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모든 걸 다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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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모든 걸 다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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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모든 걸 다 주고 싶어
2023.04.06.
소명의 말을 들은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더 고마워요. 소명 씨 만나고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는 항상 어둡고 우울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가 편했고, 서빈이 자신에게 준 상처가 너무나 커서 이제 다신 사랑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소명을 만나고 나서도 그녀에게 자꾸 끌리는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피폐해져 있었다.
그녀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처럼 느껴지고 자꾸만 머릿속이 온통 그녀로 꽉 차 있다는 걸 알고 그는 비로소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명을 만나고 너무나 달라진 자기 모습이 놀라울 정도였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내 앞에 나타나 줘서 고마워요. 소명 씨. 사랑해요.”
메마른 자기 입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랑 고백이 터져 나오게 만든 그의 모든 것, 소명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사랑해요.”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도하는 그녀에게 자기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와 그녀의 숨소리가 가빠졌다.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고 싶다고, 소명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 주고 싶었다.
“내 모든 거 다 줄게요.”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소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도하는 그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고 정열적인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제 두 사람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오직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서로의 사랑의 깊이를.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을 만큼 그의 입맞춤은 너무도 달콤했다.
살면서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싶은 정도의 과분한 사랑에 소명은 행복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삶에서 가장 반짝거리는 찬란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도 그와의 사랑에 거침이 없었다.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으로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이 도하의 눈에 보인다면 ‘사랑해’라는 세 글자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순간이 그녀에게는 가슴 뛰는 설렘 그 자체였다.
그를 만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는 언제나 그녀에게 설렘과 떨림의 존재였다.
그를 모르고 지낸 세월이 아까울 만큼 그녀는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어떤 일이 닥쳐와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소명은 도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저녁때라 조금씩 올라오는 수염의 감촉이 느껴졌다.
수염이 난 도하의 모습도 남자답고 멋있었다. 항상 깔끔한 슈트를 입고 있는 도하도 멋있었지만, 오늘 그에게는 야성미가 물씬 풍겼다.
“수염 났네요.”
“수염 난 얼굴 싫어요?”
도하가 소명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염 난 도하 씨도 멋있어요.”
도하는 소명의 말을 듣고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와 입을 맞추며 그녀는 손으로 그의 팔 근육을 어루만졌다. 단단한 몸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그녀의 심장은 더 심하게 요동쳤다.
도하와 소명은 뜨겁게 서로를 원하고 느끼며 황홀하고 아름다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잠을 자고 있었다. 어느덧 아침이 밝았고 소명은 일어나 도하를 깨우기 시작했다.
도하는 일어나자마자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그녀의 뒤로 가 백허그를 했다.
“잘 잤어요?”
“네.”
“우선 씻고 와요. 아침 먹어요.”
“소명 씨, 기자 회견하기 전에 어머니 뵙고 와요. 우리.”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를 위해주고 생각해주는 마음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네. 그래요. 고마워요. 도하 씨.”
“고맙긴요. 당연한 건데요, 뭘. 오늘 저녁에 갈까요?”
“네.”
도하는 웃으며 샤워하러 들어갔다. 샤워를 마치고 도하와 소명은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는 아침 먹은 설거지를 또 자신이 하겠다고 우겼다.
“도하 씨, 출근 준비해야 하잖아요. 양도 얼마 안 돼요. 그냥 오늘은 제가 할게요.”
“나는 소명 씨 아까워요.”
“네?”
도하의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한 소명이 그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소명 씨 아깝다고요. 설거지하는 거 청소하는 거 다 시키기 싫어요. 너무 아까워서…….”
도하는 소명의 볼을 어루만지며 다정한 미소를 짓고 얼른 싱크대에 가서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아 행복해.’
소명은 자신을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는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그녀는 그의 등 뒤에 가서 그를 살짝 껴안으며 말했다.
“나도 도하 씨가 너무너무 아까워요.”
“소명 씨 물 튀어요. 소파에 가 있어요.”
그는 소명을 소파를 보내고 난 후 신나는 표정으로 설거지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소명을 위해서 하는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났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마치 마법 같았다.
******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서빈은 창백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경찰 조사를 받게 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돼서 숨도 잘 안 쉬어질 정도였다. 이럴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빈은 화장대에 앉아 간신히 피부화장만 하고 눈썹을 그렸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된 정장을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하나로 질끈 동여맸다.
거울 속에는 항상 자신감 넘치던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갖고 싶은 차도, 친구도, 남자도 가지고 싶은 것은 당연히 다 가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날 밤 자신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들키지만 않았어도 도하와 평생을 함께할 거라 자신했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한 남자는 도하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가 계속 생각났다. 다시 그에게 돌아가면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받아 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냉정했고 이미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가 그 여자를 따뜻한 눈빛으로 보는 순간 서빈은 가슴이 찢어지는 질투를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패배감, 비참함이 점점 광기가 되어 그녀는 미쳐가고 있었다.
한차례 폭풍우가 휩쓸고 간 후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너무 두려워졌다.
항상 자신감 넘치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움츠리고 더 작아졌다. 처음으로 세상의 공포를 맛보았다.
그녀는 너무 떨려서 가만있는데도 온몸이 저절로 부들거렸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아빠가 그토록 사랑하는 회사를 빼앗았고, 엄마를 아프게 했다.
‘다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해도 이미 늦어버렸고 쏟아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오 여사가 병원에 있는 며칠간 서빈은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이 회장은 요즘 너무 바빠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고 서빈은 아버지와 마주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어두운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가슴 저렸다.
“하아.”
그래서 일부러 이 회장을 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비틀거리면서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2층에서 조용히 걸어 내려오는데 이 회장이 출근을 안 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고심이 많았는지 그의 얼굴 또한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아빠!”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를 보고 서빈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서빈아.”
“아빠, 미안해. 아빠가 회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다 아는데…….”
서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빠 보기가 너무 미안해.”
“서빈아.”
이 회장은 말없이 서빈을 꼭 안아 주었다.
“내가 너무 바빠서 널 너무 혼자 두었나 보다. 조사 잘 받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돼.”
“아빠…….”
자신이 생각해도 몹쓸 짓을 했는데 이 회장과 오 여사는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잘못 인정하고 진심으로 죗값 치르고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나면 돼. 이번이 너한테 찾아온 기회고 아빠한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한다.”
서빈은 포옹을 풀고 이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럴게. 그럴게요.”
“같이 가줄게.”
“아니야. 혼자 갈게요.”
서빈은 이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대기시켜 놓은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동안 자신이 했던 모든 나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다 막상 자신이 당하고 보니 그 고통이 얼마나 아픈 건지 알게 되었다.
김 기사를 밀치고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와버린 일이 떠올랐다.
항상 자신을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해줬었는데…….
그녀는 늘 그를 귀찮아하고 우습게 여겼었다.
서빈이 탄 차가 경찰서 앞에 도착하자 서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많은 취재진이서빈을 찍기 위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좋지 않은 일로 카메라에 얼굴을 내놓으려고 생각하니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휴우.”
한숨이 입 밖으로 계속 새어 나오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너무 긴장했는지 살짝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린 후 경찰서 입구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가 걸어가는 사이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은 기사들이 달라붙어 연신 질문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피해자에게 사과하셨나요?”
“한 말씀 해 주세요.”
서빈은 굳은 표정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성실히 조사받겠습니다.”
서빈은 바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앞으로 닥칠 그녀의 미래가 너무 불안해 가슴이 요동치고 온몸이 몹시 떨려 왔다.
******
도하는 일을 마치고 소명과 함께 정희를 만나려고 출발했다. 소명은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세심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도하가 정말 고마웠다.
미리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희는 자기 집 앞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소명이 정희에게 다가가 말했다.
“엄마, 힘드니까 나오지 말래도.”
“너 온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서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지.”
정희는 소명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우리 딸, 얼굴 좋아졌네.”
“안녕하세요. 장모님.”
도하가 정희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하자 정희는 반가움에 눈이 커졌다.
“아이고, 차 서방. 어서 와.”
정희는 도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반가워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 맛있는 요리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자극했다.
“우와, 냄새 너무 좋은데요.”
“그래. 우선 손 씻고 우리 밥부터 먹자.”
도하와 소명이 손을 씻고 나오자 정희는 빠른 손놀림으로 이미 상을 다 차려 놓은 후였다.
“밥 먹이는 게 내 행복이야.”
“잘 먹겠습니다.”
도하는 맛있게 식사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있는 도하를 보며 정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복스럽게 먹어서 너무 좋다. 차 서방. 많이 먹어.”
“네. 너무 맛있어요.”
도하가 정희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런 도하를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소명을 바라보며 정희는 행복해졌다.
소명이가 행복하니 자신도 행복했다.
“장모님도 어서 드세요.”
“그래.”
세 사람은 화기애애하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소명이 과일과 차를 내왔다.
“장모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한테?”
“네.”
정희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도하를 바라보았다.
“소명 씨와 결혼 승낙 받고 싶어 왔습니다.”
“결혼?”
“네.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습니다.”
정희는 소명을 바라보았다. 소명은 정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엄마, 허락해 주세요. 잘 살게요.”
“아이고……. 그래. 나는 너무 좋다. 우리 소명이가 좋으면 엄마도 좋아. 잘 살아.”
정희는 기뻐하다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도하를 보며 말했다.
“사돈어른들께 허락은……. 받았고?”
정희는 혹시 사돈어른이 소명을 달갑지 않게 여길까 봐 걱정이 앞섰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다 소명 씨 너무 좋아하세요.”
“아이고…….”
갑자기 정희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왜 울어?”
정희가 울자 소명도 따라 울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너무 좋아서. 우리 딸 행복할 거 생각하니까 너무 좋아.”
정희는 연신 눈물을 훔쳐내며 소명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두 사람의 우는 모습을 보자 도하도 고개를 돌려 울음을 참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올라 일렁거렸다. 도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모님, 소명 씨, 꼭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정희는 소명을 꼭 안으며 도하를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