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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화 별빛 같은 아이 (92/101)


외전 1화 별빛 같은 아이
2023.05.18.



 
햇살이 비추는 아름다운 침실에 도하와 소명은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먼저 눈을 뜬 건, 도하였다. 자신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소명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도하는 말없이 소명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도하는 자는 소명의 배에 살짝 손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사랑아, 잘 잤어?”

도하의 말소리를 들은 소명도 잠이 깼는지 그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소명 씨? 일어났어요?”

“네.”

“잘 잤어요?”

“네. 요즘 잠이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졸리면 자고 피곤하면 푹 쉬어요.”

“고마워요.”

도하는 소명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더 고마워요.”

침대에서 일어난 소명의 배가 조금 볼록 나와 있었다. 도하는 자신의 아이를 배 속에 품은 소명의 모습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그를 더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는 이제 절대 혼자가 아닌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행복한 책임감의 그의 가슴을 간지럽혔다.

사랑이만 생각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은 사랑이의 입체 초음파를 하는 날이어서 혹시 성별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더 설레었다. 사랑이가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었다.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소명이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을 때도 도하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녀만 자신의 옆에 있다면 그는 행복했다.

하지만 소명은 그에게 사랑이라는 소중하고 귀한 선물까지 안겨 주었다. 도하는 매일매일 꿈꾸듯 행복했다.

잠시 멍하니 사랑에 대해 생각하던 도하는 자신을 부르는 소명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하 씨?”

“아……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소명이 궁금하다는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우리 사랑이 생각이요.”

“도하 씨 변했어요. 예전에는 나만 사랑한다더니.”

소명이 귀엽게 장난스러운 투정을 부리자 도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살며시 안았다.


“도하 씨…….”

“나 진짜 행복해요. 정말 고마워요.”

“저도요. 근데 우리 사랑이 공주님인지 왕자님인지 너무 궁금해요.”

“나도 궁금해요.”

“아, 이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조금 있으면 나가야 해요.”

“소명 씨, 저 얼른 먼저 씻을게요. 힘들면 조금 더 누워 있어요.”

“아니에요. 힘들긴요.”

도하는 사랑이를 만난다는 기쁨에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갔다.

소명은 침대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한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 소리가 들리자
도하가 소리쳤다.


“소명 씨, 내가 할게요.”

“아니요. 다했어요.”

소명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도하의 마음이 고마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드레스 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살짝 배가 나와서 이제 제법 임산부 티가 났다. 그녀는 이런 자기 모습이 매우 좋았다. 얼마나 간절히 바라왔던 모습이었나!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배 속에 도하와 자신의 사랑의 증표인 사랑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었다.

사랑이는 소명을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입덧도 3개월이 지나고 괜찮아졌다. 주 수에 맞게 잘 자라주어 정말 고마웠다.

오늘 사랑이를 보러 가는 날이라 두 사람의 표정에는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소명도 샤워를 마치고 간단한 식사를 한 후에 산부인과로 향했다. 운전하는 도하를 보며 소명이 말했다.


“일도 바쁠 텐데 같이 가 줘서 고마워요.”

“소명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연히 내가 우리 사랑이 아빠인데. 가야죠.”

소명은 도하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게 행복인가 봐.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거의 다 왔어요.”

산부인과에 도착한 둘은 나란히 손을 맞잡고 병원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하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오늘의 이벤트는 도하도 긴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그런 그가 귀여워 자꾸만 웃음이 났다.

그녀는 도하를 바라보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도하도 소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접수하고 대기실에 있다가 간호사의 호명을 받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소명이 들어가서 초음파를 준비했고 준비를 마치자 의사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의사는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했고 소명과 도하도 의사 선생님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디 볼까요?”

소명과 도하는 궁금증이 묻어 나오는 표정으로 초음파 기기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자, 여기 얼굴이랑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 보이시죠?”

“네.”

도하는 사랑이의 얼굴과 손가락, 발가락을 보고 감격해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했다.

소명도 자신의 배 속에서 이렇게 고귀한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자, 이제 머리둘레랑 심장 소리 체크할게요.”

의사가 기계를 조작하자 사랑이의 심장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쿵쿵쿵쿵-


‘사랑아, 고마워. 엄마, 아빠한테 나타나 줘서.’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꿈만 같은 아이 사랑이가 나타나 주다니…….

소명은 너무 행복해서 자꾸만 눈가에 눈물이 일렁였다. 그때 사랑이가 몸을 살짝 돌렸다.

의사 선생님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예뻐라.”

도하와 소명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사랑이는 아마도 공주님인 것 같았다.

내내 감격에 젖어 있던 도하의 눈이 커지며 입이 활짝 벌어졌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 해도 그가 너무 기뻐한다는 걸 지나가던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도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명은 예쁜 여자아이가 자신을 엄마라고, 도하를 아빠라고 부르는 상상을 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살포시 피어올랐다.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사랑이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초음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소명과 도하의 표정에는 행복과 설렘이 가득했다.


“소명 씨, 사실 나 너무 좋아요. 소명 씨 닮으면 아주 예쁠 것 같아요.”

“저도 너무 좋아요. 우리 진짜 좋은 부모 돼요.”

“네.”

도하는 소명의 손을 꼭 붙잡았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도하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장모님도 엄청나게 좋아하시겠죠. 우리 아버지 좋아하실 게 눈에 선해요.”

“말씀드려야죠.”

“그래야죠.”

엄마와 시부모님이 좋아하실 걸 생각하니 소명은 너무 기뻤다.

사랑이는 모두를 환하게 만드는 별빛 같은 아이였다.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생명이 소명의 품에서 쑥쑥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사랑이는 소명과 도하에게 기적과도 같았다.

******

한편 라희는 심리치료를 꾸준히 받아 많이 안정되었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회사에 취직도 했다. 불안하고 엉망이었던 그녀의 삶에도 한 줄기 희망이라는 빛줄기가 생겨났다.

항상 자신만을 위해 살던 라희는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유년기에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고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남자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해결하려 했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 그녀는 누군가를 갈구해서 얻는 행복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오늘 그녀는 자기 발목을 붙잡는 오래된 상처와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도 왠지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 왔다.

라희는 어느 허름한 빌라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집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듯 한참을 머뭇거렸다. 라희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한 걸음씩 떼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해보자.’

그녀는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손에 힘을 주어 초인종을 꾹 눌렀다.

이윽고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세요? 라……희야. 어떻게 여길?”

“엄마. 나 들어가도 돼?”

“어? 어. 들어와.”

라희 모 혜숙은 얼른 방으로 들어가 라희가 앉을 수 있게 잔짐을 정리했다.


“앉아.”

라희는 낡고 지저분한 소파에 앉았다. 혜숙은 라희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쩐 일이야?”

혜숙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딸이 엄마 집 오는데 이유가 있어야 해?”

“아니, 생전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연락도 없이 찾아오니까 그러지. 나 없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엄마.”

“어?”

“저번에 미안했어.”

“저번?”

“병원비.”

늘 자신을 보며 소리치거나 노려보며 패악질하던 라희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없어. 음. 사실 나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할 말? 무슨.”

“엄마, 화내지 말고 우선 들어줘.”

“또 무슨 소릴 지껄이려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희는 또 자신에게 억울한 감정을 토하며 신세 한탄을 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혜숙은 자기 자신도 못난 어미인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 역시 상처투성이였다. 자기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데 라희까지 보듬을 여력이 없었다.

라희가 자신에게 감정이 좋지 못하다는 걸 혜숙도 알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나타나서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혜숙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뭔 얘긴데.”

“엄마, 나한테 왜 그랬어?”

“뭐?”

“왜 나 버렸어?”

“야, 너 이러려고 찾아왔니? 진짜?”

혜숙은 자신도 모르게 라희에게 화를 냈다.


“나가. 가. 얼른. 꼴도 보기 싫어. 난 왜 이리 지지리도 자식 복도 없는 거야?”

평상시 같으면 자신이 이런 막말을 할 때 라희 역시 독을 품듯 고래고래 고함을 쳐야 맞는 시나리오였다.

라희가 소리를 지를 걸 예상하고 살짝 눈을 감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혜숙은 살며시 눈을 뜨고 라희를 바라보았다.

라희는 차분한 표정으로 혜숙을 바라보고 있었다.


‘얘 내 딸 맞아?’

너무도 달라진 라희의 태도에 놀란 혜숙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혜숙이 아무 말도 못 하자 라희는 혜숙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입을 뗐다.


“엄마, 나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라희는 혜숙을 바라보며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병이 생겼대.”

 

 
혜숙은 라희의 말을 듣고 한마디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 여기가 너무 아파. 마음이 너무 아파. 엄마만 생각하면. 내 영원한 숙제야. 이제는 나 그만 아프고 싶어. 나 엄마 사랑해.”

‘사랑!!!’

라희의 입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혜숙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해졌다. 자신은 라희를 버린 무정한 엄마였다. 라희의 입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 우리 이제 세상에 둘뿐이잖아.”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론 이 세상에는 라희와 그녀 둘뿐이었다.

라희의 말에 혜숙은 딸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라희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혜숙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자신은 라희 앞에서 죄인이었다. 그런데 자기 딸이 자신을 사랑한다며 먼저 손 내밀고 있었다.

가슴에서 무언가 치고 올라왔다.

혜숙은 라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자기 자식인데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슬픈 얼굴로 자신을 보고 엄마라고 부르는 딸.

라희는 자신이 열 달 동안 품고 낳은 그녀의 딸이었다.


‘상처만 줬네. 그런데도 잘 자랐구나.’

혜숙은 라희를 보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는데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간신히 라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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