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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눈물바다 (84/101)


제84화 눈물바다
2023.04.20.


소명은 도하의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하의 눈에는 진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감사했다.


“고마워요. 도하 씨.”

“소명 씨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에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진실한 사랑을 믿지 못하던 도하의 닫힌 가슴이 그녀로 인해 열렸다.

그는 이제 알게 되었다.

사랑의 위대한 힘을.

그리고 소명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넓고 따뜻한 품을.


‘내 남자의 품.’

소명은 도하의 품에 안겨 세상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도하는 소명을 꼭 안아주며 자신 몰래 맘고생 했을 소명이 안타깝고 그런 맘을 몰라 준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는 그녀를 더 꼭 안아주었다.

******

도하와 소명의 결혼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갔다. 오늘은 도하와 소명의 상견례가 약속된 날이었다.

정희는 소명의 상견례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딸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왔다.

정희는 상견례 가기 전에 걱정되고 떨리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딸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에 이제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며칠 전 도하와 소명이 백화점에서 사준 옷을 입고, 동네에서 입소문 난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도 받았다. 평소에 하지 않는 화장도 했다.

정희는 거울 앞에 가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정희는 거울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얼마 뒤 핸드폰이 울렸고 정희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소명아? 왔어?”

“응. 엄마.”

“어. 나갈게.”

정희는 주변을 살피다 백을 발견하고 얼른 집어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소명의 차가 주차된 것이 보였다.

정희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바라만 봐도 예쁜 소명이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소명아!”

정희가 차에 올라타니 소명이 놀란 눈으로 정희를 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엄마! 우와. 오늘 딴 사람 같아. 너무 예뻐. 옷도 너무 잘 어울린다.”

소명은 정희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이렇게 하고 다녀. 십 년은 젊어 보인다.”

“고마워. 옷 너무 맘에 들어.”

“가자. 엄마.”

“그래.”

모녀는 서로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덧 상견례 장소인 고급 한정식집에 도착했고 정희는 긴장이 되는지 핸드백 안에서 파우치를 꺼냈다. 그녀는 거울을 꺼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화장을 고쳤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소명은 엄마의 사랑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정희는 사돈어른들께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딸을 위해서 엄마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두려울 게 없었다.

홀로 딸을 키우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혼자 사는 정희가 안쓰럽다고 주변에서 계속 새 출발을 권유했지만 정희는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소명이만 있으면 족했다. 항상 바르고 예쁘게 자라주는 딸아이가 있어서 행복했다.

정희는 항상 소명이 바르게 살길 바랐다.

그렇게 곱게 애지중지 키운 딸이 이혼한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껴 혼자 소리 내어 가슴을 뜯으며 울었지만 딸 앞에서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자신은 강해야 했다. 사랑하는 소명을 위해서. 소명이는 잘못이 없었다.

정희의 딸에 대한 굳은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혼을 겪었지만, 분명히 소명은 일어설 거란 생각을 했는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모습을 보니 하늘을 날 듯 너무 기뻤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소중한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

오늘은 한없이 기쁘고 설레는 좋은 자리였다. 예전 지성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정 여사가 기분 나쁘게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표정이 생각났다.

다행히 사돈어른들이 소명을 좋게 봐준다는 말을 들어 정희는 한시름 놓았다. 사돈어른들이 소명을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자.”

정희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소명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정희에게 소명은 큰 자랑거리였다.

소명이 이혼했다는 사실이 정희는 절대 부끄럽지 않았다.


“엄마, 고마워. 나 잘 살게.”

“그래. 잘 살 거야. 우리 딸이 어떤 앤데. 엄마는 우리 딸 믿어.”

소명은 정희의 팔짱을 끼고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한정식 집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소명과 정희가 안내된 방으로 들어가자 이미 차 회장과 은영, 도하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을 보고 차 회장과 은영, 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사부인, 안녕하세요.”

은영이 정희에게 다가와 정희의 양손을 붙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도하의 어머니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동안에 상당한 미인이었다. 차 회장은 인자해 보이는 인상으로 정희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사부인, 여기 앉으시죠.”

“아…… 네.”

정희는 자신에게 따뜻한 환대를 해주는 사돈어른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차 회장이 정희를 보며 말했다.


“소명이 누구를 닮아 이렇게 예쁜가 했더니 사부인 닮았네요.”

“아……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사부인.”

“네?”

“소명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명이가 우리 집안의 복덩이예요.”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차 서방이 소명이를 정말 많이 아껴주고 저한테도 너무 잘해요. 이렇게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차 회장은 정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희는 지적이고 고상해 보였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기품이 있었다.


‘소명이가 바른 게 어머니의 영향이 컸군.’

정희를 보고 나서 소명에 대한 믿음이 더 커졌다. 소명은 좋은 어머니 밑에서 바르게 교육받고 자란 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은영이 말했다.


“우리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최대한 빨리 잡고 싶습니다.”

도하의 말에 소명은 너무 놀라 얼굴이 새빨개졌고 차 회장과 은영은 아들의 행동이 웃겨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정희의 얼굴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하루라도 빨리 소명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도하가 귀여워 그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저희 쪽은 하루라도 빨리 둘 결혼시키고 싶은데 사부인 생각은 어떻습니까?”

차 회장이 정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모든 시선이 정희에게 집중됐다. 정희는 도하와 소명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저도 빨리 결혼시키고 싶습니다. 우리 딸 잘 부탁드립니다.”

정희가 정중히 인사를 하자 차 회장과 은영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진짜 딸처럼 사랑하고 아낄게요. 소명이 너무 귀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정희는 오늘은 절대 울지 않으려 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벅참이 그녀의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자기 딸을 편견 없이 순수하게 사랑해주는 모습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갑자기 정희의 울음이 터지자 소명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눈물을 살짝 닦았다.

그때 잠잠하던 은영이 정희에게 다가와 정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사부인 소명이가 우리 도하를 살렸어요. 우리 도하 예전에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줬어요. 저는 소명이가 정말 고마워요. 흐흑흐흑.”

정희에 이어 소명, 거기다가 은영의 눈물샘까지 폭발하여 상견례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비록 울음바다가 되었지만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은 행복했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도하 씨한테 잘할게요. 잘 살겠습니다.”

소명이 인사하자 도하도 정희를 보며 말했다.


“소명 씨 행복하게 해줄게요.”

“그래. 난 차 서방 믿어.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알지?”

정희는 도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한편 재윤은 회사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재윤은 발신인을 확인하고 놀란 표정으로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원장님.”

“재윤 씨, 잘 지내요?”

“아…… 네.”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아요?”

“…….”

“라희 씨…….”

원장의 입에서 라희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라희한테 무슨 일 이라도 있나요?”

라희가 병원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라희의 이야기를 꺼내는 원장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라희가 치료를 포기하고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라희 씨, 소식 궁금할까 봐서 전화했어요.”

“라희 혹시 치료 그만뒀나요?”

재윤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요. 정말 치료 잘 받고 있어요. 요새는 잠도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요. 많이 밝아졌어요.”

원장의 말에 그늘졌던 재윤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하아, 진짜 다행이에요. 다 선생님 덕이에요. 너무 감사합니다.”

재윤은 자신도 모르게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이제 재윤 씨도 재윤 씨 인생 살아요. 라희 씨 걱정 그만하고요.”

“선생님…….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

“당연하지요.”

“진짜 고맙습니다.”

전화를 끊은 재윤은 퇴근하는 것도 잊은 채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라희의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라희야, 잘 살아야 한다.’

재윤이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같은 부서 여직원인 지우가 재윤에게 다가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리님? 퇴근 안 하세요?”

지우는 밝고 명랑한 성격에 귀염성 있게 생긴 아가씨였다.


“아…… 네. 가야죠.”

“그럼. 같이 내려가요.”

갑작스러운 지우의 말에 놀란 재윤은 동그래진 눈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네?”

“그냥……. 어차피 가시는 거 같이 가자고.”

“아……. 네.”

재윤은 지우가 귀여워 그녀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우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없이 반짝거렸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가시죠.”

“네.”

재윤이 먼저 걸어가고 그 뒤를 따라가는 지우의 얼굴이 미소가 번졌다.

누가 봐도 지우가 재윤을 좋아하는 것을 다 알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인 재윤만 눈치 못 채는 분위기였다. 그가 눈치를 채건 못 채건 상관이 없었다.

그와 함께 퇴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재윤이 엘리베이터가 오자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시죠.”

“네.”

그의 배려에 지우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 1층 로비에서 내리자 지우는 재윤을 바라보다가 머뭇거리더니 인사를 건넸다.


“대리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지우가 몸을 돌리며 돌아가려 하자 재윤이 지우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 씨?”

재윤이 자신을 부르자 너무 놀라 그를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같이 저녁 먹을래요?”

“네……? 네.”

지우는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를 보며 활짝 웃고 말았다. 통통 튀는 지우의 귀여움에 재윤도 함께 웃고 있었다.

******

한편 라희는 상담치료를 받고 있었다.

라희가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원장을 바라보자 눈치가 빠른 원장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


“라희 씨. 나한테 할 말 있죠?”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뭔데요?”

“재윤이한테 전화 한 통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저, 잘 치료받고 있다고 이제 맘 편히 자기 인생 살라고요. 제가 부탁한 건 절대 비밀 지켜주세요.”

“라희 씨……. 그런 건 얼마든지 할게요. 이제 라희 씨 진짜 어른이 됐네요. 잘하고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제 은인이세요.”

고개를 숙인 라희의 눈 밑에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재윤아, 행복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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