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니 인생 정도는 걸어야지
2화. 니 인생 정도는 걸어야지.
다음 날.
난 학교로 등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란스럽던 교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안 보는 척하며 나를 힐끔거렸다.
하기야 왕따가 갑자기 미쳐 날뛰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난 앞에 있는 남학생을 보며 물었다.
“너 김한중이지?”
“어, 어. 뭐야?”
최민석 만큼은 아니지만, 옆에 껴서 나를 괴롭혔던 놈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내 자리 어디냐?”
“저, 저기잖아. 그걸 왜 물어?”
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넌 나중에 보자.”
“······.”
난 자리로 가서 가방을 놓고 앉았다.
그런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교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투피스 정장에 귀금속을 걸친 중년여성이 등장했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김민이라는 놈이 누구야? 어디 있어? 당장 나와!”
귀찮아질 것 같아서 안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새 다른 학생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이 대충 예상이 됐다.
난 핸드폰의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누른 다음 옆에 있는 학생에게 건네줬다.
“야. 이거 찍어.”
“으응?”
“들고 있으라고.”
중년여성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니가 김민이야?”
“그런데요.”
그녀는 손을 들어 세차게 휘둘렀다.
“니가 감히 내 아들을 그 모양으로 만들어!?”
짜악!
“꺄악!”
“헉!”
정작 나는 아무 소리 안 냈는데, 여학생들의 비명소리와 남학생들의 헛숨 삼키는 소리 등이 들려왔다.
난 돌아간 머리를 원위치 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째려봐? 어린 새끼가 버르장머리 없게 감히....”
하지만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똑같이 뺨을 후려갈겼으니까.
짜악!
먼저 선빵을 날려놓고 자신이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중년여성은 미친 것처럼 소리쳤다.
“너 미쳤어? 깡패야?”
“아줌마 미쳤어요? 조폭이에요?”
뒤따라 교실로 들어온 거구의 중년남성과 최민석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 야, 이 씨발 새끼야! 니가 뭔데 우리 엄마를 때려?”
“그러는 니네 엄마는 뭔데 날 때리는데?”
녀석은 눈깔을 뒤집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정상적으로 붙으면 내가 상대가 될 리 없다.
그런데 어제 일로 정말 뼈가 부러졌는지 녀석은 왼팔이 깁스를 하고 있고, 다리도 좀 절었다.
난 일단 의자부터 집어들고 휘둘렀다.
인간은 도구를 쓰도록 진화했다. 내가 예전에는 왜 이 사실을 몰랐을까?
“자, 잠깐.”
어제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최민석은 뒤로 물러나 피했다.
“어쭈? 피해?”
안 그래도 어제 좀 덜 팬 것 같은데 마침 잘됐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정당방위다.
내가 먼저 니 엄마한테 맞았으니까.
그때 담임이 등장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멈춰!”
마치 학폭 예방 캠페인처럼 학생들이 일제히 ‘멈춰’를 외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랬으면 내가 매일 같이 처맞을 일도 없었겠지.
“멈추긴 뭘 멈춰?”
이제 내가 팰 차례인데.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담임이 내 몸을 붙들었다.
“야! 김민.”
“아니! 저 자식을 잡아와야지 왜 절 잡습니까?”
“이 미친놈아. 의자 내려놔!”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결국 교장까지 등장하고 나서야 사태가 일단락 됐다.
* * *
교장실.
내 양 사이드에는 교장과 담임이, 그리고 맞은 편에는 최민석 일가가 나란히 앉았다. 반면 난 혼자다.
최민석 아버지는 중견건설사 사장으로 이 학교 재단 이사장 일가와도 친분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교장은 쩔쩔 매는 모습이었다.
최민석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깡패 같은 놈이 우리 애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십시오. 그것도 모자라 내 아내까지 때렸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교장은 쩔쩔 매며 말했다.
“아버님. 일단 진정하시고······.”
“전 이번 일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경찰에 신고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습니다.”
최민석 어머니는 악에 받힌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놈은 교도소 가서 콩밥 좀 먹어봐야 돼요!”
“어, 어머님······.”
난 태연하게 말했다.
“깡패는 댁 아드님입니다. 콩밥을 먹어도 같이 먹어야죠.”
최민석 어머니가 즉각 반박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민석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니야. 얼마나 착하고 귀하게 자랐는데. 우리 민석이는 축구 밖에 모르는 애야.”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내가 그래서 이런 학교 보내지 말자고 했잖아. 축구 명문이라고 보내놨더니 대체 이게 뭐야?”
최민석 아버지는 교장에게 말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어린놈이 어른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휘두르다니. 즉시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법적 처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부부가 쌍으로 지랄이다.
최민석은 뭐가 그리 억울한 지 날 노려보았다. 아마 부모와 선생이 없었다면 다시 달려들었을지 모른다.
난 옆에 있는 화분부터 체크했다.
도구는 항상 중요하지.
교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으음,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민석 학생이 크게 다친 만큼 학교에서도 이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퇴학 문제는 교칙에 따라 처리하겠습니다.”
시발.
어째 나 하나 잘리고 끝날 것 같은 분위기다.
이해는 된다.
성적으로는 별볼 일 없는 이 학교의 유일한 자랑은 바로 명문 축구부. 그리고 그 축구부의 에이스가 바로 최민석이다.
최민석이 들어온 이후 전국대회 우승도 가능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부모님도 빵빵하니, 둘 중 하나를 잘라내야 한다면 나를 잘라내는 게 맞겠지.
난 교장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교칙이 중요하다고 해도 민석이를 퇴학까지 시키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비록 제가 피해자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원치 않습니다. 민석이 미래를 봐서라도 선처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교장은 당황했다.
“아, 아니······.”
담임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김민! 지금 널 퇴학시키겠다는 거잖아.”
난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저를요? 무슨 말인 몰··· 루겠······ 제가 피해자인데 왜? 이 학교는 교칙에 왕따 피해자는 퇴학시킨다고 되어있나요?”
그러자 최민석 어머니가 소리쳤다.
“니가 무슨 피해자야!? 우리 아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
“아! 맞기는 제가 더 많이 맞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난 긴말하는 대신 먼저 웃통을 벗었다.
내 모습을 본 최민석 부모와 교장, 담임은 깜짝 놀랐다.
멀쩡한 얼굴과는 달리 몸에는 어제 생긴 멍부터, 그전에 생긴 멍들까지 다양했다. 왜냐하면 티 안 나게 몸만 때렸으니까.
“민석이가 제 몸에 만든 멍입니다. 전 매일 같이 민석이에게 이렇게 맞았습니다. 민식이 말에 따르면 저를 때려야 경기 성적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제가 아드님 커리어를 위해 이렇게 희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놀란 부모가 민석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민석은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 저건 그냥 친구끼리 장난치다가 그런 거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드님께서는 사람 패는 걸 장난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난으로 이 정도 팼으니 진짜로 때렸으면 전 지금 죽었겠네요.”
“나, 나 말고도 다른 애들도 때렸는데······.”
최민석 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했다.
“우, 우리 애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증거요? 원하시면 보여드리죠. 착하고 귀하게 자란 민석이가 학교에서는 이렇게 지낸 답니다.”
난 샘플로 핸드폰으로 영상 하나를 틀어주었다.
거기에는 최민석이 권투연습 한답시고 나를 샌드백처럼 두드리는 영상이 있었다.
[넌 이제부터 인간 샌드백이야. 알았어?]
[역시 발만 쓰지 말고 가끔 이렇게 손도 써줘야 돼. 잘 피해봐. 스트레이트 들어간다.]
[아, 이 새끼 또 엄살이네. 맞기 싫으면 피하면 되잖아.]
[어쭈 피해? 한 대 대리고 끝내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 개새꺄! 죽어! 죽어! ]
[ 크크! 이 병신 몇 대 맞고 우는 거 봐라. ]
최민석이 날 신나게 두드려 패며, 통쾌하게 웃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모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우, 우리 민석이가 이럴 리가.”
최민석은 당황했다.
“아, 아니. 이거 조작이야. 나 아니야.”
난 차분하게 말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민석아. 이거 너 맞잖아. 니가 찍어서 나한테 보내준 거잖아.”
이게 바로 학폭의 웃기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폭행이라면 가해자는 자신의 폭행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폭은 증거를 숨기기는커녕 가해자가 자랑을 못해서 안달이다.
그 이유는 범죄라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겠지.
난 그 외에도 코코아톡에 남겨진 패악질의 흔적들을 공개했다.
“민석아. 여학생들 탈의실 몰카는 성범죄야.”
“그, 그건 내가 찍은 게 아니라······.”
“응. 유포도 범죄야. 그리고 니 엄마 조선족은 진짜 너무하지 않니? 우리 엄마 조선족 아니야. 제발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줘. 이렇게 부탁할게.”
“이, 이 새끼가······.”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놀란 최민석 어머니가 내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
“어디서 이런 걸!”
난 재빨리 손을 뒤로 빼며 말했다.
“이미 다 백업해 놓았으니 핸드폰 부숴도 소용없어요. 민석가 축구뿐 아니라 권투도 잘한다는 걸 전세계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뭐라고?”
난 교장을 보며 말했다.
“교칙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도록 되어있나요?”
“아, 아니, 교칙은 교칙이고······.”
“축구 명문고의 에이스가 이런 짓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축구부도 큰일이겠네요.”
“······.”
최민석 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 그래서 이걸 공개라도 하겠다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그렇게 생각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학폭에 대해 그리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학생 때 학폭이 터져봐야 별 문제가 없다.
그냥 반성하고 사과하고 대충 넘어가지.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전학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만 지나도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학폭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아무리 잘나가는 연예인과 운동선수라고 해도 학폭 가해자로 지목되는 순간 줄줄이 퇴출이다.
“민석이 실력이면 나중에 충분히 프로 팀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가고, 외국 리그에 진출해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겠죠. 전 민석이를 믿습니다.”
난 최민석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5년이고 10년이고, 그때까지 기다릴 겁니다. 민석이 인생이 가장 빛날 그 순간까지 말이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폭행에 성범죄까지 저지른 선수를 어느 구단이 받아줄지 궁금하네요.”
내 말에 최민석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제야 자신의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깨달은 것이다.
난 녀석의 표정을 보며 웃었다.
“학폭을 하려면 적어도 니 인생 정도는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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