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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화 가족사진 (94/101)


외전 3화 가족사진
2023.05.25.



“내일모레요.”

도하는 소명을 보며 말했다.


“나 잘 나와야 하는데.”

“도하 씨, 잘 나올 거예요.”

“당신도요.”

도하와 소명은 소명의 만삭 사진을 찍기로 했고 내일모레가 촬영일이었다. 사랑이는 귀한 축복이었다. 소명과 도하는 사랑이가 둘에게 찾아온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 사진이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도하는 늘 따뜻하고 가정적인 남자였다. 배가 많이 나오고 몸이 조금씩 부어오르는 날이 있는데도 도하는 늘 소명을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였다.

그녀는 도하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루하루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게 행복인가?’

소명의 아픔은 도하의 사랑으로 치유됐고 도하에게는 소명만이 유일한 휴식처였다. 두 사람은 사랑이의 탄생을 너무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

한편 지성은 자신의 방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다. 그는 본가에서 나와 집을 얻었고 그 후 모든 집안일과 청소는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는 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정 여사의 그늘에서 편안히 살고 싶지 않았다. 항상 정 여사는 자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했다.

엄마의 잔소리는 점점 더 심해졌고 지성은 자신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큰맘을 먹고 집을 구하고 이사하기 며칠 전 정 여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이렇게 행동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독립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결정한 일이었다.

역시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 여사는 노발대발하며 그의 독립을 반대했다. 하지만 지성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녀는 걱정이 가득 담긴 어조로 지성을 달래기 시작했다.


“지성아, 엄마랑 같이 있어. 너 혼자 뭘 어떻게 하려고 해. 너 혼자 나가 살면서 쫄쫄 굶고 술 마시고 그런 꼴 엄마는 못 봐.”

“엄마, 나 살려고 나가는 거야. 이제 나도 내 삶 살아야지. 나도 달라질 거야.”

“왜 이 집에서는 못 달라져?”

“엄마, 나 나가고 싶어. 걱정 안 시킬게.”

“지성아, 엄마랑 같이 살면 안 되겠니?”

지성이 정 여사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자식이 걱정돼 곁에서 살펴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하지만 지성은 이제 달라지고 싶었다. 더는 정 여사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다.


“엄마, 나 마음 굳혔어.”

지성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정 여사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성아, 끼니 거르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겠다고 약속해.”

“그럼, 걱정 마.”

“그리고 이제 소명이 잊어.”

‘소명이.’

‘내가 소명이를 잊을 수 있을까?’

‘그래도 노력해야지.’

지성은 정 여사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명이 잊을게. 엄마 이제 내 걱정하지 말고 엄마도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재미있게 살아. 엄마 맘고생 시켜서 미안해요.”

지성은 정 여사를 꼭 안았다. 정 여사는 아무 말 없이 지성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지성아, 잘 살아야 한다.”

“응.”

“자주 들르고 엄마 아들 너 하나야. 알지?”

“네.”

 

지성은 청소를 마치고 혼자 앉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의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그는 사랑을 잃었고 혼자 남았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런 자신의 행동에 눈곱만치의 죄책감이 없었다. 그때는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이 살았다. 지성은 한심한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후회로 밀려들었다.

왜 자꾸만 소명이 머리에 맴도는지.

지성은 아마도 평생 소명을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명의 소식을 듣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와 연락하던 동료는 조심스러워하며 소명의 이야기를 전했다.

소명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쓰라렸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녀와의 행복을 산산 조각낸 건 그녀가 아닌 그 자신이었다.

치졸한 인간처럼 그녀의 소식을 듣는 날이면 그는 밤잠을 설쳤다.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깊은 좌절감이 그를 짓눌렀다. 이미 때는 늦었고 아무리 땅을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지성은 컴퓨터 앞에 앉아 채용 사이트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

오늘은 소명이 만삭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사진관 안이 왁자지껄 소란했다. 사진관 안에는 도하, 차 회장, 은영과 정희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부인, 저는 사랑이가 딸이어서 좋아요.”

은영이 활짝 웃으며 정희에게 말했다.


“저도 좋아요. 이렇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얼른 안아보고 싶네요.”

사실 정희에게 사랑은 귀하디귀한 존재였다.

지성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맘 고생한 딸을 알기에 이렇게 빨리 찾아와준 사랑이가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사랑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기대되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소명이의 만삭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고 하니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차 회장도 알면 알수록 소명이 좋아졌다.

소명은 항상 기품이 넘쳤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인데도 자신을 낮추고 주변 사람들을 챙겼다.

그녀를 모든 사람이 좋아했다.

만삭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고 제안한 사람도 소명이었다. 자신을 어려워할 만도 한데 소명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었다.

차 회장은 바쁜 일정을 다 제쳐놓고라도 오늘 꼭 오고 싶었다. 자신과 은영을 생각해주는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이다.

소명이 들어오고 나서 도하와 차 회장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다정한 부자 사이를 바라보는 은영도 너무 행복했다.

차 회장은 도하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소명이는?”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곧 나올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소명이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배가 많이 나왔지만 한 생명을 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울컥하고 올라와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의 아이를 품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 생긴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사진작가가 밝고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 자리 잡아 주세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 각자 자리를 잡았다. 소명과 도하가 정중앙에 섰고 소명의 옆에 차 회장과 은영이, 도하의 옆에 정희가 섰다.


“자, 웃으세요.”

사진작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 회장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번졌다. 도하는 아버지가 이렇게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낯설어 잠시 차 회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이렇게 두 사람을 응원해주고 축복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하와 차 회장은 서로 바라보며 미소를 건넸다.

은영과 정희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소명과 도하도 서로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와, 진짜 행복해 보이시네요. 정말 자연스러우세요. 네. 너무 좋습니다.”

사진작가가 신이 난 듯 플래시를 터뜨렸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소명은 독사진을 찍고 있었고 차 회장은 도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하야, 먼저 가서 미안하다.”

“괜찮아요. 아버지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뭘. 이렇게 와 주신 것도 감사해요.”

“당연히 와야지. 오늘 새로운 가족사진 찍는 날인데, 사랑이 태어나면 다시 찍자.”

“네.”

옆에서 도하를 바라보던 은영이 말했다.


“우리 소명이는 배만 나왔지. 그대로야. 오늘 너무 예쁜 거 있지. 엄마 갈게. 소명이한테 인사 전해줘.”

“응.”

바쁜데도 이렇게 와 준 차 회장과 은영이 고마워서 정희는 차 회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사돈어른, 사부인 너무 감사해요, 바쁘실 텐데.”

“아닙니다. 당연히 와야지요. 우리랑 같이 가족사진 찍자고 하는 소명이 마음이 너무 고맙지요. 소명이 잘 키워주신 사부인께도 늘 감사드리고요.”

“아이고, 별말씀을요.”

“그럼 나중에 꼭 식사 같이 해요.”

은영이 정희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정희도 은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 회장과 은영이 떠나고 나서야 소명의 촬영이 끝났다. 소명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도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님, 어머님은요?”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으셔서 얼른 찍고 가셨어요.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다른 날로 잡을 걸 그랬나 봐요.”

“아니에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아버지 어머니 항상 바쁘신 분들이라.”

소명은 바쁜데도 함께 사진을 찍어주시는 아버님 어머님께 너무 감사했다.

촬영용 드레스를 갈아입고 나온 소명을 보며 도하가 말했다.


“소명 씨, 저 잘 다녀올게요.”

“도하 씨, 출장 잘 다녀오세요.”

사실 오늘 도하는 촬영이 끝나는 대로 출장 일정이 잡혀 있었다.

도하는 소명과 잠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업무였다.

소명도 도하와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 둘은 결혼한 지 일 년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 애틋했다.

옆에서 두 사람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던 정희가 말했다.


“두 사람 결혼한 지 일 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소명 씨, 도하 씨가 뭐야. 여보, 당신 해야지.”

소명과 도하는 정희의 말을 듣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로를 너무 아끼고 존중해서 둘은 아직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점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결혼을 했으니 호칭은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명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하에게 속삭였다.


“여보, 잘 다녀오세요. 보고 싶을 거예요.”

소명이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자 도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댔다. 도하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여자는 소명뿐이었다.

도하도 질세라 소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보고 싶을 거예요. 여보.”

정희는 소명과 도하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도하는 소명의 손을 잡고 살짝 웃음 짓다가 손을 놓고 소명의 배에 손을 얹었다.


“사랑아, 아빠 갔다 올게.”

도하는 사랑이에게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다시 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모님, 잘 다녀오겠습니다. 소명 씨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오랜만에 우리 딸이랑 같이 있으니 좋아.”

도하는 예의 바르게 정희에게 인사를 했다.


“얼른 타고 가요.”

도하의 말을 듣고 소명과 정희는 차에 올라탔다.

소명은 차에 올라타서 도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도하도 소명에게 손을 흔들고 정희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소명이 떠나는 걸 보고 나서야 도하도 차에 올랐다.

******

차에서 모녀는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소명아, 힘들진 않아?”

정희는 배가 많이 나온 소명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데 다행히 체중이 많이 안 늘어서 그렇게 힘들진 않아.”

“힘들더라도 자주 움직여야 순산해.”

“알았어. 자주 움직일게.”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는지 알기에 소명은 다시 한번 감사했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가 봐. 엄마가 내 엄마여서 나는 정말 행복해.’

엄마한테 직접 말은 못했지만, 소명은 진심으로 엄마를 존경했다.


“엄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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