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그와 그녀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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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화 그와 그녀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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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화 그와 그녀는 운명
2023.05.29.
“나 정말 꿈만 같아. 엄마, 사랑이가 배 속에서 움직일 때 진짜 신기하다.”
“너도 그랬는데.”
정희도 소명을 가졌을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아빠가 엄청나게 좋아했어, 너 태어난 날. 딸이라고. 연애할 때부터 딸딸 노래를 불렀는데.”
“아빠 보고 싶다.”
소명의 말에 잠시 모녀는 아빠와의 추억에 젖어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집에 도착했다.
기사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 집에는 소명과 정희 둘만 남았다. 정희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엄마, 도우미 아주머니가 청소해주시고 반찬도 해주시고 가셨어.”
“아니. 그래도 우리 딸 내가 만든 밥 먹이고 싶어서 그렇지.”
“엄마…….”
“좀 쉬고 있어. 무리하면 안 돼.”
“아까는 자주 움직이라며.”
소명과 정희는 서로 바라보며 풋 하고 웃음보가 터졌다.
“많이는 움직여야 하는데 오늘은 힘들었잖아. 소명아.”
소명은 주방에 서 있는 정희에게 다가가 살포시 정희를 끌어안았다.
“엄마, 나 엄마 같은 좋은 엄마가 될게. 여태까지 항상 나 믿어주고 힘줘서 고마워.”
“소명아, 엄마는 아주 행복해. 네가 이렇게 사랑받고 사는 모습 엄마가 항상 바라던 일이었어. 사랑이도 생기고, 이제 여한이 없어.”
“엄마, 나 진짜 엄마 행복하게 해줄게. 효도 할 거야.”
“네가 이렇게 잘 사는 모습 보여 주는 게 효도야. 얼른 좀 쉬고 있어. 우리 사랑이 힘들라.”
“알았어요. 엄마? 나 진짜 안 도와줘도 돼?”
“그렇다니까. 엄마가 솜씨 좀 발휘해볼게.”
“음. 기대된다.”
정희는 주방에서 요리하기 시작했고 곧 주방 안은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다.
“소명아, 밥 먹자.”
“응.”
소명과 정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와, 엄마 잘 먹을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
소명은 정희가 정성스럽게 구운 쇠고기 스테이크를 버섯과 함께 집은 후 입안에 넣었다. 입안에 들어온 쇠고기는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스르르 녹아내렸다.
“엄마, 정말 연해. 너무 맛있어.”
“많이 먹어.”
소명은 쇠고기를 다시 버섯과 함께 집어 정희의 입 앞에 내밀었다.
“엄마도 먹어야지. 아 해.”
“아.”
소명은 정희의 입에 쇠고기를 넣어 주었다. 입안에 들어온 쇠고기를 씹던 정희의 표정에 미소가 만연했다.
“진짜 맛있다.”
“도하 씨도 좋아할 텐데.”
“나중에 또 같이 먹으면 되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는 건 진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는 단짝을 만나 행복한 모습을 보니 정희는 행복했다.
소명과 정희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샤워를 하고 한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허리는 안 아파? 엄마 너 가졌을 때 허리가 아주 아팠었는데.”
“나는 아직 괜찮아.”
“다행이다.”
소명과 정희는 나란히 다정하게 누워 서로를 바라보았다.
“우리 소명이 정말 배 많이 나왔다. 진짜 신기해. 소명이 아기였었는데 이제 엄마가 되는구나.”
정희는 감회가 새로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 나 아이를 갖고 보니까 자꾸 엄마 생각이 나.”
“내 생각?”
“응. 엄마도 나 임신했을 때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
“엄마는 너 임신했을 때 하루하루 설레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엄마, 고마워. 나 낳고 이렇게 키워줘서.”
소명의 말에 정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가 고맙지. 한 번도 엄마 힘들게 하지 않고 잘 자라줘서.”
“앞으로 잘할게. 엄마.”
“지금도 충분히 넌 잘하고 있어.”
정희는 소명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소명도 정희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며칠 후, 소명은 공항에 나와 도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오늘 마중을 나온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
도하를 깜짝 놀라게 하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작 며칠 보지 못한 거지만 왜 이렇게 도하가 그리운지 몰랐다.
소명은 도하를 볼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하며 도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멀리서 딱 봐도 그인 걸 알 수 있었다.
큰 키와 자신감 있는 걸음걸이 눈코입 하나 모자랄 것이 없는 완벽 그 자체, 도하가 당당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소명은 도하의 모습을 보며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도하 씨?”
소명이 마중 나온 모습을 발견한 도하의 눈이 커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명 씨?”
도하는 소명을 발견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는 달려와 소명을 꼭 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힘들 텐데 나와 줘서 고마워요.”
소명과 도하는 몇 년 못 만난 사이처럼 서로에게 애틋했다. 옆에서 있던 이 비서는 조용히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소명과 도하를 보면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졌다. 두 사람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둘은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의 재회를 하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이 비서를 발견한 소명은 그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이 비서님. 죄송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네, 사모님.”
이 비서는 소명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가실까요?”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 가지고 왔죠?”
“네.”
“그럼 이 비서 집으로 가고 전 이 사람 차 타고 갈게요.”
“아, 네. 대표님.”
그때 소명이 이 비서를 보고 말했다.
“이 비서님 우리 집에서 식사하시고 가세요.”
“네?”
이 비서는 도하를 바라보았다. 출장 때문에 피곤한 건 아닌지 자신 때문에 도하가 쉬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 그래요. 같이 가요.”
“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하긴요.”
소명이 이 비서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엄마 다녀가셔서 밑반찬 많이 만들어 주셨어요. 싸드릴게요.”
“아, 저번에도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감사합니다.”
소명과 도하는 이 비서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식탁에 음식들이 정갈하게 차려지고 있었다. 이 비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명과 도하가 함께 음식들을 세팅하고 있었다.
도하는 우리나라에서 손으로 꼽히는 대기업의 대표이사다.
하지만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얼마 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 비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저도 시키세요.”
이 비서의 말을 들은 소명은 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신데 앉아 계세요. 다 차렸어요.”
이 비서는 소명은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해서.”
“아이, 그런 말 마세요. 대표님 일 너무 잘 도와주셔서 늘 감사했어요.”
“…….”
이 비서는 소명의 말에 살짝 코끝이 찡해졌다. 소명이 자기 일에 대해 인정해 준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렇게 따뜻이 대해 주셔서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이 비서는 진정을 담아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때 도하가 이 비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비서님, 그동안 진짜 감사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아,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진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도하가 이 비서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자, 국 식겠어요. 어서 드세요. 이 비서님 맛있게 드세요. 도하 씨도요.”
소명이 상냥한 목소리를 말했다. 도하는 소명을 바라보며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데도 이렇게 따뜻하고 고운 사람. 도하는 소명이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세 사람은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소명이 차와 과일을 내 왔다.
그때 도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아버지시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네.”
도하가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피하자 소명이 따뜻한 차를 이 비서 앞에 내밀었다.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 비서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코끝에 차의 은은한 향기가 감돌았고 몸이 따뜻해졌다.
“사모님, 대표님이 사모님 만나시고 정말 많이 달라지셨어요.”
“아. 네. 저도 도하 씨 만나고 많이 밝아졌어요.”
“예전에 성심 대학병원에서 좋은 일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진짜 너무 놀랐거든요. 아마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지신 것 같아요. 전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따뜻한 분이신 거 몰랐거든요.”
“성심 대학병원이요?”
“네.”
“원래 한 번도 저하고 약속하신 시간을 어기신 일이 없는 분이신데 그날 병원에 가시는 바람에 급하게 준비했죠.”
“!”
소명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짓자 이 비서가 말했다.
“대표님이 냉정해 보여도 아프신 분을 그냥 못 지나치신 것 같아요. 저한테 자세히 말씀해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전 알았죠. 대표님 진짜 좋으신 분이라는 거.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전 알았어요.”
이 비서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상사가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도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소명 앞에 서면 자꾸만 편안해지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말까지 해버렸다.
자신이 너무 격식 없이 떠든 것 같아 이 비서는 소명을 보며 말했다.
“사모님 제가 안 해도 되는 말을 막 떠들었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도하 씨에 대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이 비서는 소명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이 비서의 말을 듣고 소명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을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던 남자. 그 남자가 누군지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다.
그런데 자신이 쓰러졌을 때 자신을 구해주고 병원비를 내주고 가버린 사람이 도하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명은 가슴에서 뭉클한 것이 피어올라 자꾸만 울컥거렸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업고 병원으로 뛰어온 남자가 도하였다니.
‘나를 구해주고 보호해준 남자.’
바로 이 사람 차도하였다.
‘도하 씨,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내 앞에 나타나 줘서, 우리 사랑이의 아빠여서 너무 감사해요.’
이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항상 자신이 괴롭고 아플 때 그가 나타났다.
그와 그녀는 운명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두 단어로 하나가 되었다.
‘당신이었군요. 얼마나 고마워했는데…….’
자꾸만 마음속이 따뜻해졌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 사랑이라는 두 단어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고마워서 너무 가슴이 뜨거워졌다.
‘당신에게 늘 온 힘을 다할게요.’
‘당신이 나에게 준 것보다 더 내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할게요.’
‘끝까지 당신과 함께 있을게요.’
얼마 뒤 도하가 전화 통화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가 출장 잘 다녀왔나 물으셔서요. 살짝 업무 보고도 하느라 늦었네요.”
소명은 그런 도하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행동에 놀라 도하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명 씨, 혹시 어디 아파요?”
“아니요.”
“그럼 왜?”
“도하 씨!”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울어요? 왜? 울지 마요.”
도하는 소명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녀가 왜 그러는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고마워요.”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렸다.
“소명 씨?”
도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 비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도하 씨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