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기자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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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기자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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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기자 회견
2023.04.10.
소명과의 포옹을 풀고 정희는 도하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차 서방 우리 소명이 잘 부탁하네. 진짜 고마워.”
“제가 감사합니다. 장모님.”
정희는 도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예의 바를 뿐만 아니라 바른 심성이 정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이 함께한다면 서로 아끼며 평생 잘살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정희는 소명이 이혼한 후 눈앞이 깜깜했고 자기 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지성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큰 생채기가 나서 그걸 극복하는 데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플지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딸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진심으로 소명을 사랑해주는 도하가 고마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딸이 아플까 봐 절대 소명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오늘 그녀는 도저히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너무 행복하니, 너무 기쁘니 저절로 가슴이 요동치며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희는 소명의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살아야 해.”
“응. 엄마.”
다정스러운 모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도하의 얼굴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
한편 오 여사는 쉽게 회복될 줄 알았던 몸이 계속 안 좋아져 퇴원이 늦춰지고 있었다.
서빈이 오늘 경찰서에 출석하는 날이라 같이 가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파졌다.
오 여사는 서빈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어 병원에 자주 들르지 못하는 남편이 걱정되었다.
혹시 텔레비전에 서빈이 나올까 하고 뉴스채널을 틀어놓고 종일 지켜보고 있었다.
서빈은 자신이 신경 쓸까 봐 그러는지 전화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에서 조사받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때마침 뉴스에 서빈의 기사가 나왔고 오 여사는 떨리는 맘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정한 그룹 외동딸 이서빈 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경찰청에 출두했습니다.]
기자의 멘트 후에 곧 서빈의 모습이 보였다. 검정 정장을 입고 화장기가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고 있었다.
‘다 내 죄야. 어렸을 때부터 잘 잡아서 바르게 키웠어야 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 오냐오냐 키운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성교육을 바르게 해서 좋은 사람으로 키워냈어야 했는데.
오 여사는 서빈이 안타깝고 가여웠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 딸이지만 서빈의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다.
김 기사는 가족과 같은 사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서빈이를 케어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니……. 도저히 서빈이 그랬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회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 여사는 서빈이 변할 수 있게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상담을 받을 생각이었다. 서빈만 달라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코 자기 딸을 포기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오 여사 앞에 이 회장이 나타났다.
“여보!”
오 여사는 이 회장을 보고 참았던 울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누구보다 이 회장이 자신의 심경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회사 일 때문에 고민이 많은지 이 회장은 아주 수척하고 초췌해 보였다.
“당신 몸은 좀 어때?”
“여보, 안색이 왜 이리 안 좋아요?”
“안색이 어때서. 난 괜찮으니까 당신 몸 좀 챙겨요. 잘 먹고. 빨리 퇴원해야지.”
“여보. 우리 서빈이 어떡해요?”
오 여사가 울먹이자 이 회장은 그녀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서빈이한테도 말했지만 이게 우리 서빈이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이젠 그만 정신 차려야지. 당신도 마음 단단히 먹어요. 우리가 중심을 잘 잡아야지.”
이 회장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오 여사에게 말했다.
“당신 힘든 거 아는데 언제까지 우리 딸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으며 살게 할 순 없잖아. 이제 인간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당신도 기운 내.”
“알았어요. 여보.”
이 회장의 말이 믿음직해서 오 여사는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래. 내 딸 살리자. 살려내자.’
******
드디어 도하의 기자 회견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도하는 평소보다 더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준비된 기자 회견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열심히 연습했다.
그는 세상에 당당히 그녀와 자신의 사이를 밝히고 싶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도하가 출발할 시간이 되자 소명이 그를 배웅하며 말했다.
“도하 씨, 잘하고 와요.”
“네. 갔다 올게요.”
도하는 가기 전에 소명에게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그에게 다가가 꼭 안아주었다.
“다 잘 될 거예요.”
“네.”
포옹을 풀고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명 씨, 나 믿죠?”
“네. 믿어요.”
도하는 그녀를 쳐다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덩달아 그녀의 기분도 좋아졌다.
******
도하는 이 비서와 함께 SS 물산 사옥으로 이동했다. 오늘 그곳에서 기자 회견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기자 회견장에 도착했고 도하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기자 회견장에는 많은 기자가 노트북을 펴놓고 도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하는 시종일관 당당하고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성큼성큼 들어가 강연대 앞에 섰다. 그리고 준비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그의 모습에서는 SS 물산 차기 후계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SS 물산은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일류 그룹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큰 지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저의 기사로 우려와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도하는 강연대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저번 발표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 글은 근거 없는 거짓 기사임을 말씀드리며 이 부분의 증거를 취합하여 모든 법적 절차가 진행 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곧 결혼할 예정이고 예비 신부가 될 사람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한 번의 결혼 경험이 있으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그분의 조건이 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오히려 전 그분에게 많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분과 저의 결혼을 축하해주시고 앞으로 저희가 잘 사는 모습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교제한 시기는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국민 여러분 앞에 당당합니다. 이 부분을 확실히 오해 없이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 회견을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SS 물산은 국민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글로벌 그룹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하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기자 회견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도, 나도 특보를 하기 위해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었다.
도하는 진심으로 기자 회견을 했다.
기자 회견을 끝내고 나오는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소명에게 달려가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한편 도하의 기자 회견을 텔레비전 뉴스로 실시간으로 시청한 소명은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화면 안의 도하 모습을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는 그녀를 선입견 없이 오로지 그녀 자신으로 바라봐 주었다.
그녀는 이제 온전히 그를 믿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없는 자기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의 전부였다.
******
한편 지성은 오랜만에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이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TV 소리가 들려왔다.
[곧 있으면 SS 물산 차도하 이사의 기자 회견이 열릴 예정입니다. 아. 네 차도하 이사가 기자 회견장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화면 보시죠.]
지성은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걸음을 멈칫했다.
‘차도하 이사? 기자 회견?’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 내려와 소파에 앉아 TV 화면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있던 정 여사가 그런 지성의 모습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리모컨을 들자 지성이 화면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놔둬. 나 볼 거야.”
“지성아, 이미 끝난 사이인데 그 사람 보면 뭘 하니? 너 마음만 더 복잡해지지.”
“아! 엄마. 놔둬요.”
“알았다.”
정 여사는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성은 화면을 집중하면서 보는데 심장이 아래로 툭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화면 속 도하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기분 나쁘고 슬펐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도하가 얼마나 소명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는 곧 결혼할 예정이고 예비 신부가 될 사람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한 번의 결혼 경험이 있으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그분의 조건이 저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이라고?’
지성은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소명이 이제 완전히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가슴이 너무 저려와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붙잡고 쓸어내렸다.
‘소명아…….’
이제는 그녀를 다시는 못 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지성은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중얼거렸다.
“소명아,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 그렇게 귀한 줄 모르고……. 내가 너 없이 어떻게 견뎌. 소명아……. 흑 흐 흑흑.”
자신의 사악한 욕정으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그 첫사랑을 떠나보냈다. 아무리 자신을 원망해도 소용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아들을 몰래 지켜보고 있는 정 여사의 눈가가 빨개졌다.
아들이 마음 아파하니 그녀 역시 너무나 속상했다. 하지만 모른 척하는 게 아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의 방문을 닫고 조용히 들어갔다.
한참을 울고 나서 지성은 생각했다.
‘소명아, 행복해라.’
******
한편 라희는 요즘 꾸준히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하고 있었다. 라희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생겼다. 바로 자신을 상담해주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다니면서 자신이 얼마나 자존감이 낮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때의 상처를 핑계 삼아 자신을 합리화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수많은 상처를 줬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이전에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었다. 하지만 그녀는 외로울 때마다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던 행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꾸준히 심리치료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하고 소파에 잠시 앉아 핸드폰 기사를 검색하는데 ‘SS 물산 차도 하 전격 결혼 발표’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결혼 발표?’
라희는 놀란 눈으로 얼른 화면을 누르고 기사에 집중했다.
소명과 결혼 발표를 한 도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이 결혼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희는 기사를 보다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정말…….”
라희는 이제 가슴속 깊이 소명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욕망 때문에 한 가정을 파괴한 아주 악마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죄하며 살게요. 행복하세요.”
테이블 위에 라희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
기자 회견을 마친 도하는 소명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소명 씨! 지금 그리로 가고 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그녀를 볼 생각에 그의 가슴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갈 데가 있어요. 준비하고 기다려 줄래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