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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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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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2023.04.17.
차 회장은 은영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도하의 기자 회견은 가히 성공적이었다. 여론은 도하의 진심을 알아본 듯 우호적이었고 기자 회견에 달린 댓글들은 도하의 용기를 칭찬했다.
도하의 기사와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차 회장은 흐뭇한 듯 웃었다.
“그래도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은영은 차 회장의 옆에서 함께 기사를 보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도하의 기사는 큰 이슈가 되었다. 여러 가지 헤드라인으로 기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대기업 차기 후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반인 여성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없는 도하의 모습과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 때문에 SS 그룹의 이미지는 더 향상되었다.
도하가 소명과 만나고부터 도하의 일이 더 잘 풀리는 것 같았다.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항상 손해를 보던 도하였다.
하지만 소명과 사랑을 시작한 도하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도하의 모습은 직원들 사이에 몇 개월 전부터 소문이 돌았다.
안 좋았던 도하의 사내 이미지는 점점 더 좋아졌다.
드디어 아들의 진가가 드러나자 차 회장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자기 아들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바로 사랑의 힘이었다.
아들 옆에 소명이 든든히 함께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젠 소명이 차 회장의 눈에는 복덩이로밖에 안 보였다.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차 회장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한 번 마음을 여니 소명은 완전히 SS 그룹의 사람이었다.
차 회장은 은영이 보내준 도하와 소명의 사진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
한편 경찰서 안에 들어간 서빈은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앞에 앉은 경찰관은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서빈을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에 덩치가 있는, 눈매가 매섭게 생긴 남자였다. 서빈의 옆에 동행한 변호사가 앉았다.
조사관은 서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럼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름?”
“이서빈입니다.”
“주소는?”
서빈은 자기 주소를 말하기 시작했다. 기운이 없어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갑질할 때는 하늘이 떠나갈 정도로 우렁찬 소리를 내던 그녀가 오늘은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형사는 서빈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잘 안 들립니다. 이서빈 씨! 좀 크게 말씀해주세요.”
“네.”
오늘의 그녀는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이서빈 씨의 운전기사 김진환 씨에게 폭력을 가해 신체적으로 피해를 준 사실이 있습니까?”
“…….”
조사관의 말을 들은 서빈의 얼굴이 무겁게 굳어졌다.
“인정하십니까?”
옆에 앉은 변호인이 서빈을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증거가 이렇게 나와 있는데도 발뺌하세요? 블랙박스에 다 찍혔어요. 네? 직접 밀치신 그때 동행한 남자분도 다 인정하셨고요.”
조사관의 목소리가 커지자 옆에 앉은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너무 강압적으로 위화감 주시지 않으셨…….”
그때 서빈이 자기 손으로 변호사를 제지했다.
“그만요.”
“아…… 네.”
“인정합니다.”
서빈은 더 이상 이런 인생을 살기가 싫었다. 아무리 발뺌해도 그녀가 남긴 갑질의 흔적은 꽉 차다 못해 넘쳐났다.
변명도 후회도, 아니라고 우겨서 될 일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서빈의 반성하는 태도에 조사관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졌다.
긴 조사를 받고 나오는 서빈의 얼굴은 더 초췌하게 변해 있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오는 자리에도 어김없이 기자들이 나와 있었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서빈이 나오자 기자들이 다가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는 하셨습니까?”
“갑질 인정하십니까?”
서빈은 허공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다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얼른 계단을 내려와 대기해 있는 차에 올라탔다.
살면서 이런 일을 처음 겪는 서빈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못 가진 것을 욕심내며, 가지지 못할 걸 알자 다 망쳐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의 결과가 오늘 이 자리에 그녀를 내몰았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가 얼마나 봄날이었는지, 삶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라도 살아볼걸.’
그녀는 자신을 삶을 열심히 사는 것보다는 가지지 못한 걸 늘 억울해하며 탐욕만 키웠을 뿐이었다.
‘나는 괴물이었네.’
28년을 살면서 제대로 열정을 가지고 한 일이 없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얻는 과정이 너무 손쉬워서 노력해서 얻는 참 기쁨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의 눈을 가로막았던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다.
‘내가 갖고 싶다고 쉽게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오 여사에게 조사가 끝났다는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기사 알림이 보였다.
서빈이 기사를 클릭하자 기사의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SS 그룹 차도하이사 긴급 결혼 발표 기자 회견]
서빈은 그 기사를 차마 누를 수 없었다. 온몸이 부들거렸다. 조사받을 때도 이 정도로 떨지 않았는데…….
결국 도하가 결혼까지 한다는 말에 서빈은 말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자신이 딴 남자와 바람피웠을 때 도하의 기분이 어땠을지, 그의 기분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정말 도하를 좋아했다는 것을…….
모든 걸 내려놓은 지금도 그의 결혼 소식은 그녀의 멘탈을 흔들었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후회했다. 행복을 깨트린 모든 원인의 시초는 도하를 배신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빈은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너무 울어서 가슴 언저리가 아려왔다.
그녀가 겪은 어떤 슬픔보다 더 아팠다.
******
소명은 계약한 사무실 인테리어에 한창이었다. 주변에 지인이 많아 사무실 인테리어는 그녀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역시 그녀는 자기 일을 할 때 가장 아름답고 생기가 넘쳤다.
인테리어 사무실을 낸다고 하니 예전 동료들이 너무 좋아해 주었다. 그녀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소명을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이 소명을 다 좋아했다.
소명은 밖에 나가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곰곰이 생각했다. 이 집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도하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어머, 도하 씨? 온다는 말 없었잖아요?”
도하를 본 소명의 얼굴이 환해졌다.
“소명 씨, 보고 싶어서 달려왔죠.”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도하가 와주어서 소명은 더 신이 났다. 차에서 내린 도하의 팔짱을 끼고 소명이 말했다.
“사무실 인테리어 구경시켜주고 싶었는데……. 잘됐다. 빨리 가요.”
서두르는 소명이 귀여워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빨리요.”
“네. 우리 빨리 가요.”
도하는 소명의 빠른 걸음을 맞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SD 랜드를 신경 쓰느라 소명의 사무실을 못 와봐서 사실 도하도 너무 궁금했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도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무실은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고 여기가 식물원인지 착각할 정도로 멋진 가드닝이 되어 있었다. 가드닝에 관심이 많은 도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도하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도하의 표정을 살피며 소명이 궁금한 듯 물었다.
“어때요?”
“너무…… 너무 멋져요. 소명 씨. 진짜 대단해요.”
자신이 사랑하는 도하의 칭찬에 소명의 기분은 날아갈 듯 기뻤다.
“다행이다. 도하 씨가 좋아해 주니까 좋아요.”
소명이 도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소명 씨, 나 줄 거 있는데…….”
도하의 말에 궁금한 표정으로 소명이 도하를 바라보았다.
“눈 감아 봐요.”
“눈을요?”
“네.”
소명이 눈을 감자 도하는 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소명의 손을 들어 그것을 쥐게 했다.
“자, 눈 떠요.”
“네.”
소명의 손에는 종이 뭉치가 들려 있었다. 놀란 소명이 종이 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설계도잖아요.”
“우리가 살 집.”
“네?”
“우리 여기에 집 지어서 같이 살아요.”
“도하 씨…….”
도하가 소명에게 쥐여 준 것은 도면이었다.
“와! 생각지도 못했는데…….”
도하의 깜짝 선물에 놀란 소명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도면을 어루만졌다.
“고마워요. 도하 씨…….”
소명은 도하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가 기뻐하자 도하의 표정도 행복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 축복이었다.
두 사람은 소명의 사무실 회의실에 앉아 도면을 사이좋게 나누어 보기 시작했다.
“근데 도하 씨, 여기 집 지으면 회사랑 먼데 괜찮아요?”
“원래 항상 일찍 출근해서 문제없어요.”
“그래도…….”
“소명 씨 나 이곳 너무 좋아요. 이제는 도시가 답답하다니까요.”
도하는 소명에게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의 미소는 햇살 같았다.
소명은 그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가 우리 방이고, 그리고 여긴 우리 정원으로 꾸미고 이층에도 방 크게 만들고…….”
도하의 설명을 들으며 소명은 행복해졌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소명이 얼굴빛이 조금 달라져 도하는 소명을 보며 물었다.
“소명 씨 갑자기 왜? 표정이?”
“도하 씨…….”
“네?”
도하는 소명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저…….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그래도 말해야 할 것 같아요.”
“뭘요?”
소명의 말을 들은 도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도하 씨, 만약 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어도 괜찮나요? 도하 씨가 너무 좋아서 계속 회피했어요. 생각하면 너무 슬퍼져서 도하 씨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소명은 오랫동안 가슴에 숨겨두었던 말을 하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를 사랑하지만, 이 문제는 솔직히 말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도하는 갑자기 소명을 꼭 안아 주었다. 예전 그녀가 지성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 밤처럼.
“도하 씨가 너무 좋아서 계속 말 못 했지만, 이 일은 내게 마음의 짐이에요.”
소명은 그의 품에 안겨 슬프게 오열했다.
“소명 씨, 울지 마요. 그런 건 아무 문제 없어요. 소명 씨와 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난 소명 씨만으로도 충분해요. 제발 그런 말도, 그런 마음도 갖지 마요. 소명 씨 힘들어하는 거 못 보겠어요.”
“저……. 도하 씨, 아이 낳고 싶어요. 우리 가정 만들고 싶어요.”
소명은 그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그동안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엄마가 너무 되고 싶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도하의 아이를 안고 그 아이가 자신에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순간이 꼭 찾아왔으면 하고 생각했다.
도하는 소명이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녀의 생각 밑바탕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너무 소중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소명이 자기 입으로 그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가 사랑하는 소명이 그의 앞에 있었다. 아이는 그에게 결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하는 소명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소명 씨,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앞으로 살면서 서로의 마음도 고민도 같이 해결해요. 소명 씨가 그런 생각 갖고 있었다는 거 몰랐어요. 이젠 절대 속으로 혼자 끙끙 앓지 마요.”
“도하 씨…….”
그의 넓은 마음이 한 번 더 그녀에게 감동을 줬다.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