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둘이 아닌 셋
(91/101)
제91화 둘이 아닌 셋
(91/101)
제91화 둘이 아닌 셋
2023.05.15.
소명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꿈만 같았다. 도하와의 사이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새 생명이 찾아오다니…….
아직 확실한 게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의 아이를 얼마나 원해 왔던가?
하지만 그녀는 도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하가 알면 속상해할까 봐. 도하가 항상 편하게 배려해주고 자신을 사랑해주어서인지 그와의 결혼생활은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스트레스도 없었고 하루하루 기쁨이 충만했다.
소명은 아직 확실한 결과를 얻은 건 아니어서 얼른 병원에 가고 싶었다. 그녀는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하 씨, 얼른 출근해요. 병원에 가보고 전화할게요.”
“아니요. 같이 가요.”
“그래도 괜찮아요? 회사 일 바쁘잖아요.”
“지금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나한텐.”
그의 눈빛에 생기가 흘러넘쳤다. 마냥 좋아하는 그를 보니 소명의 가슴에도 기쁨이 차올랐다. 소명과 도하는 바로 가방을 챙겨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부인과에서 접수하고 소명은 소변검사를 하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인자하게 생긴 중년의 여의사가 앉아 있었다.
“홍소명 씨?”
“네.”
“앉으세요.”
소명이 의자에 앉고 도하는 떨리는 표정으로 소명의 옆자리에 서서 의사가 할 말을 기다렸다.
“축하해요. 임신하셨어요.”
“네?”
소명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흐느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다니…….’
‘너무 행복해!’
소명은 지금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혹시나 하고 약간의 기대는 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녀와 그에게 정말 커다란 선물이 찾아온 것이다.
도하도 매우 기뻐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애써 울음을 참았다.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내가 아빠가 되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도하는 소명의 어깨를 살짝살짝 토닥였다.
“초음파 보러 가시죠.”
“네.”
소명은 바로 옆의 초음파실로 가서 누웠다. 의사는 초음파를 보며 말했다.
“여기 아기집 보이시죠. 그리고 여기 아기 위치.”
의사가 말해 준 부분에 자그마한 점 모양이 보였다.
도하는 눈에 힘을 주고 아기를 자세히 보려고 애썼고 소명은 이 순간이 너무 벅차올라 눈물을 참으며 초음파 화면을 지켜보았다.
“임신 6주차시고 심장 소리 들려 드릴게요.”
“심장 소리요?”
의사가 기계를 터치하자 바로 아가의 심장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너무 놀라웠다. 이 작은 점에서 심장 소리가 들리다니…….
소명은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가야, 엄마야. 곧 만나자. 너무 고마워. 나에게 찾아와줘서.’
도하 역시 이 감격스러운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소명이 매우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눈물을 애써 참으려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참기가 어려웠다.
그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얼굴이 빨개진 도하를 보고 소명이 살짝 미소를 짓고 그를 안아 주었다.
“왜 울어요. 울긴.”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눈물이 안 멈춰요. 소명 씨, 고마워요. 나 진짜 좋은 아빠 될게요.”
도하는 소명을 꼭 안으며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저도 진짜 좋은 엄마 될게요.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소명과 도하는 손을 꼭 잡고 병원을 나왔다. 도하는 소명을 집에 데려다준 다음 다시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가면서 소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명 씨, 아까 깜박하고 말 안 했는데 아버지하고 엄마한테 말씀드려도 되죠?”
“당연하죠.”
“고마워요. 너무 말하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워요.”
소명은 도하가 귀여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저도 엄마한테 말할게요.”
“네.”
******
도하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대표실이 아닌 회장실로 향했다. 갑자기 노크하고 도하가 들어오는 바람에 차 회장은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도하야? 무슨 일이냐?”
“아버지…….”
도하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어 차 회장은 몸이 좀 안 좋은지 걱정이 되었다.
“너 어디 아픈 거야? 얼굴이 뻘겋다.”
차 회장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 아빠 된대요.”
“뭐?”
차 회장은 너무 놀라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곧 입가에 스르르 미소가 번졌다.
“도하야. 축하한다. 이 아비 이제 할아버지는 되는구나. 허허허.”
차 회장은 아주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고 따뜻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갓난애였던 아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 아빠가 되다니…….
“엄마는 알아?”
“아직이요. 아버지한테 먼저 말씀드렸어요.”
“얼른 전화해 봐.”
“네.”
도하는 은영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알렸고 수화기 너머 은영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도하는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더 열심히 소명과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도하를 바라보는 차 회장의 표정에서 깊은 사랑이 묻어났다.
“소명이가 진짜 애썼구나. 소명이는 괜찮은 거야?”
“속이 안 좋다고 했었는데 입덧인가 봐요.”
“아이고, 우리 소명이 고생하네. 잘해줘. 알았지?”
“네. 아버지, 저희 잘 살게요.”
“그래, 도하야, 아버지 정말 행복하다.”
차 회장은 다정하게 도하의 어깨를 두들겼다.
******
한편 소명은 아까 전화로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정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명은 아무 말이 없는 정희가 걱정돼서 정희를 불러댔다.
“엄마?”
“소명아, 너무 잘 됐다. 엄마는 너무 좋아. 고마워. 우리 딸.”
“엄마, 나 진짜 행복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정희도 소명이 이렇게 빨리 기쁜 소식을 전해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딸의 임신 소식을 듣고 너무나 행복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소명아, 몸조리 잘해. 알았지? 이제 너는 혼자 몸이 아니야. 알지?”
“응.”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몸은 어때?”
“속이 메슥거리고 쓰리고 그래. 그리고 나 왜 이렇게 졸려? 엄마도 그랬어?”
“어쩜 이리 똑같아? 엄마도 너 갖고 엄청나게 졸려서 온종일 잠만 잤어.”
“신기하다. 엄마 나 좀 졸려서 눈 좀 붙일게.”
“어. 그래. 소명이 쉬어.”
“응.”
소명은 전화를 끊고 몸이 몹시 나른해 침실로 가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가 울려 소명은 잠이 깨서 인터폰을 바라보았다. 대문 밖에는 정희가 서 있었는데 정희는 손에 가득 짐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정희가 자신이 걱정돼 이렇게 먼 길을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 소명은 엄마를 본 반가움과 고마움이 뒤섞여 또 울컥했다.
엄마가 너무 그리워 얼른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어나온 소명을 보고 정희는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고, 뛰면 안 돼. 소명아, 그러다 넘어질라.”
“엄마.”
소명은 정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와 정희의 품에 와락 안겼다.
“아이고, 소명이, 우리 소명이 장하다. 내 새끼. 진짜 잘했어.”
정희는 소명을 꼭 안아 주었다. 소명은 울먹이며 정희를 보며 말했다.
“사실 엄마 나 평생 아이 못 낳을 줄 알았어. 솔직히 기대도 안 했고. 나 아직 안 믿겨.”
딸이 지성과 살면서 마음 고생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희였기에 소명이 어떤 심정일지 가늠이 되어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그동안 맘고생 많았지. 이제 됐다. 엄마는 너무 행복해, 소명아.”
정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소명도 너무 행복해졌다.
“소명아, 얼른 들어가자. 엄마가 우리 소명이 좋아하는 반찬 좀 해왔어.”
“뭐 하러 그래. 엄마 힘들게.”
“우리 딸하고 우리 차 서방 입에 들어가는 거는 하나도 안 힘들어. 아이고. 참, 우리 아가도 먹어야지.”
정희는 소명의 배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명은 너무 행복해 자꾸만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차올랐다. 인생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앞날이 암흑이었을 때 도하가 나타났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그녀를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를 만나 참사랑을 알게 되었다. 소명은 도하를 너무 사랑했다. 그런 그의 아이가 지금 그녀의 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소명은 자신의 배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랑해. 아가야.’
정희가 싸 온 밑반찬으로 도하와 소명은 맛있는 식사를 했다. 자고 가라고 했는데 정희는 굳이 집에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
도하와 소명이 푹 쉬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도하가 정희를 모셔다드리고 소명은 도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뒤에 도하가 집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명은 바로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도하가 웃음을 머금은 채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소명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두 사람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이제 두 사람은 둘이 아니었다.
그녀의 배 속의 소중한 아이와 함께 셋이라는 완벽한 가정을 이루었다.
“도하 씨, 고마워요. 엄마 데려다주느라 힘들었죠?”
“힘들긴요. 며칠 계시다 가시면 좋을 텐데.”
“나중에 또 오시면 되죠.”
도하와 소명은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둘은 2층 테라스로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이제는 혼자의 몸이 아니어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신중해야 했다.
소명과 도하는 카페인이 없는 루이보스 차를 마셨다. 둘이 오붓하게 앉아 이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두 사람에게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눈에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존재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소명 씨, 고마워요. 나 정말 좋은 아빠 될게요.”
“나도 고마워요. 이제 우리 둘이 아니고 셋이에요.”
소명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배를 살짝 어루만졌다.
“우리 아이 태명 뭐로 지으면 좋을까요?”
“난 도하 씨 평생 사랑할 거고 태어날 아기도 사랑할 거니까 사랑이 어때요?”
“사랑이 너무 좋아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도하는 무릎을 꿇고 소명의 배 앞에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사랑아, 아빠야.”
도하의 행동을 보고 소명도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도하 씨, 나 안아줘요.”
소명의 말에 도하는 벌떡 일어나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도하의 넓은 품에 안겨 소명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사랑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돼요. 우리.”
소명의 말을 들은 도하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요. 우리 잘 살아요. 소명 씨, 나 너무 행복해요.”
“저도 너무 행복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도하는 살며시 소명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갖다 대었고 그녀와 달콤한 입맞춤을 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이 반짝거렸다.
“사랑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