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회귀하다
내 인생은 괴롭힘의 연속이었다.
분명 중학교 때까지는 아무 문제없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학년, 같은 반이었던 운동부 놈들에게 찍힌 것을 계기로 내 인생은 망가졌다.
아마 음악에 대한 열정과 꿈이 아니었다면 난 걷잡을 수 없는 길로 가게 됐을 것이다.
타고난 조건이 좋았고, 재능도 나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난 국내 최고 기획사의 연습생이 됐고 빠른 속도로 데뷔조가 될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싶어 연습과 데뷔를 핑계로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악몽 같은 그 녀석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기뻤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게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난 팀원들을 잘 못 만났다.
함께 데뷔한 애들은 날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일이 잘 안 풀리면 모두 내 탓을 하며 나에게 화를 풀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내가 왕따를 당한다는 주장이 팬들에 의해 제기됐다.
내 운명에 본격적으로 불행이 찾아온 것이 바로 이때부터였다.
회사뿐만 아니라 아이돌 판 전체가 뒤집혔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아이돌에게 왕따 논란은 굉장히 치명적인 이슈였기에.
난 피해자니 당당했다.
내 잘못은 없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멤버들이 자신들이 따돌린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건방을 떨고 인기를 빌미로 갑질한 거라며 작정하고 몰아붙인 것이다.
놀랍게도 소속사는 내가 아닌 가해자들 편을 들었다.
처음에는 오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다른 멤버가 나 하나를 왕따시킨 거라면 팀을 해체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모두를 왕따시킨 거라면?
나 하나면 내보내면 된다.
억울하고 미칠 지경이었지만,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와 멤버들은 입을 맞춰 나를 공격했고, 난 인기만 믿고 갑질한 쓰레기로 낙인 찍혔다.
그렇게 난 팀과 회사에서 방출되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내가 속했던 팀은 새 멤버를 영입해 신곡을 런칭했고, 크게 성공했다.
그들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나를 토크거리로 써먹었다.
그때마다 난 다시 한 번 천하의 몹쓸 놈이 됐고, 그들은 나쁜 짓을 당했으면서도 한때의 동료를 염려하고 그리워하는 참 인성 아이돌이 됐다.
수시로 그들의 팬들이 몰려와 나를 괴롭혀댔다.
난 SNS를 닫고, 본명까지 버린 채 철저히 음지에서 살아야 했다.
그 뒤로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것 같다.
한 때 뮤지션을 꿈꿨기에 예명을 만들고 곡만 제공하는 작곡가로 활동도 해봤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카페를 차리기도 했다.
때로는 실패해서 돈을 날렸고, 그것을 매우겠다고 작곡, 외주 등등······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러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내 이름과 얼굴을 외부에 알리지 못했다.
계약할 일이 있으면 동생이나 가족을 내세웠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오늘.
난 텅 빈 카페에 앉아 멍하니 TV를 시청했다.
그놈들은 미국 지상파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었다.
싱글이 빌보드 핫 차트에 진입했다나?
거기까지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닌데, 토크 소재로 풀어먹는 게 문제였다.
[ 위기요? 있었죠.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
[ 지금은 방출된 팀원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재능은 있는데 참 뭐랄까... 통제가 어려운 성격이었어요. 아시죠? 제가 무슨 말 하고 싶어 하는지. ]
[ 그때는 그 친구 많이 원망했는데, 덕분에 지금 우리의 팀워크, 그리고 인격이 한층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해요. ]
“지랄 났네 아주.”
저놈들은 잊을 만하면 내 이야기를 방송에서 떠들댔고, 그때마다 기사 댓글과 관련 커뮤니티에는 내 욕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인터넷에 접속하지 말아야겠다.
난 여동생으로부터 선물 받은 위스키를 따서 무작정 입에 들이부었다.
금방 취기가 몰려왔다.
저 새끼들 꼴보기 싫어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여기서도 아는 얼굴이 나왔다. 축구복을 입은 선수가 인터뷰 중이었다.
[오늘 승리는 제가 아닌 동료들 덕분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라고 생각합니다.]
최민석.
한국 대표 스트라이커이자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해 활약하는 한국 축구의 자랑.
아마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팀워크를 가장 중시한다는 저 대단한 선수가 고등학교 시절 날 그렇게 괴롭히던 개새끼였다는 사실을.
“시발······.”
난 지금 이러고 살고 있는데, 가해자 새끼들이 왜 이렇게 잘나가고 있는 거지?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끊어 오르는 분기에 위스키를 마구 들이켰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절대 당하고만 살지는 않을 텐데. 좋아하는 거 실컷하고 가족들도 호강시켜주고,”
결국 취기를 이기지 못한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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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바닥에 누워있던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마치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다.
내가 대체 얼마나 마신 거지?
그런데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새끼 고작 그거 맞았다고 아픈 척하네.”
“······응?”
내 눈앞에는 방금 TV에 있던 남자가 서있었다.
“최민석?”
“야! 이 새끼 봐라. 왜? 맞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 해?”
녀석은 TV에서와는 달리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도 훨씬 어려 보였다. 마치 진짜 고등학생처럼.
이건 뭐지?
꿈인가?
“야! 김민. 내 말 안 들려?”
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드, 들려.”
“내가 분명히 카레빵 사오라고 했지? 그런데 왜 소보로빵 사왔어?”
그러게.
너는 카레빵을 좋아하는데, 내가 왜 소보로빵을 사왔을까?
“다 팔려서?”
최민석은 내 얼굴에 소보로빵을 집어던졌다.
“시발. 그럼 미리미리 사다놓던지. 너 지금 나한테 개기냐?”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다.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 거지?
너무 억울해서 꿈에서라도 복수하라고?
“나 지금 훈련 가야 하니까 이따 끝나고 보자. 나 돌아올 때까지 교실에 남아있어. 도망치면 집으로 찾아간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어! 잠깐만.
이대로 가면 어떡해?
꿈에서 깨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난 다급하게 옆에 있는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교실을 나가려는 녀석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빠악!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최민석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크윽!”
안타깝게도 한방에 기절하지는 않았다.
꽤나 아픈지 녀석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말했다.
“뭐야? 김민 니가 지금 의자로 날 친 거냐?”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은데.”
그러자 최민석의 눈이 뒤집혔다.
“씨발! 이 미친 새끼가! 뒤질라고!”
녀석은 일어나려 했지만, 충격이 컸는지 비틀거렸다.
“꺄악!”
“민석아! 피! 피!”
머리에서는 피가 질질 흘러내렸고, 놀란 학생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난 마음이 조급했다
언제 꿈에서 깰지 모른다.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러니까 일단 패자.
난 의자를 들고 쓰러진 녀석을 내리쳤다.
빠악!
“자, 잠깐.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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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X반 학생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최민석은 학급의 최강자였다. 185센티미터 키에 80킬로그램 몸무게. 1학년 임에도 전국대회 주전으로 뽑힐 정도로 피지컬이 좋았다.
반면 김민은 최약체였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최민석은 김민을 괴롭혔다.
다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런데 매일 일방적으로 처맞던 놈이 갑자기 미쳤는지 의자로 최민석의 머리를 내리 찍은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폭행은 계속 이어졌다.
“큭! 너 이 새끼! 죽여 버린다!”
하지만 매에는 장사 없는지,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며 난리치던 최민석은 어느새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 사, 살려줘. 파, 팔이······.”
하지만 김민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이런 놈 무서워서 학교 다니기를 힘들어 했다니.’
생각해보니 더 열 받는다.
그래서 더 팼다.
이러다가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학생들이 김민의 몸을 붙잡고 뜯어말렸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이거 놔! 아직 덜 때렸어.”
싸움. 아니, 일방적인 폭행의 현장은 왠지 배 나온 중년 선생의 등장으로 끝났다.
건장한 체구에 깍두기 머리,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지닌 그는 목청껏 소리쳤다.
“이놈들이 신성한 학교에서 왜 싸움박질······ 허억!”
그는 1학년 X반의 담임 ...이었다.
현장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최민석은 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며 울고 있고, 그 앞에는 김민이 의자를 들고 서있었다.
대체 뭔 짓을 했는지 의자는 네 다리가 모두 휘어진 상태였다.
...선생은 다가가 최민석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온몸을 둥그렇게 만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흑흑! 뼈, 뼈가 부러진 것 같아.”
...선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민! 너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러자 김민은 이상하게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제가 먼저 맞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정당방위인 셈이죠.”
“뭐라고?”
“왜 모른 척 하세요? 저 최민석에게 학폭 당하는 거 선생님도 아셨잖아요. 개인 상담할 때 얘기하니 괜한 분란 만들어서 학교 명예 실추시키지 말라면서요. 축구부에 지장 생기면 저보고 책임질 거냐면서. 선생님이 평소 선생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했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선생은 당황했다.
“뭐, 뭐?”
물론 상담 때 비슷한 말을 하긴 했었다.
그러자 김민은 입을 다물었고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설마 최민석을 이렇게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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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실에서 치료받고 끝날 일이 아니었기에 최민석은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그리고 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늦게 돌아오실 예정이고, 아버지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오후 늦은 시각에 대리 운전 일을 나가셨다.
초등학생인 여동생은 학교에 있으니, 집은 비어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꿈이 아닌가?”
아까부터 꿈이라기에는 너무 현실감이 넘쳤다. 무엇보다 아직도 온몸이 아프다.
설마 나 과거로 돌아온 건가?
몇 번이고 이 순간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때처럼 바보 같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증거! 일단 증거부터 찾아야지.”
그런데 증거를 어떻게 찾지?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주인님: 너이색ㄲ네가받드시주겨버린다!]
뭐라 쳐씨부리는 거야?
“주인님?”
난 코코아톡 채팅방을 훑어보았다.
[ 김민 개새꺄. 빨리 대답 안 해? ]
[ 내일까지 10만 원 가져와. ]
[ 어디 가서 말하기만 해. 난 조금 혼나고 말겠지만 넌 인생 조지는 거야. ]
[ 야. X반 미주 존나 맛있게 생기지 않았냐?]
[ 미술 선생 수학 선생이랑 영어 선생이랑 잤다는데 ㅋㅋㅋ]
[ 여자애들 옷 갈아입는 거 몰래 찍은 건데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존나 고맙지?]
[ 1초만에 대답하라고 새꺄. 내가 니 톡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냐?]
[ 야! 솔직히 말해봐. 니 엄마 조선족이지?]
[ 명심해. 난 주인이고, 넌 노예야 ]
어째 정상적인 대화는 하나도 없고 전부 욕이다.
여학생들과 여선생들에 대한 성적인 얘기도 가득하다.
여기에 더 해 날 때리고 이상한 짓을 시키는 사진, 영상 자료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시발.”
굳이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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