰어왔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비서실장은 손에 든 태블릿을 켜 이 회장의 눈앞에 내밀었다.

[정한 그룹 재벌가 외동딸 갑질 폭로]

 


“이건 또 뭐야?”

“김 기사가 언론사와 만난 것 같습니다.”

“하아…….”

이 회장의 입에서는 거친 한숨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지금 시민단체에서 서빈 아가씨 고소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일이 많이 커졌습니다.”

“휴우. 서빈이 준비하라고 해. 김 기사한테 가야겠네.”

“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나간 후 이 회장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왜 서빈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일에 매달려 살면서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 같아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서빈은 검은색 옷을 입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이 회장이 차에 타자 부녀가 탄 차는 곧 김 기사의 병원으로 출발했다.

김 기사에게 그것도 아버지와 같이 사과하러 가는 것은 그녀에게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 회장은 서빈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에게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예전에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던 아빠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빈은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은 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 김 기사의 병원에 도착했고 서빈과 이 회장은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김 기사의 병실을 노크하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자 김 기사는 놀란 눈으로 이 회장과 서빈을 바라보았다.

김 기사는 이 회장을 보며 입을 뗐다.


“회장님.”

“고생이 많네. 수술은 잘 됐고?”

“네.”

“서빈아. 얼른.”

이 회장은 서빈을 바라보며 눈치를 주었다. 서빈은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든 김 기사가 너무나 미웠다.

속에서 열불이 나는데 꾸역꾸역 이 자리까지 와서 사과하려니 도저히 입이 안 떨어졌다. 서빈이 간신히 입을 떼려고 하는 순간 김 기사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제 그만 돌아가세요. 아가씨 보는 게 힘드네요.”

서빈은 김 기사가 한 말에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뭐? 날 보는 게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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