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우리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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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우리 결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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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우리 결혼해요
2023.03.30.
김 기사는 서빈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예전에 서빈을 보며 똑바로 고개도 못 들던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볼 뿐 아니라 째려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다.
이 회장도 생각보다 김 기사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앞일이 막막해졌다.
그는 잠자코 아무 말이 없는 서빈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서빈아, 어서 김 기사님한테 사과드려.”
“회장님, 죄송합니다. 아가씨 사과 받아 줄 생각이 없습니다.”
김 기사는 완고한 표정으로 이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왜 그러나. 내 얼굴 봐서라도 좀 이해해주게. 우리 일이 년 본 사이도 아니고……. 내가 서빈이 단단히 교육시켜서 다시는 김 기사에게 함부로 하는 일 없게 할게. 내 약속하지.”
“회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수술만 끝나면 바로 사직서 쓰겠습니다.”
“아, 왜 그러나? 자네가 없으면 안 돼.”
“회장님께는 면목 없습니다. 하지만 서빈 아가씨 일은 그냥 못 넘어갑니다. 그렇게 아세요. 저 피곤해서 눕겠습니다.”
“잠깐만…….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서빈 빨리 사과드려. 어서.”
이 회장은 서빈을 보며 호통을 쳤고 서빈은 울상이 되어 간신히 입을 열었다.
“김 기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가씨,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아가씨보다 못하고 답답하고 한심한 존재 아닙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김 기사가 서빈을 쏘아보며 목소리를 높이자 서빈은 김 기사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김 기사님, 정말 제가 죄송했어요. 이렇게 다치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안 넘어갑니다.”
김 기사의 의사는 완고했다.
서빈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너무 초라해졌다.
그녀는 김 기사에게 못되게 굴고 그를 무시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대기업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김 기사에게 사정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 아팠다.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던 그녀는 이제 서서히 이 일이 얼마나 커졌고, 앞으로의 일이 더 난감해졌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녀의 인생에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서빈은 김 기사를 바라보며 울먹이며 말을 꺼냈다.
“김 기사님, 제가 철이 정말 없었습니다.”
“아가씨 어렸을 때부터 봐왔지만 이렇게 행동하시면 진짜 안 됩니다. 가세요. 저 이미 마음 굳혔습니다.”
김 기사는 냉정하고 너무 차가웠다. 이 회장도 더는 할 말이 없어 김 기사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서빈은 아까부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했다. 이 회장은 그런 서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차에 올라탄 이 회장은 서빈을 보며 말했다.
“너 도하 기사 어떻게 된 일이야?”
“어? 무슨 기사?”
“차 회장한테 전화 왔어. 네가 기사 제보했다고.”
“아빠……. 아니야. 누가 그래?”
“너 이제 거짓말까지 하니?”
“…….”
“차 회장이 가만 안 있겠대. 법적 조치한다고 하더구나.”
“뭐?”
서빈은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조사도 받을 것 같다.”
“뭔 조사?”
“차 회장이 앞으로 얼굴 보지 말자고 하더라.”
차 회장을 얘기하면서 이 회장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하아…….”
“그럼 나 어떡해?"
서빈은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불타는 복수심에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한 행동을 해버렸다. 그런 서빈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이 회장은 입을 열었다.
“이 일만 해결되면 다시 미국 가.”
평소 같았으면 노발대발해야 하는 서빈이지만 오늘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기가 죽은 서빈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이 회장은 몸이 안 좋은 오 여사가 이 사실을 알면 또 얼마나 놀랄까 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회장 집안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회장은 자신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도하는 급하게 차를 몰아 소명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와 있다가 집에 돌아가 혼자 있는 소명이 너무 걱정되었다.
도하는 소명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부모님께 감사를 느꼈다.
소명을 자기 식구라고 생각한 순간 그들은 똘똘 뭉쳐 위기를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이 도하는 너무 자랑스러웠다.
도하가 소명의 집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기 더 늦게 오는 것만 같았다.
소명의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녀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에 당황하고 상처받았을 소명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졌다.
오늘따라 소명이 더 보고 싶고 빨리 그녀에게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드디어 소명의 집 앞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요리하고 있던 소명이 현관으로 걸어왔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도하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꼭 안았다. 그녀도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소명 씨? 괜찮아요?”
“네.”
소명은 그를 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저녁 준비하고 있었어요. 도하 씨랑 같이 먹으려고요.”
도하는 소명과 포옹을 풀고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안해요. 소명 씨 너무 힘들게 해서.”
“미안하긴요. 나 땜에 도하 씨가 힘들까 봐 더 걱정이에요.”
도하는 소명과 눈을 맞추면서 말했다.
“소명 씨, 우리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돼요. 전 누구보다도 자신 있어요.”
“처음에는 나 땜에 도하 씨 힘들어하니까 내가 그만하면……. 여기서 멈추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제가 못 버틸 것 같아요. 도하 씨가 내 옆에 없다는 걸. 생각할 수도 없어요. 지금 힘들어도 도하 씨만 제 옆에 있어 주면 돼요.”
“소명 씨…….”
도하는 그녀를 다시 한번 와락 껴안았다.
“소명 씨, 이제 나도 안 돼요. 절대 다시는 그런 생각하지 마요. 지금 잘 해결하고 있어요.”
“고마워요. 도하 씨. 내 옆에 있어 줘서.”
“나도, 고마워요.”
그녀를 품에 안고 있으면 힘들었던 일이나 고민됐던 일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감을 느꼈다.
소명이 자신에게 믿음을 준 만큼 도하는 그녀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리라 다짐했다.
그녀를 결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명이 저녁을 차리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마주 앉아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김없이 베란다 정원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도하는 야경을 바라보다 소명에 눈을 돌렸다.
“소명 씨?”
“네?”
“기자 회견할 생각이에요.”
“기자 회견이요?”
“네.”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할 거예요. 아버지랑 엄마한테도 말씀드리고요.”
소명은 자신 때문에 혹시 도하가 곤란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도하가 그녀를 쳐다보며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 결혼 발표도 함께하려고요.”
“네?”
“소명 씨 우리 결혼해요. 내가 진짜 잘할게요. 더 이상 못 기다리겠어요.”
소명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했다. 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고 원하고 있었다. 세상의 어떤 장애물도 그와 그녀와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오히려 더 견고해질 뿐이었다.
“사랑해요.”
소명이 그를 바라보며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떼지 않았다. 아니 뗄 수 없었다.
“사랑해요. 소명 씨. 나랑 결혼해줘요. 이렇게 갑자기 청혼해서 미안해요. 청혼은 정말 멋지게 하고 싶었는데…….”
“아니요. 너무 기다려온 청혼이에요. 도하 씨 제가 잘할게요.”
“소명 씨, 행복하게 해 줄게요.”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소명은 자신에게 나타난 이 운명 같은 남자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가 옆에만 있으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어떤 차별적인 시선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만나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도하와 소명은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도하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도하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소명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잠깐만요. 이 비서네요. 무슨 일이지?”
도하가 핸드폰의 버튼을 밀자마자 이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지금 뉴스 좀 보세요.”
“뉴스요?”
“네. 얼른.”
“알았어요.”
도하는 이 비서와 전화를 끊고 궁금해 하는 소명을 보며 말했다.
“뉴스를 보라고 하는데요.”
“그럼 얼른 가서 봐요. 우리.”
도하와 소명은 거실로 가서 곧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를 켜자마자 도하와 소명은 놀라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뉴스에서는 서빈의 기사가 한창이었다.
<정한 그룹의 외동딸 이서빈 씨가 수년간 자신의 고용인들에게 갑질을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 이번에 동영상으로 알려진 이 씨의 운전기사가 인터뷰로 폭로를 했습니다. 폭로 내용은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이번에 입수한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기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빈이 지하 주차장에서 차 키를 던지고 그걸 기사가 줍게 시키는 장면과 서빈이 김 기사에게 윽박지르며 차를 뺏는 장면이 송출되었다.
“서빈이가…… 저 정도였다니.”
도하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 사이 기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런데 갑질을 당한 고용인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 이 일은 큰 파장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시민단체는 이미 소장을 접수한 상태로 대기업 갑질로 이 씨는 곧 수사를 받게 될 예정입니다.>
도하와 소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
도하는 서빈이 이 정도로 망가진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명은 서빈이라는 여자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너무하네요. 어쩜 저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는지.”
기사를 본 소명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진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뉴스를 본 도하도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우리한테 한 짓으로도 모자라서.”
도하와 소명은 이미 서빈이 거짓 뉴스를 퍼트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방해를 해 와서 서빈이 주동자란 사실이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인에게 이런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녀의 광기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도하는 서빈의 악행이 이번 일로 제발 끝나기를 바랐다.
“죗값은 받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